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 에볼라 (11) >
콩고 동부의 키부.
이곳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이고 황당한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정부군의 임시 치료소에 정부군과 반군과 자원을 약탈하는 외국인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반군을 제압하러 왔다가 에볼라에 걸린 정부군.
정부군에게 테러를 가하려고 조직을 구성하다 에볼라에 걸린 반군.
귀국하기 전에 에볼라로 쓰러진 인접 국가의 밀입국자였다.
에볼라는 평등하다는 로잘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이념이나 물욕도 상당히 무더졌다.
에볼라가 발병해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피를 한 움큼씩 토한 사람들은 차례로 정부군 간이 치료소를 찾았다.
“완전히 항복입니다……. 살려주세요……."
“우간다에서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완치 환자들이 나오고, 무상으로 치료한다는 홍보는 이곳에서도 빠르게 퍼졌다.
닥치는 대로 감염시키고 쓰러트린 죽음의 바이러스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역에 휴전을 만든 것이다.
르완다민주해방군의 우나뮤는 이 낯선 평화가 좀 황당했다.
총을 맞을까봐 공포에 떨고 지뢰를 밟을까봐 살얼음판 걷듯이 밀림을 지나지 않아도 되었다.
정부군에 잡히면 사형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정부군은 자비로웠다.
“군사 재판에 넘겨지긴 할 거야. 하지만 소년병은 요즘은 대부분 징역까지는 안 간다. 그리고 대통령이……. 아니 이제 대통령이 아닌가. 다시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만. 아무튼 필립 대통령이 화합을 강조하는 사람이라서 사형당하는 반군은 거의 없을 거야.”
우나뮤가 부축해서 막사로 복귀했던 콧수염 난 군인이 해준 말이다.
우나뮤는 막사 내에서 어느 정도의 활동을 보장받았으나 도망가지도 않았고 정부군에게 저항하지도 않았다.
정부군 간이 치료소에 들어온지 나흘째 되던 날 정오.
우나뮤는 자기 몫의 배식을 먹고 흙바닥에 앉아서 나무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야! 꼬맹이. 이리와!”
정부군 의사가 우나뮤를 불렀다.
“네!”
우나뮤는 후다닥 일어나서 의사에게 달려갔다.
“이리 와 봐. 네 아빠 이름이 뭐랬지?”
“아빠 아니에요. 이름은 토바예요.”
의사는 작은 천막으로 이동해서 일곱 개의 병상 중 가장자리에 누워있는 남자한테 다가갔다.
“토바 씨. 당신이 찾던 애 데려왔소.”
병상에는 젊은 군인이 누워 있었다. 콧수염이 나있는 남자였다.
르완다민주해방군의 토바다.
“오……."
토바는 우나뮤를 보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는 우나뮤를 왈칵 끌어안으면서 작게 기도했다.
“감사는 나한테 해야지. 내가 고쳐줬는데.”
의사가 옆에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그리고 류영준 박사한테도 고마워하시오. 이 말도 안 되는 치료제를 만들어낸 사람이니.”
“네. 루이-연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그리고 이 꼬맹이는 처음에 당신 죽은 줄 알고 버리고 갔었다구.”
의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습니다. 우나뮤. 어디 다친 덴 없냐?”
“네."
“정말 잘 됐다. 정말 다행이다.”
토바가 우나뮤를 꽉 끌어안았다.
“여기가 7번 치료 막사입니까?”
한 무리의 군인들이 와르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칼같이 각을 잡은 군복을 입은 50대. 콩고 민주공화국의 국방부 헌병대 부사령관이다. 그 옆에는 군 간부들과 사병들이 가득했다.
토바가 바짝 얼어붙었다.
우나뮤를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당신은 반군입니까?”
부사령관이 토바에게 물었다.
“……. 그렇습니다……."
“그래.”
그대로 킨샤사로 압송해서 감옥에 영구적으로 처박아버리거나 사형시킬 줄 알았으나 부사령관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부사령관은 그대로 토바와 우나뮤를 지나쳤다.
어리둥절한 두 사람을 뒤로하고 부사령관은 옆자리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물었다.
“당신도 반군입니까?”
“네? 아닙니다. 저는 르완다 국민입니다.”
“르완다 국민이 여긴 어떻게 왔습니까?”
"......."
“여권을 보여주십시오.”
“그게……."
“여기서 반군이 점령한 금광을 찾아가 반군과 계약하고 금을 밀반출하고 있었습니까?”
“……네……."
남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여기 다른 외국인들이 있습니까?”
