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 에볼라 (9) >
콩고 민주공화국의 동부 지역 키부.
“아아악!”
후투족 소년병 우나뮤 스탱은 막사에서 비명을 질렀다.
어제 저녁에 피곤하다며 기침을 하던 어른들이 모두 쓰러져버렸다.
피도 한 움큼씩 토했다.
텅스텐을 팔러 르완다에 다녀왔던 우나뮤를 제외하고는 해방군 진영 내의 모든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
우나뮤가 죽은 시체 중 하나를 마구 흔들었다.
남자의 콧수염에 손을 갖다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해보았다.
호흡이 없다.
우나뮤는 풀썩 주저앉았다.
“아저씨……."
그는 고아였던 우나뮤를 갓난아기 때부터 키우며 사격을 알려주었던 해방군 전사였다.
매일 학대와 폭행을 일삼는 이곳 어른들 중에서도 그는 매우 친절한 편이었다.
우나뮤에겐 아버지와 같았다.
“으......으으......."
공포에 질린 우나뮤는 막사에서 튀어나와 정신없이 달렸다.
그러다 어떤 광경을 발견하고는 우뚝 멈췄다.
백빽한 밀림 속.
고릴라 몇 마리가 어른들과 똑같은 모양으로 죽어 있었다.
우나뮤의 머릿속을 한 줄기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에볼라다.’
전신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총이나 지뢰보다 훨씬 무서운 학살자. 아프리카를 지배하는 최상위 포식자.
소리 없는 암살자처럼 에볼라는 조용히 막사 내로 들어와서 모두를 죽이고 떠났다.
‘나, 나도 어찌면…….'
이미 이곳에 돌아온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이미 시체들도 잔뜩 만졌다.
“으으.......”
그들을 건드렸던 손을 도려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겁에 질린 채 바닥에 주저앉은 우나뮤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움직이지 마!”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우나뮤의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였다.
십수명의 군인들이었다.
“콩고 정부군이다. 총 내려놔.”
소위가 말했다.
우나뮤는 총을 내려놓았다.
“도, 도와주세요……."
“뭘 도와줘?”
“어른들이 다 쓰러져서……. 저희는 항복합니다......."
“무슨 개소리야? 어른들이 쓰러져?”
소위가 황당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커헉.”
갑자기 뒤에서 정부군 군인 중 하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며칠 전부터 피곤하다, 감기 기운이 있다며 앓는 소릴 하던 리튜이 상병이었다.
그의 손가락 틈새로 피가 흘러나왔다.
“뭐, 뭐야?”
소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아무래도 몸이 좀 안 좋……."
리튜이 상병은 나무를 붙잡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겁에 질린 눈으로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벌써 동료들 모두가 리튜이 상병한테서 3미터씩 물러난 상태였다.
“……. 전원 복귀한다. 리튜이 부축하고 이 애 수갑 채워.”
소위가 명령을 내렸다.
“부, 부축이요?”
그 옆에 있는 군인들이 당황하며 물었다.
“두 번 말해야 돼? 부축해!”
“하지만……."
“소위님 ……."
군인들이 울상이 되었다.
"......."
“소위님……. 도와주십시오……."
리튜이 상병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터지기 직전인 대전차 지뢰라도 되는 것처럼 손댈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제, 제가 부축할게요……."
후투족 반군 소년병 우나뮤가 말했다.
“뭐라고?”
소위가 그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저는 이미 감염됐을지도 몰라요……. 아까 해방군 어른들 시체를 많이 만져서."
"......."
“대신 나중에 군사 재판 때 이걸 참작 사유에 넣어주세요.”
“……약속하겠다.”
우나뮤는 조심스럽게 리튜이에게 다가갔다.
그의 팔을 어깨에 두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까이서 보니 처음 보는 리튜이의 얼굴이 어쩐지 낯익었다.
이 남자도 우나뮤를 돌봐주었던 그 남자처럼 콧수염을 길렀다.
정부군 진영으로 돌아온 소위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오늘 오전에 킨샤사 정부에서 보내준 겁니다.”
[에이바이오]
회사 로고가 담긴 엠플들이 트럭 한 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에볼라 치료제라고 합니다.”
***
콩고에서는 순식간에 에볼라 확진자가 30만 명을 넘겨버렸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입니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요!”
미셀은 재난 대책 위원회에서 소리를 질렀다.
