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 미세먼지 (8) >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 처벌?”
허찌엔칭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 뭐 잘못 들은 것 아니에요? 류 박사가 그런 얘길 장관님하고 왜 해?”
“저는 들은 것을 전달할 뿐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릅니다.”
수행원이 말했다.
“……. 아."
허찌엔칭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그렇구나. 절 처벌하지 말라고 부탁하려는 겁니다. 하하.”
장관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수행원에게 물었다.
“언제 보자던가?”
“비자 기간 내에 언제든 좋답니다. 하지만 가능한 빨랐으면 하더군요.”
장관은 시계를 확인했다.
“열한시 반이군. 이 다음 스케줄 뭐지?”
“주석님하고 오찬 있습니다.”
수행원이 답했다.
“지금 당장 류 박사한테 연락해서 시간 잡아봐. 그리고 된다고 하면 주석님한테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오찬은 안 될 것 같다고 최대한 공손하게 전해주게.”
“주석님 오찬인데요?”
허찌엔칭이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내가 그 분 모신 게 30년째야. 이해하실 거야. 그렇게 중요한 오찬도 아니고.”
장관이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류 박사 만나는 게 지금 급한 일이잖나? 자네 말대로 그 ‘차원이 다른 괴물 같은 과학자’가 자네한테 칼을 겨누려는 것 같은데.”
"......."
“걱정하지 마. 난 자네 편이니.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 13억 인구 중에서 최고의 인적 자산 중 하나 아닌가?”
장관이 말했다.
“아무튼 난 자네를 보호하려는 것이니, 여기 얌전히 박혀 있게.”
***
행정관리총국 장관 신 마오.
국무원의 숨은 실세 중 하나이며 주석과는 사돈 관계이기도 하다.
행정관리총국에서 그가 하는 일은 산업 및 상업 행정에 관한 법률 제정 및 정책 총괄.
사실상 내수 경제를 손에 꽉 쥐고 있는 인물로 지금은 중국 동부 해안선을 따라 대규모 산업 지대를 준설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그는 허찌엔칭의 지지자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신 마오는 기름진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면서 류영준을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류영준은 그와 악수하고 자리에 앉았다.
“뭐 계약서를 쓰거나 할 것도 아니고 단순 의논 정도인데다 약속이 급하게 잡혀서 저는 통역 없이 왔습니다. 이쪽에 있다고 들어서요."
신 마오가 말했다.
“네. 제가 준비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근데 어디 불편하십니까? 안색이 썩 안 좋으신데.”
신 마오 장관이 물었다.
“괜찮습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중국에 온 후로 워낙에 기분 더러운 꼴들을 워낙에 많이 보고 들은지라 아직도 표정이 잘 관리되지 않았다.
류영준은 속에서 부글거리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혔다.
“저랑 얘기하고 싶은 안건이 둘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신 마오 장관이 물었다.
“맞습니다.”
“좋습니다. 모기 얘기를 먼저 해보죠. 흰줄숲모기를 멸종시키겠다고 하셨지요?”
“지난번 GSC에서 발표되었던 의제입니다. 이미 상당한 연구가 진행된 상태고요. 본래는 시범 테스트로 광동성의 사자이 (Shazai) 섬 과 다다오사 (Dadaosha) 섬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약속되어있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근래에 중국 정부의 일방적 통보로 취소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때는 류 박사님이 아프리카에서 탄저균 펜스를 설치한 게 생태 문제를 초래했다는 얘기가 나왔었으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제 진실이 밝혀졌다는 것도 아실 겁니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를 재개해달라고 부탁하는 겁니까?”
“제가 부탁드리는 게 아닙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네?”
“장관님. 흰줄숲모기는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탄저균 펜스에 문제없음이 알려졌고, 볼케니움 분사로 탄저 테러를 막아낸 후, 지금은 상황이 그때랑 많이 달라졌습니다.”