“이 막사엔 저 하나뿐입니다.”
“좋아. 당신은 헌병대에 체포되어 킨샤사로 갈 겁니다. 이곳이 내전 지역이라 경찰 대신 헌병이 체포하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부사령관이 말했다.
“체포해.”
그가 명령을 내리자 헌병들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잠깐만요.”
의사가 그 앞에 끼어들었다.
“사령관님. 아직 치료중인 환자입니다.”
“완치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부사령관이 물었다.
“사흘 정도는 약을 더 먹어야 합니다.”
“그럼 사흘 후에 압송하겠습니다.”
부사령관은 밀수꾼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증거와 증인을 모으는 것뿐이니까. 잘 협조하면 처벌이 무겁지는 않을 겁니다.”
"......."
바짝 긴장한 밀수꾼을 보고 부사령관은 피식 웃었다.
이웃 나라들에서 치료제 판매를 부탁했다.
콩고 정부는 이번 기회에 현행 체포된 밀수꾼들을 들이밀면서 그들에게 강하게 항의할 계획이었다.
***
일주일이 지났다.
에볼라 유행 1파가 잦아들었다.
소란이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먼저 이번 에볼라 대유행에 대한 발 빠른 대처의 모든 공로를 미셸 장관님께 돌립니다.”
필립은 대국민 담화문에서 말했다.
“미셸 장관님은 이 사태의 시작을 가장 먼저 예견하신 분입니다. 마이비 도시에서 최초의 확진자가 나온 이후 국내의 에볼라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에 대해 상당한 깊이의 연구를 하셨고, 마침내 탄저균을 통해서 확산될 수 있음을 알아내셨습니다.”
필립이 말했다.
“그리고 미셸 장관님은 이곳으로 과학계 최고 스타인 류영준 박사님을 모셨습니다. 그 분의 도움을 받아서 에볼라의 치료제와 백신을 시간 내에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류영준 박사님께 특별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아직 승전보를 올리기에는 조금 이르다.
미셸은 꼼꼼한 완벽주의자적 성격 탓에 발표를 늦추라고 했지만 필립은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국민들의 공포를 잡아주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니까.
“이번 사태는 자칫하면 콩고 전체에 걸쳐서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낼 수도 있는 위험한 재난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셀 장관님과 류영준 박사님, 그리고 콩고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분전해주었고, 국민 여러분이 빠르게 문제를 인식하고 적극 협조해주신 덕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필립이 말했다.
“여러분. 우리 나라는 지금 큰 격변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땅은 서유럽을 모두 합친 것만큼 큽니다. 류영준 박사님의 고국인 한반도의 열 배에 이르는 넓은 땅입니다. 지하자원은 수십조에 이릅니다. 일찍이 이 땅은 아프리카의 심장이라 불렸던 곳입니다.”
그는 마이크를 꽉 쥐었다.
“그동안 우리 땅에는 내전과 테러, 독재와 질병 등의 위협으로 공포가 번져 공황에 빠지고 서로 이념이 부딪쳐 오랫동안 반목했습니 다. 하지만 보십시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두 질병이 혼합해 일으킨 대유행도 견뎌냈습니다.”
국민들은 숨소리까지 죽이고 필립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필립은 여러 번 다듬고 읽었던 연설문인데도 이 순간, 진심으로 가슴 속 한 구석이 울컥했다.
“첫 발병 이후 지금까지. 아직도. 이 위대한 아프리카의 심장에서 에볼라 사망자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시민들을 구해냈습니다.”
목젖 아래로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삼켰다.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 빈곤 국가.
국제 사회에서 이곳이 어떤 이미지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힘든 여건 속에 있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 떨어진 거대한 재앙을 견뎌냈다.
“물론 아직 에볼라 유행은 전부 제거된 게 아니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이제는 정부가 에볼라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직장으로 돌아가서 밀린 업무를 보시고, 가족들과 함께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십시오.”
필립이 국민들에게 말했다.
“에볼라가 여러분의 삶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콩고 정부가 막겠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거대한 재난을 넘어선 것처럼, 앞으로도 모든 문제를 해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해방군과의 내전도, 민족간의 갈등도, 강대국의 수탈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강합니다. 우리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
서울 서초구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 내 정원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고용주와 직원 관계이면서 동시에 부자지간이었다.
에이젠의 대표 윤대성과 그 아들 윤보현이었다.
회사에서는 과장과 대표이사 정도의 거대한 격차가 있으니 윤보현이 깍듯이 모시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윤대성은 윤보현에게 대기업을 운영하는 제왕, 재벌의 길과 카리스마를 가르쳤다.
