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 모라토리엄 (4) >
놀란 왕웨이는 뉴스를 열어 자세히 읽었다.
-한국 기업 셀리제너가 에이젠바이오와 합작 연구를 진행하여 미세먼지를 포집하는 필터를 개발했다. 카본 페이퍼에 기반한 이 필터는 한 장에 미세먼지를 2킬로그램까지 흡수할 수 있으며, 물에 담그는 것만으로 쉽게 미세먼지를 제거해 반영구적으로 재활용 할 수 있다.
-중국은 여러모로 미세먼지를 많이 낮추었으나 아직도 대기질은 좋다고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기 오염으로부터 촉발된 호흡기 질환 등으로 사망하고 있다. 한국으로부터 이 필터를 수입해서 중국 내에서도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이 미세먼지 필터로 포집한 미세먼지들을 모아서 비료로 재활용하는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만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경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
왕웨이는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의 손에 식은땀이 묻어났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허찌엔칭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허찌엔칭은 받지 않았다.
***
미세먼지는 며칠 마셨다고 심각한 질병이 당장 발생하는 게 아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되거나 ‘불편함’ 정도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 비영리단체 보건영향연구소(HEI)에서 발행한 지구의 공기 상태 (State of Global Air)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오염 물질 중 미세먼지는 세계 6번째 사망 위험 요인이다.
흡연, 고혈당, 비만 같은 강력한 위험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치가 넘는 초미세먼지에 노출된 사람의 수는 세계 인구의 95 퍼센트 이상.
흡연이나 비만처럼 개인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떤 의미로는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질병 요인일 수 있다.
“이 다공성 필터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흡수하고 안에 내재된 포낭에 포집하여 저장하게 됩니다.”
송지현이 말했다.
에이젠바이오와 애트목스의 공판이 진행중일 때, 셀리제너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함께 설명회를 진행했다.
일명 ‘달리는 미세먼지 저감 장치’의 설명회였다.
셀리제너의 대표 최연호나 산업통상자원부의 장관 등은, 이 연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연구자라는 이유로 송지현에게 설명회를 맡겼다.
이미 류영준과 함께 한국 내에서 장래가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로 스타덤에 올랐던 사람이니, 그 유명세에 기댄 것이기도 했다.
“이 미세먼지 포집 장치는 공기 중에 내버려두었을 때도 미세먼지를 흡수하지만, 자동차에 설치해서 고속으로 달릴 때 그 효과가 십 수 배로 높아집니다.”
송지현이 말했다.
“에이젠바이오의 류영준 대표님께서 이 장치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셨으며, 당사에서 제품으로 개발해 시범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필터를 10장 부착한 승용차가 1,000 킬로미터를 주행할 때 20 킬로그램 정도의 미세먼지를 모을 수 있습니다.”
송지현은 자료 화면을 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모든 자동차의 주행 거리는 3,271억 킬로미터였습니다. 단순 주행 거리로만 따지면 모든 차량에 필터를 붙였을 때 매년 654만 톤의 미세먼지를 제거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녀가 말했다.
“국내 미세먼지의 총량은 연간 수백만에서 천만 톤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론적으로는 ‘달리는 미세먼지 저감 장치’의 사업화에 의해 대기 중 미세먼지를 거의 전부 제거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송지현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설명을 마친 후, 산업통상자원부의 장관과 최연호 셀리제너 대표가 사업적인 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안이 마련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셀리제너 측에서 이 아이템을 사업화하는 것을 전적으로 지원할 겁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국내의 비료 생산 업체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보완 정책을 마련하여 시행할 계획입니다.”
설명회가 모두 끝난 후.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류영준 대표님이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필터 페이퍼의 개발 전략을 짜서 제공해주셨습니다.”
송지현이 대답했다.
“그리고 셀리제너에서는 그 전략을 따라 필터 페이퍼의 공정을 최적화하고 자동차에 부착하는 방식과 운행 과정에서 포집되는 미세먼지의 양에 대한 데이터를 생산했습니다.”
“질문 있습니다. 이번에 중국에서 동부 해안가에 대규모 공장을 준설해서 한국으로 오는 미세먼지의 양이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추산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필터 페이퍼를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경차 기준 필터 페이퍼를 10장까지 부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차량의 크기에 따라서 대형 SUV 등에서는 30장까지도 부착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송지현이 답했다.
그 말끝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끼어들었다.
