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미세먼지 (2) >
“저를요?”
송지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셀리큐어 때 같이 일을 해봤잖아요? 제가 볼 땐 노벨상 받은 교수들이나 GSC 멤버십 가진 과학자들하고 비교해도 송 박사님은 별로 모자라지 않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셀리큐어를 개발한 것도 송 박사님이었고, 그걸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도 중요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셨잖아요? 게다가 스웨덴에서는 수지상세포를 우회하는 면역 세포 촉진법도 송 박사님이 떠올리셨고요.”
“잠깐, 잠깐만요. 제가 한 것들이 좀 있긴 하지만.”
송지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부분 류 박사님이 많이 서포트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었어요. 저는 그만큼 대단한 과학자가 아니에요. 수지상세포 기술도 그때는 망상 같은 거였는데 류 박사님이 현실화시킨 거죠.”
“과학자한테 가장 중요한 건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송 박사님은 그걸 갖고 계시잖아요. 그런 건 유명한 과학자들 중에서도 못 가진 사람이 많아요.”
"......."
“송 박사님이 우리 회사로 이직하시면 지금 연봉의 두 배에 스톡옵션도 드리죠.”
“음.”
류영준은 진심이었다. 송지현은 포크를 내려놓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최대한 정중하고 공손하게.
“정말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그녀가 말했다.
“미쳤어!”
송종호가 옆에서 비명을 질렀다.
“누나 제정신이야? 에이젠바이오가 채용 공고 내면 경쟁률 얼마일지 상상은 하고 말하는 거야?”
송지현은 입을 가리고 짧게 웃었다.
“정말요? 송 박사님도 저랑 같이 일하는 거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류영준이 말했다.
“물론 그렇죠. 그리고 에이젠의 체격에 에이바이오와 류 박사님이 합세하면 분명 보통 회사가 아니겠죠. 저한테 과분하게 좋은 제안이에요. 그건 감사하지만.”
송지현이 말했다.
“저는 지금 회사가 좋아서요.”
“그렇군요.”
“미쳤어 진짜……. 누나 다니는 그 중소기업에 무슨 미련이 남아서 그래?”
송종호가 역정을 냈다.
“우리 회사 좋은 곳이야. 연봉이나 복지나 모두 에이젠 같은 대기업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다 같이 열정이 타오르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 난 그게 좋아서 거기 입사했고 아직까지 남아있었던 거고.”
송지현이 말했다.
“송 박사님은 셀리제너에 정이 많이 들었나보네요.”
“그럼요. 게다가 임원들도 좋은 사람들이에요. 제가 작년에 길게 휴직하던 때에도 편의 다 봐주시고.”
“……. 그럼 제가 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요.”
류영준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셀리제너는 요즘 어떤 연구 하고 있나요?”
“들으시면 깜짝 놀랄걸요?”
송지현이 말했다.
“한번 놀래켜주세요.”
뭐 얼마나 신박한 걸 하길래 놀랄 거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심정이었는데 진짜 충격적이었다.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걸 연구하고 있어요.”
“미세먼지를?”
“정확히 얘기하면 미세먼지의 포집 및 재활용이에요.”
"......."
“저희가 에이바이오랑 같이 협력해서 일을 몇 번 한 후에, 우리 대표님 마인드가 좀 바뀌었거든요.”
“어떻게요?”
“류 박사님은 기존 제약업계의 연구 방법의 틀을 다 깨부쉈어요. 우리 같은 타사 과학자들의 평이 그래요.”
송지현이 말했다.
“옛날에는 대부분의 의약품 개발이 화학 물질 개발에 치중돼있었는데, 류 박사님이 하신 건 대부분 생물학이거든요.”
“그렇죠.”
“수지상세포 우회 항암제라든지, 줄기세포를 이용한 녹내장 치료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기존 틀을 깨고 나와서 새로운 기술을 융합시키는 방식. 트렌드 세팅을 하는 과학을 해야겠다, 이게 대표님의 마인드가 됐죠.”
“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약 업계에서 미세먼지는 심하게 갔는데요. 회사의 목적과 좀 다르지 않아요?”
“셀리제너의 목적에는 어긋나지 않아요.”
송지현이 딱잘라 말했다.
“셀리제너는 종두법을 개발한 에드워드 제너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회사예요.”
종두법은 최초의 백신으로, 천연두를 박멸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발명이다.
그리고 에드워드 제너는 특허를 등록하지 않았다. 영국 왕립 의학회에서 로열티를 받으라고 압력을 넣었는데도 거부하고 버텼다. 하루라도 더 빨리 천연두를 박멸하고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남들한테 이런 얘기 하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진지해요. 셀리제너의 목적은 돈도 돈이지만, 인류를 건강하게 하는 것. 그거 하나뿐이에요. 가장 쉬운 길이 제약이었던 거죠.”
