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 모라토리엄 (3) >
서울중앙지방법원.
오늘은 중요한 소송의 첫 공판이 열리는 변론기일이다.
에이젠바이오와 애트목스의 100억 달러짜리 소송전.
박주혁을 비롯한 에이젠바이오의 변호팀이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대부분은 방청석에서 듣기만 하고 실제 공판에 참여하는 변호인은 세 명이다.
애트목스 측에서는 대표가 직접 왔지만 그 역시 방청석에 앉아서 공판을 들었다.
재판 자체는 변호인 세 명에게 의뢰했다.
판사 이춘명은 원고 에이젠바이오와 피고 애트목스 측으로부터 각각 올라온 준비서면을 방금 전에 다시 읽고 왔다.
전 세계의 시선이 모여있는 재판인만큼 부담감이 장난 아니다.
게다가 굉장히 어려운 재판이다.
‘소송 자체를 따지고 보면 애트목스에게 배상 의무가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춘명은 준비서면을 다시 검토하며 생각했다.
‘배상액을 결정하는 게 너무 어렵다.’
원고 측에서는 무려 100억 달러를 청구했다.
12조원.
웬만한 중견 기업 하나를 통째로 인수할 수 있는 금액이다.
지금까지 이춘명이 민사를 다루면서 보았던 모든 청구 금액을 다 합치면 이 정도 될까?
그 때문에 처음 청구 액수를 들었을 때는 에이젠바이오 측이 미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소장과 준비서면을 자세히 읽어보니 또 얘기가 다르다.
그냥 에이젠바이오가 비정상적인 성장과 폭발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기업인 것뿐이다.
그리고 캐스나인이 너무 강력한 원천기술인 것뿐이다.
“본 소송건은 피고가 법인 애트목스와 개인 허찌엔칭 씨. 둘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대표자 선정 제도를 토대로 애트목스 측이 대표자가 되었으며, 대표 이사인 왕웨이 씨가 피고측을 대표하게 되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이춘명 판사가 말했다.
재판정 안을 가득 채운 기자와 시민들이 판사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듣거나 받아 적고 있었다.
이춘명은 재판을 시작했다.
“원고측 변호인은 청구하신 내용을 간략히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미리 제출한 소장을 진술하겠습니다.”
박주혁이 일어났다.
“피고는 에이젠바이오가 실시권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특허 발명인 캐스나인을 무단으로 이용하였으며, 그 결과 유전자 조작 아기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원고는 캐스나인을 이용한 후속 연구에 중대한 차질이 생겼으며, 그 피해액에 대해 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피고 측, 원고 청구에 대해 답변해주세요.”
이춘명 판사가 말했다.
“네. 상세한 내용은 제출한 답변서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애트목스 측의 변호인이 입을 열었다.
“요지를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피고 측은 특허발명인 캐스나인을 이용하여 재산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인정하지만, 원고의 청구액은 터무니없이 큰 액수입니다. 손해배상의 범위는 피고의 사업 행위에 의해서 원고 측에게 발생한 재산상의 손실 또는 회사 매출액의 감소로 한정되어야 할 것임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네. 양쪽 의견 잘 들었습니다.”
이춘명 판사가 말했다.
“피고 측 역시 특허발명을 무단 도용하여 재산권을 침해한 사실에 대해 인정하였습니다. 그럼 이 공판의 쟁점은 손해배상의 범위를 결정짓는 것이 되겠네요. 원고께서는 주장하시는 청구액을 뒷받침할 증거를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증거 1번으로, 에이젠바이오의 캐스나인 원천기술 특허 명세서를 제출합니다.”
박주혁이 말했다.
“이 특허 명세서에서는 대표도안으로 물질 및 방법 특허로써 캐스나인이라는 물질과 그 이용 방법을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청구항 22번을 보시면, 캐스나인을 이용한 살아있는 세포 내의 유전자 조작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명세서를 집어 들었다.