“추가로 제가 보충 설명 드리자면, 앞서 말씀드린 통계청의 주행거리는 일반 개인 차량들만 포함한 값입니다. 저희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이 미세먼지 필터 페이퍼를 대중교통에도 설치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중교통에는 버스, 택시는 물론이고 기차와 지하철, 항공기도 포함됩니다.”
“와……."
기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육성으로 감탄이 터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빙긋 웃었다.
“KTX 같은 기차에는 아마 필터 페이퍼를 천 장 단위로 부착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이 시작되면 에이젠바이오하고는 수익을 어떻게 나누나요?”
기자들 중 하나가 물었다.
송지현은 재빨리 나섰다.
“셀리제너가 모든 수익을 가집니다.”
그녀가 말했다.
“류영준 대표님은 저희와 연구 미팅을 하면서 이 기술 개발에 가장 핵심이 되는 방법론을 전부 제공해주셨지만, 수익 일체를 거부하셨습니다.”
"오......."
뜻밖의 얘기다.
“수익 배분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요?”
기자들이 당황하자 송지현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이는 에이젠바이오 측의 연구 인력들이나 시설이 사용된 바가 전혀 없고, 류 대표님 본인이 혼자서 필터 페이퍼 개발을 지원하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회사 차원의 일이 아니라 류 대표님 개인적으로 진행한 업무였고, 자신의 몫을 따로 받을 생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거대 기업 대표로서 중소기업들을 양성하려는 사회 기여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에이젠바이오가 가져간 것은 필터페이퍼에 삽입되는 로고 하나뿐입니다.”
최연호가 말했다.
“어떤 로고입니까?”
기자들이 물었다.
“에이젠바이오가 창설하고자 하는 제7 연구소의 로고라고 합니다.”
“제7 연구소?”
기자들이 술렁였다.
“또한 이참에 제가 주제넘게 한 마디 하자면……."
송지현이 말했다.
“지금 항간에 떠도는 소문. 중국발 미세먼지와 류영준 대표님에 대한 음모론은 사실 무근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국민 목숨을 담보로 잡고 자신의 수익을 위해 소송전 같은 우선으로 벌일 분이 아닙니다. 류영준 대표님은 중국으로 떠나기도 한참 전부터 저희와 미세먼지 저감 프로젝트를 함께 하셨고, 그때 이미 모든 수익을 저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분입니다.”
***
-허찌엔칭아 그 말 다시 해봐라.
-??? : 류영준 대표가 소송에 집착하면서 대기 질을 저버렸다. 돈에 눈이 멀어 국민 건강을 포기하면서 자신의 책무를 다 하지 않는 GSC 대신 한국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ㄴ지금 보니 진짜 웃기네ㅋㅋㅋㅋ
-???:경고한다고 정부가 뭐 어떻게 할 수 있겠냐 그냥 내가 없애주지 뭐.
-셋째 날 그가 말하매 하늘이 맑으라 하니 미세먼지가 사라졌더라
-이상하다 저거 비료로 재활용하면 돈이 얼만데 왜 저걸 전부 편서풍에 실어다가 우리나라에 기증하지?
-진심 근데 능력치 오진다 진짜. 어떻게 저런 걸 개발해서 중소기업한테 그냥 통째로 줄 수가 있지?
-중소기업아 비료 시장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ㄴㅋㅋㅋㅋㅋ
-ㄹㅇ초거대 기업 오너의 자세. 이게 노블레스오블리주다. 중소기업 협잡하고 단가 후려치고 인력 빼가고 이런 게 아니라, 중소기업이 하는 프로젝트에 아이디어 기술 자본 같은 거 보태서 사회에 환원하는 거
-마 허찌엔칭아 이게 GSC다 아나?
-셀리제너 벤처였을 때 셀리큐어도 개발하고 빠르게 성장하던 회사였는데 이제 이거 계기로 진짜 커질 듯.
-해외에 필터 페이퍼 수출하면 진짜 엄청 커질 텐데.
-진짜 대단합니다. 국내 비료 시장자체는 그렇게 큰 게 아닐지 몰라도 필터 페이퍼를 장사하면 수익 꽤 높을 텐데, 그걸 깔끔하게 포기해버리네요. 아무리 에이젠바이오가 개발에 참여한 건 아니고 혼자 아이디어만 제공한 거라고 해도 수익 욕심 좀 났을 텐데.
-똑똑하고 윤리적인 건 수없이 검증됐는데 이건 진짜 미쳤다 후발주자 중소기업 키워주는 거잖아
-보면 볼수록 헬조선 출신이란 게 믿어지지 않는다
뚜르르르르!
