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화. < 미세먼지 (7) > (47/301)

191화.  < 미세먼지 (7) >

“애트목스가 허찌엔칭의 유전자 조작 연구에 돈을 댔다고?”

류영준이 물었다.

-윤보현이 지금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나온 내용들을 보면, 그 놈이 허찌엔칭 박사를 지원하기 위해서 애트목스한테 전달한 자금이 약 5억이야.

박주혁이 말했다.

-그리고 애트목스는 허찌엔칭의 연구에 20억을 펀딩했어.

“아니 대체 왜? 대표가 허찌엔칭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러니까 이게 조금 복잡한데, 나도 아직 정확히 파악한 건 아니거든? 어디까지나 정황이 그렇다 정도의 얘기야.

박주혁이 말했다.

-옛날에 에이젠은 중국에 작은 회사를 하나 차렸는데 페이퍼 컴패니였어. 소유 관계도 따로 분리해서 에이젠이랑 별개의 기업인 것처럼 해놓고 실제로 운영하지도 않았지. 탄저균 연구와 관련해서 미군한테 받은 자금을 세탁할 때 거쳤던 것 같아.

“그래서?”

-그 회사가 애트목스의 전신이야.

“뭐라고? 유령 회사라며?”

류영준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처음엔 그랬지. 근데 계속 그대로 둘 순 없어. 탄저 무기 개발로 돈을 좀 벌고 나서는 그 유령회사를 처분해버리고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었겠지. 일종의 약점이니까. 그래서 윤대성이 어떤 중국 부호한테 그 유령 회사를 통째로 헐값에 팔아버렸어. 왕웨이라는 사람이야.

박주혁이 말했다.

-유령회사지만 서류상으로는 에이젠하고 같이 연구한 기록들 같은 게 있으니까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것보단 좀 나았겠지. 투자 유치라든지 여러 모로. 나도 자세한 사정은 몰라. 아무튼 그 유령회사를 탈바꿈해서 차린 게 애트목스야.

"......."

-그 후에 애트목스는 독자적인 제약 회사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CCR5 블라커인 글락소비록을 개발하면서 나름 전망 있는 중소기업이 됐어.

“근데 허찌엔칭의 연구에 펀딩을 갑자기 왜 해?”

-그 연구에서 애트목스가 얻는 게 있어. 그거 알아? 허찌엔칭은 글락소비록이 실패한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 CCR5 조작 연구를 시작한 게 아냐. 글락소비록의 새 용법이 잘못돼서 태어난 에이즈 환아와 지금 네가 있는 병원의 미미라는 아기는 두 달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그럼…… 잠깐만.”

류영준이 말을 멈췄다.

그의 머릿속에서 지금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각지에서 일어난, 별개의 일처럼 보였던 것들이 하나씩 연결되고 있었다.

허찌엔칭은 유전자 조작을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국제적인 지탄을 받을 것은 자명하다.

때문에 그는 ‘안전하고 명분 있는’ 유전자 표적을 선택해야 한다.

가장 안전한 것은 자연계에서 돌연변이가 보고됐으며, 이미 류영준이 줄기세포 치료법에 쓰고 있는 CCR5다.

이 정도면 안전하다고 주장할 자격이 생기니까.

하지만 그 유전자 조작을 해야 하는 핑계거리, 명분이 필요하다.

환자의 에이즈를 완치시키는 게 아니라 수정란을 조작해서 태아를 탄생시킬 명분.

‘글락소비록의 실패.’

산모로부터 에이즈가 유전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걸 방지한다고 알려진 신약의 임상 실패.

이 두 가지가 있으면 명분을 세울 수 있다.

‘산모가 줄기세포 치료로 에이즈를 완치시키는 데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대기자가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 글락소비록은 실패했다. 남은 것은 태아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뿐이다.’

이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글락소비록의 임상 실패 경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연구를 왜 글락소비록의 보유자인 애트목스가 지원하지? 자기 밥줄을 스스로 끊는 짓을 하면서 허찌엔칭을 지원한다? “설마……."

류영준의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설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거 아니지?”

-무슨 생각 하는데?

“애트목스의 수입이 혹시 글락소비록이 전부야?”

-맞아.

박주혁이 말했다.

-애트목스는 네 연구 때문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가장 대표적인 회사야.

"......."

-네가 에이즈 치료제의 단가를 급락시켰고, 에이즈 백신도 개발했고, 에이즈를 완치시키는 줄기세포 치료법까지 만들었어. 에이즈 퇴치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상당히 성공적이고. 글락소비록으로 먹고 살던 중소기업 애트목스는 숨통이 콱 조인 거지.

박주혁이 말했다.

-바이러스 멸종까지 갈 필요도 없어. 캐스나인 혼자서도 글락소비록을 없애버릴 수 있으니까. CCR5가 망가진 조혈모세포를 이식함으로써 에이즈를 완치시킬 수 있다는 건 캐스나인 발견 전에도 이미 알려져 있었던 거야.

