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4화. < GSC (6) > (30/301)

174화.  < GSC (6) >

“류 박사님. 할 얘기 있습니다.”

메셀슨 박사가 류영준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제가 생물 무기 반대 운동을 진행했다는 얘기 들으셨지요?”

“네."

“그때 이슈가 됐던 무기가 바로 탄저균입니다.”

메셀슨이 말했다.

"......."

“저는 탄저균하고 여러모로 인연이 참 많아요. 제가 처음 생물 무기를 만들면 안 되겠다 결심했던 때도 탄저균 제조 시설에서였고 구 소련에서도 일이 좀 있었습니다.”

“소련에서요?”

“스베르들롭스크라는 지역입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아니요.”

“아마 류 박사님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일 겁니다.”

메셀슨이 말했다.

일명 1979년 스베르들롭스크 탄저균 유출 사건.

스베르들롭스크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1,370km만큼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는 작은 도시다. 피시마 강이 흐르는 평화로운 동네였다.

그리고 냉전이 한참 진행되던 1979년 그곳에서 2천 명의 주민들이 갑자기 감기 증상과 함께 고열과 기침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는 64명이 사망했다.

사인은 탄저균 감염.

소련 당국은 소가 탄저균에 감염되었고, 그 고기를 제대로 익히지 않은 채 주민들이 섭취하면서 전염병이 돌았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육류의 검역을 강화하고 주인 없는 개를 도살하고 가축들을 폐사시키는 등 요란을 떨면서 탄저균을 잡겠다고 설쳤는데 전부 쇼였다.

실상은 생물 병기였던 것이다.

스베르들롭스크에는 탄저균 실험실이 있었다. 탄저균을 이용한 생물 병기를 개발하는 곳이었다.

공장 직원의 실수로 탄저균이 공장 밖으로 흘러나와 도시에 퍼졌던 것이다.

“그 진실을 밝혀낸 사람이 납니다.”

메셀슨이 말했다.

“감염된 육류를 섭취하면서 감염되었다면 소화계통에 문제가 생겨야 하는데 당시 환자들은 호흡 곤란 등의 호흡기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건 탄저균을 아포 상태로 흡수했을 때 생기는 일이죠.”

“그래서 소련 당국의 발표와 다르게 호흡기로 감염이 된 것이다?”

“네. 그렇게 주장해서 추적한 끝에 미국으로 망명한 당시 소련의 연구소장이 자백하면서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근데 류 박사님.”

메셀슨이 말했다.

“탄저균은 자연 상태에서는 호흡기로 쉽게 감염되지 않습니다."

"......."

"이런 종류의 탄저균은 생물 무기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만약 생물 무기라면 세계 연합 차원에서 굉장히 긴급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대량 살상 무기가 아프리카 반군들 손에서 돌아다닌다는 뜻이니까요.”

“어제 미셸 박사님하고 통화를 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뭐라고 하시던가요?”

“똑같은 얘길 하셨습니다. 무기 같은 느낌이라고. 그리고……. 발병 지역 대부분이 제가 탄저균 펜스를 설치했던 곳입니다.”

“탄저균 펜스하고는 상관없을 겁니다. 저도 WHO에서 선 공개한 류 박사의 논문을 읽어봤는데, 그게 탄저균에게 주는 영향은 아주 미미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지역들만 골라서 탄저병이 퍼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시기가 기묘하지 않은가.

에이젠과 에이바이오의 합병을 바로 앞둔 시점에 갑자기 CCR5 유전자 조작 아기가 태어나고 탄저균이 퍼진다?

“저 잠깐 자리를 좀 비워야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곧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니콜라스는 너무 놀라서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뭐가 어떻게 됐다고?”

“방금 말한 그대로야.”

윤대성이 몹시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윤보현이 그 놈이 사고를 쳤어. 아프리카에서 탄저균 생물 무기를 퍼뜨렸다고.”

“허어……."

니콜라스는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가 이마를 매만졌다.

“잠깐만 생각 좀 해보자. 그러니까 지금 그게 퍼지면, 류 박사가 탄저균 펜스를 설치했던 것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얘기한다는 건가?”

