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 GSC (1) >
류영준은 몇 개 국가를 돌면서 탄저균 펜스 설치를 봐준 후, 다시 킨샤사로 돌아왔다.
그는 호텔 레스토랑에 있었다. 미셸이 먼저 도착했고 류영준이 두 번째였다.
“귀국일은 언제인가요?”
미셸이 물었다.
“모레 들어갑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국빈 대접 받으실 분을 이렇게 멀리까지 모셔놓고, 제대로 대접은 안 하고 일만 시켜서 너무 죄송합니다.”
“하하. 아니에요. 덕분에 저도 좋은 연구 했습니다. 논문도 몇 개 건지고 신약 하나와 백신 하나를 뽑고 임상까지 다 마친데다가, 새로운 방역 기술도 연구했죠. 그걸 전부 콩고 정부의 자금으로 했으니 제 입장에서 나쁠 건 없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게다가 치료제와 백신, 탄저균 펜스를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회사 매출도 많이 올랐으니까요.”
“한번 출장에 그렇게 많은 걸 뽑아가는 사람은 류 박사님밖에 없을 겁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럼요.”
짧은 잡담을 나누는 사이 테이블에 한 사람이 더 나타났다.
필립이었다.
“제가 좀 늦었나요? 죄송합니다.”
그가 테이블에 앉으면서 말했다.
“두 분 먼저 식사 하고 계시지 그랬어요. 배 고프셨을 텐데.”
“저희도 방금 왔습니다.”
미셸이 빙긋 웃었다.
필립이 자리에 앉자 서버가 식전 요리부터 하나씩 내오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세 사람은 이번 에볼라 방어전에 대해 얘기했다.
“모든 게 류 박사님 덕분이에요.”
와인을 한 잔 마시면서 필립이 말했다.
“제가 겁에 질린 국민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줘야하는 입장에서, 류 박사님만 너무 치켜세우면 안 되기 때문에 연설에선 짧게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류 박사님이 이번 에볼라 방어전의 최고 공로자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미셸이 옆에서 동의했다.
“대통령님 말씀처럼, 아무리 우리가 작전을 잘 짠다고 하더라도, 결국 치료제와 백신, 탄저균 펜스라는 약물들이 존재하질 않았다면 아무것도 못하는 거였어요.”
“과찬입니다. 진짜 공로자는 따로 있죠.”
류영준이 말했다.
“누구요?”
미셸이 물었다.
“4등급 실험실에서 목숨 걸고 실험해서 치료제를 제품 수준까지 이끌어낸 과학자들 말입니다.”
"......."
필립이 숙연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그건 그야말로 진짜로 ‘목숨을 건’ 연구니까요. 저도 4등급 실험실에서 일 꽤 해봤지만, 솔직히 거기서 일하는 과학자들은 모두 존경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미셸이 덧붙였다.
“그분들 모두 특별 치상을 할 겁니다.”
필립이 말했다.
“하지만 류 박사님이 없었으면 4등급 연구실에서 그 실험 자체를 시작도 못하고 에볼라가 이 도시를 다 쓸어버렸을 거예요.”
미셸이 말했다.
“그래요. 류 박사님. 우리한테 뭐 원하는 게 있으면 얘기해 보십시오. 제가 대통령은 아니지만, 다음에 대통령이 되면 제 능력 닿는 선에서 해드리겠습니다.”
필립이 말했다.
“아까 미셸 장관님한테도 얘기했지만 전 이미 여기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챙겼기 때문에……."
“그래도요. 이대로 보내면 제가 너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국가 차원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원하시면 중요한 지하자원의 국교도 열 수 있습니다. 거의 우방국에 대한 조건으로요.”
그래봤자 국가 차원의 무역과 외교는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불화수소라도 달라고 할까?
잠깐 망상을 하던 류영준은 현실로 돌아왔다.
“필요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은 식사와 와인을 즐겼다.
비록 류영준은 마시는 족족 로잘린이 치워버렸기에 취할 순 없었지만.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만찬의 끝자락.
류영준은 호텔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였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놀라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똑바로 앉아서 다시 휴대폰을 읽었다.
GSC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 류영준의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단신으로 아프리카에 들어가 에볼라 판데믹을 막아낸 해결사.]
“뭐야 이게?”
[과학이 서로 교차하는 것처럼 생물학에선 때때로 질병이 서로 교차한다. 에볼라와 탄저가 융합되면서 발생한 최악의 전염병이 콩고에서 탄생했다.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질 수 있는 치명적인 위기가 있었으나, 콩고 정부와 인접국의 발빠른 대처로 현재는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 배경에는 최연소 GSC 멤버십의 소유자인 류영준 박사의 활약이 매우 컸다.]
