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 GSC (2) > (26/301)

170화.  < GSC (2) >

에이바이오는 200억에 창설된 회사다.

그러나 불과 1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루었다.

본래 중소 제약사들이 강력한 신약 하나만 내놓아도 순식간에 빅파마 (Big Pharma) 바로 아래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근데 에이바이오는 그런 신약들을 벌써 10여 개를 훨씬 넘게 뽑았다.

기반 기술로 미래 의학의 트렌드를 바꿀 수 있는 줄기세포와 캐스나인을 가지고 있다.

자회사 형식으로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와, 차세대 병원을 가지고 있다.

에이젠 생명 역시 에이젠의 자회사로 되어있지만, 윤대성에게 경영을 일임했을 뿐이다. 실제 지분 구조는 에이바이오와 류영준이 더 많이 갖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정도로 대변혁을 겪는 회사는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에이바이오의 가치 평가는 전문가마다 크게 달라졌다.

특히 에이젠과의 합병을 앞두고는 꽤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1. 에이젠보다 시총이 더 높다.

2. 아직 에이젠 정도는 아니다.

3. 에이젠하고 비슷하다.

에이젠은 본래 200조 가치를 갖고 있어서 슈마틱스나 로쥬, 콘슨앤커슨하고 경쟁하던 초대형 제약사다.

200억 짜리 에이바이오가 에이젠과 합병하면서 인수 회사 위치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현재 시가총액을 따지면 에이바이오가 더 높습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건 에이바이오가 너무 빠르게 고속 성장했기 때문에 그 성장력에에 투자된 거예요. 거품이 좀 있을 겁니다.”

어떤 전문가는 그렇게 말했다.

“성장력도 당연히 투자 지표 중 하납니다. 이건 거품이 아니에요.”

“앞으로도 모든 신약들에 다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잖습니까?”

“법인을 합병할 때 시가총액은 1개월 평균주가와 일주일 평균주가, 그리고 전날 종가를 모두 구해서 산술평균하는 겁니다. 그 경우엔 에이젠이 약간 더 높아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에이바이오를 1년 더 둬볼까요? 아니 그냥 한 달만 둬봅시다. 그저께 탈모 치료제가 나왔어요. 다음 달에 에이바이오가 에이젠의 몇 배가 되는지 보실래요?”

“그리고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가치까지 포함시키면 에이젠을 열 개 정돈 살 수 있어요.”

“암 연구소는 미국 법인입니다.”

“미국 법률로 설립된 에이바이오의 자회사죠. 지분 구조를 보면 에이바이오의 소유입니다.”

“그럼 에이젠 생명의 가치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거기도 매년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는 중이라서 국내 보험사들을 다 짓눌러버리는 중인데요.”

“에이젠 생명은 그래도 에이젠의 자회사예요.”

“다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고속 성장은 에이바이오 혼자 한 게 아닙니다. 에이젠도 에이바이오와 시너지를 내면서 초고속 성장을 했어요.”

“에이젠의 중앙 연구지원 시스템이 없었으면 에이바이오가 저렇게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둘은 하나의 몸통을 쓰고 있는 샴쌍둥이 같은 존재예요.”

“에이바이오는 엄청난 신약들을 뽑아냈지만, 정작 매출만 따지면 아직도 에이젠이 훨씬 높습니다. 그 신약들을 ‘생산하는’ 설비 대부분이 에이젠이니까요.”

“에이바이오도 직접 신약 생산합니다.”

“그래봤자 에이젠에 비하면 소량에 불과하죠. 식물 기반 의약품 생산 시설들 대부분이 에이젠의 GMP 공장입니다. 거기서 나온 물량들을 팔아서 매출을 에이젠과 에이바이오가 다시 나누는 것인데 에이젠도 돈을 어마어마하게 쓸어담았어요.”

“생산 공장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바꿀 수도 있습니다. 에이바이오 정도면 새로 지을 수도 있고요.”

“그러지 않기 위한 합병이잖습니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에이젠 제1 연구소는 연잎 효과와 식물 기반 의약품 생산만으로도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습니다. 플랫폼 기술이라는 게 그 정도로 중요한 거예요. 식물 기반 의약품 생산은 앞으로 모든 신약에 적용될 수 있으니까.”

“플랫폼 기술이요? 에이바이오에 지금 캐스나인과 줄기세포가 있다는 걸 알고 하시는 말씀인지?”

“줄기세포는 에이젠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지분 관계가 좀 더럽게 얽혀 있어요.”

“다시 확인해보세요. 생명창조 부서가 에이바이오로 넘어가면서 줄기세포 원천기술 특허권을 거의 다 가지고 갔습니다."

