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 모라토리엄 (7) >
미미는 일반 병실로 옮겼다.
그리고 이틀째.
그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호흡과 맥박은 정상이다. 미미는 잘 먹고 잘 잤다.
무균실에서와 똑같이 이따금 배냇짓을 하는 그 조그만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이 황홀해진다.
쯔쉬안은 병상 옆에 앉아서 미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모녀의 건강은 정말이지 기구했다.
어머니는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AIDS) 환자.
그 딸은 유전자 조작에 의한 선천성 면역 결핍 (Immunodeficiency disease) 환자.
면역 결핍이라는 질병은 이 모녀에게 그동안 엄청난 고통을 초래했다.
“일반실로 옮기니까 좋죠?”
담당의 장하오위가 들어와서 물었다.
“네. 정말 좋아요.”
쯔쉬안이 말했다.
“소독하고 멸균복으로 환복하고 그 난리를 치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면회 시간도 훨씬 길고 자주 볼 수 있고."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미미의 이마를 살짝 만졌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장하오위가 말했다.
“선생님도요.”
쯔쉬안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제는 거의 다 끝났으니 염려 놓으세요.”
“선생님. 저 에이즈 완치 시술 받으려고요.”
쯔쉬안이 말했다.
“베이징으로 가실 건가요?”
“미미 퇴원하면요. 저한테 이 쿠폰이 있으니까.”
쯔쉬안은 익명의 외국인 과학자가 건네주었다는 봉투를 흔들어보였다.
“잘 간수해요. 비싼 거니까.”
장하오위가 웃으면서 말했다.
“네. 6,000 위안짜리 쿠폰이니까 잘 간수해야죠. 저한테는 너무 큰 돈이니까.”
쯔쉬안은 봉투를 가방에 얼른 넣었다.
‘본래 주인이 누구인지 알면 수집벽 있는 부호들이 그 열 배 가격에도 살 텐데.’
장하오위는 속으로 떠올린 걸 굳이 말하진 않았다.
“미미는 한 달 쯤 있으면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
장하오위가 말했다.
“한 달……."
“사실 당장 퇴원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좀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네. 선생님 말씀대로 해요. 정말 고맙습니다.”
“미미도 퇴원하고 보호자분도 에이즈 완치하면 뭐 하실 거예요?”
“모유 수유부터 할 거예요.”
쯔쉬안이 마치 기다렸단 듯이 단칼에 답했다.
“그래요.”
장하오위는 안쓰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면역 결핍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필사의 수를 짜냈던 결과, 유전자 조작은 또 다른 타입의 면역 결핍을 초래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식해서 그렇다며 끝없이 자책하던 쯔쉬안의 가슴을 가장 난도질했던 것은 하나 더 있었다.
그녀는 아직까지 아기에게 젖을 물려본 적이 없다.
“본래 태아는 탯줄로 산모한테 항체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어난 후에는 모유 수유를 통해서 산모의 항체를 공급받는다고 하죠. 막 태어난 아기의 면역력은 매우 낮고, 그 아기를 노리는 병원균들은 사방에 널려있어요.”
장하오위가 말했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죠. 쯔쉬안씨. 원시시대부터 어머니라는 사람들은 자기 새끼를 외부 위협에서 보호한 건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에서까지도 지켜준 거예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로부터.”
장하오위의 말을 듣던 쯔쉬안은 쓰게 웃었다.
“저도 들었어요. 저는 그렇게 못했지만요.”
그렇게 못한 이유는 둘이다.
하나는 미미 역시 면역 결핍 환자라서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정맥 주사로만 영양분을 투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쯔쉬안이 에이즈 환자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에이즈 바이러스는 모유 수유로 전염될 수 있다.’
둘 다 건강했다면 항체를 전해주어서 그 갓난아기의 몸에 면역력을 증진시키고 세상의 병원균들에게 맞설 힘을 줘야 마땅했다.