"......."
[그것은 치료제나 백신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탄저균에 바이럴 벡터 (Viral vector)를 심어 에볼라의 유전자 일부를 전달하고, 그로 인해 탄저균이 에볼라에 저항성을 갖게 만들었다. 에볼라가 감염 루트로 활용하던 탄저균을, 오히려 에볼라의 포집 장치로 변모시켜 확산되는 에볼라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기존의 과학계에서 사용하던 방역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다. WHO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보건 당국들은 앞으로의 방역망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은 생물학적 펜스를 설치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한…….]
류영준은 이 특집 기사가 무엇을 노린 것인지 곧 깨달았다.
기사 말미에 다른 공지사항의 링크가 있었다.
-GSC멤버십 국제회의 소집.
-장소 : 한국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
***
GSC는 본래 프랑스 파리에 세워진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서부터 시작했다.
국왕에게 일정한 급여를 받으면서, 그 대가로 위탁 받은 과학 문제들을 풀어내던 과학자들이었다.
처음에는 수학과 철학을 집중적으로 파다가 나중엔 점차 물리학, 화학 등으로 넘어갔다.
영미권과 협력하면서 점차 조직의 특성이 국제적으로 변해가다가 아예 GSC라는 그룹으로 독립한 것이다.
‘100명의 위대한 과학자’라는 개념은 독립 당시에 처음 생긴 것이었다.
1, 2차 세계대전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을, 국경이 없는 과학의 힘으로 치유하고 화합하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멤버십은 딱 100명만 존재한다.
하지만 점차 기관이 커지면서 일반 과학자의 회원 가입 시스템을 따로 만들게 됐다.
“일반 회원 가입은 훨씬 조건이 부드러워서 회원 수가 200만 명이 넘어요.”
다음 날 오후, 티타임을 가지면서 미셀이 말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좀 황당한 말이었다.
그 일반 회원들 대부분이 최소한 대학의 연구교수나 기업체의 수석 연구원급 이상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도 많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카펜티어 같은 인물도 일반 회원이다.
“하지만 그 200만 과학자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GSC멤버십 국제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어요. 그 국제회의는 한 군데 장소를 골라서 100명의 멤버십 보유 과학자들만 초대하고 그들한테만 참석권을 주거든요.”
미셸이 말했다.
“장관님 혹시 GSC에 실린 기사 보셨어요?”
류영준이 물었다.
“그럼요. 봤죠.”
“……. 이번 일에 대해서 꽤 구체적인 정보들도 들어가있는데. 혹시 장관님한테는 기사 싣는다고 연락 같은 거 왔었나요?”
“네. 류 박사님한텐 연락 안 갔나요?”
“네."
“혹시 계정에 개인 정보 업데이트 하셨어요?”
“개인 정보요?”
“거기서 연락처 입력하고 수신 동의 같은 걸 해야 GSC 행정 팀에서 연락을 줄 거예요.”
“그렇군요.”
“아마 류 박사님 이야기를 실은 건 떡밥일 거예요.”
“떡밥이요?”
“GSC 멤버들 전부 다 자존심 굉장히 세고 엄청나게 바쁜 사람들이에요. 전 세계 모든 과학자들 중에서 100명만 추린 건데 당연히 그렇겠죠.”
"......."
“무슨 말이냐면, 국제회의를 소집하면 오는 사람은 50명도 안 된다는 거예요. 보통 30명, 40명 안팎이고 흥미로운 이슈가 있어서 많이 몰려들면 한 50명 정도 됩니다.”
“근데 이번에 서울에서 열게 됐으니까 제 이야기를 썼다는 건가요?”
“반대일 거예요. 류 박사님이 지금 과학계의 핵심에 있으니까 한번 집중 조명을 해주고, 서울에서 개최하는 거죠.”
“아……."
“하지만 GSC 국제회의는 꽤 배울 점도 많고 사교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한번 참석해보세요.”
GSC는 단순히 생물학이나 의학 종사자들만 모인 곳이 아니다.
천체 물리학이나 수학, 유기화학, 컴퓨터 사이언스 등.
수없이 많은 과학 영역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의 정예 클럽이다.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이공계의 모든 종목에서 최고의 브레인만 모아놓은 셈이다.
GSC의 목표는 딱 한 가지였다.
‘과학계의 통섭.'
예를 들어서 SC전자의 전자공학과 에이바이오의 생물학이 교차하면서 진단 키트가 탄생한 것과 같다.
서로 다른 영역의 과학이 시너지를 일으킬 때 그 결과물은 종종 혁명적이다.
