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 모라토리엄 (1) > (52/301)

196화.  < 모라토리엄 (1) >

심포지움 당일 아침.

모라토리엄 선언의 참가자들에 대한 기사를 준비하던 각 언론사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잠깐 공황 상태에 빠졌다.

그것은 중국 동부 해안가에 대규모 공장이 준설되고 있으며, 그로부터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가 발생해서 한국으로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정보의 소스는 놀랍게도 허찌엔칭이었다.

그는 직접 한국 언론사들에게 이 사실을 제보하면서 녹음 파일 하나를 같이 보냈다.

그것은 류영준과 허찌엔칭이 대화했던 내용이 교묘하게 편집된 것이었다.

“……젠장! 류 박사. 당신은 한국의 국민 영웅인 과학자가 아닙니까? 지금 당신 회사의 손해에 대한 배상 청구 때문에 국민 목숨을 담보로 잡겠다는 거예요?”

“어쩔 수 없죠.”

대화록의 뉘앙스는 허찌엔칭이 미세먼지에 대해 경고하고 류영준이 그걸 묵살하는 분위기였다.

-공장 지대의 준설 이후 한국의 미세먼지는 세제곱미터당 1,000 마이크로그램에 이를 것으로 추측되며, 이는 인도 뉴델리 등과 같은 값이다.

-인도의 사망원인 1위는 ‘대기오염’으로,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에 의해 호흡기 질환과 혈관 질환을 야기한다. 13억 5천만 명의 인도 인구의 76 퍼센트가 심각한 대기오염에 노출되어 있으며, 전체 사망자의 12.5 퍼센트가 대기오염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사망자 8명 중 1명은 대기오염 탓이라는 것이다.

-이 운명은 이제 한국의 미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PIC의 분석 내용을 토대로 할 때, 뉴델리의 대기 환경이 WHO 안전 기준을 충족 했다면 그곳 시민의 기대 수명은 10년 이상 더 길어졌을 것이다.

-한국은 류영준 대표가 소송에 집착하면서 저버린 대기 질에 대해서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허찌엔칭이 보낸 메일을 읽던 기자들은 난처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심포지움 개최를 앞두고 에이젠바이오가 애트목스, 허찌엔칭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사방에 알려져 있다.

“국장님 이거 어떻게 하죠?”

주신일보 기자들이 그 파일과 정보를 들고 물었다.

"음......."

“일단 기사 자체는 굉장히 자극적인 게 나올 것 같은데, 그 화살이 류 대표님을 겨누는 내용이라서 쓰기가 좀 꺼려지는데요.”

“최대한 류 대표한테 우호적인 방향으로 기사 내보내. 지금 우리가 이거 안 써도 다른 신문사들에서 쓸 거야. 결국 터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야.”

***

심포지움이 열리는 베이징의 세인트레지스 호텔.

아침부터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안들이 쫙 깔렸다.

어디 가면 석학 소리 듣는 최고의 과학자들이 호텔 세미나실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들 대부분이 모라토리엄 선언에 대해 진지한 무게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오늘 류영준과 허찌엔칭의 충돌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이미 같은 GSC 멤버이자 세계 최고의 생물학 석학 중 하나인 제이미 앤더슨도 류영준과 충돌하면서 크게 당하지 않았던가.

과연 허찌엔칭은 어떨까?

그것도 허찌엔칭의 본국인 중국 한복판에서.

공안들에 의해 엄격한 소지품 검사를 받고 안에 입장한 기자들은 이미 호텔 로비와 세미나실에 포진하면서 과학자들을 찍어댔다.

“허찌엔칭이다!”

그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허찌엔칭 박사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세미나실 안쪽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던 류영준을 쏘아보았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모든 과학자들이 착석했다.

류영준은 발제자로서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에이젠바이오에서 개발한 유전자 가위 캐스나인은 현재 존재하는 모든 유전자 가위 중에서 가장 발전한 기술로, 기존의 탈렌 같은 기술과 다르게 비교적 매우 손쉽게 DNA를 자를 수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는 많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쉽게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실험에 뛰어들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은 현재 클로닝을 비롯한 많은 DNA 작업에서 캐스나인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시피 최근 GSC 국제회의에서 처음 보고 된 유전자 조작 아기, 일명 ‘미미’의 탄생으로부터 배아의 유전자 조작 역시 캐스나인으로 가능함을 확인했습니다.”