“이번 에볼라는 파상 공세처럼 올 겁니다. 이건 제1 파에 불과해요. 이번 공격이 물러가면 두 번째, 세 번째 확진 대란이 이어서 올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에볼라는 잠복기일 때는 주위로 퍼지지 않아요. 하지만 발병하면 체액으로 감염이 확산될 수 있습니다. 지금 감염자들이 30만이나 나왔으니 그들로부터 주위 시민들에게 감염이 확산될 겁니다.”
미셀은 인구 밀집 지역들과 확진자 숫자의 통계가 색깔로 표시된 지도를 펼쳤다.
“새로 확산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히고 치료제를 추가로 확보해야 합니다.”
“이미 접종은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백신 물량이 없어서 못 맞히는 상황이에요.”
보건복지부 과학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누구 하나도 예외 없이 죄다 몰골이 말이 아니다.
아마 동쪽 키부 지역에서 내전을 치르는 군인들도 이 정도로 피폐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치료제의 양은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2파나 3파도 막아낼 정도인지는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에이바이오한테서 워낙 대량으로 샀잖습니까?"
니자르가 말했다.
“다행이군. 동부 쪽은 어때요?”
“동부 쪽에도 치료제와 백신을 상당량 보냈습니다.”
“좋아요.”
“근데 장관님……."
보건복지부 직원 중 하나가 말했다.
“키부 지역 반군들한테도 치료제를 나눠줘야 합니까?”
“……. 나눠주세요. 대통령 명령입니다.”
“지금은 대통령 아니시잖아요. 재선거 출마도 안 하셨고……."
“……. 나눠주는 데 반대입니까?”
보건복지부 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 가족들 모두 반군들의 테러로 죽었습니다.”
"......."
미셀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러분. 과학자답게 생각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감염자가 한 명 더 늘어난다는 것은 방역에 한 개의 구멍이 생기는 걸 의미합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바이러스가 더 확산되어 더 많은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
“우리가 반군과 서로 총을 겨눈다 해도 외계인이 오면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볼라도 마찬가집니다. 기존 계획대로 동부 반군들에게도 치료제를 나눠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솔직히 동부에 있는 정부군들이 그 명령대로 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 여기도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우니 거기까지 통제할 자신은 없고……. 그냥 그 사람들을 믿어봅시다. 근데 류 박사님은 어디 계세요?”
“그저께 오전에 뵈었는데 어디에 좀 가봐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 후로 지금까지 연락 두절 상탭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일단 계획했던 것대로 방역망 세우고 진행합시다.”
***
세계보건기구 (WHO)는 이번 사태에 엄청난 경각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2014년 에볼라 대유행 때 서아프리카에서 모두 합쳐 1만 여 명이 죽었다.
그러나 지금은 벌써 확진 환자가 콩고에서만 30만이 넘는다.
콩고에서 있었던 가장 큰 내전으로 100만 명이 죽었다.
하지만 몇 년에 걸친 일이다.
지금 에볼라는 확산 첫 날에 30만 확진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에볼라의 치사율은 굉장히 높다. 통계마다 다르지만 60 퍼센트에서 90 퍼센트까지 점치기도 한다.
과연 이 미친 생물 재해가 어떤 결과를 낼까.
“이미 콩고에서 인근 지역으로 다 확산됐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케나의 WHO 미팅.
아침에 국제 백신 연구소를 비롯해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WHO 과학자와 의사들, 질병관리본부의 직원들이 몰려왔다.
감염 확산 대책과 방역망을 설계하고 각자 자국으로 전파될 가능성을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 자리에 모인 그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박소연 박사님. 진단 키트는 어떻습니까?”
국제 백신 연구소에서 온 케빈 박사가 물었다.
“진단 키트는 본래 아시아와 미국 등지의 선진국에서 쓰기 위해서 개발됐던 거예요. 에볼라는 진단 대상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에볼라를 진단 키트에 포함시키도록 추가 개발했는데 아직 효율이 낮아요.”
WHO의 직원으로서 아프리카 케나 지부에서 일하던 박소연이 대답했다.
“……. 하긴 그쪽으로는 감염이 그렇게 확산된 적이 없으니까.”
과학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콩고 민주공화국 동쪽 키부 지역을 비롯해서 이미 밀림 전체가 에볼라와 탄저균에 감염됐습니다. 르완다와 부룬디, 우간다, 탄자니아, 잠비아, 앙골라도 감염되었다고 봐야죠.”