국제회의 역시 그걸 위해서 열린다. 정점에 있는 과학자들이 서로의 연구물과 시각을 공유하면서 놓치고 있었던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쉽게 다룰 수 없는 지구적인 차원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은다.
“회의 주제는 보통 굉장히 일반적이고 거대한 거예요. 이번에 잡았던 에볼라와 탄저균도 회의 종목 중 하나가 될 만하죠. 그 외에도 석유 자원 고갈 문제라든지, 기후 변화, 인구 증가와 고령화 문제 같은 걸 다뤄요.”
미셸이 말했다.
“주제 자체는 대학교에서도 토론할 만한 것들이지만, 우리는 현실적인 답을 생산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라는 점이 다르죠. 아마 제 생각엔 이번에 류 박사님 이야기 엄청 나올 것 같아요.”
“그래요?”
“식량 위기가 3년 전 주제 중 하나였거든요. 그때 나왔던 해답 중 하나도 배양육이었고요. 그걸 류 박사님이 혼자서 해치워버렸죠.”
"......."
“GSC 국제회의는 세계 각국 정부들의 정책 결정에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쳐요. 그러니까 가신다면 잘 해보세요.”
“장관님도 가시나요?”
“그때 가봐야 알겠는데요. 전 아직 콩고의 에볼라에 신경을 쏟아야 하는 입장이라.”
***
한국에 돌아오니 갑자기 그간의 정신적인 피로가 몰려왔다.
에볼라 치료제와 백신 개발부터 탄저균 펜스 연구와 개발, 인접 국가 정부들의 설득과 설치.
로잘린의 도움을 받아도 이런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도 다 끝난 후에 호텔에서 며칠 쉬면서 회복된 줄 알았는데.’
몸은 회복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그때까지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공항에서 김송미 비서를 만나니 그제야 일이 끝났다는 느낌이었다.
“근데 너는 왜 왔냐?”
류영준이 김송미 옆에 서있는 박주혁에게 물었다.
“우리 대표님 어디 상한 데는 없으신지 피곤하진 않으신지 확인하고 댁까지 모시러 왔지.”
“왜 그래? 갑자기. 징그럽게.”
류영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 없는 동안 회사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알려줄게. 이건 좀 보안 있는 이슈야. 그리고 중요한 내용이다.”
“그래. 가면서 듣자.”
류영준이 케이캅스 차량에 올라타며 말했다.
먼저 김송미 비서가 그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쭉 얘기해주었다.
“에이젠 제1연구소에서 연잎 효과를 내는 신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김송미가 말했다.
“아 그런 게 있었지……."
솔직히 말하면 류영준 본인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효과가 굉장히 좋대요.”
김송미가 말했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에이바이오에서 생명창조 팀이 ‘인공 간’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성공했군요.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제 인공 장(Intestine)에 이어서 인공 간까지.”
이러다 진짜로 모든 장기 하나씩 생산해서 짜 맞추고 끝에는 심장과 뇌 하나 만들어 넣고 생명창조에 성공하는 거 아닐까.
류영준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카펜티어 박사님 팀이 모낭 조직을 만들어냈습니다.”
“모낭 조직이요?”
‘탈모인들에게 많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하더라고요."
"......."
“펑장 박사님이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와 연계한 연구에서 수지상세포 우회법을 이용해 식도암 치료 전임상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좋아요.”
“그리고 천지명 박사님 팀에서 프로바이오틱스를 식약처에 등록받았습니다.”
“프로바이오틱스요?”
“네. 유전자 조작된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가 들어간 프로바이오틱스예요.”
“식약처 놈들 이제 정신 차렸네.”
옆에서 박주혁이 한 마디 했다.
유전자 조작된 박테리아를 뇌에 집어넣는 미친 짓까지 한 번 벌인 후라서 그런가.
어쩐지 이번엔 쉽게 넘어간 느낌이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지금 허가된 프로바이오틱스는 로잘린의 레벨이 낮을 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로잘린은 훨씬 뛰어난,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유전자가 조작된 박테리아로 이루어진 프로바이오틱스를 제안한 적 있다.
‘천지명 박사한테 미안하지만 조만간 새 제품 가야겠는데…….'
“진척 사항은 여기까지입니다.”
김송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미팅하면서 자세히 들어볼게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는 박주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주혁이 얘기 들어볼까.”
“에이바이오 법무팀에 중요한 일이 하나 들어왔다.”
“뭔데?”
“에이젠 본사와 지분 교환, 그리고 합병.”
박주혁이 말했다.
"윤대성 대표가 너 보고 싶어하더라. 미팅 날짜 잡아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