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 에볼라 (7) >
콩고 서부의 밀림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로잘린은 시뮬레이션 모드로 아프리카 중남부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와아…….
로잘린이 감탄을 터뜨렸다.
“심각하네.”
그 시야를 공유 받은 류영준이 말했다.
-장난 아니에요. 콩고 남부와 서부 밀림 지대는 이미 다 에볼라와 탄저가 먹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
류영준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탄저균은 원래 확산능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잖아?”
-이 동네 초식 동물들이 에볼라를 맞고 면역 능력이 떨어져서 헤롱헤롱 거리는 상태에서 탄저균이 재빨리 올라탄 거죠.
로잘린이 말했다.
-그리고 에볼라의 잠복기 이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폐사하면 탄저균도 그 자리에 쏟아내서 같이 확산되는 거예요.
“탄저균에 얼마나 의지하는 것 같아?”
-에볼라의 확산이요?
“응.”
-지금은 거의 80 퍼센트.
“많긴 하네.”
류영준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약 30도의 더운 바람이 목덜미 아래를 스쳤다.
“탄저균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류영준이 물었다.
-아포를 형성하면 파괴하기 어려워요. 10 퍼센트 포르말린 용액을 쏟아 부으면 죽일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걸 모든 밀림에 뿌려댔다간……."
-환경 파괴도 심각하겠죠.
“근데 이 추세대로면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이 밀림에 포르말린을 뿌릴 거야. 지금 추세면 에볼라는 판데믹까지 일으킬 수 있고 그걸 방어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니까. 아프리카 지역에서 포르말린으로 탄저균의 확산에 울타리를 치는 방법.”
-그렇겠네요.
“스스로 뼈를 깎아버리는 고육지책이지. 근데 더 좋은 방법이 있어. 로잘린. 우리 탄저균을 이용해서 에볼라를 잡자.”
류영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탄저균을 이용해서요?
로잘린이 물었다.
“아직 에볼라가 확산되지 않은 콩고 동부 지역 탄저균이 표적이야. 그들을 이용해서 에볼라 확산을 막을 수 있어.”
-어떻게요?
“에볼라를 모방한 바이러스를 개발하는 거야. 사람이나 동물에는 위해가 없도록, 오직 탄저균을 감염시키는 수용체만 남겨놓고.”
-......
“그 안에 탄저균의 ‘에볼라 면역’을 키워줄 수 있도록 에볼라의 유전자를 넣어줘.”
-박테리아용 백신을 만들어서 탄저균에 접종한다?
“그렇지.”
류영준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인간 몸에서 에볼라 백신을 개발하는 것도 힘든데, 탄저균의 에볼라 백신까지 만든다는 게 보통 작업은 아니겠지만."
-그 과정은 저한테 다 시킬 거죠?
“에이바이오로 돌아가면 ATP 5 밀리리터. 콜?”
-10.
".......좋아, 10."
킨샤사 대학의 실험실.
“동물 실험은 결과가 잘 나올 겁니다. 그 데이터를 토대로 치료제를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표준 혈청을 에이바이오에서 만들어주었습니다. 여기 있는 항체 값을 기준으로 백신을 개발하시면 됩니다.”
그는 표준 혈청을 미셀에게 전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미셀이 물었다. 류영준의 이탈이 아쉬운 듯 목소리가 늘어졌다.
“아닙니다. 여기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것도 받으세요.”
류영준이 서류 하나를 추가로 넘겨주었다.
“뭐죠 이건?”
“연구계획서입니다. 백신 개발을 할 때 참고하시면 좋을 겁니다. 백신 후보 물질이에요. 에볼라 바이러스는 사백신으로 쓰기 어렵거든요.”
사백신은 열과 약품 처리 등으로 바이러스를 죽인 다음 그걸 백신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사백신을 개발하면 아마 낮은 확률로 항체 생성에 실패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나올 겁니다. 이건 그 대신 에볼라 바이러스의 핵심이 되는 파편 일부를 분리한겁니다.”
