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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화. < 미세먼지 (11) > (51/301)

195화.  < 미세먼지 (11) >

기자회견이 끝난 후, 허찌엔칭은 류영준을 뒤쫓아왔다.

그는 류영준을 붙잡고 세미나실 뒤의 비상 계단으로 이동했다.

“류 박사. 대체 나한테 왜 이럽니까?”

그가 류영준을 앞에 세워놓고 말했다.

“제가 뭘요?”

“우리 이미 딜 했던 것 아닙니까? 내가 미세먼지 저감 계획을 진행해주고 그 대신 당신은 CCR5 조작 아기를 살려내서 날 구해주기로?”

“전 그 아기를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당신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린 결론은 당신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요.”

“젠장!”

허찌엔칭이 몸을 빙 돌렸다.

“젠장!”

그는 분을 못 이겨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잘 들으세요. 류 박사. 나는 당신하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천재 과학자들이요.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 솔직히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이 뒤따르는 거예요!”

그가 소리쳤다.

“그 대신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겁니다. 나는 류 박사 당신이 나랑 비슷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과학에 투신한 진보주의자라고 믿었어요.”

“맞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허찌엔칭 박사님. 당신 말대로 저는 과학의 발전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해요.”

"......."

“하지만 제 경우에는 그 방법과 그로부터 도출되는 결과도 옳아야 합니다.”

“후우. 말이 안 통하는군.”

허찌엔칭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 박사님. 우생학에 대해 아십니까?”

“학부생 교재에나 나올 것 같은 옛날 얘기로 날 가르치려고 하는 겁니까?”

“진화론을 쓴 다윈의 사촌인 골턴 박사는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해서 인간의 품종 개량을 떠올렸습니다. 소나 돼지를 품종 개량하듯 말이에요. 더 젖이 많이 나오는 개체를 계속 교배시키면 젖이 많이 나오는 젖소 품종을 얻을 수 있겠죠. 그쪽 유전자들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니까.”

"......."

“골턴은 인간도 우수한 사람들끼리만 자손을 낳게 하고 떨어지는 사람들의 출산을 제한함으로써 인간 품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의 저서에 엄청난 감명을 받고 골턴 박사한테 친히 편지를 써서 ‘선생님의 책을 내 인생의 두 번째 성경으로 삼겠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군지 아시지요?”

류영준이 말했다.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나치는 우생학의 광기 아래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거예요. 단순히 군사 정권의 유지를 위한 전략적인 목적으로 학살한 게 아닙니다. 히틀러는 실제로 우생학의 신봉자였어요. 나치가 제일 먼저 학살한 건 독일 내의 장애인들이었죠. 그들 입장에선 열등한 유전자를 박멸시켜 인류를 진화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집어 치워요. 날 뭐랑 비교하는 겁니까?”

“과학은 급진적인 만큼 섬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치 같은 괴물이 또 나타나는 거예요. 저는 배아 유전자 조작에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인간 근본을 뒤흔드는 그 생물학은 정말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해요.”

“아니요. 아닙니다. 류 박사. 과학자는 과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에요.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건 철학자들이나 하는 거요.”

허찌엔칭이 말했다.

“류 박사. 과학자가 고민할 것은, 무엇을 해야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오직 그것 하나뿐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연구에 큰 차질을 빚어 노벨상까지 놓쳐가면서도 반전 운동에 앞섰던 라이너스 폴링 같은 과학자가 진짜 지식인의 책무를 다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허찌엔칭은 이를 부득 갈았다.

“류 박사. 우리나라 동부 해안가에는 대량의 알루미늄이 매장돼있고, 행정관리총국 장관님은 그걸 개발하는 걸 중요한 국책 사업으로 추진하고 계십니다.”

그가 말했다.

“대규모의 산업 단지가 그곳에 들어설 겁니다. 그리고 그 양과 위치를 볼 때 한국으로 날아가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의 발생량은 지금까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 될 거요.”

“그렇습니까?”

“네. 지금 한국에서 편서풍 불면 미세먼지 양이 세제곱미터 면적당 100 정도 나오지요? 그걸로 장시간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경고 문자 보내죠?”

