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0화. < 모라토리엄 (5) > (56/301)

200화.  < 모라토리엄 (5) >

“그러게 좀 얌전히 있으랬잖나.”

신 마오 장관이 말했다.

그는 공안청에 방문해서 구금된 허찌엔칭을 만났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됩니까?”

허찌엔칭이 물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굉장히 나빠. 전부 자네 잘못이야. 누굴 탓하겠어? 유전자 조작을 한 것만 해도 문제가 될만한데, 심지어 임상 관련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피해자한테 설명 한 마디를 안 하고, 게다가 그렇게 태어난 애가 죽을 위기에까지 가있으니.”

신 마오가 혀를 찼다.

“이슈가 무려 ‘유전자 조작 아기’야. 자네 입으로 직접 새로운 시대의 대서막이라면서 GSC 회의에서 떠들어댔잖아? 전 세계가 관심 갖고 지켜보는 이런 사건 뒤에 그런 배경이 있었으니 어쩌겠나.”

“사형 얘기가 나온다는 걸 들었는데…… 정말입니까?”

허찌엔칭이 겁에 질려서 물었다.

“정말이야. 그리고 지금 학술지 네이처에서 사형수 장기이식 건에 대해 조사하고 검토 중이야. 그게 지금 터지면 어찌 되겠어?”

신 마오가 말했다.

“사형수 장기를 갖다 파는 저 나라는 과학의 비윤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들끓는다. 그러니 GSC라는 과학자가 임상 법도 다 위반하고, 자국민 상대로 유전자 조작 같은 걸 전임상 데이터도 제대로 된 것 없이 그냥 진행하는 거 아니냐. 저 놈들 봐라. 자국민을 실험 생쥐 취급하는 저 독재 정부를 봐라. 그러니까 허찌엔칭한테.”

신 마오 장관은 답답한 듯 이를 부득 갈았다.

“처벌도 제대로 안 내리지 않느냐.”

"......."

“이런 얘기들이 나와. 국제적인 지탄이 나온다는 말이야. 이제 자네의 처벌 수위가 강할 수밖에 없는 게 이해가 되나?”

“그……그래도 사형은…… 아니겠죠?”

“내가 그것만은 막아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공안청 부총경감님이 자네를 그동안 많이 싫어하지 않았나. 법 위에서 놀면서 제맘대로 아무 연구나 저지른다고.”

“과학은 법에 너무 얽히면 안 됩니다! 저는 인류 발전을 위해서 과감한 도전들을 총대 메고 해준 것뿐이에요!”

“류 박사가 공기 중 미세먼지를 잡아내는 필터를 개발하고 그걸 차량에 붙여서 비료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만들었어.”

“네?”

“아직 못 들었나보군. 하긴 여기 신문은 안 들어올 테니. 아무튼 류 박사는 그걸 셀리제너라는 중소기업한테 그냥 줘버린 모양이야.”

"......."

“적어도 자네한테 ‘도전’인 것들이 그 사람한테는 일상이거나 애들 장난 수준인 모양이군.”

“그게……."

“우리는 류 박사를 한번 포섭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연구 기반이 전부 한국에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했지만 또 한켠으로는 중국의 폐쇄적인 연구환경 얘기도 하더군.”

신 마오가 말했다.

“어쩌면 그 폐쇄성이 진짜 문제였을지도 모르지. 그 안에서 자네 같은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고.”

"......."

“난 그동안 자네 뒷치닥거리를 해주면서 그게 이 나라 발전을 위한 애국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좀 달리 느끼는 부분이 있어.”

“장관님!”

“자네가 정신 나간 연구 계획들을 올려도 모른 척 승인해줬지만 그렇게 규율 없는 시스템,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폐쇄성이 결국 류 박사 포섭을 가로막지 않았나.”

신 마오가 말했다.

“자네 같은 오만한 범재나 키우고 말이야."

"......."

“아마 종신형 이상으로 결정될 테니 맘의 준비를 해둬. 나한테도 이젠 방법이 없네."

***

“대표님.”

제이콥이 말을 걸었다.

“미세먼지 얘기 들었어요? 한국 난리래요.”

“어제 박주혁 변호사가 얘기해줬습니다.”

류영준이 무뚝뚝하게 답했다.

“모라토리엄 후에 허찌엔칭 사형 얘기도 나온대요.”

“저도 들었어요.”

“그리고 소송 첫 공판은 우리가 대승했나봐요. 애트목스 1라운드에서 벌써 그로기 상태라고 월스트리트저널에도 나왔던데요."

"......."

