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 GSC (10) >
“다른 건 다 둘째 치고 테러리스트들이 GSC를 직접 노린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고 용서가 안 됩니다.”
영국 출신 과학자 브레이든이 말했다.
“아무리 서구에 대한 분노가 강하고 복수심에 불타고 있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우리 과학자들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건지.”
다일런 박사가 혀를 찼다.
“네. 그야말로 허찌엔칭이 유전자 조작 아기를 만들었다고 류 박사한테 화풀이하는 꼴이죠.”
릴리 박사가 말했다.
그 옆에서 허찌엔칭이 움찔했다.
“유전자 조작 아기는 필요한 기술이고 결국 의학은 그 방향으로 가게 될 겁니다. 내가 스타트를 끊어준 데 고마워 하셔야지.”
허찌엔칭이 말했다.
“그게 잘못된 방법으로 끊었다는 겁니다.”
“한동안 캐스나인 관련 연구의 펀딩이 아예 다 날아갈 수도 있어요.”
“그 아기 CCR5가 조작돼서 단명할 수도 있다면서요?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네? 여러분이 날 비난하면 안 되지요!”
허찌엔칭이 역정을 냈다.
“여러분도 생물학을 하고 의학을 한다면 결국은 배아의 유전자 조작을 하게 될 거 아닙니까? 언젠가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종교 단체들한테 얻어터질 집중 포화를 내가 대신 맞아준 건데 여러분이 날 비난할 순 없지요.”
“웃기지 마시오. 우리는 사람 가지고 실험 안 하니까.”
“꼭 필요할 때 의학 목적으로만 해야지. CCR5 조작 같은 건 굳이 하지 않아도 약물로 에이즈 유전은 막을 수 있는 건데 멍청하게 그 걸......."
“멍청?”
과학자들이 사방에서 쏘아댔다. 순식간에 소란이 일었다.
“여러분.”
류영준이 말했다.
과학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그 아기는 제가 보호하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원천기술 개발자로서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누군가 배아 유전자 조작을 진행하려고 할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미에 허찌엔칭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 실험을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과학자가 캐스나인 특허 보유자인 저한테 이용 허가를 요청하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비밀리에 저질러버릴 줄은 몰랐지만요.”
“요청했으면 허가를 안 내주셨을 테니까.”
허찌엔칭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문제는 나중에 얘기합시다. 우리는 지금 생물 테러 공격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니까.”
질병관리본부 국장이 말했다.
“좋아요. 그럼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얘기합시다. 혹시 류 박사님이나 한국 정부는 반군이 쓰고 있는 생물 무기에 대해서 얼마나 파악하고 있습니까?”
나이 지긋한 백발의 과학자가 물었다.
캐나다 출신 과학자 칼렙이었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거의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류영준은 준비해둔 발표 자료를 나눠주었다.
과학자들은 데이터를 천천히 읽었다.
모든 DNA 서열과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수많은 생체 물질. 그 구조와 작동 메카니즘.
“허, 이거 괴물 같은 균이군.”
다일런 박사가 말했다.
“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여기저기서 새로운 외래 유전자들을 많이 끌어왔지만, 가장 큰 문제는 펌프들이군요.”
릴리 박사가 박테리아의 데이터를 읽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항생제 펌프가 30종이나 달려 있어요. 류 박사는 이거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미셸 박사님한테 환자 샘플을 받은 다음, 박테리아를 분리하고 에이바이오가 가지고 있는 DNA 분석 장비들을 이용해서 DNA를 모두 읽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 다음은 블라스트 (BLAST) 프로그램을 돌려서 DNA를 매치시키고 관련 유전자들을 찾아낸 겁니다.”
“여기 생체 물질 구조들까지 다 나와있는데? 이건 어떻게?”
릴리 박사가 물었다.
“그 부분은 에이바이오 신기술과 관련된 거라 비밀입니다.”
사실 지금 기술로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로잘린이 알려줬다고 얘기할 순 없지.
“과학자 아니랄까봐 신기한 거 나오니까 자꾸 토론 중에 옆길로 샙니까?”
허찌엔칭이 끼어들었다.
“다시 펌프 얘기로 돌아갑시다.”
“항생제 펌프가 이렇게 많이 달려있으면 항생제로 이 박테리아를 죽일 수가 없어요.”
“본래 탄저균은 감염 초기라면 항생제를 많이 먹는 것만으로도 치료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탄저균은 얘기가 다르군요."
과학자들이 저마다 난처함을 표했다.
“치료제는 만들 수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항생제가 하나도 안 듣는 슈퍼 박테리아의 일종입니다. 치료제를 만들 수가 있나요?”
다일런 박사가 물었다.
“펌프가 많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할 겁니다. 이 펌프들은 능동 수송 (Active transport)이니까요.”