과학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류영준은 마이크를 쥐고 허찌엔칭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배아의 유전자 조작은 우리에게 아직 이른 길이며, 이 작업은 매우 신중하게, 질병 발생과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유전병의 제거를 위해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말했다.

“이에 저희는 에이젠바이오에 캐스나인의 이용 허가에 대한 윤리 심사 기구를 설치하고, 각지에서 생명윤리 전문가들을 고용하려고 합니다. 이후 세계 어디서든 캐스나인을 이용하여 배아 연구를 진행하고자 할 경우에는 캐스나인 이용 허가를 받을 때 이 윤리 심사 기구에서 심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만약 무단으로 캐스나인이 배아 연구에 이용될 경우에는 에이젠바이오가 법적인 대응을 할 것입니다.”

100억 달러짜리 소송을 걸겠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저는 이것만으로는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는 뒷받침되는 프로그램일 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 스스로가 배아 연구에 대해 엄중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곳에서 세계 각지에서 모신 최고의 연구자들과 함께, 우리의 배아 유전자 조작 연구를 스스로 자제하고자 하는 모라토리엄을 발표하고자 합니다.”

심포지움의 호텔 직원들이 모라토리엄 선언 서명서를 과학자들에게 쭉 나눠주었다.

“지금 나눠드린 서류들에 포함된 내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과학자들은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류를 천천히 읽었다.

1. 캐스나인을 이용한 인간 배아 유전자 조작은 원칙적으로 전면 금지한다. 향후 10년간 배아 유전자 조작 연구는 인간을 제외한 생물만을 대상으로 한다.

2. 1번에 한하여 만약 배아의 유전자 조작이 특정한 유전 질환의 발생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경우, 인간의 배아 유전자 조작 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3. 그러나 이 경우, 인간의 DNA의 30억 염기쌍 중에서 질병 관련 위치를 정확히 특정할 수 있어야 하며, 캐스나인이 DNA 상의 다른 위치에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 없이 원하는 표적만을 완벽하게 잘라낼 수 있음을 확인하여야 한다.

4. 또한 이때에는 충분한 세포 수준 실험에서 유전자 조작이 예상한 대로 작동함이 충분히 증명되어야 하며, 조작 후에 어떠한 부작용도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전임상 실험을 토대로 입증해야 한다.

“허……."

상당히 빡빡한 규제다

과학자들은 서류를 신중하게 읽었고, 몇몇은 펜을 꺼내들어 서명을 남기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이 스스로의 연구에 제약을 걸어서 앞길을 옥죄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하지만 생물학에서는 이따금 나타났던 현상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류영준이 이 모라토리엄을 진행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

누군가 말했다.

허찌엔칭이었다.

그는 오만한 자세로 등을 의자에 기대어 기울인 채 다리를 꼬았다.

“이딴 짓을 대체 왜 합니까?”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세요. 여러분. 정말로 이런 서류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면서 각자 자기 발목에다 족쇄를 채울 겁니까?”

허찌엔칭이 말했다.

“우리는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키는 역할을 떠맡은 사람들입니다. 박사급 과학자 한 사람을 양성하는데 사회가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르는지 아십니까? 하물며 우리 같은 GSC나 교수급 인재들은요?”

“멍청한 소릴 또 하는군. 허찌엔칭! 이게 다 자네 때문이잖나!”

막스 데카니 박사가 외쳤다.

“저 때문이요? 아닙니다. 류 박사 때문이죠.”

그가 류영준을 가리켰다.

“제 연구는 꼭 필요한 것이었고, 완벽하게 작동했습니다! 그걸 문제 삼은 게 문제일 뿐입니다.”

“꼭 필요한 것 아니잖나. 글락소비록을 쓰면 에이젠 전염을 막을 수 있었어!”

막스 데카니가 소리쳤다.

“글락소비록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용법 변화 때문이지. 본래 농도로 본래 쓰던 주기의 투약 규칙을 지켰으면 실패하지 않았을 거야. 임상 데이터가 많이 쌓인 약 중 하나라고.”

“그것 역시 가정일 뿐입니다. 반대로 얘기해서 글락소비록의 기존 용법이 어떤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지금까지의 얘기일 뿐이지, 그 약물이 수십년의 임상 데이터를 쌓은 게 아니니 안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유전자 조작보단 안전하겠지!”

“조작보다 안전?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델타32은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돌연변이입니다. 그럼 그 형질을 가진 사람들은 다 위험하게요?”

두 사람이 팽팽하게 주고받았다.

“포인트는 그런 게 아닙니다.”