하지만 쯔쉬안이 줄 수 있는 것은 에이즈 바이러스, 오직 그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쯔쉬안은 세상이 다 무너지는 듯한 죄책감에 파묻혔다.
그것은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기어코 발목을 잡아채 지옥으로 끌고 가는 악마의 손길 같았다.
평생을 시달려온 가난과 질병.
광둥성 찌에양의 매혈 마을에서부터 들러붙은 에이즈 바이러스는 마치 가난처럼 대물림되려고 했다.
“의사 선생님. 저는 그게 제 운명인 줄 알았어요.”
쯔쉬안이 말했다.
“그렇게 가난하고 아프게 살다가, 내 아기한테도 가난하고 아픔만 물려주고, 그렇게 늙어 죽는 게 운명인 줄 알았어요.”
"......."
“근데 그게 아닐 수도 있구나. 어떤 사람은 그런 걸 막아낼 수도 있구나……. 저한테는 마법 같았어요. 되게 충격적이었고……. 제가 못 배운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저한테는 신이나 천사, 뭐 그런 것 같았어요.”
쯔쉬안이 말했다.
“그리고 완치하자마자 갑자기 사라져버리니까 정말……. 꿈을 꾼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저는 의대 교수고, 상당히 많이 공부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제가 생각해도 류 박사는 그렇습니다.”
장하오위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네요.”
쯔쉬안은 살짝 젖은 눈가를 낡은 옷소매로 닦아냈다.
“미미가 자라면. 학교를 보낼 거예요. 저는 못 갔지만. 우리 딸은 공부를 많이 할 수 있게 해줄 거예요. 정말 하고 싶은 만큼 많이. 학비가 모자라면 제가 다시 피를 팔아서라도요. 그리고 미미가 자라서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그녀가 말했다.
“과학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장하오위는 빙그레 웃었다.
“그럴 겁니다. 이 아기는 과학의 양쪽 극단을 모두 경험한 아기잖아요.”
그가 쯔쉬안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이 아기를 두고 특이점의 아기니, 저주 받은 아기니, 매스컴이 난리를 쳐대면서 난도질 했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그가 말했다.
“보호자 분도 아시다시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자가 최고의 기술로 살려낸 아기잖아요. 이 아기가 받은 것은 축복입니다.”
***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 (SCENCE)의 에디터이자 기자인 제시는 중국에서 과학자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기 들어온 이유는 본래 류영준하곤 상관없었다.
네이처가 특종을 하나 물었다는 얘길 듣고 자세히 파보니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사형수의 장기를 환자들에게 무단으로 이식했다는 소문이 슬슬 퍼지고 있었다. 본래는 그걸 조사하려고 들어왔다.
하지만 막상 입국한 후에 보니 이젠 특종의 종목이 바뀌었다.
갑자기 한국의 GSC 국제회의에서 허찌엔칭이 유전자조작 아기를 터뜨렸고, 탄저균 테러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류영준이 그걸 막아버리고는 중국으로 넘어왔다.
그리고는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짧은 시간 동안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다.
에이젠바이오가 100억 달러짜리 소송을 걸어서 애트목스를 지근지근 밟더니, 며칠 전에는 허찌엔칭이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리고는 쓰천 성 대학병원에서 유전자 조작 아기 ‘미미’의 완치 가능성을 선 발표했다.
그리고 오늘은 바이오 아카이브 (BioRxiv)에 기절할 만한 논문이 올라왔다.
공동 제가 저자, 제이콥, 클레이, 왕주빙, 그리고 제2 저자 장하오위, 제3 저자 동위민.
교신저자는 류영준.
장하오위와 동위민은 쓰천성 대학병원 소속이고 나머지는 전부 에이젠바이오다.
제이콥과 클레이, 왕주빙 세 사람은 20대, 30대의 매우 젊은 과학자들인데 엄청난 논문을 썼다.
‘아마 교신저자의 버프를 받은 것 같지만.’