“파편으로 백신 접종을 한다는 거죠?”
“맞습니다.”
미셀은 연구계획서를 읽어보았다.
굉장히 구체적이다.
-BALB/c 쥐에다가 백신을 표준 백신 개발 주사법으로 3일 간격에 2회 투여한다.
-이후 7일 째에 혈액을 뽑고 항체 농도를 측정해서 표준 혈청과 비교한다.
-15 mg/rnL 농도로 백신의 포뮬레이션을 잡고 전임상을 진행한다.
.......
“어떻게 이렇게 세부적으로 계획을 잡으실 수 있죠?”
미셀이 물었다.
이건 마치 실험을 이미 다 진행해본 것 같았다.
“뭐, 그동안 비슷한 연구들을 많이 해왔으니까요. 그대로만 해주시면 10일 이내에 완성될 겁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 근데 이 정도 계획이 잡혔으면 왜 실험을 마저 안 하시나요? 그리고 여기 계속 계신다고요?”
“네. 하지만 치료제 개발이나 백신 개발 말고 다른 할 일이 생겼습니다. 에볼라 때문이에요. 한동안 독자적으로 연구를 좀 진행하겠습니다.”
미셀은 좀 당황했지만 류영준에게 백신이나 치료제 연구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이미 치료제의 프로토타입과 백신 표준 혈청과 후보 물질까지 찾아준 사람이다.
자문 역으로 초빙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해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끼리 우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셀 역시 GSC 멤버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백신 권위자 중 하나이고 가장 뛰어난 생물학자다.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들이 박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의 기초 연구를 완성시켜준다면 나머진 간단하다.
미셀 정도의 과학자라면 충분히 팀원들을 이끌고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류 박사님. 그거 아세요?”
미셀이 말했다.
“뭘요?”
“콩고 헌법재판소에서 재선거 결정을 내렸어요.”
“……. 재선거가 며칠 후죠?"
“약 2주 후입니다.”
망했다.
에볼라는 잠복기가 2일에서 21일 정도로 꽤 광범위하지만 보통 2주 정도 걸린다.
지금 상황이면 콩고 서부, 남부를 전부 장악해버린 탄저균과 그들이 뿜어내는 에볼라 바이러스들이 상당할 것이다.
하루 빨리 백신을 만들어서 환자들에게 접종해야 한다.
“적어도 투표 전까지는 사람들이 에볼라 백신을 거부하겠군요.”
류영준이 말했다.
“맞습니다. 류 박사님. 그리고 애초에 백신은 치료제가 아니라서 원래부터 좀 꺼리는 약이니까요.”
"......."
“그래도 류 박사님 말씀대로 치료제 개발을 우선순위로 했던 것 덕분에 다행히 기한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쥐에서 실험한 데이터들 지금 잘 나오고 있거든요.”
미셀이 말했다.
“이대로면 전임상 실험 한 번만 진행하고 곧바로 에볼라 확진자들한테 투여할 수 있습니다. 긴급을 요하는 일이니 보건복지부에서 감염병 특수법으로 임상 1상을 건너뛸 겁니다.”
항암제 같은 특수한 약들은 임상 1상에서도 환자에게 투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에볼라 치료제 같은 약들은 먼저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임상 1상에서 ‘건강한 시민’에게 투여한다.
거기서 아무런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침내 2상으로 넘어가서 환자에게 쓰고 약효를 보는 것이다.
“탄저균을 경유하는 바이러스의 감염 확산 속도는 굉장히 빠릅니다. 아마 이미 상당히 많은 시민들이 감염됐다고 생각해야 해요. 곧 있으면 잠복기가 끝나고 대대적인 발병이 일어날 거예요.”
류영준이 말했다.
미셀이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때까지 반드시 대량의 치료제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렇죠. 제가 에이젠에 연락해서 미리 생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미리요?”