허찌엔칭이 말했다.

“그 산업 단지가 들어선 후에는 아마 세제곱미터 면적당 1,000 마이크로그램이 넘을 겁니다. 옛날 베이징이나 지금 인도의 뉴델리 수준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어요. 난 그걸 막아주려고 했습니다.”

"......."

“하지만 이제 당신은 나랑 척을 졌어요. 우리나라 행정관리총국을 설득할 수 있는 과학자는 중국에는 오직 나 한 사람밖에 없었고, 당신은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류영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마스크 쓰고 다녀야겠군요.”

“내가 얘기했던 거 기억납니까? 한국 과학자들은 스웨덴 과학자들처럼 미세먼지의 발생지를 추적하고 그걸 증거로 만들어 따지고 드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류 박사 당신은 실력이 있으니 폴링을 입에 담으면서 나한테 우생학에 대해 강론할 수 있지만 한국의 대부분의 과학자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한국만이 아니죠. 그 수많은 하찮은 풋내기 과학자들이 윤리가 어떻고 떠들어대며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꼴. 나는 절대 양보할 생각 없습니다.”

허찌엔칭이 말했다.

“류 박사. 나랑 딜했던 것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알루미늄 지대에 준설되고 있는 공장들은 이미 굴뚝을 올리는 중이고, 이제 그 결과를 한국은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국민 보건에 가장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이런 사태를 정말로 그냥 묵인할 겁니까?”

“어쩔 수 없죠.”

“젠장! 류 박사. 당신은 한국의 국민 영웅인 과학자가 아닙니까? 지금 당신 회사의 손해에 대한 배상 청구 때문에 국민 목숨을 담보로 잡겠다는 거예요?"

“같은 얘기가 계속 반복되는 것 같은데 솔직히 좀 지겹군요. 더 할 얘기 없습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

“모라토리엄 선언에 참가하겠다고 하셨으니 기대하겠습니다.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모라토리엄 선언에 참가 의사를 보인 과학자들은 대부분 발생학이나 배아 연구, 또는 유전자 가위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상당한 업적을 가진 사람들이다.

학계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높은만큼, 그들 대부분은 몹시 일상이 바빴고 스케줄은 항상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류영준의 심포지움은 갑작스럽게 잡힌 것이다.

이러면 참가자들은 스케줄 조정에 꽤 애를 먹는다. 상황이 상황인 데다 류영준의 초청까지 받았으니 참석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막상 가려면 몇 개의 일과를 제거하거나 앞뒤로 당기고 밀어내야 했다.

류영준은 그런 사정을 이해했기 때문에 심포지움 개최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을 두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해야하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그리고 그 2주 동안, 중국 동부 해안가의 알루미늄 산업 지대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는 허찌엔칭이 행정관리총국 쪽에 오히려 준설을 가속하라고 부추겼기 때문이다.

“굴뚝을 더 높이세요.”

광기가 감도는 눈으로 허찌엔칭은 신 마오 장관에게 말했다.

“뭐, 자네가 뭐라고 하든 이미 준설 중인데다 대거 자본이 투입된 일이라서 진행은 원래 할 계획이었는데 말이야.”

신 마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자네 공안청에 체포되기 직전이었는데 모라토리엄 참석 때문에 잠깐만 유예해주는 거거든? 도주 우려가 없다고 내가 보증한 것이니, 한동안만이라도 좀 얌전히 자숙하는 게 어떻겠나?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지 말고.”

그러나 허찌엔칭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애트목스까지 부추겨서 펀딩을 더 퍼부어댔다.

“정말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애트목스의 왕웨이 대표는 불안한 듯 허찌엔칭에게 물었다.

에이젠바이오와 법적 분쟁에서 진검 승부를 벌였다간 피박살이 날 게 뻔했다.

허찌엔칭은 그걸 역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걸 위해서 동부 해안가의 공장 준설에 자금을 더 쏟아 부으라고 부추긴 것이다.

