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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화. < 모라토리엄 (6) > (57/301)

201화.  < 모라토리엄 (6) >

동기화 모드 속.

류영준은 세계 최초 유전자 조작 아기, 캐스나인 베이비인 미미의 몸속을 관찰하고 있었다.

엑소좀 (Exosome)에 싸인 생체물질 캐스나인과 RNA 조각이 500 마이크로리터 용량의 주사액에 담긴 채 림프절과 골수 안으로 차례로 들어가고 있었다.

주사는 전신에 72군데 놓는다.

이틀 후에 이걸 또 해야 한다.

‘갓난아기의 몸으로 견디기에는 부담이 장난 아니겠지만…….'

더 좋은 방법이 없다.

면역 체계가 망가져버린 아기의 몸에서 캐스나인을 정상화하는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다.

로잘린은 가슴께 아래의 림프절에 집중했다.

엑소좀은 림프절 내의 세포들의 세포막에 결합하면서 캐스나인과 RNA 복합체를 세포내로 주입시켰다.

‘엑소좀을 선택하길 잘했어.’

엑소좀은 본래 세포와 세포가 주고받는 일종의 서면 같은 것이다.

암세포에서 특히 많이 보이는데, 이번에는 캐스나인의 구조를 해치지 않고 안으로 안전하게 집어넣기 위해 이걸 사용했다.

체내에 들어간 캐스나인은 RNA가 유도하는 대로 30억 개 DNA 염기 조각들을 하나하나 뒤져서 불과 수십 초 안에 CCR5를 찾아냈다.

딱!

DNA 분자의 포스페이트 백본 (Phosphate backbone)이 끊어지며 튀어오르는 인산과 스파크.

류영준의 동기화 모드는 이제 원자 단위에서 일어나는 그 현상까지 목격할 수 있었다.

DNA가 찢어지는 사태는 세포 입장에서 가장 심각한 비상 상황 중 하나다.

각종 세포 내의 물질들이 움직이며 비상벨을 울리기 시작했다.

DNA의 절단 부위로 ATM/ATR, MRE11, Ku70/80고유 같은 수많은 거대분자들이 몰려들었다.

거대 분자라고 하지만 인간의 DNA는 그들보다도 훨씬 거대하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서 DNA의 파손을 살펴보는 것은 건물을 분석하는 건축 설계사와 같다.

그들은 DNA라는 초거대 건축물에 캐스나인이 초래한 치명적인 균열을 진단하기 시작했다.

“파손 부위는 유전자 CCR5. 파손 정도는 그리 심하지 않으나 DNA의 두 가닥이 모두 끊어졌다.”

그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이젠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건물은 가망이 없으니 파괴하고 아예 처음부터 재건축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세포 사멸 (Apoptosis)의 담당자들이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몇 가지를 덧대어 수리해서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DNA 파손 수리 (DNA repair) 의 담당자들이다.

“절단 부위가 하나뿐이고 우리 세포는 혈액을 생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조혈모세포이니 함부로 허물어선 안 됩니다. 수리합시다.”

‘P53’이 말했다.

그는 DNA가 파손되었을 때 세포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거대 분자다.

이곳 미시 세계에서 P53에 의해 한번 내려진 명령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

DNA 건축물의 빌딩블록에 해당하는 뉴클레오티드 (Nucleotide)와 그 구조에 대한 수리 설계도가 필요한 것이다.

본래는 한참 떨어진 다른 염색체의 구조를 살펴보고 본을 떠야 한다. 그리고 멀리서 뉴클레오티드를 공수해와야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현장에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깨끗한 DNA 조각들이 무수히 많이 떠다녔다.

“CCR5가 파괴될 때 함께 들어온 것들이에요.”

DNA 말단 부위의 프로세싱에 관여하는 거대 분자, 뉴클리에이즈 (Nuclease)가 말했다.

“이걸 갖다가 끼우면 되겠는데.”

DNA 파손 부위 수리의 최고 전문가인 BRCA가 말했다.

“HDR (Homology Directed Repair) 방식으로 수리합시다.”

그들은 떠다니는 DNA 조각을 파손 부위에 덧대고 포스페이트 백본을 붙여 봉합했다.

마치 퍼즐의 마지막 한 피스처럼 파손 위치에 정확히 일치하는 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고장난 부품을 교체한 것처럼 들어간 DNA 조각은 기존의 것과는 유전 정보가 조금 달랐다.

델타32를 비롯한 몇 가지 돌연변이가 사라진 것이다.

‘정상 CCR5 유전자 파편.’

엑소좀에 함께 싸서 캐스나인과 같이 넣어준 치료 물질이었다.

“성공이야.”

DNA 파손 대응 (DNA damage response) 센터의 거대 분자들은 결과물을 보고 기뻐하며 자리를 옮겼다.

고장난 CCR5의 수리.

이 기작은 위 세포 한 개가 아니라 갓난아기 미미의 수많은 림프절과 골수에서 일제히 진행되었다.

수백만 개의 세포들에서 같은 일들이 수없이 벌어졌다.

