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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 미세먼지 (1) > (41/301)

185화.  < 미세먼지 (1) >

기업의 합병은 주주총회의 승인을 거친 후, 일정한 유예 기간을 둔다.

이 기간 동안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각자의 회사에 자신이 가진 주식을 팔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반대하는 주주들이 너무 많다거나 회사에서 주식을 매입하는 데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합병은 취소된다.

물론 에이젠과 에이바이오의 합병은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일이었다.

에이젠의 주주들은 에이바이오와 류영준의 합류로 엄청난 주가 상승과 회사의 발전을 기대했다. 윤대성과 니콜라스와 여섯 소장 체제도 좋았지만 그 위에 류영준을 앉히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흐뭇해지는 것이다.

에이바이오의 주주들 역시 마찬가지다. 200억 짜리 에이바이오에서 류영준이 어떤 일들을 했는가를 생각해보라. 그런 그가 에이젠 같은 거대 기업을 직접 손에 쥐고 모든 연구를 진두지휘한다면?

주식을 판매하려는 주주는 거의 없었고, 윤대성은 할 일을 모두 깔끔하게 마쳤다.

두 회사의 합병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고, 대표 이사를 선임하는 시점이 왔다.

윤대성은 돌연 후보에서 사퇴해버렸고, 윤보현의 손을 잡고 경찰에 출두했다.

-에이젠 전 대표 윤대성 충격 고백. 탄저균 생물 무기 개발의 과거.

-실제로 탄저균 무기를 이용하려 했던 범인은 류영준이 아니라, 그를 비난했던 윤보현이었다.

대중들의 경악한 반응이 그들에게 쏠렸다.

-아니 저 새끼는 지가 탄저균 테러를 주작했으면서 류영준한테 생물 무기 개발했다고 혐의 씌운 건가?

-ㄹㅇ 미친놈 아닌가 진짜

-개발용 샘플들이 다 폐기된 거라서 다행이지 진짜 자칫했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는 건데

 ㄴ무슨 일이 생길 일은 없다. 킹갓빛영준이 그것도 막았을걸

-오래 전 일이라도 미군도 알지 않나 어떻게 되는 거야?

-외교 문제로도 번질 수 있는 거 아닌가…….

정부에서 조사를 시작했고, 미국 정부는 유감을 표명했다.

-탄저균 개발 건은 31년 전부터 주한미군이 진행했던 주피터 프로그램의 일부였습니다. 한반도 생물학전 대응전략 계획 개발 과정에서 탄저균 무기를 개발하였습니다.

-당시 경기도 오산의 미군기지의 담당자들로부터 탄저 무기 연구 과정의 위법 여부를 조사할 예정입니다.

이미 사건이 종결된 직후였지만 이 이슈는 여론에 꽤 뜨거운 불을 지폈다.

하지만 그것도 곧 또다른 뉴스에 조용히 잠식됐다.

-오늘 낮, 에이젠과 에이바이오의 합병이 완료되었습니다. 대표이사직에 선임된 류영준은 사명을 에이젠바이오로 변경했습니다.

-에이젠바이오는 합병된 양사의 경영 체제를 통합하고 기존의 업무와 인선을 재배치할 예정입니다.

“결국 이렇게 됐군.”

콘슨앤커슨의 대표 데이비드는 업계 소식을 읽으면서 약간 긴장했다.

“예상했던 대로죠.”

데이비드의 비서실장이 말했다.

“앞으로 저 회사랑 경쟁할 수 있는 회사는 향후 100년간은 안 나올 거야.”

“제가 봐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동안은 콘슨앤커슨이 에이젠보다도 약간 컸고, 에이바이오보다도 약간 컸지만 이젠 아니겠지. 이제 저건 제약업계 최고 포식자야. 에이바이오는 그동안 류영준의 천재성을 지탱하면서 온갖 모험적인 연구들을 했어. 그 연구원들의 스펙과 경험치는 무시 못해. 거기에다 거대 기업 에이젠의 모든 실권이 넘어왔다면……."

“심지어 그걸 운영하는 게 류영준이고요.”

“그렇지. 콘슨앤커슨은 이제 은메달 기업이 되겠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 별 수 있나. 언젠가는 1위 자리를 다시 가져올 기회도 생기겠지. 일단은 이대로 가자고. 그보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류 박사한테 선물 보내. 기업 인수합병 축하한다고. 편지는 내가 쓰지.”

같은 시각.

