203화. < 제7 연구소 (1) >
“광둥성 전체에서 프로젝트를 하자고요?”
장관이 당황하며 물었다.
“네. 어차피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는 지역별로 기후와 지형, 시민들의 숫자와 밀집도 같은 걸 조사한 후 그걸 토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섬 둘에서 시범 테스트를 해서 성공하더라도 광둥성에서 하려면 다시 최적화를 해야해요.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그 섬에서 시범 테스트를 할 이유도 없죠. 거긴 거의 무인도인데 모기를 퇴치할 필요가 없잖아요.”
"......."
뭐 말이야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이 정도로 생태계에 손을 대는 일을 시작부터 대규모로 해도 되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광둥성 같은 중요 경제 요충지 에서?
“광둥성의 성장이 반대할지도 모릅니다.”
장관이 말했다.
“그럼 그 분을 설득해야죠. 도와주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성장하고 미팅은 모레 오후니까, 그때까지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류 박사님도 자료 준비해주세요.”
장관이 말했다.
하지만 이틀 후 아침.
류영준은 성장을 만나기 전, 호텔에 찾아온 손님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깔끔한 정장 차림에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명함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학술지 네이처의 에디터인 안토니입니다.”
류영준은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반갑습니다.”
“류 박사님을 만나기가 정말 쉽지 않더군요. 이번 유전자 조작 아기 때문에 인터뷰를 좀 하려고 왔습니다.”
“네. 좋아요. 제가 먼저 요청한 일이니까.”
그는 비서실을 통해서 유전자 조작 아기의 치료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고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연락해달라고 했다.
사이언스 쪽은 이후에 사무엘 편집장의 전화까지 직접 받았다.
“저쪽에 작은 방을 하나 예약해뒀으니 거기서 진행할까요?”
안토니가 물었다.
“좋습니다.”
류영준이 이동하려던 찰나였다.
쾅!
호텔 정문이 왈칵 열리면서 머리칼이 헝클어진 여자가 불쑥 뛰어들었다.
“류 대표님!”
그녀는 류영준의 얼굴을 재빨리 찾아내고는 이쪽으로 다가왔다.
사이언스 에디터 제시였다.
“휴우……. 겨우 따라잡았네. 저희한테 인터뷰 요청 하셨지요?”
“네. 마침 네이처의 에디터 분도 오셨으니 같이 얘기할까요?”
“감사합니다.”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제시는 겨우 숨을 돌렸다.
류영준은 두 사람과 함께 작은 회의실로 이동했다.
“사실 외신 기자들 잔뜩 모아놓고 왁자지껄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두 학술지 측에만 문의한 이유는, 이게 정치적으로 소화되지 않길 바라서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과학의 전문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가장 위대한 두 저널입니다. 그래서 두 분하고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영광입니다.”
안토니가 말했다.
“단순히 유전자 조작 아기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오늘 저는 모기 멸종 프로젝트와 함께 에이젠바이오가 앞으로 갈 길에 대한 설명을 할 겁니다.”
***
한남대교로 진입하기 전의 한 주유소.
“가득이요.”
박동현이 주유소 직원에게 말했다.
“오빠, 이제 우리 차 바꿀 때 되지 않았어? 애들도 꽤 컸는데.”
박동현의 아내가 물었다.
“바꾸고 싶긴 한데. 우리 아파트 대출금 매달 나가면 지금은 돈이 없지. 이거 몇 년 더 타자.”
“오빠 갖고 있는 회사 주식 팔면 되지 않아? 엄청 많이 올랐다며? 그거 팔면 아파트 대출 중도 상환하고 차도 바꾸겠더만?”
“안 돼! 그건 지금은 아파트 값이지만 몇 년 후면 건물 값이 될 수도 있는 거라구.”
박동현이 기겁하며 말했다.
“모르는 거지.”
그의 아내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백 퍼센트 돼. 우리 대표님 하시는 거 봐. 한 10년 후에는 화성에 개척민들 이주시키고 있을걸.”
“그럼 성과급 나오면 사자.”
에이젠바이오는 창립 첫해 상반기에 엄청난 성과급 파티를 벌였다. 당시에는 회사 규모가 작아서 직원 수는 적었는데 돈은 엄청나게 많이 벌었기 때문이다.
류영준은 회사 전 직원 각자의 연봉의 1.5배를 성과급으로 줬다.
“오빠 생명창조 부서로 내려간 후로 나 그런 목돈 처음 봤잖아.”
아내가 말했다.
