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 미세먼지 (6) >
쓰천성 대학 병원.
인큐베이터에 갓난아기 한 명이 누워 있었다.
유전자 조작 아기, 일명 ‘캐스나인 베이비’인 미미였다.
아기의 이름에 가명을 쓴 것은 피험자의 신원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배려였지만 사실 별 쓸모는 없었다.
연구 책임자인 허찌엔칭 본인이 피험자의 신원 보호에 그렇게 열을 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미는 허찌엔칭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면서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기가 되었다.
최초의 유전자 조작 인간.
그 타이틀이 주는 이미지는 영화 가타카 같은 SF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산모인 쯔쉬안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냥 평범한 아기가 전부였다.
그저 몸이 약한 미미가 걱정될 뿐이었다.
쯔쉬안은 산후 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인큐베이터 옆을 지켰다.
"......."
웅크린 자세로 하루 종일 자던 미미가 꿈이라도 꾸는지 코를 찡긋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저 천사 같은 웃음만이 쯔쉬안의 최근 일상을 구원해주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철컥.
담당의 장하오위는 소독액을 덮어쓰고 무균실 안으로 들어와서 아기의 바이탈부터 체크했다.
“선생님.”
쯔쉬안이 장하오위에게 말을 걸었다.
“피부 혈색이 좀 좋아진 것 같지 않아요? 이제 낫는 걸까요?”
“……. 아직 모릅니다. 좀 좋아지긴 했지만 더 지켜봐야 합니다. 그보다 한국에서 손님이 한 분 오셨습니다.”
“손님이요?”
“저번에 얘기했지요? 한국에서 류영준이라는 박사님이 오신다고. 이번 캐스나인 유전자 조작의 원천 기술 개발자입니다. 이쪽으로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장하오위는 문 밖을 힐끔 살폈다.
류영준은 옛날에 미국에 갈 때 동행했던 통역관 앨리스와 함께 이곳에 방문했다.
앨리스는 중국어에도 정통했지만 무균실에서 멸균복을 착용하고 소독하는 과정은 당연히 몰랐다.
장하오위가 바이탈을 체크하고 아기의 상태를 보는 동안 류영준은 앨리스를 챙겨주고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류영준이라고 합니다.”
“니 하오, 워 찌아오 류영준.”
앨리스가 유창한 발음으로 말을 옮겼다.
류영준은 앨리스와 짧게 인사를 나눈 후 미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로잘린이 아기의 인큐베이터 옆에 서있었다.
-이건 시뮬레이션으로 가죠. 이 아기가 수정란이었을 때부터의 일들을 재생해보겠습니다.
‘부탁해.’
[시뮬레이션 모드 작동]
메시지창과 함께 류영준의 시각은 로잘린과 일체화되었다.
미시 세계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통찰이 미미의 몸을 구성하는 약 20조 개의 세포들을 관통했다.
단일한 수정란으로부터 분화한 이 세포들은 모두 CCR5가 망가져있는 상태다.
일명 델타 32라고 불리는 돌연변이가 인공적으로 도입되었다.
산모는 에이즈 환자였고, 아쉽게도 WHO와 에이바이오가 공동 진행한 에이즈 퇴치 사업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는 산모의 혈관으로부터 태아를 향해 이동할 수 있다.
착상된 수정란은 그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아 에이즈를 내재한 채 분열하게 된다.
하지만 이 아기는 수정란이었을 때 허찌엔칭이 캐스나인으로 CCR5를 잘라버린 아기다.
그와 함께 자연히 만들어진 델타 32 돌연변이는 CCR5의 구조를 망가뜨렸다.
그것은 HIV 바이러스가 수정란 내부로 침투할 때에 반드시 거치게 되는 통로였다.
바이러스는 태아의 체내로 침투하지 못했고, 아기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채 태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CCR5는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류영준의 시각에는 이제 CCR5 유전자로부터 만들어진 생체물질들의 본래 역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텔로머레이즈 (Telomerase)의 작용에 관여하는 조효소의 일부다.
텔로머레이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DNA 말단의 손상 방지 부위인 텔로미어 (Telomere)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일반인에 비해서 더 단명하게 되고 더 빨리 노화가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잘 관리하면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 아기가 지금 아픈 이유.
류영준은 이젠 그걸 관찰하고 있었다.
‘델타 32만이 아니야…….'
그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다른 돌연변이다. 허찌엔칭은 유전자 가위를 잘못 썼다.
델타 32를 포함하는 구조체의 변형이 하나 더 일어났다. 그게 면역 체계에 몇 가지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이 아기는 면역 능력이 매우 떨어져있다.
마치 에이즈에 감염된 것처럼.
“아기의 구강 상피 세포 같은 걸 조금만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혈액도 좋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채혈해둔 샘플이 있기 때문에 그걸 드리겠습니다.”
장하오위가 말했다.
***
병실 밖으로 나가는 길.
미미의 어머니인 쯔쉬안이 다급하게 류영준을 뒤쫓아왔다.
“선생님!”
그녀가 류영준을 붙잡았다.
“선생님……. 저희 아기 괜찮을까요?”
간절한 표정이었다.
쯔쉬안은 마치 류영준 정도 되는 천재적인 과학자면 한번 쓱 훑어보기만 해도 문제를 빠르게 진단해낼 줄 알았던 모양이다.
“모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혈액 검사를 해봐야 알아요.”
"......."
쯔쉬안의 표정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선생님. 지금 매스컴이 저희 아기를 마치 괴물처럼 그리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유전자 조작이 행해지는 미래의 끔찍한 모습들이요, 그런 미래가 제 아이를 통해서 오게 될 거라고......."
"......."
“아기가 아프다는 소식도 방송에 나갔는데,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제 아기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면 유전자 조작을 더 안 할 것 아니냐면서……."