류영준이 끼어들었다.

과학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저는 글락소비록을 대체하는 방법 중 하나로 CCR5 조작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는 허찌엔칭 박사님을 일면 긍정해요.”

"......."

뜻밖의 말에 과학자들은 조금 놀란 듯했다. 그건 허찌엔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류영준이 말을 이었다.

“그걸 위해선 제가 지금 나눠드린 서류에 포함된 내용들이 지켜졌어야 합니다. 첫째, CCR5 조작이 어떤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둘째, DNA 상의 표적 위치를 교정하는 것 외에 다른 돌연변이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 허찌엔칭 박사님은 기초 연구가 부실한 상태로 이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모두 틀렸죠.”

“그게 무슨 소립니까?”

허찌엔칭이 물었다.

“제가 지난 기자회견에서 에이젠바이오의 유전자분석기로 해독한 3,100만 명의 DNA 정보와 델타32 변이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GWAS로 분석한 결과물입니다. 보십시오.”

류영준이 모니터에 데이터를 띄웠다.

무려 3,100만 명의 DNA 정보다.

그들을 성별과 나이, 비만도, 인종 등 15개의 요인들로 나누었다. 이들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수명과 질병 발생률 등에 영향을 줄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의 양이 수십만에서 수천만에 이른다면, 이 복합적인 요인들 대부분을 노멀라이즈 (Normalize) 처리해서 제거할 수 있다.

그럼 오직 한 가지 변수만 남는다.

‘CCR5에 발생한 델타32 변이’가 미치는 영향.

이는 로잘린의 시뮬레이션 모드를 인공적으로 모방한 것이다.

수천만에 이르는 초거대 데이터베이스와 통계학,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힘이다.

-뭐 그럭저럭 정답에 근사하게 맞춰냈네요.

로잘린은 대수롭지않게 평가했지만 과학자들이 받은 충격은 그야말로 머릿속이 얼떨떨한 수준이었다.

“이럴 수가……."

그들 사이에 탄식이 번졌다.

[기대 수명]

CCR5-WT:88세

CCR5-delta32:61세

CCR5가 정상인 경우에 비해 델타32 변이가 삽입된 경우엔 기대 수명이 무려 27년이나 떨어진다.

허찌엔칭조차 입을 다물어버렸다.

‘도대체 에이젠바이오에서 어떤 걸 만든 거지……?’

모두가 저 괴물 같은 데이터분석 결과물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CCR5에 생긴 델타32 변이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데는 엄청난 양의 실험과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변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수십만 명씩 모은 다음 그 거대 집단을 비교하면 특정한 차이점을 발굴해낼 수 있다.

이러면 복잡한 실험을 거치지 않아도 그 돌연변이와 건강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기대 수명의 이 커다란 차이는 아직까지 생물학적으로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에이젠바이오 내에서 진행한 몇 가지 동물 실험 결과를 토대로 볼 때, CCR5 유전자는 텔로미어 형성과 면역성에 관여하는 듯 보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는 이 유전자가 배아 발생 과정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경우, 그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감기 등의 잡병에 쉽게 피해를 입을 수 있고, 그게 결국 수명 감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류영준은 허찌엔칭을 쳐다보았다.

“한 마디로 허 박사님이 수명 단축 유전자를 삽입해버렸다는 뜻입니다.”

"......."

세미나실이 얼어붙은 것처럼 조용했다.

“본래 저는 이와 같은 GWAS 데이터와 동물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캐스나인을 이용해서 배아 유전자 조작을 감행하고자 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 경우에는 델타32를 배아의 CCR5에 삽입하는 게 아니라, ‘제거하는’게 되었겠죠. 자기 아기한테 수명 감축 유전자를 물려주고 싶은 부모는 없을 테니까요.”

털썩.

허찌엔칭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GWAS를 터뜨리겠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저 정도 결과물인줄은 몰랐다.

파고들 틈이 전혀 없다. 통계적으로 완벽한 자료다.

하지만 그의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유전자 조작이 일어난 아기 ‘미미’의 경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모라토리엄 서류의 포인트 두 개 모두 틀렸다고 말씀드렸지요?”

류영준이 화면을 넘겼다.

미미의 혈액을 분석한 DNA 서열 구조 정보가 나타났다.

“이 아기한텐 델타32 외에 다른 돌연변이도 삽입됐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캐스나인을 다루는 데 미숙하신 분이 세포 실험 수준에서의 충분한 검증 없이 진행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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