그들 중에는 엄격한 p53에 의해 세포가 아예 파괴되어버린 경우도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 정도는 면역 세포들이 충분히 정리할 수 있다.

‘으 메스꺼워.’

류영준은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원자 단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너무 오래 지켜보셨으니까요. 인간의 인지력으로 쫓아가긴 약간 버거웠을 겁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하긴 지금 최장시간 돌리긴 했지.’

-그래도 치료 자체는 성공적인 것 같네요.

로잘린이 말했다.

‘아직 몇 차례 더 주사해야겠지만. 일단 걱정했던 급한 불은 끈 느낌이야.’

류영준은 간신히 숨을 한 차례 돌렸다.

***

미미의 상태는 엄청난 속도로 호전됐다.

첫 주사 시술로부터 3일째 오후.

의료진과의 미팅에 참석한 류영준은 의사들과 얘길 나누고 있었다.

혹시 모를 통역을 위해 앨리스를 데리고 왔지만 그녀가 나설 자리는 없었다.

다들 영어로 대화했기 때문이다.

담당의 장하오위가 말했다.

“CD4T 세포의 양이 거의 정상 수치까지 왔습니다……."

면역력을 확인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미의 몸에서는 이 값이 정상인의 1/10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번의 치료제 주사 시술로 정상인 대비 거의 90퍼센트까지 회복했다.

면역 세포 전반의 생성량이 급격히 늘었고 항체들이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다행이군요.”

류영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의료진들 사이엔 당혹감과 충격이 섞인 적막만 감돌았다.

“어떻게 약물의 포뮬레이션을 결정하셨나요?”

동위민 교수가 물었다.

포뮬레이션은 약물을 투여하기 적합한 형태와 제형을 일컫는 용어다.

“전임상이 없었으니 솔직히 말하면 엄밀하게 결정된 값은 아니었습니다. 쥐 실험에서 성공했을 때의 데이터를 토대로 사람의 체중과 면역 기관의 차이를 비교해서 인실리코 실험으로 예측값을 찾아 결정한 것이었죠.”

류영준이 답했다.

하지만 이 설명은 부족하다. 의료진들이 느낀 경이로움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현재 중국 정부는 미미의 건강 문제로 국제 사회에서 온갖 지탄을 받는 중입니다.”

동위민 교수가 말했다.

“류 박사님. 만약 이 환자가 완치된다면 중국 정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나서서 홍보할 거예요. 아마 자기네가 류 박사님을 데려와서 완치시켰고, 이 아기는 건강하다. 정부는 책임 질 부분을 다했다는 식으로 얘기하겠죠. 마치 중국 정부에서 이 일을 추진한 것처럼 포장할 겁니다.”

"......."

“그 전에 류 박사님이 먼저 발표해주십시오.”

“그럴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단순히 공치사의 문제 때문이 아니고요. 이 치료는 유전 질환의 치료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주는 임상이었습니다. 당연히 의학적인 리포트를 해야죠.”

동위민 교수는 빙그레 웃었다.

“다행입니다.”

“그리고 논문을 쓰면 거기 두 분 교수님의 이름을 넣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희를요?”

장하오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제1 저자는 제이콥과 다른 연구자 두 명입니다. 셋을 공동 저자로 쓸 거예요. 저는 교신 저자가 될 거고요. 하지만 두 분 교수님은 이 임상을 진행한 책임자이니 당연히 저자로서 인정되어야 합니다.”

“……. 감사합니다.”

동위민 교수가 말했다.

“캐스나인으로 면역 결핍 유전 질환을 치료한, 이런 논문에 이름을 넣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장하오위가 감탄했다.

“오늘 오후에 두번째 주사 시술이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거 꼭 해야할까요?”

동위민 교수가 물었다.

“해야합니다. 1차례 주사로는 완치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T 세포의 수가 줄어들 겁니다.”

“알겠습니다.”

동위민이 말했다.

“토요일에 세번째 주사를 넣고나면 그때부터는 면역력이 안정될 겁니다. 조금만 더 수고해주세요.”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길.

복도에서 류영준은 쪼그리고 앉아있는 쯔쉬안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류영준이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에 주사 시술을 할 때는 경황이 없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한국에서 공판 증언하고 바로 돌아오셨던 거예요?”

앨리스가 통역을 옮기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판 끝나자마자 바로 왔어요. 저희 아기 수술한다고 해서 그거 보려고……."

“저희 직원들이 모시는 데 혹시 불편하거나 하신 건 없었나요?”

“아이구. 아니에요. 박주혁 변호사님이 잘 챙겨주셔서……."

류영준은 빙긋 웃었다.

“다행입니다.”

“저희 애가 많이 호전됐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쯔쉬안이 물었다.

“들으신 대로일 겁니다. 자세한 건 장하오위 교수님한테 여쭤보시죠.”

“그래요……."

쯔쉬안은 떨리는 몸으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멍청해서 우리 아기가 그렇게 아팠는데,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쯔쉬안씨.”

류영준이 말했다.

"네?”

"애파녹틴을 드시고 계신가요?”

"애파녹틴?”