그녀는 박동현이 생명창조 부서로 좌천된 일을 가만히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후후. 역시 사람은 올바르게 살아야 해.”
박동현은 여자들을 끼고 노는 룸싸롱 회식을 거부하다가 생명창조 부서로 추락했다.
혼자 깨끗한 척 한다, 우리도 결혼했고 와이프 있는데 우리가 뭐가 되냐는 식의 뻔한 레파토리의 시비에 걸렸다.
거기다 대고 사납게 맞선 게 실수였다. 박동현은 크게 싸운 후 징계를 먹고 생명창조 부서로 이전됐다.
이후로 승진도 못하고 돈도 별로 벌어오지 못했지만 아내는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항상 자랑스럽게 여겼다.
에이젠바이오라는 조그만 벤처로 이동할 때도 설명을 듣고 군말 없이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다.
‘그래도 그동안 꽤 불안하고 힘들었겠지.’
자존심 상할까봐 한번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내가 들고 있는 색이 바랜 가방이 박동현의 눈에 들어왔다.
에이젠바이오에서 처음 큰 돈을 벌었을 때도 그녀는 본인의 옷이나 가방을 사는 쪽으로 한사코 방어적이었다.
그러더니 지금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차를 바꾸자는 것이다.
“차는 우리 애들도 태워야 하고 오빠도 출퇴근할 때 타야하니까.”
그녀가 말했다.
"......."
박동현은 갑자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울컥 솟았다.
“작년 하반기 성과급 많이 나올 거야. 그때 사자.”
박동현이 말했다.
“작년 하반기는 뭐 없이 지나갔잖아? 이미 해가 바뀌었는데?”
아내가 물었다.
“지난 하반기부터 회사 합병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급이 두 달 미뤄진 거야. 합병이 끝난 후에 에이젠 직원들하고 같이 정산하기로 했기 때문에.”
박동현이 설명했다.
“그거 나오면 차도 바꾸고 당신 옷이랑 가방도 좀 사자.”
"흠......."
그녀는 박동현의 옆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비싼 걸로 사줄게.”
“많이 나온대?”
“생명창조 팀은 에이젠바이오 창립 멤버야. 그리고 다른 연구자들도 성과 많지만 우리는 꽤 특별해. 우리는 인공 장기와 오가노이드 개발에 성과 엄청 올렸으니까.”
“많이 주면 좋겠다.”
‘천 박사님 통해서 전해들어서 대강 아는데 당신 상상을 한참 초월하는 수준일걸.’
박동현은 말을 삼켰다.
라디오에서는 류영준이 네이처, 사이언스와 진행한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캐스나인을 이용하여 림프절과 골수에서 표적 유전자를 재건하는 일은 태아 발생 후의 ‘유전 질환’도 우리가 치료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비록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37조 개나 되고, 그 때문에 아직은 면역과 관련된 유전 질환들만을 타겟으로 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그 대상을 특정 질병과 관련된 신체 기관들로 확장시킨다면 다른 타입의 유전 질환들도 분명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류 박사님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난 생물학이나 의학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알겠어. 류 박사님이 대단한 사람인 건.”
아내가 말했다.
“맞아. 그래서 나 앞으로도 우리 대표 뒤만 밀착해서 졸졸 따라가려고.”
박동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오빠처럼 밑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 분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야.”
아내는 박동현의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차창 밖으로 주유소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필터들을 쳐다보았다.
미세먼지를 꽉꽉 채워서 회수된 물건들이다.
필터에는 에이젠바이오 제7 연구소를 상징하는 AB7이 상표가 되어 박혀 있었다.
“필터 갈아드릴까요?”
주유를 마친 직원이 물었다.
“네. 부탁드립니다.”
박동현이 말했다.
필터를 가는 데는 1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는 아니지만 어떤 주유소들은 주유하는 동안 필터만 가는 직원을 따로 뽑았다.
필터를 갈려고 하는 차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달리는 미세먼지 저감 장치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나흘 째.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로 벌써 서울 시내의 승용차의 70 퍼센트가 필터를 부착했다.
그리고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는 이미 30퍼센트만큼 감소했다.
나흘 전엔 ‘위험’ 수치였던 것이 ‘보통’까지 내려왔다.
셀리제너는 미리 사두었던 공장에서 필터 정제 설비를 갖추고, 대규모의 직원을 고용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 필터들을 회수하고 정제해서 비료를 생산하는 데는 인력이 못 따라가는 실정이었다.
