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4화. < 미세먼지 (10) > (50/301)

194화.  < 미세먼지 (10) >

류영준을 인터뷰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기자들 중 일부는 곧바로 중국 비자부터 끊었다.

하지만 류영준은 모라토리엄 선언문을 만들고 심포지움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젠 에이젠바이오의 법무팀과 대외홍보팀 쪽으로 모든 인터뷰 요청이 쏠리게 되었다.

‘바빠 죽겠는데 진짜.’

박주혁은 투덜대면서도 묘하게 이 상황을 즐겼다.

이제는 이 거대한 사태에 대해서 누군가 직접 나서서 어느 정도의 설명을 해줄 차례였다.

“대표님께서 중국으로 떠나면서 지시하셨던 내용입니다. 법무팀에서는 현재 이 소송과 관련된 만반의 증거 자료들을 수집해둔 상태입니다.”

박주혁이 대표로 인터뷰에 응했다. 에이바이오 법무팀을 이끌던 그는 에이젠바이오 법무팀에서 일하게 됐다.

팀 리더 위치는 아니었지만 류영준의 요청을 직접 받았던 실무자로서 인터뷰에 나선 것이다.

-허찌엔칭 박사는 유전자 조작을 시행한 과학자로 유명해져서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애트목스라는 회사에 대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낯설어합니다. 애트목스에 대해서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기자들이 질문했다.

“애트목스는 대만에 본사를 두고 있는 중소 제약회사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탄저무기 개발 때에 에이젠이 중국에 작은 회사를 설립했다가 팔았는데 그게 전신이 되었죠. 애트목스 설립과 함께 대만으로 이전했던 겁니다.”

박주혁이 말했다.

“그리고 그 회사는 허찌엔칭 박사의 이번 연구를 펀딩해주었습니다.”

-그렇군요. 이제 허찌엔칭 박사와 애트목스 둘 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걸었던 게 이해가 됩니다. 이 소송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우선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귀책사유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해서 피해가 발생했음을 증명해야 하죠. 이 부분은 굳이 법학적인 해석을 덧붙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고의성이 명확하니까요.”

박주혁이 말했다.

“실수로 배아 유전자 조작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허찌엔칭 박사는 그 실험 결과물을 GSC 국제회의에서 발표하면서 설명하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고의성이 인정됩니다. 또한 이로 인해서 에이젠바이오가 입게 된 피해도 분명하기 때문에 손해배상 소송 자체는 확실히 승소할 수 있습니다. 금액이 문제가 되겠죠.”

-그렇군요. 말씀 해주셨으니 말인데, 손해보상 청구액이 어마어마한 수준입니다. 어지간한 중견 기업의 시가 총액에 버금가는 액수예요.

“맞습니다.”

-과거 SG전자와 미국 인폴 사가 특허 전쟁을 벌일 때도 손해배상 청구액이 20억 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았는데요, 어떻게 이 정도 금액이 나오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손해배상 청구에서 손해의 범위는 3분설에 의해서 적극손해, 소극손해, 위자료로 나누어집니다. 적극손해는 실제 재산의 감소, 또는 불필요했던 지출을 의미해요. 차 사고가 나서 병원비, 수리비를 쓰게 되면 이게 적극손해죠.”

박주혁이 말했다.

“우리는 적극손해에 대해서도 청구를 하고자 합니다만, 100억 달러라는 거액의 대부분은 소극손해이고 추가로 조금의 위자료입니다.”

-그렇군요. 소극손해부터 설명 부탁드립니다.

“뭐 대강 예상하시겠지만, 차 사고가 나서 입원하는 바람에 일을 못하게 되면 그 사람 일당에 해당하는 돈이 소극손해가 됩니다.”

-류영준 대표님의 일당이기 때문에 100억 달러 같은 금액이 나오게 된 건가요?

“비슷하죠. 저희 대표님께서는 배아 유전자조작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이셨습니다. 실제로 에이바이오 내부에서는 이에 대해서 기획 단계에 여러 프로젝트들이 있었죠.”

-탄저균 테러가 발생하기 전에 류 대표님께서 기자회견을 열어서 유전자조작에 대해 얘기하신 적이 있었는데요,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비후성심근증 같은 유전병 인자를 보유한 부모들이 건강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었죠.”

-그 모든 연구들이 중지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게 모두 중지되고 그에 대해서 청구한다면 100억 달러밖에 안 될 리가 없죠.”