“캐스나인의 출현 시점에 이미 애트목스는 글락소비록의 파멸을 예상했다는 건가?”

-당연하지. 실제로 애트목스의 분기별 매출을 보면 에이즈 퇴치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엄청난 속도로 급감하고 있어. 지금은 작년 대비 1/5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재정난에 허덕이는 상태야 이젠. 몇 년 안에 글락소비록은 없어질 거야.

박주혁이 말했다.

-애트목스는 회사의 사활을 걸고 다음 밥그릇을 만들어내기로 했어. 그게 바로 유전자 조작 사업이었던 거지. 모두가 알고 있고, 엄청난 부가가치가 나올 게 분명하지만, 그 누구도 용기가 없어서 뛰어들 수 없는 일.

“게다가 CCR5를 건드리는 것이니까, 만약 유전자 조작 아기가 실패하는 경우에도 얻는 게 생긴다, 이건가?”

박주혁이 말했다.

-그렇지. 이것 봐라. CCR5를 조작했더니 애가 상태가 안 좋다. CCR5 조작은 위험할지도 모른다. 에이바이오는 지금 쓰는 ‘에이즈 완치법’을 중지하라. 이런 식으로 선동할 수 있으니까.

"......."

-하지만 이 경우는 역시 차악이야. 슈마틱스 같은 대형 제약사도 녹내장 치료제 때 거의 회사가 파괴되는 수준까지 갔잖아? 애트목스 같은 중소기업이 너랑 직접 충돌하고 싶진 않겠지.

박주혁이 말했다.

-그래서 GSC 과학자인 허찌엔칭을 검투사로 내세우는 거야. 기업간의 싸움이 아니라 학계의 싸움으로 만드는 거지. 그리고 최고의 시나리오는 유전자 조작 아기가 건강해서 무럭무럭 자라는 거야. 그럼 ‘배아 유전자 조작의 시대’가 열릴 테고, 그 시점에서 허찌엔칭은 애트목스에 들어가겠지. 그리고 애트목스는 중국 각지의 재력가들과 정부한테 엄청난 펀딩을 받을 거야. 문 닫기 직전인 회사가 잘 하면 부활해서 중국 최고 잠재력을 가진 벤처가 될 수도 있어.

“그럼 그 그림을 위해서 글락소비록을 용법 변화도 일부러 한 건가?”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전임상이 개판인 이유는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 임상 시험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애트목스가 얻는 게 있기 때문......."

-실패하면 허찌엔칭의 유전자 조작 연구에서 CCR5를 건드릴 명분이 생기고, 성공하면 글락소비록을 기존 용법보다 훨씬 환자에게 부담을 덜 주면서 쓸 수 있으니까. 에이즈 퇴치 전까지 좀 더 오래 파먹을 수 있을 테지.

“……. 알겠어. 주혁아. 나 너한테 부탁할 거 하나 있다. 애트목스랑 허찌엔칭 상대로 소송 걸어줘.”

-야 이 미친놈아 나 에이젠이랑 에이바이오 합병 뒤처리해야 돼. 지금 서류 밀린 게 얼만지 알아?

박주혁이 역정을 냈다.

“해줄 수 있지?”

-아오……. 알았어. 메일로 보내.

***

허찌엔칭은 보건부와 행정관리총국 장관들과 미팅을 하고 있었다.

커피를 쭉쭉 빨아마시던 허찌엔칭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리듬에 맞춰 톡톡톡 두드렸다.

“공안청 무섭더라고요. 하마터면 저 경찰봉에 머리 깨질 뻔했잖아요.”

허찌엔칭이 말했다.

“사고 좀 치고 다니지 말게.”

행정관리총국 장관이 말했다.

“사고를 친 게 아닙니다. 장관님. 지금 중국은 생물학의 다음 단계를 선점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포착한 상탭니다. 여태까지 영미권이 의학과 생물학에서 가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앞으로는 아닐 수 있다고요.”

"......."

“여러분. 제가 지금 확신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앞으로 동북아시아가 생명과학과 의학의 허브가 된다는 거예요. 이건 확실합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돼요.”

"류영준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람, 제가 이번에 직접 만나봤죠. 바이오 테러를 막았어요. 믿어집니까? 탄저균 가스 테러를 볼케니움인지 뭔지 하는 온천 박테리아를 풀어서 막았다고요. 진짜 차원이 달라요. 압도적입니다.”

허찌엔칭이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 류영준과 한국하고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이 류영준을 혼자 독점하게 해선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중국은 미국이 줄 수 없는 자원을 류영준한테 줄 수 있어요.”

허찌엔칭이 노트를 꺼내 펼쳤다.

그는 위에 빠르게 휘갈기면서 말했다.

“보세요. 미국은 국립 암센터와 NCBI라는 어마어마한 조직이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생물학적 자원들은 인류가 근현대에 쌓아온 거의 모든 지식이라 봐도 돼요. 그걸 류영준한테 제공할 수 있단 말이에요. 중국은? 우린 뭘 줄 수 있을까요?”

