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 미세먼지 (3) >
“어떻게요?”
류영준이 물었다.
“무슨 방법으로 미세먼지를 잡으실 겁니까?”
“기존에 화력발전소 등 공장에서 사용되는 집진기는 원심력을 이용하는 거였습니다. 원통형 구조의 필터를 빠르게 회전시키면 집진기 내부의 먼지들에 원심력이 걸려서 원통 밖으로 분리되는 거죠.”
“센트리퓨즈 (Centrifuge) 같은 방식이군요.”
“맞습니다. 생물학에서는 그 기계랑 비슷하죠. 둘 다 원심분리를 하는 거니까. 기계공학 쪽에선 이걸 ‘사이클론’이라고 부릅니다.”
허찌엔칭이 말했다.
“이 사이클론 집진기를 중국의 각 공장들이 쓰지 않는 이유는 에너지 손실이 너무 높아서예요. 그리고 중국 정부에서도 사실상 그것 자체를 규제하지는 않는 편이고요. 그 공장들이 잘 돼야 세수도 확보가 될 테니.”
“그렇겠죠.”
“하지만 그렇게 발생한 대량의 미세먼지는 한국에도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에서도 국민 보건 관점에서 큰 피해를 누적시키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중국 정부 당국한테도 큰 골치입니다.”
허찌엔칭이 말했다.
“그래서 중국은 한국으로 치면 ‘매우 나쁨’에 해당하는 적색경보가 뜨면 그 순간 바로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해서 민간인도 차량 2부제를 쓰고 경유화물차의 운행을 제한하는 식입니다.”
“그럼 중국 정부도 이미 노력하고 있는데, 허찌엔칭 박사님이 중국 정부를 설득한다는 건 뭡니까?”
“중국 정부에서 하고 있는 그것들이 실제로 ‘미세먼지의 배출량 감소’에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베이징의 미세먼지 농도가 40% 줄었다고 정부 당국이 홍보하는데 그게 배출량의 감소를 의미할까요?”
허찌엔칭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굴뚝을 높이기만 해도 공장이 있는 도심의 미세먼지는 줄어요. 당연한 거죠. 더 높은 곳에서 미세먼지가 발생하면 시민들 머리 위로 내려오기 전에 바람 타고 날아갈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
“실제로 옛날에 영국과 스웨덴 사이에 미세먼지로 마찰을 겪은 적 있었는데 똑같은 경우였습니다. 런던이 미세먼지를 많이 줄였다고 홍보했는데 스웨덴 과학자들이 영국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 양은 변하지 않았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데 성공했죠.”
허찌엔칭이 말했다.
“류 박사님, 저는 한국의 과학자들이 스웨덴 과학자들보다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애국심이나 국제 사회의 갈등에 대한 책임감, 공격성 같은 게 모자랐다고 봐요. 한국 과학자들이 진즉에 증거물을 다 찾아냈다면 이미 중국 정부에 국제 소송이라도 걸었겠죠."
썩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 과학자들 탓만도 아니다.
과학자라는 집단이 보통 사회 문제에 별 관심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본인들 기관지에 당장 염증을 초래하는 미세먼지에까지 무관심 하겠는가.
국제 소송이나 항의의 증거물이 부족한 원인은 더 간단한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렇게 부유하지 않고, 연구에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
그들은 어딘가의 펀딩이 필요하고, 이런 종류의 문제에선 보통 정부가 국책 사업을 열어서 펀딩을 해줘야 한다.
즉, ‘미세먼지 절감 공모’가 아니라, 뛰어난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을 입증할 수 있는 모델과 실험, 데이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야하는 것이다.
자기 지갑 털어가면서 그런 걸 입증한 다음 정부에 중국에다 항의하라고 데이터 넘겨줄 과학자가 세상에 어딨는가.
“과학자들 탓만은 아닙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요즘은 없는 형편에도 돈 쥐어짜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열정적인 과학자들의 기업도 있거든요.”
“대단한 사람들이군요.”
허찌엔칭이 칭찬했다. 류영준도 동의했다. 셀리제너는 분명히 실력도 마인드도 훌륭한 집단이다.
“아무튼 계속 해보시죠. 허찌엔칭 박사님. 중국 정부를 어떻게 설득하신다는 건가요?”
“사실 누가 항의하고 어쩌고 이런 걸 떠나서 중국 내부의 미세먼지 문제 자체가 아직 해결이 안 된 상탭니다. 베이징의 미세농도를 40% 절감해봤자 60%는 그대로 남은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정책이 비효율적이란 거예요.”
허찌엔칭이 말했다.
“결국은 공장 굴뚝에 집진기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 사이클론을 붙여서 굴뚝에서부터 먼지를 잡아내야 한다는 거죠.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중국 정부를 설득하겠다는 건가요?”
“바로 그거죠.”