박주혁이 웃음 지었다.

“에이젠바이오의 연구는 계속 진행이 될 겁니다. 하지만 캐스나인은 거의 모든 유전질환을 교정할 수 있는 기술이고, 세상에 유전질환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즉, 본래는 에이젠바이오 말고 수많은 대학과 다른 기업들도 ‘유전병 퇴치’ 연구 전선에 동참할 예정이었다는 거죠.”

박주혁이 말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는 펀딩이 끊기거나 주위의 눈총 때문에 한동안 그 연구를 못하게 될 겁니다. 실제로 대표님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그들의 연구에 어느 정도 규제를 다는 것이고요. 이게 캐스나인 연구의 빙하기를 이끌 가능성이 있죠. 그렇다면 당연히 그들로부터 에이젠바이오가 받게 될 특허 이용료 역시 줄어들 테고요.”

-이제 이해가 됩니다. 그 추산액이 100억 달러인 거군요?

“에이젠바이오에서는 1억 명의 사람의 유전체 데이터를 모으는 거대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병원과 대학들과의 협력, 그리고 류영준 대표님이 스타덤에 오르면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늘어난 덕에 이미 상당한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박주혁이 말했다.

“이제는 해상도가 낮지만 전체 그림이 보이는 지도가 슬슬 나타나는 시점입니다. 저는 생물학자가 아니라서 모르지만, 그걸 연구하는 분들과 대표님 얘기에 따르면 약 1,300개에 이르는 질병 관련 DNA 위치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1,300개요?

“네. 그리고 저희 회사는 그 중에서 유전력 점수가 90점 이상인 질병들 82개를 추려내고, 그 중에서도 현재 유전을 막을 방법이 없는 질병들 51개를 모았습니다. 즉, 달리 말하면.”

박주혁이 말했다.

“기존에는 손쓸 방법이 없었던 51개의 유전병에 대해서 건강한 태아를 출산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군요. 근데 이 정도의 얘기를 이렇게 공개하셔도 되는 건가요?

기자가 웃으면서 물었다.

“대표님한테 허락 받은 부분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박주혁이 말했다.

“그리고 아까 손해배상 청구 범위는 적극손해, 소극손해 외에 위자료가 있다고 했는데요. 기업도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되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법인의 경우에는 정신적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재산상의 손해만 청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렇죠. 하지만 이미 이런 경우에 기업의 브랜드 가치의 훼손을 인정하여 재산 이외의 무형의 손해에 대해서 위자료 배상을 선고한 판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네. 특히 에이젠바이오의 경우에는 합병으로 인해서 세계 최대 기업이 된 상황에서 그 브랜드 이미지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수 있습니다. 저희는 그래도 겸손하게 위자료 항목에 대해서는 가급적 액수를 낮추어 쓴 편이긴 합니다.”

-얼마나 쓰셨나요?

“1억 달러를 청구했습니다.”

-낮춰 쓴 건가요? 엄청난 액수인 것 같은데요.

“에이젠바이오의 브랜드 가치를 생각하면 푼돈입니다.”

-하긴 그렇겠군요. 위자료 부분도 확실히 받을 수 있을까요?

“허찌엔칭 박사는 유전자 조작 아기의 탄생이 이루어지면 그게 얼마나 거대한 윤리적인 파란을 일으킬지 예상했을 겁니다. 누구든 그건 예상할 수 있죠.”

박주혁이 말했다.

“그로 인해서 발생하게 될 에이젠바이오의 브랜드 이미지 실추 역시 당연히 예상했을 겁니다. 어느 정도 상대방의 예측 가능성의 범위 내에 있는 청구이고, 액수가 충분히 합리적이기 때문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애트목스 사 대표 왕웨이가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00억 달러? 아니 100억 달러가 어딨어?”

그 천문학적인 금액에 왕웨이는 곧바로 대만 최고의 로펌을 고용해서 대책을 마련하려 했지만 일은 쉽지 않았다.

“청구액을 어느 정도 협상해볼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100억 달러라는 액수가 그렇게 터무니없는 게 아닙니다. 유일한 방법은 그 정도로 피해액이 커질 줄은 몰랐다는 식으로 잡아떼는 건데, 청구액 범위에 사전 예견 가능성이 포함되는 걸 이용하는 겁니다. 하지만 에이젠바이오의 성장력과 1억 명의 유전자 데이터 해독 프로젝트, 캐스나인의 유전자 조작 능력 등은 이미 그동안 수없이 보고되었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안 먹힐 가능성도 높습니다. 애트목스가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일반인도 아니고 생물학 전문 집단이니까요.”

