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 GSC (7) >
기자회견을 마친 윤보현은 그랜드하얏트 호텔 정문 로비로 이동했다.
위에서 GSC 국제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이 휴식 시간을 가지고 내려오고 있었다.
윤보현은 이 타이밍까지 계획했다.
로비로 내려오는 류영준을 향해 기자들이 앞다퉈 돌진했다.
“류 박사님!”
그들이 내미는 수많은 마이크가 마치 찔러버릴 듯이 류영준을 겨누었다. 얼굴 위로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아프리카의 탄저균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탄저균 펜스가 아프리카에서 탄저 전염병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입니까?”
“탄저균 생물 무기를 개발하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에이젠에서 류 박사님이 살인 용의자라는 내부자 폭로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류영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두 눈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반대편 한 쪽을 향하고 있었다.
윤보현이 그곳에 서있었다.
두 사람은 몇 초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
“X발 저게 뭐야……."
박주혁이 TV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바이오의 수많은 직원들이 회사 휴게실에 설치된 대형 TV 앞에 서있었다.
“어머 어떡해……."
“저거 진짜야?”
“진짜겠냐?”
“아니 윤보현이 누구야? 별 듣보잡 새끼가……."
“에이젠에 있을 때 본 적 한 번도 없는데.”
직원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
“박 변호사님.”
천지명이 박주혁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금 TV에 나오는 것에 대해서 박 변호사님은 얼마나 아십니까?”
“저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박주혁이 말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모를 개뼉다귀 같은 놈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이게 무슨 짓이야."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지금 여론은 어때요? 아시는 것 있습니까?”
천지명이 물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경영기획 부서에 가서 봐야겠는데요.”
박주혁은 곧장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경영본부에 들어갔다.
사무실 전체의 전화가 불통이었다.
직원들은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서류를 뒤지고 전화를 돌리고 난리가 났다.
“바로 대응 사격해! 별 듣도보도 못한 미친 애송이 놈이 알지도 못하면서 헛소리야!”
경영 본부의 이찬열 부장이 소리쳤다.
“지금 보도자료 돌려! 사람들 분위기는 어때?”
그가 직원들에게 물었다.
“아직까지는 류 박사님을 옹호하는 쪽이에요.”
“당연하지. X발 전부 다 음모론이잖아. 우리 대표님이 그동안 한 게 얼만데. 구한 목숨이 얼만데 이딴 음모론 따위가 뭐라고. 전부 다 사실 무근이라고 당장 보도자료부터 내!”
“알겠습니다.”
직원들이 컴퓨터를 사납게 두들겨댔다.
***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한국만이 아니다. 암 연구소가 위치하고 있는 미국은 물론이고 류영준에게 최고 등급 훈장을 수여한 스웨덴, 카마티푸라의 에이즈 퇴치로 인해 류영준의 동상을 세워놓은 인도의 도시 뭄바이, 에볼라 확산 억제에 성공한 콩고와 국제백신연구소, 그리고 세계보건기구.
수많은 국가와 기관들이 그야말로 폭탄을 맞은 것처럼 난리가 났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류 박사가 그 사람을 왜 해쳐요?
-탄저균 생물 무기? 아무런 증거도 없잖습니까.
-류 박사는 분명히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존의 상식을 벗어난 연구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능력으로 탄저균 생물 무기를 대체 왜 만들어요?
-그 천재의 머릿속을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기를 만든 이유는 당연히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류 박사는 미국으로부터 엄청나게 파격적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고려해볼 수 있죠.
-말도 안 됩니다. 이거 전부 다 음모론이에요.
-그럼 아프리카에서 지금 퍼지고 있는 것은 뭡니까? 탄저균 펜스를 따라서 탄저병이 유행하고 있어요! 그것도 호흡기 질환으로! -탄저 생물 무기를 안 만들었다고 칩시다. 최소한 탄저균 펜스는 실패한 전략이었어요. 에볼라를 막아냈지만 더 심각한 생물 재난이 초래된 겁니다.
-아프리카에서 지금 유행하는 탄저병은 아직 초기라서 밝혀진 게 거의 없습니다. 그게 탄저균 펜스 때문인지 어떻게 알아요? -아니면 뭡니까? 탄저균 펜스 설치 전에는 이런 식으로 탄저병이 유행한 적이 없었어요.
-그 사람이 GSC고 뛰어난 연구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다들 맹목적으로 믿은 겁니다. 그래서 탄저균 펜스도 별 검증 없이 그냥 진행한 거예요. 아프리카 국가들이 말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그러면 안 돼요!