허찌엔칭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중국 본토 내의 미세먼지 피해량 그래프가 사이클론 집진기의 에너지 손실 그래프를 넘어선다는 걸 증명해주는 겁니다. 그럼 중국 정부도 집진기 설치를 의무화할 겁니다.”
“하지만 미세먼지에 의한 국민 건강의 피해를 수치화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미세먼지 말고도 호흡기 질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은 많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해야 GSC죠 허찌엔칭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류 박사님. 제가 이 일을 추진해드리면 CCR5 조작 아기를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 아기의 건강을 지키는 건 원래 하려고 했던 일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전 이 문제에 대해서 허찌엔칭 박사님을 디펜스할 생각이 없어요. 당신이 불법 펀딩을 받았고, 윤리위원회의 규제를 무시했고, 캐스나인 개발자인 제 저작권을 침해하면서 멋대로 인체 실험을 진행한 건 사실입니다.”
"윽......."
“전 그 아기를 보호하는 것까지만 할 겁니다. 그 이상은 알아서 하십시오.”
“후후……. 역시 듣던 대로군요. 알겠습니다. 류 박사님. 그 정도만 해주셔도 충분합니다.”
허찌엔칭이 말했다.
“그 아기의 건강에 위험이 생기면 전 살아날 방법이 없지만, 애가 건강하면 다른 문제들은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거든요.”
에이즈는 태아에게 전염될 수 있다.
즉, 산모가 에이즈 감염자라면 아기를 갖는 게 위험하다. 허찌엔칭의 디펜스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이다.
‘CCR5 유전자가 조작된 아기의 산모는 에이즈 감염자였다.’
허찌엔칭은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CCR5 조작 아기는 단순한 과학자의 호기심이 아니다. 이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한 여성의 소망을 들어준 것이다. 그녀의 행복추구권을 누가 침해할 수 있단 말이냐? 모두가 비난이 두려워서 웅크리고 있을 때, 나는 용감하게 희생하고 나서서 그 여성을 구원해준 것이다.’
분명 그쪽을 잘 공략하면 아기가 건강하다는 전제하에, 대부분의 처벌이 집행유예로 끝날 수 있을 거다.
게다가 허찌엔칭은 GSC 멤버십을 가졌을 정도로 귀중한 인재니까 중국 정부에서도 강력하게 처벌하려고 하진 않을 테고.
‘하지만 CCR5 블라커 (Blocker)라는 신약이 있는데.’
류영준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 약물을 복용하면 에이즈에 감염된 산모도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
굳이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 약물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보고되어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진행해보시죠.”
류영준이 말했다.
***
셀리제너의 주임연구원 김수철은 바짝 긴장해있었다.
항상 출근 시간인 9시가 되기 2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뛰어 들어오는 그였지만, 오늘은 8시 반에 나타났다.
전날부터 잠이 오질 않았는데 아침에도 눈이 번쩍 떠졌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아침 인사와 함께 연구원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대부분의 연구원이 출근해있었다.
“아니 송 박사님?”
김수철은 송지현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평소엔 추리닝 입고 오시더니 오늘은 완전 풀메이크업 하셨네……."
“오늘은 손님 오잖아요.”
송지현이 약간 민망해하며 답했다.
“앗!"
김수철은 송지현 옆을 지나다가 소리를 질렀다.
“와, 송 박사님 향수도 뿌렸어! 세상에. 저 송 박사님하고 여태 쭉 같이 일하면서 향수 뿌리는 거 처음 봐요.”
그가 장난을 쳤다.
“옛날에 IUBMB 같이 가서 부스 열었을 때도 뿌렸거든요?”
송지현이 말했다.
“아, 그때도 뿌리셨구나.”
“수철이 네가 더 심하게 빼입었구만. 뭘.”
창가에서 이형민 수석 연구원이 노트북을 두들기면서 끼어들었다.
“정장은 왜 입었냐? 네가 영업 사원이야? 정장 입고 실험할 거야?”
“아무래도 그 분이 우리 쪽에서는 톱스타니까요. 초면이고 하니까 잘 보여야죠. 혹시 또 압니까? 에이젠바이오로 취업시켜주실지.”
“오라고 하면 갈 거냐?”
강주태 책임 연구원이 물었다.
“어, 글쎄요. 저는 대기업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리고 우리 회사에 정이 많이 들어서.”
“연봉 열 배. 어때?”
“열 배면 솔직히 좀 혹하네요. 근데 누가 저 같은 주임 나부랭이한테 연봉 열 배를 줘요.”
“열 배 받아봤자 국세청이 절반 가져가.”
이형민이 말했다.
“진짜요?”
“그럼. 연소득 높은 거 별로 의미 없어. 열 배 하면 실제로는 다섯 배 정도 되려나.”
“다섯 배면 안 가죠. 제가 우리 회사 주식 사놓은 것만 해도 얼만데요.”
김수철이 고개를 저었다.
경영 본부실 쪽에서 셀리제너 대표 최연호가 불쑥 튀어나왔다.