“즉, 캐스나인을 이용한 세포 유전자 조작은 등록된 특허법에 의해 보호 받고 있는 에이젠바이오의 재산이나, 애트목스와 허찌엔칭 측은 이를 함부로 사업화하여 이익을 취했습니다. 이는 시장의 선점 효과를 부당하게 빼앗은 것으로, 에이젠바이오가 준비하고 있었던 후속 연구들을 가로막은 위법 행위에 해당합니다.”
박주혁은 두번째 증거를 제출했다.
“또한 에이젠바이오는 1억 명 유전자 해독 연구를 토대로 배아 발생에 사용되는 유전자들의 에스엔피 (SNP)를 전체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춘명 판사는 준비서면을 다시 확인했다.
소송이 어려운 두 번째 이유다. 과학계의 전문용어가 남발되고 있다. 이춘명은 이미 준비서면을 꼼꼼히 검토하면서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준비서면의 공란에 필기한 걸 읽었다.
SNP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개인마다 DNA의 특정한 위치의 구조가 변하는 것.
“이러한 SNP 데이터들은 질병 발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샘플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GWAS 같은 통계 연구 기법으로 질병 과의 상관계수를 입증할 수 있습니다. 에이젠바이오는 이 연구자료를 토대로 과학적으로 배아 유전자의 표적 질병 위치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유전병을 차단하고자 하였으며, 이미 상당한 전임상 성과가 존재했습니다.”
박주혁이 말했다.
“예를 들어 이번에 문제가 된 CCR5 유전자의 경우 델타32는 수명 감축의 위험성이 있는 돌연변이로, 에이젠바이오가 이 유전자에 대해 배아 유전자 조작을 시행한다면 델타32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진행해 인류의 보건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박주혁이 좔좔 쏟아내는 걸 보면서 이춘명 판사는 침을 삼켰다.
‘박주혁 저 친구는 에이바이오에서 한참 옛날부터 활약하던 류영준 대표 최측근이라더니. 웬만한 생물학 전공자 수준이잖아.’
박주혁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나 애트목스 측에서는 이 같은 과학적 접근을 모두 건너뛰고 유전자 조작을 시행해 델타32를 배아의 CCR5 유전자 내에 삽입함으로써 향후 연구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했습니다. 증거 3번으로 제출한 자료를 봐주십시오. GSC 국제회의에서 유전자 조작 아기 미미가 발표되었을 때 언론의 반응과 캐스나인 연구 펀딩의 변화입니다.”
박주혁이 말했다.
“수많은 국제 학술지와 언론에서 이 연구를 지탄했고, 인간의 유전자 조작이 초래할 미래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몇 개 국가에서는 종교 단체가 집회도 열었습니다. 미국, 스웨덴, 영국, 독일, 캐나다 등 52개 국가에서 캐스나인 연구 관련 펀딩이 70퍼센트 만큼 감소하였으며, 이 결과 초래되는 에이젠바이오의 캐스나인 특허 사용료의 매출 감소는 연 13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박주혁이 자료를 설명했다.
“또한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 에이젠바이오의 류영준 대표는 직접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여 학계의 연구에 대해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처럼 얼어붙은 분위기는 한동안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며, 에이제바이오가 기획하고 있었던 배아 유전자 조작 연구들 역시 제약을 받아, 필연적으로 유전되는 유전병들의 차단 치료제의 제품화에 차질이 발생할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
공판은 세 시간동안 이어졌고, 휴정한 후 내일 오전에 다시 진행하게 되었다.
첫 공판은 거의 박주혁의 독무대 수준이었다.
박주혁은 류영준과 붙어서 일하는 가운데 에이젠의 의학 연구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변호사 시험을 공부하며 얻은 법률 지식과, 이혜원 변리사와 함께 독감 특허 내던 시절부터 굵어진 특허법 관련 지식과 판례를 상세히 알고 있었다.
약간 긴장했던 게 억울할 정도로 상대측을 압살했던 것이다.