필터는 이미 중국과 인도, 러시아 등으로 수출 계약이 맺어졌고, 몇 개의 공장을 추가 준설하게 되었다.
환경부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을 재빨리 차용해서, ‘앞으로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를 세제곱미터당 10 마이크로그램 이하로 항상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그들이 뭘 하는 것은 아니고 셀리제너의 사업이 돌아가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그걸 성공시킨 사람은 류영준이었다.
“류 대표님 귀국하시면 공항에서부터 또 난리나겠네.”
박동현의 아내가 말했다.
“근데 오빠. 류 대표님 모라토리엄 선언하고 그 유전자 조작 아기 치료도 다 끝났다면서 왜 귀국 안 하시지?”
“이제 에이젠바이오는 그냥 단순한 제약사가 아니니까.”
박동현이 말했다.
그는 류영준이 중국에서 지금 하려는 일에 대해 약간 알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주식. 절대 안 팔 거야.”
그가 말했다.
-……해서 에이젠바이오에서는 제7 연구소를 만들고자 합니다.
류영준의 인터뷰가 라디오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
“이번 모라토리엄을 통해서 제가 배아 유전자 조작에 스스로 제동을 걸었지만, 결국 그 목표는 과학을 더 발전시키기 위함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요?”
“줄기세포 기술과 유전자 조작 기술은 모두 생명 윤리와 밀접하게 닿아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마찰이 생길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허찌엔칭 박사처럼 과학을 오용하는 사람들이 더 나온다면 과학계는 심각한 저항을 맞닥뜨리게 될 거예요.”
“어떤 저항인가요?”
“예를 들어 생물학이 극단적인 수준의 발전을 이루어 ‘불로’의 시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에이젠바이오의 잠재력으로 미루어볼 때는 그리 무리한 가정도 아닙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세상 그 어느 신기술이든 처음 등장할 때는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가격차는 기존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던 경제적인 계급 격차를 생물학적인 것으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수명이나 젊음이란 게 인간의 신분을 나누는 계급이 되어버릴 수도 있죠.”
두 에디터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류영준이 말했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강력하고 위험한 계급 사회가 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줄기세포와 캐스나인은 그 환상 같은 미래를 어느 정도 가시권으로 견인했습니다. 충분한 준비 없이 특이점을 넘어버린다면 그 세상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분명 저항할 겁니다.”
“확실히 좀 그렇군요.”
“저는 과학자고 과학주의자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연구에 여러가지 윤리 제동을 거는 겁니다. 앞으로도 에이젠바이오는 두 아이템을 더욱 깊이 연구할 것이기 때문에 허찌엔칭 같은 사례를 이제 만들어선 안 되는 것이죠.”
인터뷰를 끝낸 후에 류영준은 마침내 광둥성의 성장 양군위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대뜸 류영준의 프로젝트를 잘라버렸다.
“광둥성의 모기 박멸은 안 됩니다. 두 섬에서 허가를 내준 것도 최선의 배려였으니 거기서만 연구하십시오.”
아주 완고하고 칼 같은 답변이었다. 놀란 보건당국 장관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이, 이보세요 양 성장. 우리가 얼마나 큰 행운을 잡았는지 아시잖습니까? 류 박사님이 직접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시는데……."
“류 박사님은 대약진 운동이라고 아십니까?”
성장이 물었다.
“대약진 운동이요?”
류영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성장은 빙긋 웃었다.
“젊은 분이라 모르시는군요. 중국은 1950년대에 국가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부 정책들을 펼쳤습니다. 당시 정책 중에는 제사해 운동 이라고 해로운 벌레 따위를 박멸하는 게 있었습니다. 시도는 좋았지요. 위생이나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었으니.”
양군위가 말했다.
“문제는 그 박멸 대상에 참새가 있었던 것입니다. 해로운 건 맞았습니다. 참새는 농작물을 상당량 먹어치우는, 농부의 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한 해 동안 이렇게 참새를 무려 2억 마리를 잡아버리니, 반대로 메뚜기 떼가 창궐해서 식량을 다 먹어치워버린 일입니다.”
"......."
“그때 식량 부족으로 아사자가 4천만 명이 나왔습니다. 지금 한국의 인구에 필적하는 숫자예요.”
“4천만……."
“환경, 생태계에는 손을 대는 게 아닙니다. 류 박사님. 당신이 아무리 천재라도 인간인 이상 하늘의 뜻이나 만물의 생리를 따라잡을 수는 없어요.”
류영준은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여기 인간 아닌 놈도 있다고 알려줄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