펌프는 세포막에 달려있는 구조체다.
항생제가 세포 내부로 들어오면 바깥으로 다시 펌핑해서 빼내는 것이다.
박테리아는 그렇게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갖춘다.
하지만 ‘능동 수송’ 펌프는 에너지를 소모한다. 항생제를 퍼내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박테리아 입장에서 힘을 써서 해내야 하는 ‘일’인 것이다.
“펌프가 무려 30종. 도합 수천 개가 달려있으니 그게 마구잡이로 돌아간다면 박테리아의 세포 내 에너지원이 고갈될 겁니다. 버티질 못하겠죠.”
류영준이 말했다.
“그 30종에 해당하는 항생제를 모두 투여하겠다는 겁니까?”
질병관리본부의 국장이 물었다.
“그건 아니죠. 그랬다간 사람의 장과 간에 타격이 꽤 클 거예요. 그 대신 감염된 환자의 기관지로 펌프의 공통 활성 인자를 투여하는 겁니다. 항생제는 종류에 따라서 사람의 세포에도 타격을 줄 수 있지만, 활성 인자는 아닙니다. 항생제 펌프는 사람의 세포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인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테고요.”
“하지만 그렇게 해선 탄저균을 죽일 수는 없을 텐데? 탄저균은 아포 상태로 돌아가거나 농성할 수 있어요.”
다일런 박사가 지적했다.
“그 경우는 더 간단하죠. 체내에서 아포가 생성된 경우에는 면역 세포들이 알아서 제거할 테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음."
과학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득력 있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성공률은 높게 보고 있습니다. 만약 테러가 일어나게 된다면 항생제는 듣지 않을 테고, 제가 말씀드린 방법으로 치료하는 수순을 밟게 되겠죠. 하지만 이 경우에 충분한 임상 데이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상용화하는 케이스가 될 겁니다.”
“긴급하면 어쩔 수 없죠. 다른 약도 안 먹힌다면.”
질병관리본부 국장이 말했다.
“하지만 이 치료제는 감염된 환자가 발생하는 경우까지 대비한 것입니다. 사실 가장 좋은 케이스는 생물학 테러 자체가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경우겠죠.”
류영준이 말했다.
“방법이 있습니까?”
천체 물리학의 최고 거장인 슈타인하우어가 물었다.
“이 탄저균은 호흡기로 감염됩니다. 아마 테러범들은 가스 형태의 폭탄을 가져와서 호텔 등지에 살포하는 방식을 취할 겁니다.”
“가스형 폭탄을 공항에서 스캔할 수 있으면 되는 겁니까?”
“테러범들 머릿속에 가스만 들어있는 게 아닌 이상 폭탄이 공항에 가스 상태로 들어오겠소?”
브레이든이 빈정거렸다.
슈타인하우어가 쏘아보자 옆에서 릴리 박사가 덧붙였다.
“아마 아포 상태로 만든 후에 원심분리기로 압축해서 펠렛 (Pellet)을 만들어서 가지고 올 겁니다. 여의도 만한 공간을 마비시키는 데는 0.05 밀리그램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대신 그걸 국내에 가져온 다음 가스 실린더에 담겠지.”
다일런 박사가 말했다.
“그럼 폭탄을 터뜨릴 위치를 확신할 수만 있다면 그 인근 지역에서 경찰이 순찰을 돌면서 가스 실린더 폭탄을 찾아내면 되겠군.”
슈타인하우어가 말했다.
“이참에 확실히 하고 싶은데, 테러범들의 표적은 GSC가 맞습니까?”
브레이든이 물었다.
“그럼 테러범들이 연고도 없는 아시아까지 와서 굳이 한국인을 죽여서 적만 하나 늘리는 멍청한 짓을 하겠는가? 머리에 가스만 찬 게 아닌 이상?”
이번엔 슈타인하우어가 브레이든에게 빈정거렸다.
“두 분 싸우지 마시고.”
류영준이 끼어들었다.
“현실적으로 공항에서 우리가 마이크로그램 단위의 박테리아를 검출할 방법은 없습니다. 모든 승객의 짐을 살살이 파헤쳐서 조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렇게 해도 찾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요.”
“그렇겠지.”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이번 테러가 정리될 때까지 그랜드하얏트 호텔에 남아달라는 겁니다.”
“표적 미끼 역할을 해달라?”
다일런 박사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뭐, 좋소. 어차피 우린 막아낼 자신이 있으니까. 못 배워먹은 테러범 놈들이 쓰는 생화학 무기쯤이야.”
“도망갈 거였으면 진즉에 갔지.”
“대신 테러범들의 공격을 우리가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을 대외에 알리지 않아야 합니다. 알게 되면 GSC를 포기하고 홧김에 다른 곳을 칠지도 모르니까.”