날고 기는 GSC 과학자들도 볼케니움 분사를 이용한 탄저 테러 방지 작전에는 충격과 감탄을 동시에 느꼈다.
허찌엔칭은 그걸 보고 ‘류영준은 압도적, 차원이 다른 연구자’라고 평한 바 있다.
그리고 각종 테러에 시달리면서 생물 테러를 겁내던 각국 정부들 또한 그 사건을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결론은 하나였다.
과학자라면 다 안다.
‘류영준은 생태학을 통달해버린 인물이다.’
그는 신약 개발에 뛰어난 과학자 정도가 아니다. 의학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은 그의 능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온천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멀리 떨어진 서로 다른 두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과연 누가 얼마나 주목하겠는가?
볼케니움이 공기 중을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해봤자 별 것 아니다. 와, 세상에 이런 생물이 다 있네, 하고 한번 신기해할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류영준은 그 박테리아의 세포벽 표면에 항체를 붙임으로써 탄저균을 제거하겠다는 정신 나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과감하게도 그걸 실행에 옮겼다. 공기 중에 살포함으로써 실제로 탄저균 테러를 막아낸 것이다.
온천 미생물인 볼케니움이 상온의 공기 중에서는 금방 사멸한다는 것, 그 박테리아에게 어떤 독성도 없다는 것, 그게 탄저균에 붙어서 대량 밀집하면 탄저균의 독성이 사라진다는 것, 날아다니는 능력을 기반으로 탄저균에게 몰려들어 ‘사냥하’리라는 것.
두 미생물의 생물학적 모든 특성과 그것이 미칠 생태학적 영향이 전부 고려된 작업이었다.
그 경악스런 일을 불과 몇 주 사이에 떠올리고 진행해서 성공시킨 사람이다.
이 정도면 얘기가 다르다.
이런 인물한테 모기 멸종 정도는 애들 장난 아닌가?
이미 게이츠 재단의 펀딩을 받은 수많은 연구자들이 과거에도 진행했던 일인데?
“지금은 각국 정부들이 시험장으로 쓰이는 걸 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시험 운행을 위탁하는 분위기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시험 운행을 위탁한다?”
“1년 동안 사람에 의해 죽은 사람의 수는 평균 47만 5천 명입니다. 조그만 가정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살인부터 국제 테러, 내전, 쿠데타 등의 모든 경우의 수를 포함한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같은 기간 모기에 의한 사망자는 그 두 배에 이르는 100만 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고요.”
"......."
“모기는 매년 7억 명에게 감염병을 일으키고 그 중 100만 명이 죽습니다. 웬만한 암 사망자 수에 필적하는 값이에요. 이 만한 문제를 제거한다는 건 국가 보건에서 상당한 메리트입니다. 확실한 신뢰가 생긴다면 하루라도 빨리 없애는 게 더 좋죠. 게다가 한 가지 더.”
류영준이 말했다.
“그 국가의 과학자들은 이만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경험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건 국가적인 자산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중국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과학자들은 타국가에서 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자문역’으로 참가해서 많은 활약을 할 수 있죠.”
“작은 지역에 국한된 게 아니라 결국 세계 단위의 프로젝트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한번 경험을 쌓아서 선두 그룹이 되면 얻을 수 있는 게 많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저는 프로젝트 재개를 부탁드리는 게 아니라,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중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취소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요.”
"......."
신 마오 장관과 류영준은 잠깐 동안 서로를 말없이 빤히 쳐다보았다.
앨리스는 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쪽은 미국도 까다로워하는 1당 독재 국가의 최고 실권자 중 하나다.
‘대표님, 너무 푸시하시는 거 아닌지…….'
앨리스가 류영준에게 슬쩍 눈치를 주었다.
“기회라.”
신 마오 장관은 턱을 매만지면서 그 말을 곱씹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중국은 영토가 광활한 만큼 기후도 지역별로 크게 달라 모기의 생태도 달라집니다. 때문에 제 도움 없이 중국 과학자들끼리 이 프로젝트를 자력으로 하기는 힘들 겁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요성도 알겠습니다.”