“미세먼지 저감 장치를 셀리제너에다가 그냥 다줘버린 것도 지금 시끌시끌해요. 과학 말고 뭐 경제학 정치, 사회학 이런 쪽에서 특히요.”

“그렇군요.”

“거대 기업 오너의 가장 위대한 자세라면서 대서특필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모델 연구 자료로 이 케이스를 쓴다고 난리에요.”

"......."

“근데 왜 여기서 실험을 하고 계십니까......."

제이콥이 답답한 듯 물었다.

“이 난리법석의 스포트라이트가 다 몰려든 무대 위로 올라가서 비즈니스를 하시는 게 일반적인 것 아니에요? 모라토리엄 때문에 계속 철야하셨는데 가서 좀 쉬기도 하고 그러셔야죠”

"......."

“이 정도 프로토콜이 있으면 저희끼리도 할 수 있어요. 무리하지 말고 귀국하시죠.”

“제이콥. 잠깐만 조용히.”

류영준이 말했다.

그는 지금 CCR5 유전자 조작 쥐의 혈액에서부터 DNA 일부를 증폭해서 젤 일렉트로포레시스 (Gel electrophoresis)라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젤 내리는 건 학부 2학년도 할 수 있는 일인데요……. 그냥 저희한테 시키십쇼. 대표님은 세계 1위 제약사의 대표잖아요……."

“저도 제이콥이랑 다른 연구자들 믿어요. 근데 이거 시간 싸움이고 좀 특이한 치료잖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신약 개발에 있어 ‘동물 실험(In vivo)’과 ‘전임상’은 서로 다른 과정이다.

둘 다 동물을 가지고 실험하는 것은 맞지만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동물 실험의 경우에는 개발한 신약 후보 물질이 동물의 몸에서도 약효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걸 목표로 한다.

이는 비교적 빨리 검증해볼 수 있고, 더 적은 샘플과 적은 실험군을 가지고 간단히 테스트해보는 실험이다.

그냥 질병 모델인 쥐와 정상 쥐를 준비해서 약물과 위약을 찔러넣고 질병의 진행 양상 변화를 관찰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전임상은 조금 다르다.

이 과정에서는 약물의 생산이 GMP 시설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도 따지기 시작하는데, 나중에 그 생산 방법이 임상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또한 약물을 투약할 때 어떤 농도로, 얼마간의 시간을 주기로, 몇 회나 투약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 부분은 동물 실험(In vivo)도 비슷하지만, 동물 실험은 상대적으로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데 반해 전임상은 엄격하다.

여기서는 ‘약효를 입증하는’게 아니라 ‘환자에게 안전한 농도를 결정하는’게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즉, 동물 실험에서는 100만큼의 농도를 썼을 때 종양 사멸 효과가 가장 좋았다면 그걸로 끝이다.

100의 농도로 데이터를 잘 뽑아서 약효가 있음을 입증하고 논문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전임상에선 100 농도의 약효보다 독성이 더 이슈가 된다.

종양은 모두 사멸했지만 간에 얼마간의 데미지를 줬다면? 그럼 100 농도는 쓸 수 없다.

재실험을 해서 만약 50 만큼의 농도를 처리했을 때 약효는 덜하지만 독성이 크게 줄어든다면 전임상 결과 결정되는 약물의 농도는 50 이다.

게다가 이 약물이 실험 동물의 몸에 얼마나 잔류하는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야 배출되는지 역시 확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동물의 크기다.

동물 실험 (In viv0)는 일반적으로 쥐만 사용한다. 가장 값이 싸고, 개발된 질병 모델 종이 많으며, 결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임상은 쥐는 물론이고 토끼나 비글 등의 큰 동물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일반적으로 약물의 적정 용량은 체중에 비례하기 때문에, 사람 몸에 들어갔을 때 약물의 생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큰 동물에서 확인한 결과가 비교적 정확하다.

“하지만 우리는 쥐 실험만 하고 있어요. 이건 사실상 전임상이라 부를 만한 게 아닙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약물의 조제도 에이젠바이오의 GMP에서 진행한 게 아니라 여기 실험실에서 만든 거고요. 원래는 이런 건 쓸 수 없는 물질이죠.”

“그러니까 하는 얘기예요.”

제이콥이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중들은 그런 거 모르잖습니까. 대표님. 실패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게 양해가 안 된다고요. 대중들은 우리가 왜 쥐를 썼는지, 비글이나 토끼는 유전자 조작에서 태어나게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아예 실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까지 이해해주지 않을 거예요.”

"......."

