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 GSC (5) >
모기 13종 중에서 흰줄숲모기를 우선적으로 잡는다.
여기서 성공하면 나머지 모기들을 제거하는 것도 순차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지구상에서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이는 생물은 모기입니다. 세계보건기구의 리포트에 따르면 모기에 의한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는 매년 100만 명으로, 웬만한 전쟁 이상의 피해를 꾸준히 누적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로 이 문제를 완전히 근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류영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수많은 GSC 과학자들이 손을 들었다.
“저는 핵물리학이 메이저라서 사실 생태학은 잘 모릅니다. 거기 있는 류 박사님이나 레지옹 박사님이 더 잘 아시겠죠.”
로버트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포인트는, 인간이 생물 종 하나를 절멸시켰을 때 그것이 초래할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게 정말로 가능한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레지옹이 물었다.
“왜냐하면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자연계에 생물체가 엄청나게 많지 않습니까? 그 중 하나가 사라졌을 때 초래하게 될 먹이사슬 구조의 변화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로잘린은 할 수 있는데.
류영준은 속으로 웃었다.
아무튼 이건 예상 질문이다. 류영준 팀에서 이미 준비를 했던 것이었다.
“우선 저희는 흰줄숲모기와 관련된 직, 간접적 피식자와 포식자들 2,000여 종을 전부 조사하고 생태계의 생물 영양단계 (Trophic level)를 확인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 중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전혀 없습니다. 또한 붉은곰팡이 예측으로 한 번 유명해졌던, 타냐 맨커 대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시뮬레이션도 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자연계에서 어떤 변수가 작동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루이스 박사가 끼어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으로 탄소 기반 다공성 섬유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모든 과학은 항상 확률 싸움이지 않습니까? 만약이라도 생태계 균형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그런 만약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레지옹이 말했다.
“하지만 바로 세계 단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좀 무리가 있습니다.”
생태학자 제인 달리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보통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는 작은 공간에서 먼저 파일럿 테스트를 해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중국 광동성의 두 개의 섬에서 이 실험을 선행 테스트할 예정입니다. 흰줄숲모기를 멸종시키는 데 성공하면 그것을 세계적으로 확대할 겁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볼바키아 박테리아가 다른 생물체로 전이될 확률은 없습니까?”
제인이 물었다.
“그 부분을 저희가 실험적으로 테스트했습니다.”
류영준은 새로운 슬라이드를 열었다.
거기에는 1,300 종의 곤충들을 대상으로 볼바키아 감염 실험을 진행한 결과가 실려 있었다.
“볼바키아는 일부 곤충들에게 감염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염력이 낮아서 다른 곤충으로 확대되지 않습니다.”
“모기가 다른 동물 피를 빠니까 그 과정에서 옮겨질 수 있잖아요?”
로버트가 질문을 던졌다.
“아닙니다. 볼바키아는 생식선에서 증식하고 그곳에만 머뭅니다. 모기의 흡혈과정에서 볼바키아가 이동하지는 않습니다. 이 역시 실험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류 박사가 하는 실험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만……."
제인이 중얼거렸다.
“광저우의 사자이(Shazai) 섬과 다다오사(Dadaosha) 섬에서 실험을 진행할 겁니다. 그 결과를 보면 모든 게 명확하게 보일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중국 정부에서 허가는 받았습니까?”
허찌엔칭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또 얘기가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한 번 확인해보시죠.”
허찌엔칭이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소립니까?”
레지옹 박사가 물었다.
“글쎄요, 뭐. 결국 이 정도의 실험은 실험자의 이름을 믿고 허가를 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제적인 이슈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죠.”
“류 박사님은 붉은곰팡이 유행을 예측하고 에볼라 확산을 방지한 사람입니다. 지금 있는 과학자들 중에서 생태학으로는 두 번째 정도는 될 겁니다.”
레지옹이 말했다.
“첫 번째는 저고요.”
“글쎄요. 제가 중국 정부 쪽에 줄이 좀 있어서 이런저런 소식들을 듣는데, 아프리카에서 요즘 여러 가지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던데요.”
“……. 조언 감사합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세미나는 무난하게 끝났지만 뒤가 좋지 않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류영준은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나와서 GSC 회의 담당자에게 물었다.
“오늘 참가자 중에서 미셸 박사님 계십니까?”
“아니요. 미셸 박사님은 참가 신청했다가 국제회의 열리기 며칠 전에 취소하셨어요.”
“취소했다고요?”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온다고 하셨습니다.”
류영준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어 미셸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
“뭘 했다고?”
윤대성은 충격으로 몸이 굳었다.
이제 합병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다. 대표이사 선출만 하면 끝이다.
그리고 윤보현이 가지고 온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
“탄저균 생물무기 있잖습니까. 아버지가 개발하셨던 거요.”
윤보현이 말했다.
“제가 그걸 아프리카에 팔았습니다.”
"......."
“김현택 소장님이 하나 갖고 계셨죠? 근데 지금 의식불명이고. 아버지한텐 하나밖에 없고. 그럼 나머진 어디에 있을까요? 소장님들한테 여쭤보니 길형택 소장님한테 있더군요.”
“그래서……."
“길형택 소장님한테 그걸 받았습니다. 이미 다 죽은 세포들인데다 수컷만 있었지만 쓸 방법은 있죠. 옛날에 아버지는 아프리카에 그걸 팔았었으니까.”
"......."