에이젠바이오 게시판을 보던 류영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야! 너 진짜 뭐냐?
박주혁이 국제 전화를 걸자마자 바로 소리쳤다.
“뭐가.”
-법정에서 애트목스랑 소송전 공판하고 나와서 보니까 갑자기 무슨 미세먼지 저감 장치를 만들고 갔다는데? 네가?
“그래. 들었어. 셀리제너에서 산업통상자원부랑 같이 그거 국가 정책으로 밀어붙여서 사업화한다더만.”
-지금 여기 분위기 미쳤어. 진짜 초 역대급이야. 진단키트 나왔을 때보다 한 술 더 뜨는 거 같아. 너 이제 국민 영웅 이런 걸 넘어서서 거의 종교 수준이라고.
박주혁이 말했다.
-허찌엔칭이 미세먼지 갖고 장난치면서 너 음해한 후라서 임팩트가 더 커. 거기다가 그 수익을 탐내거나 하지도 않고 전부 중소기업한테 다 줬다고 세상에 이런 사람이 없다며 난리야 진짜.
“그동안 했던 것들은 질병을 제거하거나 진단하거나 하는 거였지만, 이건 일상의 불편을 제거하는 일이었으니까.”
-너 돌아오면 인천공항에서부터 에이젠바이오까지 행가래로 이동할 수도 있어.
“헛소리 하지 말고 공판 어떻게 됐는지나 얘기해봐.”
-그야 개 박살 냈지. 솔직히 질 수가 없는 증거들을 갖고 있었는데 뭐 우리가 지겠냐?
“수고했어.”
-너 귀국 언제야?
“2주 후.”
-그렇구나. 안 되겠네 나 이달 말 쯤 대만 가거든.
“대만은 왜?”
-우리 재판이 기본적으로 특허권에 기반하고 있고, 특허권은 본래 1국가 1특허가 원칙이야. 한국에서 승소해도 대만에서는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고. 뭐 복잡해. 그래서 SG전자도 인폴이랑 특허 전쟁 벌일 때 미국 독일 서울 별별 곳에서 재판 다 했어.
박주혁이 말했다.
-아무튼 이번에 서울에서 공판한 건 베타 테스트 같은 거고 이제 애트목스가 진출해있는 모든 국가들에서 연속으로 공판 열 거야. 도장 깨기 같은 느낌이라 생각하면 돼.
"......."
-이달 말에 대만에서 공판 열고 그 다음은 미국이야. 전부 승소하면 아마 배상액 장난 아닐걸. 걔네한테 그런 돈은 없을 테고, 파산 말고는 답이 없어.
“너 원래 이렇게 무서운 놈이었냐?”
-아무튼 대만 갔다가 너 있는 곳에 잠깐 들를까 했는데 안 되겠네. 그 전에 귀국하면.
“그러게.”
-거긴 분위기 좀 어때? 모라토리엄 말이야.
“무사히 잘 끝났어.”
류영준이 대답했다.
-허찌엔칭은 어떻게 됐어?
“공안이 데리고 갔어. 애초에 원래 구속됐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모라토리엄 선언까지만 유예를 받았던 거거든.”
-그래도 중국 대표 과학자인데 처벌 세게는 안 받겠지?
"음......."
류영준이 약간 뜸을 들였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사형 얘기까지 나왔어.”
-사형!
놀란 박주혁이 비명을 질렀다.
-아니 사형을 한다고?
“실제로 그렇게 되진 않겠지. 근데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발표된 사항들이 워낙에 심각한데다가 지금 연구윤리 위반 사항들도 거의 다 까발려졌거든.”
류영준이 말했다.
“중국의 연구윤리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시선이 좀 따가워진 형편이라서 처벌 수위를 낮게 잡을 수는 없나봐.”
-세상에. 그래도 사형이라니…….
“그냥 최고형까지 검토중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뿐이야. 국제 사회 분위기를 의식한 거지. 실제로 사형이 선고되진 않을 거야.”
-그래도 형량은 꽤 세게 나오겠는데.
“그렇겠지.”
류영준이 말했다.
-아무튼 알겠다. 저쪽에서 공격 넣은 건 셀리제너가 방어했고. 넌 허찌엔칭 박살냈으니, 내가 애트목스만 조져버리면 끝이네? 슬슬 귀국해.
“안 돼.”
-안 돼?
“우리 모두 승승장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난 아직 만족 못해. 피해자가 그대로 있으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유전자 조작 아기, 미미를 치료하고 돌아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