제시는 바이오 아카이브에서 논문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제이콥이 사이언스에 투고하기 전에 바이오 아카이브에 먼저 논문을 올린 것은 중국 정부에서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전에 선수를 치려는 류영준의 계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논문이 사이언스에서 첫 공개가 이뤄진 게 아니라니 좀 서운한걸.’
아닌 게 아니라, 제시는 중국에서 류영준과 접촉하려고 무던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근데 그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류영준이 너무 바빴고 쉴 새 없이 베이징이고 쓰천 성이고 누비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 스케줄을 잡아내려고 에이젠바이오의 비서실에 직접 문의했는데 비서들조차도 류영준의 스케줄을 제대로 몰랐지.’
제시는 얼마 전 일을 떠올렸다.
-저희도 파악 안 돼요……. 지금 중국에 들어가셔서 얼마나 바쁘신지 하루 간격으로 일정이 바뀌어서 당일 저한테 연락 주시거든요.
유송미 비서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대충 상황이 짐작이 됐다.
허찌엔칭을 사형까지 밀고 가고 애트목스를 파괴하면서 유전자 조작 아기를 치료하는 그 정신 나간 일정이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제 잡았다. 드디어 쓰천성 대학병원까지 왔어.’
제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논문은 어제 나왔고 완치 가능성 발표도 그저께 나왔으니까 아직 여기 있겠지?
-제시!
사이언스 편집국장 사무엘에게 전화가 왔다.
“네."
-류 박사님 지금 연락 됐어! 인터뷰 하신대. 직접 통화한 거야. 인터뷰 해, 인터뷰! 빨리!
“아……. 귀 아파. 천천히 얘기해요.”
-네이처한테 뺏기면 안 돼!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미 쓰천 성 대학병원 앞까지 왔으니까.”
-왜 쓰천성에 있어?
“류 박사님이 그저께까지 여기 있었으니까요. 연구하고 계신댔는데요.”
-지금 광둥성에 계셔.
“아 미친……."
-거기서 모기 멸종 미팅한다고 하셨어. 광둥성에 있는 섬 두 개에서 시험 테스트하신댔거든.
“진짜 무슨 폭주기관차처럼 중국을 누비고 다니시네요……. 그쪽 비서실 사람들 오늘은 울겠는데.”
-뭐라고?
“아뇨. 그런 일이 있어요. 아무튼 광둥성으로 가면 되는 거죠?”
-맞아. 최대한 빨리 가줘.
***
중국의 성(省)은 미국의 주 정도 되는 거대한 행정 구역이다.
광둥성은 중국 대륙의 남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인데 무려 1억 1천만 명이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이곳이 중국 최대의 공업 지역이라 일거리를 찾아 넘어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습하고 덥다.
심지어 겨울에도 영상 10도 정도를 유지할 정도다.
이런 기후와 대규모 인구.
상상이 가는가? 이곳은 모기들의 서식지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최적의 조건이다.
“뎅기열이 한창이던 때는 이곳에서 무려 3만 명이 발병했죠. 당시 보건 당국의 대응이 느리거나 틀리진 않았습니다. 근데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퍼진 거예요. 그냥 이곳 지역 자체가 모기에 취약할 뿐이었죠.”
류영준을 직접 모시겠다며 따라온 중국의 보건당국 장관이 말했다.
“3만……."
“그리고 이곳은 30년 연속 중국의 GDP 1위를 차지하는 성이기도 합니다. 중국 전체 GDP의 10 퍼센트 규모이고 러시아의 GDP 총합에도 근접한 값이에요.”
“대단하군요.”
“그런 지역인 만큼 보건 당국에서도 항상 신경 쓰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센터. 그리고 이 인구와 기후.
모기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이 한번 창궐하면 순식간에 퍼질 것이고, 보건 당국에서 손 쓰는 게 조금만 늦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위치가 위치인만큼 국가적인 재난이 될 것이다.
“제가 광둥성 동쪽의 두 섬에서 모기를 멸종시키겠다고 했었죠?”
류영준이 물었다.
“네."
“그냥 광둥성 전체나 대상으로 삼는 건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