“남수단 반군이 그걸 사갔습니다. 그들은 원래 탄저 생물 병기를 쓴 적이 있었죠. 제가 보내준 세포에서 유전자 몇 개만 추출해서 갖고 있던 생물 병기를 다시 활성화시켰습니다. 그들은 암컷만 갖고 있었거든요.”
쩍!
윤보현의 뺨이 홱 돌아갔다.
윤대성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윤보현을 쏘아보고 있었다.
“뜻밖이군요. 절 비난하실 자격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처음 시작하셨던 것을 제가 되풀이했을 뿐인데요.”
"......."
“이미 발병이 시작됐습니다. 남수단만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몇 개 국가에서 사고가 터지고 있죠.”
윤보현이 말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냐?”
“지금 남수단 반군이 탄저 생물 병기를 터뜨리는 지역들이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앙골라, 르완다, 부룬디, 잠비아, 그리고 콩고 공화국."
"......"
“류영준이 탄저균 펜스를 설치했던 곳입니다.”
“넌 대체……."
“아버지. 류영준 신화는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 그런 상대일수록 무너뜨리기가 쉽습니다. 정의롭고 윤리적이고 천재적인 인물. 영웅적이고 위대한 사람일수록 먹물 한번 끼얹는 것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법입니다.”
"......."
"탄저균 펜스는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류영준이 그곳에서 에볼라를 억제하기 위해 잘못된 기술을 사용한 덕분에 아프리카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기 시작할 거라고요."
털썩.
윤대성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소파에 주저앉았다.
“자수하겠다고 하셨죠? 아직도 하실 겁니까?”
윤보현이 물었다.
"......."
“이젠 모든 칼자루를 아버지가 쥐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폭로하면 저는 감옥에서 썩을 것이고 류영준은 에이젠의 대표가 될 겁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니 또 아프리카에 가서 이 사태를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윤보현이 말했다.
“바람직한 길입니다. 원하시면 그렇게 하시지요.”
윤대성이 이를 바득 갈았다.
“저는 아버지께 모든 걸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그가 윤대성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절 감옥에 보낼 용기가 없으시면 그냥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그 괴물을 어떻게 파괴하고 우리가 일궈온 회사를 어떻게 지켜내는지. 천천히 즐겨주십시오.”
“……. 오늘 아침에 캐스나인으로 유전자 조작 아기가 탄생했다는 뉴스를 봤다.”
윤대성이 말했다.
“그것도 네가 한 일이니?”
“작년에 류영준이 캐스나인을 처음 보고했을 때부터.”
윤보현이 빙그레 웃었다.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중국에 페이퍼 컴패니를 차린 적 있지 않습니까? 그걸 통해서 제가 펀딩을 했죠.”
"......."
윤대성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류 박사가 몰락하면 그 다음엔 어쩔 것이냐?”
윤대성이 물었다.
“에이젠의 모든 연구는 이미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고 있어. 류 박사가 사라지면 어떻게 할 거냔 말이야.”
“하하하.”
윤보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류영준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것이죠. 아버지. 에이젠은 에이바이오와 합병할 겁니다. 에이바이오가 지금 어떤 약들을 가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어떤 연구자들을 고용해뒀는지 아십니까? 전부 아이비리그 교수 수준들이에요. 연구해온 게 있으니 여길 쉽게 떠나지도 못할 것이고요.”
"......."
“류영준이 없어지면 잠깐 혼란은 있겠지만 너무 커져버린 에이젠은 어차피 세계 1위 기업일 테고 아무도 위협하지 못합니다. 콘슨앤커슨? 가소로운 상대죠.”
“류영준이 그곳으로 가면?”
“못 갈 겁니다. 그 사람은 이번에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모든 가치를 잃어버릴 테니까.”
“아직도 뭐가 더 남은 거냐?”
윤보현은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는 우리 CTO님 입단속이나 잘 해주십시오. 그 분은 류영준을 특히 예뻐하는 사람이니까.”
***
GSC 국제회의 이틀째.
오늘은 물리학 세션이 주로 열린다. 천체 과학자들이 블랙홀 촬영과 관련된 안건의 발표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발표가 시작 되기 앞서 회의 한국 GSC 지부의 김준석 지부장이 단상에 튀어 올라왔다.
그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오늘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크리스토프 박사님이 긴급하게 전달할 사항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가 말했다.
크리스토프는 WHO에서 일하고 있는 GSC 멤버다. 감염병을 연구하면서 각국 정부의 질병관리본부에 자문을 해주는 사람이다.
“아프리카에서 탄저병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프가 마이크를 잡았다.
“탄저병이 확산되고 있다고요?”
류영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 콩고 보건복지부의 미셸 박사님으로부터 들어온 정보들을 지금 모두 풀어드리겠습니다. GSC에서도 이 분야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협력 부탁드립니다.”
크리스토프가 설명을 시작했다.
“얼마나 심각합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사망률이 90퍼센트 수준으로 대단히 높고 전염성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90 퍼센트!”
과학자들이 수군거렸다.
“감염 경로는요?”
류영준이 물었다.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신체에서 주로 피해를 입는 쪽이 어딥니까? 소화 계통인가요?”
“호흡기라고 합니다.”
“호흡기?"
류영준의 얼굴이 굳었다.
보통 사람이 탄저균에 감염될 때는 감염된 고기를 섭취해서다.
그 경우에는 소화 기관에 피해가 간다.
하지만 호흡기라니?
그리고 그 얘기에 충격 받은 사람이 류영준 외에 한 명 더 있었다.
생물 무기 금지 협약을 이끌어냈던 위대한 시스템 생물학자 메셀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