대강 이런 식이다.

수많은 증권사와 회계법인, 경제 전문가들이 이 흥미로운 기업 합병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두 회사 모두 너무 이례적인 상황이라서 어떻다고 가치 평가를 하는 게 불가능했다.

***

“에이바이오 이름으로 통합합시다.”

윤대성이 말했다.

손님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류영준의 눈썹이 꿈틀했다.

오늘은 어떤 결과를 못박기 위해서 찾아온 게 아니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의견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근데 이렇게 쉽게 이야기를 풀어주다니?’

류영준이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에이젠이라는 회사에 정이 많이 드셨을 텐데요.”

“에이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곳 직원들은 모두 그대로 있을 테고, 여섯 개의 연구소도 유지될 것 아닙니까?”

“약속하겠습니다.”

“회사 이름이 에이바이오로 바뀌는 것이고, 에이바이오의 경영 체제가 회사의 엔진부에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에이젠은 그대로일 거예요.”

"......."

“류 박사님.”

윤대성이 말했다.

“네.”

“한 1년 전에 저한테 그러셨죠. 200억짜리 에이바이오를 들고 200조짜리 에이젠과 지분을 일대 일로 교환하자고.”

“그랬죠.”

“정말 그렇게 되었군요. 당시에는 10 퍼센트씩 교환하기로 했는데, 저는 류 박사님한테 경영권을 드리고 합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윤대성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 중년의 경영자는 평생 동안 에이젠을 일궈왔다.

어느 정도 지칠 법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보다 훨씬 피로해보였다.

“나는 이제 물러나야겠습니다. 시골에서 노닥거리면서 남은 세월을 보내야겠어요.”

“……. 감사합니다. 주주총회 후에 채권자들하고 주권자들한테 구주권을 충분히 챙겨줬으면 합니다. 그 과정만 잘 처리해주십시오. 에이젠 주주들이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말입니다.”

“후후. 걱정하지 마십시오. 에이바이오에 인수된다는 걸 알면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윤대성이 말했다.

“그리고 류 박사님. 제가 마무리지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마무리 지을 일이요?”

“이미 알고 계신 일입니다. 에이젠은 과거에 탄저균 생물 병기를 개발한 적 있습니다.”

"......."

“저희는 그걸 미군에 팔았어요. 제 아버지가 에이젠을 만들고 나서 회사 경영이 지지부진해서 망하기 직전이었을 때 그 일을 했죠."

윤대성이 말했다.

“나하고 김현택 연구소장, 그리고 지광만 본부장. 그렇게 몇몇이었습니다. 그게 에이젠을 지금까지 키워준 자양분이 됐어요.”

“생물 무기 개발은 국제법 위반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윤대성은 빙그레 웃었다.

“맞습니다. 류 박사는 정말 칼 같으시군요.”

"......."

"저는 직접 자수해서 그 부분을 깨끗하게 정리할 생각입니다.”

"어려운 결심을 해주셨군요.”

"니콜라스가 오랫동안 설득한다고 고생했어요.”

"......."

“하지만 지금 당장 경찰에 출석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건 류 박사님이 조금만 양해를 해주십시오.”

“자수하는 건 양쪽 회사의 합병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

“그렇습니다. 지금 제가 자리를 비우면 합병도 안 될 가능성이 높아요. 헤드가 자리를 비우고 큰 악재가 터지는 셈인데 주가도 크게 흔들릴 테고. 합병도 연기하게 되겠죠.”

“네."

“하지만 저는 이제 지쳐서 빨리 류 박사님한테 이걸 넘겨주고 끝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합병 후에 류 박사님께서 새로 태어난 에이바이오의 CEO를 맡으세요. 에이젠의 경영에 대해선 전부 인수인계 해드리겠습니다.”

윤대성이 말했다.

“제가 경찰에 출석하는 건 그 다음 날짜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네 달 정도 후가 되겠죠.”

"......."

“그리고 지금 에이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탄저균 생물 무기랑 관련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여기 직원들 미워하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럴 리 없죠.”

“제가 은퇴할 때 아마 니콜라스도 함께 떠날 겁니다. 류 박사님께서 회사 경영과 CTO를 모두 겸하게 되면 많이 힘드실 거예요. 한 쪽에만 전념하고 싶다면 임원급을 하나 고용하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류 박사님.”

윤대성은 잠깐 머뭇거렸다.

“……. 그게……. 저한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드님이요?”

“그리고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이름은 윤보현입니다. 경영 부서에서 지금 과장으로 있어요.”

"......."