송지현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류 박사님을 보면서 생각이 좀 비뀐 거예요. 최근 사망률 10위권 안에 ‘호흡기 질환’이 들어온 것 아시나요?”
“그래요?”
“호흡기 질환은 본래 한참 아래에 있었어요. 근데 갑자기 순위권에 들어온 이유는……."
송지현이 말했다.
“인도와 중국 때문이에요. 세계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두 국가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를 생산했고, 두 국가의 국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한 거죠.”
“중국발 미세먼지는 우리한테도 피해를 주잖아요.”
“그러니까요!”
송지현이 외쳤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목표로 잡았고, 류 박사님처럼 생각해본 거죠. 미세먼지가 문제라면 신약 개발에 힘을 빼지 말고, 차라리 그냥 미세먼지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녀가 말했다.
“류 박사님이 탄저균 치료제를 비상용으로 개발하셨지만, 최고의 시나리오는 공기중에 퍼진 탄저균을 볼케니움으로 포집해서 제거해 버리는 것이었듯이 말이에요.”
류영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개발은 잘 되어갑니까?”
“사실 썩 순항하지는 않아요. 이 아이디어의 출발은 미세먼지의 성분의 8할이 황산염과 질산염, 그리고 탄소류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들은 모두 훌륭한 농업용 비료예요.”
송지현이 말했다.
“공기 중에 흩어져 있는 그 미세먼지들을 포집해서 모으기만 해도 비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된다는 거죠.”
“그럴싸하군요.”
“그 포집을 위해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고, 공학자들을 많이 고용해서 연구하고 있는데……. 뭐 그렇게 쉽게 잘 되는 건 아니고요.”
송지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문제의 해법을 포착하는 건 좋네요. 비료로 재활……앗!”
류영준이 움찔했다.
“왜요?”
“아뇨, 아닙니다.”
로잘린이 불쑥 튀어나와서 테이블 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송 박사가 재밌는 얘길 하네요.
‘테이블에서 내려와. 밥 먹는 곳에 올라가는 거 아냐.’
-어차피 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인데요.
‘내 눈엔 보이잖아. 너 지금 발로 내 스테이크 밟고 있다구.’
-치.
로잘린은 테이블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미세먼지를 포집할 방법도 있는 거야?’
류영준이 물었다.
-그럼요. 황산염이나 질산염, 탄소류가 비료로 쓰일 수 있다는 건 그것들을 ‘먹이’로 삼을 수 있는 생물들이 있다는 뜻인데요.
로잘린이 말했다.
-당연히 그 물질들의 분해와 관련된 엔자임 (Enzyme)의 유전자들 몇 개만 코딩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죠. 다만 어떤 생물을 매개로 삼느냐가 관건인데.
‘한번 생각해보자.’
-근데 우리가 하면 셀리제너 일을 뺏는 거 아니에요? 송 박사님한테 미움 받으실 텐데.
“무슨 생각하세요?”
갑자기 말이 없어진 류영준을 보고 송지현이 물었다.
“아닙니다. 잠깐 뭐 생각 좀 하느라.”
“혹시 지금 미세먼지 프로젝트 계획하고 계신 거 아니죠……?”
송지현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물었다.
“류 박사님이 경쟁자가 되어버리면 우리한텐 꽤 안 좋겠는데요.”
류영준은 빙긋 웃었다.
“제가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었죠. 그 이유는 에이바이오의 이전 사옥을 앞으로 제7 연구소로 개편해서 환경 에너지 문제 등을 처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환경 문제?”
송지현의 입가가 살짝 굳었다.
이 분야에서도 류영준과 경쟁해야하나 하는 표정이다.
“미세먼지는 기획안에 있긴 하지만 구체적인 프로젝트는 아무것도 잡지 않았어요. 아직 팀 자체도 편성되지 않았고요. 저도 지금은 연구를 지휘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보니 직접 저희 회사에서 진행하긴 어렵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게다가 제약사인 저희가 환경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 기존에 잘 하던 거나 하지 왜 딴짓을 하냐고 염려할 주주들도 있을 듯하고요. 셀리제너와 협업할 포인트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저희를 지원해주신다는 건가요?”
송지현이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지원이라기보다 서로 윈윈하는 거래죠. 셀리제너의 미세먼지 제거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그 대신 저를 미팅에 참여시켜주세요.”
에이젠바이오의 출범으로 정신 없는 연구소들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셀리제너의 손을 빌려 쓴다면 얘기가 다를 것이다.
송지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 일 얘기 하려고 만난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됐군요.”
송지현이 머쓱해하며 머리를 매만졌다.
“일단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에요. 대표님한테 요청해볼게요. 참, 그리고.”
송지현이 말했다.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요즘 약사들 중에서 바이오를 공부하고 제약 산업에 들어가려는 바람이 좀 있어요.”
“약사들이요?”