“그런 말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기는 곧 건강해질 겁니다.”
“모든 게 다 저 때문이에요.”
쯔쉬안이 말했다 .
“제가 에이즈에 감염돼서 이렇게 된 거예요.”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전 광둥성 찌에양 출신이에요. 그 쪽 지역의 산골에 있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매혈’로 먹고 사는 마을이었죠.”
“매혈이요?”
낯선 단어에 류영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그대로 통역한 앨리스 역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마, 맞는데요……. 매혈이라고 하셨는데.”
류영준이 쳐다보자 그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피를 판다는 말입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맞아요. 그곳에는 특별한 일거리도 없고, 다들 돈 없고 가난한 실업자들이에요. 저랑 저희 어머니도 그랬죠. 저도 그곳에서 피를 팔았어요.”
“아니……. 아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중국에도 헌혈법이 있을 것 아니에요? 한 사람한테 400cc 이상 뽑을 수 없고 6개월 간격을 둬야 한다거나 그런 게……."
“혈액원도 형식적으로만 검사해요. 전문 매혈조직이 위조 신분증 만들어 주고 혈액원에 로비도 해주면서 유통을 해주죠. 저는 한 달에 16회 정도 매혈한 적도 있어요.”
“맙소사……."
충격으로 앨리스와 류영준 두 사람 모두 굳어버렸다.
쯔쉬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때 에이즈에 감염된 거예요. 그 매혈조직이 주사기 같은 걸 깨끗하게 소독하지 않아서요.”
그녀가 말했다.
소독이 문제인가? 사람 혈관에 찔렀던 주사기는 1회용이다. 버려야 하는 것이다.
쯔쉬안이 말했다 .
“그 마을을 떠나서 결혼한 후에 알게 됐죠. 남편은 자기가 에이즈보다 더 강하니 상관없다고 했지만, 시댁에서는 아들을 못 낳으면 절 쫓아내겠다고 했어요.”
저런 상황이면 애를 못 낳는 게 아니라 남편한테 에이즈를 옮길 수도 있다는 게 문제 아닌가?
아들을 못 낳는다고 쫓아낸다는 건 또 무슨 소린지, 갈수록 상황이 상식 밖이다.
“저한테는 이것밖에 이제 방법이 없었어요……."
할 말을 잃어버린 두 사람에게 쯔쉬안이 말했다.
“그때 쯤에 중국 과학기술대학교에서 허찌엔칭 교수님이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에이즈 산모들을 모집하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유전자 조작에 지원하신 겁니까?”
“네? 아니요.”
쯔쉬안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게 유전자 조작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체외 수정을 하면서 거기 약품 처리를 하면 에이즈에 안 걸린다고 들었어요."
"......."
류영준이 말을 잃어버리고 쳐다보자 쯔쉬안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면서 눈물을 삼켰다.
“제가 못 배운 여자라서 그래요……. 학교도 나온 적이 없고 피 팔아서 먹고 살던 더러운 년이라서.”
잠깐 대화가 멈추었다.
그 침묵 속에서 앨리스는 걱정스런 눈길로 류영준을 쳐다보았다.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인 걸 못 들었다고요?”
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동의서 같은 걸 쓰시지 않았나요?”
“어디다 싸인하라고 해서 하기는 했어요. 저도 한 장 갖고 있는데.”
그녀는 얼른 가방에서 가장자리가 닳아버린 더러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환자 동의서를 받아든 앨리스는 한번 쭉 훑어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류영준에게 속삭였다.
“내용은 유전자 조작 얘기가 들어 있어요. 하지만……. 환자 서명란 자리에 환자분이 서명하신 게 한자가 아닌데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번체도 아니고 간체도 아니에요. 이런 한자는 없어요. 그냥 아무거나 쓰신 게 아닐지……."
설마.
류영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앨리스가 그 사실을 확인했다.
“그게……. 저는 제 이름도 쓸 줄 몰라서……. 글을 몰라서 그걸 읽지도 못해서요……."
쯔쉬안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남편한테 물어보고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동의서 안 쓰면 이제 기회가 없다고 하니까 겁이 나서……."
“아니 그럼……."
무슨 말을 하려던 앨리스는 옆에서 불타오르는 열기에 움찔했다.
류영준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 살벌해서 가까이 다가가면 공기에 살이 베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 저기…… 대표님?”
앨리스가 그의 얼굴을 힐끔 살폈다.
“캐스나인 원 저작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사용한 것, 그리고 고의적으로 그것을 악용하여 에이바이오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초래한 것."
류영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혐의로 저희 회사에서 허찌엔칭에게 소송을 걸겠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도와드릴 테니 나중에 증언해주십시오.”
***
-애트목스랑 허찌엔칭. 둘이 관계가 있긴 하네.
박주혁이 국제 전화로 말했다.
-야, 근데 거기 몇 시냐? 지금 통화해도 되는 거야?
“괜찮아.”
-목소리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아니."
-새까 너 지금 목소리가 어디 사람 하나 담그러 가는 느낌이야.
“……. 허찌엔칭이랑 애트목스가 어떤 관계가 있는데?”
-애트목스의 창업자이자 지금 대표이사인 인물이 허찌엔칭이랑 동문이야. 둘이 아주 친한 사이인 것 같고.
박주혁이 말했다.
-그리고 애트목스가 CCR5 블라커의 새로운 용법 실험을 허찌엔칭한테 맡긴 것 같아.
“왜?"
-그야 나도 모르지 인마. 근데 재밌는 게 뭔지 알아?
“뭔데?”
-허찌엔칭이 유전자 조작을 할 때 펀딩을 받았다고 했잖아? 윤보현한테?
“그걸로 유전자 조작 연구비를 댔을걸.”
-애트목스도 거기에 펀딩을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