그리고 윤보현은 그걸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천부적인 사업 감각과 계획 능력.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시장과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볼 줄 알았다.
에이젠의 임원들 모두가 류영준을 지켜만 보고 있었을 때, 그의 성장성과 위험성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도 윤보현이었다.
류영준이 조그마하던 시절, 지광만을 종용해서 제거하려 했던 것도 윤보현이었다.
‘이제는 나 이상이다.’
윤대성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윤보현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후계자였다.
아버지와 아들. 대표와 직원이 아니다. 윤대성은 그를 한 명의 사업가로 인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이따금 이런 사석에서 맞담배도 피웠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윤보현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물었다.
“말 그대로다. 나는 이제 에이젠에서 물러날 거야. 그리고 에이바이오와 합병 후에 전권을 류영준박사에게 넘겨줄 생각이다.”
윤대성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진심입니까?”
“그리고 탄저균 생물 무기를 개발했던 건에 대해서 자수할 거야. 너도 그렇게 알고 있어라.”
"......."
윤보현은 윤대성을 빤히 쏘아보았다.
“아버지.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그걸 물려받는 걸 목표로 공부하고 일을 해왔습니다. 에이젠을 위해서 학창 시절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을 바쳤어요.”
“알고 있어.”
“그걸 아시면서 저를 버리고 류영준, 그 놈에게 모든 걸 주겠다는 겁니까?”
"후......."
윤대성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넌 10년 넘게 투자한 회사지만, 나는 평생을 투자한 회사다. 보현아."
윤대성이 말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난 류영준 박사한테 이걸 넘겨줘야 해. 그 사람은 그저 그런 사업가나 똑똑한 과학자가 아니야. 그 사람은 우리 같은 범인이랑 다른 사람이다. 내가 아끼는 회사인 만큼 나는 내가 떠난 후에도 잘 됐으면 좋겠어.”
“제가 맡아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저한테 승계해주시는 거였잖아요!”
윤보현이 윤대성의 팔을 거칠게 붙잡으며 말했다.
“넌 안 된다.”
그러나 윤대성은 딱 잘라 말했다.
“너는 그 사람을 이길 수 없어.”
"......."
“나도 이길 수 없다. 데이비드 대표도 이길 수 없지. 압도적인 천재가 존재하는 시대에 범인들은 그 사람의 그림자에서 살아야 해. 네가 에이젠을 경영하려고 하면 류 박사와 충돌한다. 그리고 파멸하는 건 무조건 너야.”
“아버지!”
“그만. 이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류영준 박사에게 에이젠을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 집 가세가 기울거나 하지 않는다. 우리 지분을 류 박사한테 처분하면 돼. 그것만 해도 네가 죽을 때까지 풍족하게 쓸 수 있는 돈이 될 거야.”
“……. 전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건 경영권이에요.”
“그래. 내가 심어준 꿈이지. 미안하지만 이제 그 꿈을 포기해라.”
"......."
윤보현은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이 들이마셨다.
“아버지.”
그가 말했다.
“사실 저는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승계한다면 슬슬 제 앞으로 자회사를 하나 쯤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커진 건 에이바이오였죠. 전 반쯤은 예상했습니다.”
"......."
“아버지는 사업가인 척 하시지만 가슴 속 어딘가는 과학자거든요.”
윤보현이 말했다.
“하지만 저는 과학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전 항상 사업가예요.”
“보현아. 제발.”
“제가 폭주하는 류영준을 그동안 왜 내버려뒀을까요?”
윤보현이 물었다.
“지광만 본부장이 실패했기 때문에 제가 쫄았을까요?”
윤보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둔 건 아직 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류영준은 똑똑한 과학자 정도가 아니죠. 천재적이고 연구윤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저돌적으로 날뛰는 맹수 같은 놈입니다.”
"......."
“제가 류영준을 못 이긴다고 하셨죠? 그 얘기 후회하실 겁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모두가 류영준이 차려놓은 잔칫상에서 떡고물이나 주워 먹으려고 옆에서 안달복달할 때, 저는 그 상을 뒤엎고 그 놈 머리채를 쥘 방법을 줄곧 연구해왔거든요.”
“보현아. 그만 해라. 부탁이다. 네가 상대가 안 된다고!”
“그게 틀린 부분입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지광만 본부장도 실패했고 슈마틱스도 실패했지만 전 아닙니다. 두고 보십시오. 제가 그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
윤보현은 윤대성에게 바짝 다가왔다.
“그때는 제게 경영권을 주고 사과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