에이바이오 대표 사무실에서는 박주혁이 류영준을 찾아와서는 방 안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야 이게 다 뭐냐?”

엄청난 양의 화환과 선물들이 방 안을 빼곡이 채우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축하한다고 보내준 것들.”

“캬. 다들 줄 한번 대보려고 난리구만.”

박주혁은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쌓인 편지봉투들을 뒤적였다.

“국회의원 심성열?”

“그 사람 것도 있었냐? 뭐래?”

류영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박주혁은 봉투를 뜯었다.

“쓸데없는 날씨 얘기 블라블라하고……. 에……. 너무나 노고가 많으신 류 박사님이 바쁘신 와중에 심신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푸시라고 여행 상품권을 드립니다. 약소하지만 대한민국의 한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국민으로서 드리는 감사의 표시입니다.”

“그 분도 정말 징글징글하다.”

“그래도 하와이 티켓이네.”

박주혁이 안에 있는 상품권을 보면서 말했다.

“너나 가져.”

“진짜?”

“여기 있는 선물들 다 직원들 나눠줄 거야. 내가 전부 갖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나 노트북 주면 안 되냐?”

박주혁이 옆에 놓인 노트북 박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이미 천 박사님이 찜했어. 미국 갈 때 가져가신대.”

“미국 왜 가시는데?”

“그럴 일이 있어.”

“또 뭐 이상한 짓 하려고.”

박주혁은 심성열의 편지 봉투에 든 여행 상품권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나저나 이제 한동안 체제 잡느라고 고생하겠다, 너.”

박주혁이 말했다.

“응. 연구소 여섯 개도 개편하고 에이바이오의 경영 시스템에 에이젠을 편입시키려면 많이 바쁘겠지. 법적인 부분들은 네가 좀 맡아줘.”

“너는 나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

“네가 내 친구라서 너무 좋다. 아무튼 회사 좀 안정되면 난 경영할 사람을 따로 고용해서 맡길 거야. 그리고 난 기술 이사를 맡아서 연구만 해야지. 니콜라스 이사님도 나가실 테니까. 괜찮겠지?”

류영준이 의자에 기댄 채 말했다.

“당연하지. 넌 회사 오너니까 맘대로 해도 돼.”

박주혁이 말했다.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에이바이오까지는 몰라도 에이젠 사이즈의 회사를 경영하면서 연구까지 할 자신은 없거든.”

“생각해둔 사람은 있어?”

“아니, 네가 할래?”

“미쳤어?”

“장난이야.”

두 사람은 마주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박주혁은 정말 좋은 친구다

바쁘고 정신없는 경영과 연구 속에서 박주혁이 가끔 전해주는 장난과 농담이 큰 위안이 되곤 했다.

박주혁이 말했다.

“영준아. 이제 에이젠에 에이바이오, 에이젠 생명,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까지 전부 네 밑에 비엔나 소세지처럼 줄줄 달리게 됐어.”

“그렇지.”

“그리고 에이젠 경영은 다른 사람한테 맡긴다면 이제 넌 류 대표님이 아니라 그룹 회장님이 되는 건가?”

“으윽......."

류영준이 질색하며 신음 소릴 냈다.

“정말 끔찍하다. 회장님이 뭐야. 너무 올드하잖아.”

“하지만 에이젠바이오라는 그룹의 총수잖아.”

“솔직히 말하면 난 류 박사가 젤 편해.”

류영준이 말했다.

“경영, 재무부서 같은 거 전부 에이젠 본사로 옮길 거지?”

박주혁이 물었다.

“응. 그리고 연구팀들도 각각 여섯 개 연구소들로 많이 옮길 거야. 에이젠의 연구소들은 여기보다 인프라가 훨씬 좋거든. 그동안에도 실험할 때 제1 연구소나 연구지원센터 이용한거 많았는데 이제 오가는 것 없이 그쪽 안에 들어가서 실험하면 다들 편리하다 하겠지.”

“그럼 이 건물에 공간이 많이 비게 될 텐데 어쩔 거야?”

“여긴 좀 다른 종류의 연구들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에이젠바이오의 제7 연구소로 개편할 거야.”

“다른 연구?”

“두 종류야. 하나는 사회 환원 목적에서 희귀 질환.”

류영준이 말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환자 수가 몇만, 몇천 명 이내라서 제약사들이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손해보는 질병들이 있어.”

“그런 것만 골라서 잡겠다?”

“응. 그리고 또 하나는……."