-류 박사는 스웨덴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출국해서 달아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일단 출국 금지부터 시켜야 합니다. -구속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류 박사 정도 능력이면 탄저균 연구한 거 그거 증거 인멸시키는 것도 일도 아닐 겁니다. 그 사람 만큼 생물학을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구속? 장난해요? 지금 류 박사 손에 어떤 회사가 움직이고 있는지 모릅니까? 에이젠도 에이바이오도 사실상 류 박사가 모든 연구를 지휘하다시피 하는 상황입니다.
-그 연구가 항상 옳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람 살리는 연구가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
-유전자 조작 아기를 보십시오! 류 박사의 기술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그야말로 사회 전반이 시끄럽게 달아올랐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각계 각층에서 튀어나와 한 마디씩 보태고 서로 물어뜯고 싸우고 난리였다.
그 가운데 윤보현은 신문에 칼럼을 하나 썼다.
그 칼럼은 인터넷에 올라가 수천 번 공유되면서 엄청난 조회수를 올렸다.
[준비되지 않은 기술의 위험성]
에이바이오의 류영준 박사가 보여준 기술력은 정말 놀랍다. 순식간에 세계가 22세기로 진보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기쁘기만 한 일일까?
류영준 박사는 유전자 가위, 캐스나인을 개발해서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진단 키트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허찌엔칭 박사가 캐스나인을 이용하여 유전자 조작 아기를 탄생시켰다. 허찌엔칭 박사는 이를 GSC 국제회의에서 발표했는데 같은 과학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과학계 내부에서조차 이 문제에 대해 분쟁이 벌어졌다. 이는 캐스나인을 개발한 과학계 스스로도 캐스나인 기술에 대해 윤리적으로 안전한 지침을 제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세계 각지에서 유전자 조작 아기에 대해 많은 윤리학자과 종교 단체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우리는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제까지는 SF 영화 속의 이야기였으나, 지금은 당장 고민해야하는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류영준 박사는 여전히 엑셀을 밟고 있다.
에이바이오는 200여 대의 유전자 분석 기계를 통해서 1억 명의 인간의 유전자를 전체 해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류영준 박사는 어떤 유전자가 인간의 어떤 모습을 결정 짓는지 완벽하게 알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논문으로 발표하여 많은 명예와 돈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논문을 읽은 제2의 허찌엔칭 박사가 CCR5가 아닌 바로 그 유전자들에 손대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류영준 박사는 유전자 가위와 고해상도의 유전자 지도를 모두 완성할 것이고, 인류는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엑셀이 아니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다.
사회가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 연의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담당의들이 성명을 냈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김현택 환자는 뇌사로 인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었습니다.
-저희는 환자의 체내에서 다양한 질병의 검사를 진행했으나, 그 어떤 징후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검사 중에는 탄저병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현택 환자는 탄저균에 감염된 게 아닙니다. 이것만은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해명이었다.
처음부터 류영준을 믿는 사람들은 이 발표에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류영준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는다.
류영준은 1년만에 수많은 질병들을 정복해버린 천재 중의 천재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검사해서 안 나오게끔 탄저균을 조작했겠지.’
비 과학적이지만 직관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추론이다.
여론은 반반으로 나뉘어 지속되고 있었다.
-탄저균 펜스는 생물 무기와 무관하다. 탄저균 펜스에 들어간 유전자는 에볼라의 정크 DNA (Junk DNA) 일부이고, 이는 탄저균의 표현형 (Phenotype)에 어떤 변화도 일으킬 수 없다. 단지 탄저균의 면역성만 증진되었을 뿐이다. 탄저균 펜스 작전은 지금 유행하는 탄저병과 전혀 무관하다.
미셸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보건 담당자들과 세계보건기구가 발표문을 냈다.
“하지만 음모론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윤대성은 눈을 감고 있었고 니콜라스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21세기에 아직도 달 착륙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선풍기 괴담이라든지, CIA가 인구 증가를 억제하려고 신종플루를 퍼뜨린다든지.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이 상당수예요.”
윤보현이 말했다.
“그게 바로 류영준의 약점이죠. 그 사람은 너무 똑똑하고, 너무 완벽하고, 너무 도덕적이에요. 그 사람은 지나치게 엘리트였습니다. 결국 그 모든 힘은 대중의 지지에서 나오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그 대중의 대부분은 무지한데도요.”
"......."