“네. 여기서도 긴급을 요하는 일이라 임상 1상을 건너뛰었는데, 저희도 몇 가지 탁상공론 절차들을 넘어가겠습니다. 약물에 문제가 없으면 생산해둔 걸 곧바로 콩고에 투입할 수 있으니까요.”
"......."
순간 미셀은 할 말을 잃고 굳었다.
이건 회사 운영자가 생각할 만한 발상이 아니다.
약을 대량으로 생산할 때는 보통 최소한 임상시험 3상까지는 진행한 경우다.
약품을 대량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공정법을 최적화해야 하고, 생산직들의 재교육이 필요한 등 복잡한 일들이 많다.
거기 드는 돈과 시간은 상당한 수준이다.
그래서 ‘약이 먹힌다’는 것을 증명한 다음에 하는 것이다. 그래야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이건 단순히 자신이 개발한 신약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다. 류영준은 지금 콩고 시민들을 살려내기 위해서 회사에서 거금을 들여 도박을 한 것이다.
미셀은 너무 큰 감동을 느껴버렸다.
“반드시 치료제와 백신의 전임상 실험을 성공시키겠습니다.”
미셀이 말했다.
***
8일 후.
치료제가 완성됐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로 연구가 진행됐다. 백신 역시 쥐에서 실험을 하는 중이다.
류영준은 두 번 주사하라고 했지만 첫 번째 주사했을 때 이미 항체가 상당히 많이 나왔다.
두 번째 주사를 맞히면 에볼라에 완벽한 저항성을 갖출 듯 보였다.
“괴물이야……."
미셀은 연구 데이터를 검토하면서 중얼거렸다.
연구 전략을 짜준 대로 진행했더니 이 짧은 기간에 에볼라 치료제와 백신이 뚝딱 튀어나왔다.
그녀는 연구 자료를 필립 대통령에게 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콩고 정부는 에볼라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필립 대통령은 킨샤사의 가장 큰 교회인 키메티에르 교회 앞의 광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가 탄저균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필립 대통령이 발표문을 읽었다.
“이로써 에볼라 바이러스는 높은 생명력을 지닌 탄저균을 통해서 장기간 생존력을 갖추게 되었고, 그걸 바탕으로 전례 없는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꺼져!”
시민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콩고 정부는 현재 모든 자원을 투입해서 최고의 속도로 에볼라 백신과 치료제를 완성시키는 중입니다. 조만간 그 시제품이 나올 예정입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두려워하지 마시고 정부를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백신 접종은……."
팍!
계란 하나가 날아와 필립의 어깨에서 깨졌다.
“꺼져라!”
“재선거 할 때까지 넌 대통령 아니야!”
“물러가라 필립!”
흥분한 시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경호원들이 그들을 제지하고 있었다.
“모든 국민들이 백신을 맞는다면 저는 재선거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필립이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
시민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필립을 쳐다보았다.
“지금 콩고는 어마어마한 생물 재난을 맞닥뜨렸습니다. 조만간 발병이 시작될 것이고 2014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대유행이 번질 겁니다.”
필립이 말했다.
아래에서 비서실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겁을 주면 어떡합니까.’
필립은 마이크를 들었다.
“하지만 여러분이 협조해주시면 막을 수 있습니다. 제가 과거에 초빙했던 미셀 보건복지부 장관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 중 하납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번에 자문으로 모셔온 류영준 박사님은 의학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필립이 말했다.
“두 거장을 필두로 한 수많은 과학자들이 피땀 흘려가며, 지금도 생물안전 4등급의 연구실에서 목숨을 걸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치료제는 거의 완성되었고, 백신도 조만간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필립이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에볼라라는 게 실체 없는 유령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에볼라가 유행한다는 걸 안 믿는다는 것,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에볼라 때문에 마이비 도시의 투표를 막아버린 게 원인이라는 것도 압니다.”
"......."
“하지만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에볼라는 존재합니다. 그걸 믿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