"......."

“우리는 세계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거의 유일한 강대국이고 엄청난 숫자의 인구와 더불어.”

허찌엔칭이 행정관리총국 장관을 가리켰다.

“독재 정당을 가지고 있어요.”

장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허찌엔칭이 빙그레 웃었다.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장점으로 하는 얘기니까. 미국 같은 나라에서 정부가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태아 유전자 조작 같은 걸 하겠다고 발표했다 생각해보세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기독교 재단을 비롯한 온갖 시민 단체들이 몰려나와서 집회를 벌이고 화염병 던지고 난리를 칠겁니다. 야당에서는 곧바로 정부를 핵폐기물 쓰레기 취급하면서 비난을 퍼부어댈 테고 정권이 교체되고 흐지부지되겠죠.”

허찌엔칭이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그 사업을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웬만큼 과격한 사업이라도 끝까지 해낼 수 있어요. 류영준 박사한테 그 ‘실험 자체’를 제공할 수 있다고요.”

"흠......."

“류 박사는 인공 장기 개발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그걸 도와줍시다. 남들은 도와줄 수 없는 방법으로.”

허찌엔칭이 말했다.

“사형수들 장기를 뽑아다가 실험을 해요. ‘인간 장기’를 이용해서 실험할 수 있는 실험실은 중국에밖에 없다는 걸 류 박사한테 알려주는 겁니다. 어떤 실험이든 대조군이 필요한 법이고 인공 장기의 성능과 효과를 비교하는 데 있어 최적의 대조군은 당연히 실제 인간의 장기겠죠.”

"......."

“그런 희대의 대천재를 한국 같은 조무래기 국가가 독점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사치예요. 그야말로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걸어놓은 셈입니다. 중국이 가져야 해요. 그 사람은 인류가 다음 단계로 진보할 수 있는 발판입니다.”

허찌엔칭이 말했다.

“이건 인류 단위의 기회라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류 박사를 현대 인류가 얼마나 지원하느냐에 따라서, 다음 세대의 삶이 달라져요. 그 정도의 인물입니다. 당연히 중국은 모든 자원을 다 퍼부어서 그 사람을 집중적으로 키워야 해요. 그 과정에서 중국의 과학 역시 엄청난 발전을 이룰 겁니다.”

허찌엔칭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앞으로 20년 내에 과학의 언어가 바뀔 거예요. 영어에서 중국어로. 장관님들이 조금만 용기를 내주시면 됩니다. 저랑 같이 과학의 발전을 위한 공범자가 되자고요.”

그가 말했다.

“과학의 발전은 항상 옳으니까요.”

“오늘 우릴 보자고 할 때 제안할 게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보건부 장관이 물었다.

“아. 맞습니다. 그걸 얘기 안 했네요. 미세먼지 배출량을 감소하는 정책을 실행해야 합니다.”

허찌엔칭이 말했다.

“미세먼지?”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미세먼지가 날아오는 거예요. 우리가 민폐 끼친다고 생각하죠. 그 조무래기들이. 우리 중화 민족이 너그럽게 그걸 좀 줄여줍시다. 그리고 앞으로 류 박사랑 같이 일을 하는 거예요. 류 박사한테 제가 그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행정관리총국 장관은 난처한 듯 머리를 매만졌다.

“분명 자네는 중국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이야. 그리고 자네 조언을 받아서 진행했던 정책들 중에서 상당히 많은 게 성공했지.”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번 제안은 좀 어렵네. 지금 동부에는 새로운 공장들을 대거 건설하고 있어.”

“동부에요?”

“그쪽에 알루미늄 매장량이 엄청나게 높다는 거 알고 있나? 해안선을 따라서 새로운 공장들을 짓고 있네. 물론 미세먼지 배출 저감을 위해서 여러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지만, 개발하면 당연히 미세먼지는 늘어날 수밖에 없어.”

“안됩니다.”

허찌엔칭이 손을 내저었다.

“그깟 공장 몇 개 돌리기 위해서 류 박사를 버릴 수는 없어요.”

“장관님. 대국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똑똑똑!

미팅룸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행정관리총국 장관의 수행원이었다.

“장관님.”

그가 말했다.

“류영준 박사님이 지금 중국에 와있는데요. 미팅을 하고 싶답니다.”

“됐다!”

허찌엔칭이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쪽도 눈치 깐 거죠. 똑똑한 사람이니까. 우리가 뭘 줄 수 있는지 알아챈 겁니다!”

“뭐 때문에 보자는가?”

장관이 물었다.

“그게……. 중국 동부의 흰줄숲모기 멸종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싶다고 하는데요.”

수행원이 말했다.

“흰줄숲모기?”

허찌엔칭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허찌엔칭 박사의 처벌에 대해 얘기하고 싶답니다.”

수행원이 말했다.

허찌엔칭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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