“저는 대표님이 실패하지 않는 과학자였으면 좋겠어요. 그러니 저희한테 주고 가십시오......."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젤 일렉트로포레시스 (Gel electrophoresis) 결과가 나왔네요. CCR5 표적 위치를 엔자임 (Enzyme)으로 잘라본 겁니다. 안 잘렸네요. 대조군은 잘렸고.”

류영준이 모니터에 리포트된 사진을 확인하며 말했다.

"......."

제이콥의 눈이 커졌다.

“제이콥. 쥐의 림프절과 골수 내의 모든 세포들의 유전자 CCR5에서 고장난 부분을 전부 수리했기 때문에, DNA의 구조가 바뀌어서 안 잘린 거예요. 실험은 성공입니다. 적어도 동물 실험 수준에서는요.”

“이건…… 확실히 희망적이군요.”

제이콥이 말했다.

“하지만 전임상이 아니기 때문에……."

“잘 될 겁니다.”

“약물 자체의 검증은 둘째치고 투약 횟수와 기간과 농도를 어떻게 결정하시려고요?”

-일주일 동안 총 세 번.

로잘린이 말했다.

-캐스나인과 RNA 컴플렉스의 양은 아기의 체중에 3.2를 곱한 값만큼입니다. 단위는 밀리그램이고요. 주사용 증류수 500 마이크로리터에 녹여야 합니다. 혈액 내의 조건과 맞추고 캐스나인의 구조 변형을 막기 위해서 다음 물질을 증류수에 추가로 용해시켜야 합니다.

-프로케인 하이드로클로라이드 (Procaine Hydrochloride) 10mg.

-소듐 사이트레이트 (Sodium Citrate) 2mg.

-소듐 하이드록사이드 (Sodium Hydroxide) 3mg.

.......

눈앞의 메시지창들을 읽으면서 류영준이 말했다.

“제대로 된 전임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인 이상 어느 정도는 우리의 감과 인 실리코 (In silico) 데이터와 계산을 기반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 실리코는 생물학과 프로그래밍 기술이 융합된 가상 실험을 얘기한다.

“그 아기는 상태가 어떻대요?”

제이콥이 물었다.

“병원에서는 길어도 일주일 이내라고 하더군요. 이젠 정말 더 시간이 없어요. 오늘 뽑아놓은 약물들 전부 퓨리티(Purity) 체크하고, 모레 투약 들어갈 겁니다. 의료진하고도 그렇게 얘기가 돼있고요.”

류영준이 답했다.

“투약은 누가 하나요?”

“동위민 교수가 맡기로 했습니다.”

“동위민?”

“이번 치료제는 주사 시술이에요. 림프절과 골수에 찔러 넣는 굉장히 어려운 시술입니다.”

"음......."

“어렵게 모신 분이에요."

***

이 정도로 전임상 데이터가 텅텅 빈 경우는 아무래도 류영준 역시 약간 불안했다.

그 또한 과학자라 로잘린이 가르쳐준 것보다도 눈앞에 보이는 실험 데이터에 확신을 느끼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미미의 치료제 투약은 어머니인 쯔쉬안과 류영준, 제이콥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멸균 수술실 밖에서 모니터로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담당의 장하오위는 보조만 하고, 중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의사 중 하나인 동위민 교수가 투약을 진행했다.

그는 림프절 주사 치료의 권위자 중 하나였다.

일명 센티엘 노드 바이옵시 (Sentiel node biopsy)라는 기술로, 보통 전이된 유방암의 치료 과정에서 쓰는 주사요법이다.

하지만 동위민 교수 역시 이런 갓난아기의 그 미세한 림프절에 주사기를 찔러넣는 것은 처음이다.

‘실패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 부담감에 거절했지만 류영준과 행정관리총국 장관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넘어왔다.

동위민은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이렇게 작은 환자인데다 평소 찌르던 림프절과는 위치도 좀 다르고 개수도 많다.

평소보다 집중력이 수십 배로 올라갔지만 동위민은 여전히 긴장해있었다.

그의 목덜미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흥건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순간.

-교수님. 그 바늘 약간 위쪽입니다.

수술 가운에 부착된 스피커에서 류영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렇군.”

실수할 뻔했다.

동위민은 침을 꼴깍 삼켰다.

바늘의 방향을 조절하면서 그는 도대체 류영준이란 인간은 어떻게 되어먹은 건가 싶어 혼란을 느꼈다.

수술실 안에 의료진 외에 새하얗게 빛나는 소녀가 하나 있다는 것.

그녀가 백전 노장 늙은 교수의 바늘을 인도하고 있다는 걸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류영준만이 동기화 모드를 가동해놓고 로잘린이 가리키는 곳과 동위민의 시술을 맞추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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