“케나는 아직까지 감염 징후는 없습니다.”
“부디 여기까지 안 넘어오면 좋겠는데. 지금에라도 방역망 다시 세우고 확산을 막아요.”
“다행히 우간다와 케냐는 서로 심각한 분쟁은 없으니까. 협조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면 될 겁니다.”
과학자들이 떠들어대는 걸 들으면서 박소연은 휴대폰을 열었다.
“앗..! ”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일이에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의사가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박소연은 메일을 열었다. 류영준이 보낸 것이었다.
-에볼라는 콩고의 이웃 국가로 감염이 확산되지 않습니다. WHO에 전해주세요. 인근 국가 정부들과 연계해서 판데믹을 방지해주세요.
[첨부 파일 : 프로젝트명, 탄저균 펜스.pdf]
짧고 간략한 메일이었다.
류영준은 박소연이 WHO에 들어가서 아프리카 지부에서 일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
탄저균 펜스?
이게 대체 뭐야?
박소연이 파일을 열었다.
***
모든 과학자들의 염려를 보기 좋게 털어내고, 탄저균과 에볼라는 콩고 국경을 넘지 않았다.
류영준은 ‘탄저균의 에볼라 백신’을 개발이 거의 완성됐을 때 곧바로 탄저균 펜스 작전을 계획했다.
그는 GSC 멤버십을 이용해서 인근 국가들의 보건복지부에 연락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탄저균 감염 소식을 알리고 스카이프를 이용한 영상 회의를 요청했다.
“지금 진화한 에볼라는 탄저균을 새로운 감염 루트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탄저균의 전염성도 동시에 올라가게 됐습니다. 밀림 지역을 토대로 이동하면서 땅 속에서 농성할 수 있어 쉽게 제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생산된 바이러스가 해당 지역을 전부 오염시킵니다.”
호텔 방에서 류영준이 말했다.
몇 개의 관련 데이터들을 제공해주자 각국 정부의 보건 담당자들은 말을 잃었다.
“콩고의 시내는 이미 전부 감염된 상태입니다. 여러분들의 국가는 콩고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아직 그쪽으로 전파되진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다행인 점이죠. 하지만 조만간입니다.”
에볼라나 탄저는 아프리카에서 오래된 질병인만큼 각국의 보건 당국들도 어느 정도 기반 지식을 갖고 있다.
정말 조만간일 것이다.
류영준은 국경 너머로 전파되진 않았다고 했지만 모를 일이다. 어찌면 이미 넘었을 수도 있다.
"......."
보건 담당자들의 사고에 잠깐 마비가 왔다.
침묵 끝에 마침내 우간다 보건복지부의 질병감염감시 국장이 입을 뗐다.
“그럼 지금에라도 국경 지대를 폐쇄하고 방역망을 만들어야 합니까?”
다른 보건 담당자들이 국장을 쳐다보았다.
그걸 보건 당국 담당자인 본인들이 류영준에게 질문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너무 상황이 막장이라 그들도 명쾌한 해답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제게 탄저균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내성을 갖게 하는 신약이 있습니다. 이걸 국경 지대와 여러분 국가의 밀림에 살포해서 에볼라가 넘어가지 못하도록 펜스를 두르는 겁니다.”
탄저균 펜스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콩고 민주공화국은 이미 늦었지만, 대신 그 내부에 이미 대량의 치료제와 백신을 확보해서 스스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류영준이 설명을 이었다.
“하지만 르완다를 비롯한 여러분의 인접 국가들은 아닙니다. 에볼라가 국경을 넘으면 곧바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집니다. 판데믹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콩고에서 에볼라를 가둬버려야 합니다.”
탄저균 펜스는 마치 파리를 잡는 끈끈이와 비슷하다.
체액 등을 통해서 돌아다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탄저균에 와르르 몰려들어 감염시킨다.
하지만 그곳에서 바이러스는 재생산하지 못한다. 탄저균에 의해 전부 제거된다.
미리 백신을 맞은 탄저균이 에볼라에 면역을 가졌기 때문이다.
진화한 에볼라는 탄저균에 대한 감염성이 크게 올라갔다.
하지만 로잘린의 분석으론 80 퍼센트 이상의 감염 루트가 탄저균에 쏠렸다.
반대로 말하면 그 루트를 잡으면 확산의 80 퍼센트를 제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만드는 방역망은 쉽게 구멍이 뚫리지만 미생물은 아니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