왕웨이의 자문을 받은 변호사들이 말했다.

“차라리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서 지루한 싸움을 반복하면 에이젠바이오 같은 회사에선 득보다 실이 많아 법정 싸움을 관두고 그냥 본업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으니 그쪽을 노려보는 게 차라리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패는 한 마디로 에이젠바이오가 애트목스를 봐주는 경우이기 때문에, 만약 그쪽에서 체력을 소모하면서 계속 싸우려고 한다면 결국 우리쪽이 먼저 지쳐서 무너질 겁니다. 체격 차이가 너무 크니까요.”

변호사들이 말했다.

왕웨이 대표는 허찌엔칭에게 수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그에겐 연락이 닿지 않았다.

중국 언론은 발칵 뒤집어졌고, 중국 내의 영웅적인 과학자였던 허찌엔칭에 대해서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그 와중에 허찌엔칭을 감싸며 류영준을 공격하는 중국인들도 있었다는 점이 허찌엔칭과 애트목스에겐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었다.

-우리 중화 민족의 힘으로 류영준을 몰아내자.

-중국 과학은 중국 과학자들의 것이다.

-유전자 조작은 필요한 연구였다.

공안청의 부총경감은 국제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서 먼저 허찌엔칭을 구속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공안들이 그를 치기 직전.

허찌엔칭은 약간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베이징의 세인트레지스 호텔로 이동했다. 류영준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생물학자들을 초대하고 심포지움을 열기 위해 준비하던 그곳이다.

허찌엔칭은 그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저는 모라토리엄 선언을 위한 심포지움에 참가할 겁니다.”

그가 말했다.

“세계 최고의 생물학자들이 참관하는 그곳에서, 모두의 눈앞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겠습니다. 과학은 결국 팩트의 싸움이니까요. 100억 달러짜리 소송이니 연구 윤리 위반이니 하는 귀찮은 것들은 뒤로하고 과학적인 문제만을 똑바로 직시하고 그에 대해서만 논합시다. 그럼 모든 의혹이 풀릴 테니까요. 이번 일의 핵심 요지는 CCR5 조작은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며 에이즈 감염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카메라를 보며 외쳤다.

“유전자 조작 아기가 지금 건강이 매우 나쁘다고 들었는데요!”

기자들 중 하나가 외쳤다.

“일시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어느 아기나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질병입니다. CCR5 조작 자체는 문제되지 않아요. 거기서 도입된 델타 32 변이는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돌연변이를 이미 갖고 있어요.”

허찌엔칭이 답했다.

“그 변이가 그 아기의 건강에 악영향을 초래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겁니까? 입증 책임은 류 박사한테 있습니다. 입증에 실패하면 모든 소송을 취하할 것을 원합니다.”

발언을 이어가던 허찌엔칭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을 멈추었다.

기자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일제히 돌아가고 있었다.

심포지움이 열리는 세미나실에서 류영준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류영준이다!”

기자들이 소리쳤다.

류영준은 허찌엔칭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어엇……."

허찌엔칭이 뒷걸음질을 쳤다.

“제 이름이 호명되기에 잠깐 들렀습니다.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류영준은 마이크를 들었다.

“방금 허 박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겠습니다. 입증에 실패하면 소송을 취하하죠.”

"......."

“심포지움에서 에이젠바이오가 그간 했던 1억 명 유전체 해독 프로젝트의 중간 결과물을 발표하겠습니다. 약 3,100만 명의 유전체 해독 데이터입니다. 그 중 CCR5의 돌연변이인 델타32를 가진 사람들은 약 10만6천 명이었습니다. 그들의 질병과 보건 데이터를 종합한 다음, 같은 인종, 같은 나이와 같은 성별이지만 델타32가 없는 대조군과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 (Genome-Wide Association Study, GWAS) 기법으로 비교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델타32가 선천적으로 도입된 이들에게서만 높은 상관관계로 나타나는 부작용이 존재하는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물을 발표할 겁니다.”

"......."

기자회견장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허 박사님 말처럼 과학은 ‘팩트 싸움’이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심포지움에는 비전공자들도 와서 참관할 수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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