“그런 것 같아.”

“말도 안 돼. 사람들이 그걸 믿는다고?”

“모든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훈련 받았거나 과학적인 사고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잖나. 콩고를 빙 둘러싸도록 설치한 탄저균 펜스를 따라서 탄저병이 절묘하게 겹치면 결국 사람들은 다 의심할 거야.”

“이건 아니야. 대성이. 지금에라도 경찰에 모든 걸 고백하고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돼. 초기에 해야 한다고.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

윤대성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나는 자신이 없어.”

"......."

“나는 이제 자수할 수가 없어……."

“대성이!”

“나 한 사람 벌 받는 게 아니야. 이제는 보현이 저 놈한테도……."

“……. 그, 그럼 이렇게라도 하는 건 어떤가? 윤보현이는 일단 숨겨놓고 우리가 자수해서 탄저균 무기가 있었다고 얘기하는 거야. 미군에 옛날에 팔았던 기록이 있잖나? 그 외엔 모르겠다고 해. 그럼 미군이 아프리카에서 그 무기를 썼을 거라고 사람들이 짐작하고 화살을 그리로 돌리겠지.”

“미군……."

“자네가 보현이 때문에 못 나서니까 하는 얘기야. 지금 그렇게라도 해야 돼. 제일 시급한 건 이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는 거야. 하루 빨리 그 탄저균 병기를 세상에 오픈하고 류 박사를 비롯한 과학자들이 연구해서 대처법을 찾아내게 해야 돼.”

윤대성은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

“대성이.”

“나는……. 난……. 모르겠어…….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그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내가 그 애를 괴물로 키워버렸어. 어릴 때부터 정을 준 적이 없어서……. 항상 엄하게만 가르치고……. 네가 회사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닦달했네. 내 잘못된 교육이 그 착한 애를 저런 괴물로 만든 거야……."

“대성이. 정신 차려! 지금 자네가 정신을 차려야……."

똑똑똑!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윤대성의 비서였다.

-대표님. 급한 일입니다. 들어가도 됩니까?

윤대성은 눈가를 닦았다.

“들어와.”

비서는 문을 벌컥 열고는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윤대성하고는 20년이나 같이 일을 해온 사람이다.

이 정도로 긴장한 것은 오랜만에 보았다.

“대표님. 방금 저희 회사 경영 본부에 윤보현 과장이란 사람이 내부자 폭로 인터뷰를 예고했다고 합니다. 이거 알고 계신 겁니까?”

“뭐?"

윤대성의 눈이 커졌다.

“젠장 어디서!”

니콜라스가 소리쳤다.

“지금 기자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 앞에서요.”

“……GSC 국제회의가 열리는 곳인가?”

니콜라스가 물었다.

“맞습니다.”

“아니 잠깐만. 근데 내부자 폭로라고? 폭로? 대체 무슨 주제로 발표를 한다는 건가?”

“그게……."

“빨리 말해보게!”

“에이바이오 류영준 대표의 숨겨진 맨얼굴을 폭로한다고……."

세 사람의 숨소리마저 잦아들었다. 대표이사 사무실에 지독하게 욱씬거리는 긴장감이 흘렀다.

***

“에이젠 제1 연구소의 연구소장 김현택은 류영준 박사와 오랫동안 대립했던 인물입니다.”

윤보현이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류영준 박사는 에이젠 내부에서 급속히 성장했을 때 이미 에이젠 본사에서 본사 지분을 무려 4 퍼센트나 지급하면서 임원 대접을 하며 챙겨주었습니다. 겨우 서른 남짓한 청년에게 말입니다. 그 능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법한 일이었죠.”

윤보현은 마이크를 쥐고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를 통째 집어삼키기 위해서 에이바이오를 만들고 그곳을 키웠습니다. 에이젠의 경영진을 협잡하면서 지분을 빼앗고 결국 에이젠을 합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졌다.

“네, 물론 윤리적으로 어떨지는 몰라도 법적으로 문제는 없습니다. 카리스마 있고 똑똑한 인물이 그렇게 해서라도 에이젠을 삼키면 더 잘 될 수도 있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류영준 박사가 에이젠을 맡으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경영 본부의 직원으로서, 그간 보아왔던 류 박사의 진실을 이 자리에서 폭로합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첫째. 류영준 박사는 살인범입니다.”