“네. 예를 들어서 줄기세포 치료제 같은 건 병원에서 하는 시술이지, 기존 의약품처럼 약국에서 조제하는 게 아니잖아요? 류 박사님의 등장 후로 전통 의약품이 점점 축소되는 분위기라 약사들도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려는 거죠.”
"음......."
“그리고 전 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편이에요.”
그럴 만하다.
송지현 본인이 약사 자격증 소지자니까. 처음 만났을 때도 약국에서였다.
그리고 송지현은 옛날에 에이젠이 셀리제너를 수탈하던 때, 약사 협회의 힘을 이용해서 그걸 막아보려 한 적 있다.
약사들의 커뮤니티의 생리에 대해서도 꽤 아는 것이다.
게다가 성공한 바이오 제약 연구자이기도 하다. 지금 국내의 젊은 과학자 중에선 류영준 다음의 유명세를 가진 사람이니까.
“저랑 같이 바이오 신약 스터디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들 꽤 실력 있어요. 지금은 마크 사에서 일하고 있어서 이직 생각은 없는 것 같지만, 설득해볼 수 있을 거예요.”
송지현이 말했다.
“그래주신다면 감사하죠. 대형 프로젝트라도 실력 있는 과학자 한두 명 들어오는 건 진척 속도에 큰 영향을 주니까요.”
***
“너도 진짜 징글징글하다……."
얘길 들은 박주혁은 혀를 찼다.
“아니 이 상황에서 다른 회사 손을 빌려서까지 연구를 더 하겠다고? 뭐 지옥에서 올라온 일벌레냐?”
“자금 지원해주고 가끔 미팅만 들어가는 정도야.”
류영준은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가끔 미팅? 요즘 너랑 점심 한번 먹는데 몇백씩 쓰겠다는 졸부들이 회사로 연락하는 거 아냐?”
“거절하고 있지?”
“그야 당연하지. 근데 그 비싼 시간을 중소기업에다 기증하니? 뭐 자선사업하냐?”
“애초에 환경 연구는 돈 버는 걸 목적으로 하진 않았어.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하면서 중소기업도 하나 키워줄 수 있다면 좋은 거지 뭐.
그리고 잘 되면 대외 홍보 마케팅에 쓸 수도 있잖아? 손해보는 일은 아니지.”
"끙......."
박주혁은 약간 못마땅해 했지만 그럭저럭 수긍했다.
그때 즈음, 류영준의 사무실엔 손님이 한 명 찾아왔다.
아주 뜻밖의 인물이다.
“허찌엔칭 박사님?”
유송미 비서의 연락을 받은 류영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예약 잡고 다시 오시라고 전할까요?
전화 너머로 유송미가 물었다.
“아니요. 지금 시간 좀 비었으니 제 방으로 보내주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
박주혁이 나가고 허찌엔칭이 사무실로 올라왔다. 그는 류영준을 보고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아이구. 안녕하세요, 류 박사님.”
허찌엔칭이 말했다.
“GSC 국제회의 끝난 후에 중국으로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요.”
“그러려고 했는데 저도 사정이 좀 생겨서요.”
“무슨 사정이요?”
“음…….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CCR5 유전자 조작 아기 건은 윤보현 씨를 통해서 불법 펀딩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그 윤보현이 조사를 받으면서 중국에 있는 페이퍼 컴패니로 자금을 보낸 기록이 나왔고, 그에 대해 중국 정부 당국에 조사 요청을 한 모양이에요. 한 마디로 저는 좀 난처하게 된 거죠.”
허찌엔칭이 웃음을 터뜨렸다.
"......."
“하하. 그래도 뭐 GSC 두뇌인 저를 중국 정부가 처벌하겠어요 어쩌겠어요? 그리고 류 박사님. 과학자의 호기심에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렇죠? 이런 게 문명을 진보시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류 박사님도 과학자니 아실 거 아녜요?”
그가 깐족거리며 물었다.
류영준은 골치 아픈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죄가 있습니다.”
“저랑 딜을 하나 하시죠. CCR5 조작 아기가 단명할 수 있다고 전에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에 해결책을 같이 찾아주세요.”
허찌엔칭이 말했다.
류영준은 못미더운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건 당신이 요청하지 않아도 저 혼자 할 생각이었습니다. 에이바이오의 이곳 사옥에서 앞으로 희귀질환자의 치료를 연구할 생각이었거든요. 그 목적 중 하나가 당신이 어질러놓은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거였고요.”
“크으! 역시 진짜 과학자이십니다.”
“딜을 하자고 하셨는데, 제가 그 일을 하면 저한테 뭘 주실 겁니까?”
“돈 같은 건 이미 충분할 테고 관심도 없으시겠죠?”
허찌엔칭이 말했다.
“중국 정부를 설득해서 한국으로 오는 중국발 미세먼지를 잡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