“결국 진실이 밝혀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두 회사가 합병하고 대표이사를 선출할 때까지는 아닙니다.”
“이…… 이 미친 새끼!”
니콜라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윤보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알지요! 아버지를 대신해서 우리 회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윤보현이 소리쳤다.
"......."
“지광만 본부장도, 김현택 소장도 모두 싸우다 무너졌습니다. 아버지는 백기를 들었죠.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윤대성은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윤보현이 말했다.
“사람들은 악당을 싫어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위선자죠. 자기보다 잘난 사람이 훌륭하게 행동하면 존경하고 따르지만 얼마 안 갑니다. 그 사람한테 살인 용의가 있다거나, 그 사람이 전염병을 일으키는 무기를 개발했다거나, 그런 사소한 의심 몇 조각만 흘려주면 바뀝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두 분 모두 자신 없으면 싸우지 말고 숨어 계십시오. 하지만 절 방해하지는 마세요.”
툭.
니콜라스는 윤보현을 놓았다.
피곤기 가득한 침묵이 흘렀다.
“보현아.”
윤대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너는 정말 큰 실수를 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 정도로 류영준을 궁지에 몰아넣었는데도요?”
“류 박사가 지금 널 끝장내지 않는 것은 아프리카의 탄저병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넌 그 사람한테 적 같지도 않은, 그냥 날파리 같은 상대야.”
"......."
“네가 아직 그 사람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못 잡고 있는 거야.”
윤보현이 이를 깨물었다.
“아버지. 제가……."
“류 박사가 그저 천재적인 과학자 같니? 과학자는 아무리 뛰어나도 1년 만에 에이바이오 같은 회사를 만들지 못해. 그 사람은 과학을 잘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지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거다.”
"......."
“나도 이제 빠지지 않겠다. 지금 나 혼자 탈출해서 자수하고 살 길을 찾는 것도 우스운 모양새다. 나는 네 편에 서있다가, 네가 무너질 때 같이 떠나겠다.”
윤대성이 말했다.
윤보현은 못마땅한 얼굴로 윤대성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니콜라스는 조용히 윤대성의 말에 동조했다.
탄저균 생물 병기 얘기가 나왔을 때 이미 류영준은 그게 에이젠에서 과거에 개발한 물건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류영준은 아직까지 니콜라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에이젠의 모든 연구노트에 대해 접근 권한이 있는 니콜라스한테, 탄저균 생물 병기 개발 건에 대해 폭로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니콜라스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고도 윤보현을 파괴할 수 있기에.
***
구속이니 뭐니 말이 많은 상황에서 류영준은 출국하지 않았다.
다만 콩고를 향하는 비행기를 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메셀슨 박사였다.
그는 전날 류영준이 적어준 이메일을 읽고 있었다.
해당 탄저균의 DNA 전체(Whole genome)은 다음과 같습니 다; ATTGTACTGCTCCATTTACATTGGGGGATCAT…….
523만 자에 해당하는 방대한 DNA 데이터가 첨부 파일에 들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해당 DNA 곳곳에서 어떤 생체 물질들이 만들어지는지, 그 발현량이 어느 정도인지, 게다가 그 생체 물질들의 3차원 구조는 어떻게 생겼는지까지 서술돼있다.
'.......'
메셀슨은 이걸 처음 받아들었을 때 진짜로 류영준이 생물 병기를 개발한 줄 알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걸 하룻밤 새에 만들어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조금 더 고민해보고 생각을 고쳤다.
진짜 개발자여도 이런 데이터는 못 만든다. 류영준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건 탄저균만 5년에서 10년 쯤 연구한 과학자들이 간신히 얻어낼 만한 자료다.
그 말인 즉.
이 데이터를 생산한 과학자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정작 류영준은 로잘린을 통해 분석한 결과물이었지만 메셀슨이 보기에는 류영준이 이미 모든 의혹을 벗어날 증거물을 쥐고 있는 듯 보였다.
“생물 병기를 개발한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게 아프리카에 지금 떠돌아다니는 건 사실인 듯합니다.”
전날 메셀슨에게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이 데이터를 지금은 말할 수 없는 경로로 입수했고, 제가 출국하기가 좀 까다로운 상황이라 메셀슨 박사님께 힘든 짐을 맡겨드리는 겁니다.”
“괜찮습니다. 저한테 맡기세요. 류 박사. 저는 탄저균과 생물 무기의 최고 전문가입니다.”
메셀슨이 말했다.
그리고 그가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
류영준은 기자회견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