"에이즈 억제 약물입니다.”

류영준은 쯔쉬안이 앉아있던 자리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가 집어든 것은 조그만 약봉투였다.

[애파녹틴]

"네……. 먹고 있어요. 죄송해요. 쓰레기 치울게요.”

"그것 때문이 아니고요.”

류영준은 애파녹틴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카람피아로 약을 바꾸세요. 그게 더 약효가 좋고 오랜 기간 먹어도 몸에 부담이 덜한 약입니다. 무엇보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진행하고 있는 에이즈 퇴치 사업의 치료제이기 때문에 매우 가격이 쌉니다.”

정확히는 류영준 본인이 공정 개발로 단가 혁신을 일으켰기 때문에 싼 것이었다.

“그리고 그 치료제를 복용해서 에이즈를 관리하면서 가능하면 줄기세포 시술을 통해서 에이즈를 완치시키세요.”

“그게……. 저도 그거 듣긴 했는데 너무 비싼 시술이라고 해서요……."

그녀가 말했다.

“베이징에 아마 세계보건기구의 에이즈 퇴치 사업 가맹 병원이 있을 겁니다. 거기에 가면 대폭 할인을 받아서 아마 6,000 위안 정도에 시술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100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

쯔쉬안은 더러워진 치마를 매만지며 우물쭈물했다.

그 돈이 없다.

류영준은 상황을 알아챘다.

백만 원에 에이즈를 완치시킬 수 있는 시대인데도 그 돈이 없어서 못한다.

“아, 알아볼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쯔쉬안이 고개를 숙였다.

“미미의 두번째 주사 시술이 곧 있으니 같이 가시죠.”

류영준이 말했다.

***

두번째 주사 때는 면역 세포의 양이 일시적으로 정상인 대비 110 퍼센트로 더 높아졌다.

그 이후에는 정상인과 거의 같은 수치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토요일 새벽이 되자 다시 조금씩 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동위민 교수는 거의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류영준이 말했던 세번째 주사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술입니다. 저번처럼 저는 밖에서 모니터로 지켜보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제는 슬슬 손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동위민 교수가 집도를 시작했다.

그는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시술이 끝난 오후 5시경.

쯔쉬안은 담당의 장하오위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어서오세요.”

방 안에는 동위민과 장하오위. 두 사람만 있었다.

“시술은 일단 안정적으로 무사히 끝났습니다.”

동위민이 말했다.

“그리고 두번째 시술을 했을 때 조직 생검을 했는데, 일단 시술했던 림프절과 골수 대부분에서 CCR5 유전자가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돌연변이 비율은 5 퍼센트 내외였는데, 세번째 시술까지 마친 지금은 아마 0 퍼센트까지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럼 이제 다 나은 건가요?”

“일주일 정도 지켜본 후에 무균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죠. 그리고 한달 정도 더 지켜보고나서 문제 없으면 퇴원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장하오위가 말했다.

“퇴원……."

꿈만 같은 단어다.

쯔쉬안은 가슴속이 울컥하는 기분에 입술을 깨물었다.

“류 박사님은 지금 어디에 계세요? 감사 인사 드려야 하는데.”

“인사 안하셨어요? 아까 쓰천성에서 나가셨을 거예요.”

장하오위가 말했다.

“나가셨다고요?”

“귀국까지 시간 얼마 없는데 흰줄숲모기 멸종을 위한 미팅을 한번은 해야 한다고……."

콰르륵!

쯔쉬안이 벌떡 일어나면서 의자가 뒤로 소란스럽게 밀려났다.

“지, 지금이라도 쫓아가면 안 될까요?”

그녀가 물었다.

“글쎄요. 시술 끝나자마자 사라지신 거라.”

“하지만……."

“그러고보니 보호자분께 전할 게 있습니다.”

장하오위가 말했다.

“저한테요?”

“이거.”

그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에이젠바이오 측에서 중국 보건당국을 통해서 지급해드리는 겁니다. 미미의 임상시험 참가 사례비예요."

"......."

쯔쉬안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현금 2,000 위안이 들어있었다.

"......."

“이게 보건 당국에서 줄 수 있는 최대의 임상 사례비예요. 보호자 분 사정도 아니까 저희도 맘 같아선 더 드리고 싶지만 법 때문에.......

임상시험 관계자들끼리 금품 같은 걸 주고받으면 연구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거든요.”

“……감사합니다.”

쯔쉬안은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이건 어떤 외국인 과학자가 익명으로 쯔쉬안 씨에게 전해드리는 겁니다.”

동위민이 봉투 하나를 더 내밀었다.

“외국인 과학자요? 류 박사님이요?”

“글쎄요. 익명입니다.”

동위민이 빙긋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봉투를 받는 쯔쉬안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카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베이징 대학 병원 에이즈 퇴치 특별 기구. 조혈모세포 완치 시술권]

“세계보건기구는 에이즈 완치 시술을 받을 수 있는 쿠폰을 발급한 적이 있습니다.”

동위민이 말했다.

“어디서 그걸 구해서 갖고 계셨는지 전해주셨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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