장관이 말했다.
“달 착륙 같은 쓸모없는 일 가지고도 첫 번째를 다투는 나라들이 있었죠. 하물며 매년 100만 명씩 죽이는 생물의 멸종 프로젝트라면 각국 정부에서 그 선두 그룹의 위상을 탐낼 만합니다. 류 박사님 말처럼 우리가 그걸 진행하면 좋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한테 ‘그 기회’를 주시는 대신, 대가로 류 박사님이 원하는 건 무엇입니까?”
“선두 그룹이 되면 중국 과학계는 꽤 발전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과학은 기술력 아래에 윤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곧 세계 최고의 생물학자들과 함께 생명 연구 윤리의 국제 모라토리엄을 발표할 생각입니다. 중국 정부에서 주석님 이름으로 거기에 서명하고 형법으로 입법해주십시오.”
"억......."
신 마오가 당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류영준이 말했다.
“모라토리엄의 각 항목은 제가 먼저 써서 보여드릴 겁니다. 지금 중국에서 일어난 비윤리적인 연구들을 저는 한 명의 과학자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어, 어떤 항목을 넣으려고 하십니까?”
“첫째는 유전자 편집에 대해서입니다. 캐스나인의 전권을 가진 에이젠바이오 본사에 유전자 편집 연구 윤리 위원회를 둘 겁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인간 생식 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하고자 할 때 그곳에서 윤리 심사를 받도록 할 겁니다. 거기서 떨어지면 캐스나인 이용 권한을 내주지 않을 것이고요.”
"......."
“하지만 모라토리엄은 권고 사항일 뿐입니다. 허찌엔칭 박사처럼 캐스나인 이용 권한을 받지도 않고 무단으로 연구를 진행할 경우,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저작권 침해에 대한 민사 소송 정도에 불과하죠. 하지만 제가 원하는 건 ‘형사처벌’입니다. 저작권 침해의 손해 배상 정도가 아니라 그 연구자가 감방에 가길 원한다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허찌엔칭 박사 같은 사람에게 강력한 형을 내릴 수 있도록 중국 정부에서 그걸 입법해달라는 겁니다. 누가 딴지 걸 수 없게 주석님 이름으로요.”
"......."
장관은 목덜미에 솟는 땀을 닦아냈다.
“잠깐. 잠깐만 류 박사님. 진정 좀 해봅시다. 지금 허찌엔칭 박사한테 좀 화가 나신 것 같은데......."
“조금이 아닙니다.”
류영준이 장관을 뚫어지게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하면, 그런 식의 연구를 방치해둔 중국 정부와 허찌엔칭의 대학 책임자, 그리고 동료 과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류 박사님."
신 마오 장관이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찌엔칭 박사는 류 박사님한테 상당히 우호적입니다.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중국 동부 해안가를 따라 준설되는 공장들을 재고해달라더군요. 한국으로 가는 미세먼지를 막아야 한다고.”
“감사하지만 신경써주실 필요 없습니다. 알루미늄을 충분히 개발하십시오. 공장들을 더 늘려서 준설하셔도 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편서풍 타고 한국으로 다 보내세요. 상관없으니까.”
뜻밖의 말에 신 마오는 또 약간 당황했다.
“으음. 그리고 류 박사님. 허찌엔칭 박사는 중국 정부에서 앞으로 류 박사를 많이 지원해주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선 못해주는 것들을 우리는 해줄 수 있는데……."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류영준이 딱 잘라 말했다.
“지원이란 거 대강 짐작이 됩니다. 시민들을 자기 연구의 실험용 생쥐로 취급하는 그런 미치광이 머릿속에서 나올 만한 게 뻔하죠. 특히 미국에선 못해주는 거라면. 굳이 그걸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제가 분노한 것은 아직 허찌엔칭 하나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