릴리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대피시켜야 하지 않습니까?”
브레이든이 물었다.
“그 문제는 정부에서 책임지고 잘 처리하겠습니다.”
질병관리본부 국장이 답했다.
“뭐, 좋습니다. 탄저균을 가스실린더에 담는다면 크기는 어느 정도 될까요?”
브레이든이 류영준에게 물었다.
“성인용 백팩 안에 들어갈 크기일 겁니다.”
“백팩에 들어갈 사이즈라.”
“그럼 이제 가스실린더를 찾아낼 방법만 고르면 되는 건가요? 어떻습니까? 물리학이나 공학 쪽 박사님들 고견을 듣고 싶은데.”
허찌엔칭이 코맷 박사를 돌아보았다.
“경찰 인원을 늘려서 순찰을 돌리고 휴대용 엑스레이 스캐너를 쥐여주죠. 한 번 막대를 휘두르는 것만으로 소지품을 엑스레이 스캔할 수 있습니다.”
코맷이 말했다.
“아니면 이런 건 어떻습니까? 사복 경찰로 구성해서 전단파 탐지총을 백팩이나 캐리어를 골라서 쏘게 하시오.”
슈타인하우어가 말했다.
“금속 다음에 가스가 있으면 전단파의 굴절률을 토대로 가스실린더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거 괜찮군. 하지만 전단파 탐지총을 휴대할 만한 크기로 만들 수가 있나?”
칼렙이 물었다.
“그건 이미 존재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개발해서 미군에 납품하고 있어요. 국제 퀵으로 받아서 쓰면 됩니다.”
슈타인하우어가 말했다.
“그건 어찌됐든 좋습니다.”
류영준이 끼어들었다.
“그보다 저는 가스 실린더를 탐지해서 살포를 예방하는 것과, 치료제를 투여해서 감염자를 치료하는 것 사이에 안전장치를 하나 더 걸고 싶습니다.”
“뭡니까?”
칼렙이 물었다.
“살포된 탄저균을 공기 중에서 제거하는 겁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우리도 가스를 살포하는 겁니다. 다만 이 가스에 들어있는 건 ‘탄저균을 수집하는’ 박테리아입니다.”
"......."
과학자들이 몇 초간 말을 잃었다.
질병관리본부 국장은 류영준을 힐끔 쳐다보았다.
또 이상한 것 한다는 표정이다.
“화씨 160도의 온천에 서식하는 박테리아 중에 볼케니움이라는 종이 있습니다. 최근에 이 종이 엘로스톤 국립공원의 온천에도 살고 있고, 일본의 하코네 온천에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류영준이 말했다.
“동물이나 사람이 그 박테리아를 옮겼을 가능성은 희박해보입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호기심을 갖고 연구해본 끝에 그 박테리아가 ‘날아다닐’ 수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볼케니움이라는 그 박테리아를 대량으로 풀어놓으면 알아서 날아다니며 탄저균을 잡는다?”
“당연히 볼케니움은 탄저균에 관심이 없겠죠. 하지만 우리한텐 최고의 유전자 조작 기술인 캐스나인이 있습니다.”
허찌엔칭이 또 움찔했다.
“볼케니움을 캐스나인으로 조작해서 몇 개의 유전자를 넣어주고, 볼케니움의 세포벽에 생체물질을 합성해줄 겁니다.”
“어떤 물질입니까?”
“탄저균에 달라붙는 항체입니다. 이 박테리아를 허공에 풀어놓으면 탄저균을 쫓아다니면서 항체의 개수만큼 탄저균을 수집할 겁니다. 볼케니움 세포 한 개가 탄저균 200개를 잡아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볼케니움에 붙잡힌 상태로는 탄저균이 증식하지 못합니다. 병원성은 없어지겠죠. 그리고 볼케니움은 원래 온천에서 서식하는 박테리아기 때문에 상온에서는 오래 살지 못합니다.”
“얼마나 살 수 있나?”
다일런 박사가 물었다.
“길어봤자 하루 이내입니다. 볼케니움이 죽으면 볼케니움 세포 내에서 대량의 뉴클리에이즈 (Nuclease)와 프로티네이즈(Proteinase)가 흘러나옵니다. 그게 바로 옆에 붙어있는 탄저균을 파괴할 겁니다.”
칼렙이 감탄했다.
“그야말로 진짜 세균전이군.”
“그 볼케니움이라는 박테리아의 위험성은 없습니까?”
릴리 박사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사실 거의 모든 온천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입니다. 온천욕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그 박테리아에 한 번은 감염됐다고 봐야죠. 아무 문제없습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재밌네요.”
허찌엔칭이 박수를 쳤다.
“류 박사님. 테러범들에게 보여주죠. 진짜 과학자들의 생물학이 어떤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