‘후우…….'
애트목스의 대표 왕웨이는 재판정을 나와서 이동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판을 되돌려보면 정말 최악이다.
애트목스 측의 변호인단은 ‘특허법이 시장 자체의 선점 권한까지 부여하지 않는다. 애트목스와 허찌엔칭이 유전자 조작 아기를 탄생 시킨 것은 특허 재산의 침해지만 그래도 시장에 먼저 뛰어들 자격은 별도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연구윤리 앞에 순식간에 박살났다.
“본 유전자 조작 아기의 산모인 쯔쉬안 씨를 증인으로 모십니다.”
박주혁이 데려온 증인은 너무 강력해서 그녀를 보자마자 애트목스 측 변호인들은 표정이 얼어붙었다.
통역사를 통해 간신히 진술한 쯔쉬안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고, 재판정 내의 모든 시민들과 기자들이 놀라서 헉 소릴 내며 입을 틀어막을 정도였다.
“저는 그 시술이 유전자 조작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곳에 모였던 산모들 중에서 그 누구도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증인은 동의서에 직접 서명했습니다.”
애트목스 측 변호인이 외쳤다.
“그 동의서를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박주혁이 받아쳤다.
“쯔쉬안씨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글자도 모릅니다. 그래서 동의서에 남긴 서명이 한자도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증인이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 동의서에 서명했다고 추측할 수 없습니다.”
“네……. 허찌엔칭 박사님이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하면서, 거기다가 뭐라도 쓰라고 해서 펜으로 아무거나 그었습니다.”
쯔쉬안이 말했다.
박주혁이 서류 하나를 들고 쯔쉬안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중국 공안청을 통해 전달 받은 애트목스 연구소의 외부인 출입기록입니다. 이에 따르면 증인은 애트목스 연구소에 들어간 후 불과 15분만에 서명을 마치고 다시 나왔습니다. 맞습니까?”
“네……. 들어가서 한참 대기하다가 서명만 하고 나왔습니다.”
쯔쉬안이 겁먹은 표정으로 답했다.
박주혁은 증인에게 질문을 하다가 방청객을 향해 물었다.
“대기시간 없이 15분 동안 전부 설명만 들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글도 모르는 20대 여성이 그 시간 동안 캐스나인을 이용한 배아 유전자 조작의 원리와 그것이 에이즈 바이러스의 유전을 어떻게 차단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부작용은 무엇인지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만큼 이해했을까요? 혹시 증인은 그동안 별도로 대학원 강의 수준의 생물학이나 의학 교육을 받으셨습니까?
“아니요……."
“이 연구는 전부 임상시험법 위법입니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애트목스 측은 배아유전자조작 시장을 정당하게 선점한 게 아닙니다.”
애트목스 측은 그야말로 첫 공판에서 산산조각 수준으로 파괴됐다.
왕웨이는 차량 안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도 괜찮다.’
에이젠바이오는 워낙에 큰 기업이고 매출이 월등히 좋은 기업이지 않은가?
변호인들은 시간만 끌어도 저쪽에서 본업에 집중하는 게 더 이익이라는 이유로 놔줄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 시간 끌기의 방법은 허찌엔칭이 알려주었다.
이미 그가 중국 동부 해안가에 대규모 공장을 증설해서 이쪽으로 미세먼지가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류영준 박사가 그 과정에서 한국민들의 건강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는 폭로도 했댔지.’
왕웨이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류영준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면 이쪽 재판에 대해선 신경을 덜 쓰게 될 것이고 시간을 질질 끌면 흐지부지 끝날 수 있…….
“뭐지, 이게?”
왕웨이가 휴대폰을 만지던 손을 우뚝 멈추었다.
화면에 중국의 베이징데일리 신문에서 뜬 온라인 뉴스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한국 기업 셀리제너, 에이젠바이오와 합작 연구을 토대로 달리는 미세먼지 저감 장치 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