“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에이젠바이오로 이직할 겁니까 여러분?”
“그냥 행복회로 상상으로 돌리고 있는 거죠. 방금 수철이 연봉 열 배 받고 에이젠바이오 이직하는 것까지 갔어요.”
강주태가 말했다. 과학자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열 배면 나도 혹하는데.”
최연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대표님이 혹하면 어떡합니까.”
“장난이고, 저희 돈 때문에 넘어갈 사람들 아닙니다. 돈 벌려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셀리큐어 시판 후에 이미 콘슨앤커슨이나 마크 등지로 다 팔려나갔어요. 이미 한 번 걸러진 괴짜들만 남아있는 상태죠.”
이형민이 말했다.
“맞아요. 연봉 협상 정도로는 안 가죠. 류 대표님이 직접 스카웃하면 또 몰라. 그쵸 송 박사님?”
김수철이 송지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며칠 전에 그 ‘류 대표가 직접 하는 스카웃’을 거절했던 송지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여러분 잠깐 떠들고 노는 사이에 9시가 넘었는데 슬슬 일 시작하시죠?”
최연호가 김수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아,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수철이 일찍 와도 업무 시작하는 시간은 똑같네.”
강주태가 웃으면서 핀잔을 줬다.
“제가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라.”
김수철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면서 컴퓨터를 켰다.
연구원실에 있는 과학자 40여 명은 모두 컴퓨터만 두들겼다.
보통 연구원의 업무는 8할이 실험실에서 실험복과 장갑을 착용하고 파이펫을 만지는 일이기 때문에 이 상황은 꽤 낯설었다.
이건 지금 작업하는 것들이 류영준이 보게 될 자료이기 때문이다.
오타 하나라도 존재해선 안 된다. 다들 읽고 또 읽었던 발표 자료를 다시 재검토했다.
‘류 박사님이 그렇게 깐깐한 사람도 아니고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송지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실험실로 이동했다.
그 넓은 실험실에서 혼자 실험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조그만 벤처 시절부터 셀리큐어 시판까지 크고 작은 풍파를 헤쳐오면서, 그야말로 과학에 인생을 헌납해버린 괴짜들만 남은 회사다.
김수철 같은 주임은 자취방에 에어컨 고장 나서 더워서 왔다는 핑계로 주말 오후에 출근해서 실험하는 사람이다.
그런 이들만 40명 모인 곳에서 실험실이 이렇게 텅 빈 것을 보니 류영준의 등장이 얼마나 이들에게 큰 이벤트인지 새삼 느껴졌다.
물론 송지현은 아니다.
그녀는 어제 뽑았던 DNA를 아가로즈 젤 (Agarose gel)에 로딩해서 밴드 사이즈를 확인하고, 세포를 계대 배양했다.
그리고 오전 9시 50분.
마침내 류영준이 탄 차량이 회사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마중 나간 최연호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류영준과 악수하고 그를 데리고 미팅룸으로 올라왔다.
“반갑습니다.”
연구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류영준은 미리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
“국내의 한 해 미세먼지의 총량은 수백만 톤에 이릅니다. 그 80%가 비료로 이용될 수 있는 물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우수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죠.”
이형민 박사가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는 그 미세먼지를 포집해서 비료로 재활용함으로써 환경 개선과 수익 창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류영준의 표정을 연신 힐끔거리면서 발표를 들었다.
이형민의 목소리도 평소보다 약간 떨렸다.
“저희의 아이디어의 모식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도심의 차량들에 미세먼지 포집 필터를 부착해서 ‘달리는 미세먼지 저감 장치’를 개발 하는 것입니다.”
그가 슬라이드를 넘기며 말했다.
“저희는 미세먼지 포집 필터를 대중들에게 무상 배포하고, 일정 거리를 주행한 차량으로부터 필터를 매입하는 겁니다. 일반 시민들도 유류비에 보탬이 되니까 필터를 받아서 쓰겠죠.”
“그리고 그 필터로부터 미세먼지를 분리해서 비료로 재활용하는 겁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맞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수익을 내고, 환경도 개선되고, 차주들도 돈을 벌고. 도심의 수많은 차량들이 우리 필터를 붙이고 다니면 그 자체가 하나의 회사 마케팅 수단이 되기도 하고요. 모든 면에서 윈윈하는 전략입니다.”
이형민이 발표를 마쳤다.
“근데 그 ‘달리는 미세먼지 저감 장치’ 개발이 어려운 실정인 건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맞습니다. 필터 1,000개에서 미세먼지를 긁어내는데 지금 기술로 100만 원 정도가 듭니다.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미세먼지의 비료 가치적 가격은 2천 원 수준입니다. 차주들에게 필터 값을 쳐주는 것까지 계산하면 단가 조정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하죠.”
“그렇군요.”
생각보다 훨씬 일이 많이 진척되어 있다.
목표가 뚜렷하면 길을 찾아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동기화 모드 켜실 거죠?
로잘린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