본래 중국에서 꽤 유명한 재력가였던 왕웨이에게 공장 지대 설립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00억 달러짜리 폭탄을 맞으면 누구든 파산하겠지만 이 공장 굴뚝 좀 올리는 걸로 막을 수 있다면야……."

왕웨이는 동부에 더 많은 자금을 쏟아부었고, 시간은 흘러 심포지움 날짜가 바로 앞으로 가까워졌다.

***

“됐다.”

쓰천성 대학병원의 작은 생물학 연구소.

세 명의 과학자가 실험을 하고 있었다.

둘은 미국인, 한 명은 중국인이었다.

에이젠바이오에서 긴급 지원을 위해서 넘어온 과학자들이다. 발생학과 생체물질 폴딩 (Folding) 예측의 달인들이었다.

그들은 류영준을 도와서 CCR5 조작 아기인 ‘미미’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었다.

“원정 연구를 또 하게 되다니.”

제이콥은 고통스러운 듯 말했다.

“그래도 중국 여행하고 좋죠. 거기다 대표님이 호텔에 항공권에 여행 경비까지 좀 보태주셨잖아요.”

클레이가 말했다.

“그래봤자 쓰천 성인데 뭐가 좋아요, 먼지만 가득한데. 전 이게 싫어서 한국으로 갔었는데요.”

쓰천 성 출신의 에이젠바이오 신입 박사 왕주빙이 말했다.

“먼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클레이가 끼어들었다.

“미미 그 아기 멸균실에서 보호하고 있잖아? 근데 CCR5에 델타32가 들어갔다고 그런 상태가 되나? 허찌엔칭 말처럼 자연계에 존재하는 돌연변이잖아.”

“그러게요.”

왕주빙이 동의했다.

“특별히 큰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래. 근데 잡다한 병원균 감염에 굉장히 취약한 상태라서 멸균실에서 보호한다던데.”

제이콥이 끼어들었다. 두 사람이 눈이 동그래서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갓난아기잖아요?”

왕주빙이 물었다.

“그렇죠.”

“갓난아기는 산모한테 항체를 받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 항체들이 고갈될 때까지는 산모랑 면역력이 거의 똑같아요.”

클레이가 지적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면역학 기본 중 하나니까.”

제이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데 무균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건 산모의 면역력도 그 정도로 낮거나, 아기의 면역과 관련된 유전자에 문제가 생겼……."

왕주빙은 말을 멈추었다.

세 사람 모두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지금 개발한 것은 캐스나인을 이용한 유전자 편집의 일종이다. 조혈모세포에서 표적 DNA를 교정할 것이다.

수지상세포를 우회했던 유전자 외과 수술과 비슷하다.

이번 표적은 CCR5 유전자의 돌연변이 부위, 일명 델타32.

류영준은 세 사람에게 캐스나인으로 환자의 DNA 샘플의 해당 위치를 자르고 그 자리에 정상 CCR5를 삽입하는 외과수술을 준비하게 했다.

클레이는 들고 있던 플라스틱 용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50 마이크로리터만큼 들어있는 수용액 안에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정상 CCR5 유전자의 파편이 있다.

아기의 림프절마다 세포 속에 캐스나인과 이 DNA 파편을 집어넣을 것이다.

이들은 저절로 세포 내에서 DNA 상의 환부를 절제한 후에, 정상 DNA를 덧대어 수리할 것이다.

마치 찢어진 청바지에 옷감을 덧붙여서 깁는 것과 같다.

“그 환부에 델타32 말고 다른 게 있는 거예요.”

제이콥이 말했다.

“허찌엔칭이 캐스나인을 잘못 썼고, 델타32 근처에 또다른 돌연변이가 존재하는 거예요. 그게 아기의 면역력을 파괴한 것이고.”

“맙소사……. 대표님도 아시겠죠?”

왕주빙이 물었다.

“당연하죠. 대표님은 그 아기의 DNA를 에이젠바이오 유전자 분석기로 해독한 데이터까지 봤어요.”

제이콥이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은 바뀌지 않았어요. 이 치료제를 완성시키는 겁니다. 그 다음은 대표님이 알아서 잘 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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