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놀란 기자 중 하나는 노트패드까지 떨어트렸다.

윤보현이 말했다.

“류영준 박사가 꾸준히 에이젠을 집어삼키던 때. 김현택 연구소장은 결국 연구소장직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게 류영준 박사의 설계였죠. 하지만 김현택 연구소장 역시 류영준 박사의 약점을 하나 알고 있었습니다. 김현택 소장은 쫓겨나기 전에 그걸 확보하기 위해 제6 연구소로 달려갔습니다.”

"......."

“그리고 류 박사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김현택 소장을 뒤쫓아왔죠. 두 사람은 제6 연구소의 생명창조 부서에서 잠깐 부딪힙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윤보현이 말했다.

“그로부터 세 시간 후. 김현택 연구소장은 거대한 고통 속에 발작과 함께 피를 쏟으면서 쓰러졌습니다. 그는 아직도 병원에서 코마 상태에 있습니다.”

"......."

기자들의 손이 떨렸다.

“류 박사가 김현택 소장을 해쳤다는 뜻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방법을 누가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 천재는 학회에 가서 일주일 만에 신약을 만들고 논문을 내는 사람입니다. 그 천재성으로 신약이 아니라 ‘독약’이라고 만들지 못할까요?”

"......."

“하지만 저는 김현택 연구소장님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그 분이 류영준 박사에 대해 캐낸 정보 몇 개를 확보했습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류영준 박사는 탄저균의 생물 무기를 개발한 사람입니다!”

강렬한 충격이 기자들 사이를 휩쓸었다.

너무 놀라서 카메라로 찍는 것조차 멈춘 이들도 있었다.

윤보현은 그들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에이젠 제1 연구소에서 쫓겨난 후, 제6 연구소의 생명창조 부서에서 탄저균을 연구했습니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부서이기 때문에 가능했죠.”

과거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금지 협약 이후에 남의 나라 땅에서 생물 무기를 만들어 밀수한 미군이 오물을 덮어쓰며 자신의 과오를 직접 밝히겠는가?

아니면 윤대성이 자기 친아들을 감옥 보내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나오겠는가?

절친한 친구와 그 아들까지, 한 가정을 박살내버릴 정도로 니콜라스가 매정한 사람인가?

아니다. 그 무엇도 아니다.

“김현택 소장을 쓰러트린 약도 바로 그것일 겁니다. 그리고 류 박사가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확산을 막아낸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탄저균 펜스……."

누군가 중얼거렸다.

“류 박사는 본래 탄저균을 생물 병기로 개발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연구를 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아프리카에 가서 불과 며칠만에 탄저균 펜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이건 스웨덴 학회에 가서 일주일 사이에 체내 유전자 외과 수술법을 개발한 것과 다릅니다. 아프리카에 갔던 류 박사한테는.”

윤보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에이바이오의 그 누구도 류 박사를 따라가지 않았죠! 단신으로, 그 어떤 장비도 없이 혼자서 아프리카에 가서! 탄저균 펜스를 불과 일주일만에 만들어냈단 말입니다. 그 정도의 일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윤보현이 말했다.

“탄저균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난 수준으로 높았기 때문이죠. 왜? 탄저균의 생물 병기 개발자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큰 증거가 지금 아프리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류영준 박사가 설치한 탄저균 펜스가 본래 탄저균 생물 병기에서부터 유래했기 때문에, 그곳에는 병기화된 탄저균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들이 다시 한 번 놀랐다.

“탄저균이 돌고 있다고?”

“류영준 박사를 공개적으로 규탄합니다. 그 사람은 살인자이며,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확산을 막겠다는 목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함부로 사용해서 심각한 질병의 유행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저는 절대로 이런 사람을 에이젠과 에이바이오의 대표 이사로 받들 수 없습니다. 두 회사의 합병 과정을 지켜보는 많은 주주들은 이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덧붙였다.

“경찰은 하루 빨리 류영준 박사를 구속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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