류영준이 말했다.

“환경 에너지 연구야.”

박주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약 업종이랑 좀 멀어지는 것 같은데.”

“에볼라나 탄저균에 대처하면서 환경 문제에 좀 고민이 많아졌거든.”

류영준이 말했다.

“환경 에너지 이런 쪽이라면 뭐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 같은 건가?”

박주혁이 물었다.

“그것도 개발할수 있지. 또는 중국발 미세먼지를 잡아내는 기술이라든가, 모기를 절멸시킨다든가, 석유를 생산하는 박테리아를 만든다든가, 콜드체인을 유지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든가.”

“콜드체인이 뭐야?”

“의약품 중에선 보관, 운반할 때 4도 정도의 온도를 꼭 유지해야하는 것들이 있어. 그리고 아프리카 내륙 깊숙이 들어가는 경우에 그런 의약품들의 절반은 전달 과정에서 망가지지.”

“4도를 유지 못해서?”

“어. 온도를 낮추기 위한 전기를 끌어올 방법도 없고. 도로도 엉망이거든. 그 온도를 낮게 유지하면서 경로를 완성하는 걸 콜드체인이라고 불러. 게이츠 재단에서 옛날에 해결법을 두고 상금 걸고 공모도 했었지.”

“흠.”

박주혁이 턱을 매만졌다.

“사실 그때 대학생이었던 내가 공모전에 들어갔었는데 실패했어.”

“아이디어가 뭐였는데?”

“태양열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서 콜드 체인을 유지하는 기술.”

“안된대?”

“현실성이 없다고 떨어졌지. 솔직히 전략이 좀 부족했던 것도 맞고.”

그 전략을 이제 채우게 되었지만.

류영준은 말을 삼켰다.

“그렇게 사업을 확장한다면 회사 개편한 후에 인력이 많이 필요해지겠다. 채용 공고를 내는 게 좋겠어.”

박주혁이 충고했다.

"맞아. 채용 공고도 열고 헤드헌팅도 해야지.”

***

용산 인근의 한 레스토랑에서 두 명의 남자와 여자 한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류영준과 송지현, 그리고 송종호였다.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류영준에게 식사 한 번 대접하고 싶었던 송종호 덕분에 생긴 자리다.

약 세 달만에 만난 송종호는 거의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체중을 크게 감량해서 턱선이 생겼고 피부가 깨끗해졌다.

무엇보다 눈동자가 송지현처럼 맑아졌다.

류영준을 만난 송종호는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었다.

“덕분에 제가 새 인생을 사는 기분입니다! 이제 환각이 하나도 없어요.”

송종호는 신나서 외쳤다.

“전부 류 박사님 덕분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류 박사님이 최고예요 정말!”

그는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싱글벙글했다.

“요즘 컨디션이 너무 좋아져서 이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래요.”

송지현이 말했다.

“다행이네요.”

“사람이 너무 밝아져서 조현병 대신 약간 조증이 생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하하하.”

곧 서버가 음식을 내왔다.

테이블에는 큼직한 스테이크가 올라왔다.

“송박사님 이제 고기 드시나요?”

“아뇨. 하지만 이건 배양육이에요.”

송지현은 빙긋 웃으면서 스테이크에 칼을 댔다.

“류 박사님. 저 대학 가려고요.”

송종호가 말했다.

“그래요?”

“네. 좀 늦었지만……. 정윤대 생명공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거기 꽤 명문대예요. 1년 수능 공부하는 걸로는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류 박사님 때문에 거기 입결 폭발적으로 상승했어요. 그것도 아세요?”

“아니……. 그건 처음 듣는데요.”

“공대 학과인데 정윤대 의대보다도 입결 높아요. 요즘.”

송종호가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전 갈 겁니다. 그리고 졸업하고 에이젠바이오에 갈 거예요.”

“취업 청탁은 안 됩니다.”

“그럼요! 공채로 들어갈 거예요!”

송종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사람에 따라서 특채로 제가 뽑을 수도 있죠. 송 박사님 정도 실력자면……."

류영준이 송지현을 힐끔 살폈다.

송지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송 박사님. 에이바이오가 에이젠이랑 합병하면서 새로 사업을 대거 추진해요. 손이 많이 모자라는 상황인데, 혹시 관심 있으세요?”

류영준이 물었다.

“사정으로 하는 얘기 아닙니다. 셀리큐어 정도의 뛰어난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니까요. 같이 일하고 싶어서 스카웃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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