윤보현 이름에 류영준은 깜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본래 회사를 물려두려고 했던 앱니다. 하지만 본인 힘으로 부장급까지 올라오라고 방치했죠. 이제 30대 중반이 넘었는데 차장 승진을 앞두고 있습니다. 모두 그 애 혼자 힘으로 한 거예요. 나름 능력 있는 편이죠.”

윤대성이 쓰게 웃었다.

그는 윤보현이 전에 했던 얘기들을 떠올렸다. 윤보현은 직접 류영준을 파괴하고 이 회사를 갖겠다고 했다.

“제 아들놈 잘 부탁드립니다.”

윤대성이 말했다.

류영준에게 윤보현에 대해 경고해줄까 하는 고민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하지만 결국 윤대성은 말을 삼켰다.

“따로 뭘 챙겨주거나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직원 대하듯이 해주십시오. 내버려두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류영준은 대부분의 과정을 박주혁을 포함한 법무팀에게 맡겼다.

이미 윤대성의 적극적인 협조 약속을 받아낸 이상 이쪽에 직접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법에 대해 훨씬 잘 아는 박주혁이 증권사들과 함께 협력해서 잘 처리할 것이다.

대신 류영준은 에이바이오에서 세 명의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생태학을 전공한 기후 변화 전문가인 레지옹.

시스템 생물학자인 메셀슨.

그리고 WHO의 사무총장 테디로스였다.

앞의 두 사람은 GSC 멤버다.

“세 분 다 바쁘신 분들이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간단한 인사 후에 류영준은 그들에게 커피를 한 잔씩 손수 대접해주었다.

메셀슨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GSC 국제회의가 열리기 전에 류 박사님하고 얘기할 게 있습니다.”

메셀슨이 말했다.

“네. 어떤 건가요?”

“우린 모기를 멸종시키려고 합니다.”

“모기요?”

“네. 저랑 여기 있는 레지옹 박사가 옛날부터 이 문제를 연구했었습니다. 게이츠 재단에서 펀딩을 받았죠. 목표하는 종은 ‘흰줄숲모기’입니다.”

“지카 바이러스와 뎅기열의 매개체인가요?”

“맞습니다. 흰줄숲모기는 특히 한국, 일본, 대만, 프랑스, 호주, 하와이 등 선진국들에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종입니다. 이걸 내버려두면 언제든지 뎅기나 지카가 들어왔을 때 유행을 일으킬 수 있거든요.”

류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옛날에 테디로스 사무총장님한테 비슷한 얘길 한 적 있습니다. 모기를 없애자고요.”

이제 이 두 사람이 테디로스 사무총장과 함께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때 류 박사님은 피를 빠는 모기 13종을 전부 멸종시키자고 했죠.”

테디로스가 말했다.

“솔직히 그 얘기를 사무총장님한테 처음 전해들었을 때는 류 박사님이 이 분야를 잘 모르고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레지옹이 끼어들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류 박사님이 에볼라와 탄저를 억제하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에이즈 퇴치 사업은 이제 상당히 성공한 편이라서 꽤 여유가 있습니다.”

테디로스가 말했다.

“류 박사님.”

메셀슨이 말했다.

“흰줄숲모기가 서식하는 국가들이 저렇게 많다는 것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거의 전 세계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겠죠. 에이즈는 비교적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지만 모기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 안건을 GSC 국제회의에서 발표할 겁니다.”

“GSC 회의에서 검증을 거치면 다른 나라 정부들에게 협력을 요구하기가 쉽다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메셀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서 레지옹이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GSC라고 해도 생태학에 대해서는 멍청이들 많습니다. 트로픽 레벨도 모르는 것들. 분명히 반대하고 난리 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준비를 빡빡하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

연의대학병원 중환자실.

윤보현은 한 병상 옆에 앉아있었다. 병상에는 중년의 남성이 누워있었는데 벌써 몇 달째 의식이 없었다.

김현택.

뇌사 판정을 받았다. 뇌 조직의 일정 부분이 죽었다고 했다.

기계 장치를 이용해서 심장을 뛰게 하고 강제로 살려놓은 상태지만, 사실 시체나 거의 다름없다.

윤보현은 김현택의 손을 꼭 쥐었다.

“이제 두 달 정도 남았습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연말 세미나가 지나가고 다음 GSC 회의가 열리겠죠. 소장님.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한 자리에 다 모입니다. 에이젠과 에이바이오가 합병하고 경영권을 나누는 시기도 그때 즈음일 겁니다. 그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기겁할 만한 소식을 듣게 될 거예요.”

윤보현은 김현택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죄송하지만 소장님 이름을 좀 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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