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 에볼라 (6) > (19/301)

163화.  < 에볼라 (6) >

탄저균의 섬모의 끝부분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들을 끌어 모아 대장균 발현용 플라스미드 (Plasmid)에 담았다.

그들을 대장균 BL21에 힛 쇽(Heat shock)으로 집어넣은 다음, LB broth 수용액에서 배양했다.

이후 소니케이션 (Sonication)으로 대장균을 모두 파괴하고 섬모 파편에 넣어둔 히스티딘 태그 (His tag)를 이용해서 정제했다.

‘됐다.’

류영준은 정교한 레고를 조립하듯이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스트렙타비딘 (Streptavidin)에 DNA 파괴 물질 (DNase)를 붙이고 이를 바이오틴을 통해서 탄저균의 섬모 파편에 부착했다.

킨샤사 대학의 연구원들과, 미셀 아래에 있는 연구원들이 류영준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래봤자 밀리리터 이하 단위에서 용액들을 섞고 덜고 모으는 작업들이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모두 별 것 아닌 일들이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노트에 필기를 하면서 실험을 바짝 따라왔다.

“다 됐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제 치료제가 완성된 건가요?”

니자르가 물었다.

“네. 파일럿 실험의 준비는 다 됐습니다. 여러분이 만드신 샘플들까지 들고 같이 실험하러 갑시다.”

류영준과 30여 명의 과학자들은 킨샤사 대학의 생물연구소 뒤로 40분간 차를 타고 이동했다.

거대한 철망으로 차단된 꽤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 한가운데 작은 연구소가 있었다.

“저깁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맞아요. 따라오세요.”

미셀은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군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증으로 신원을 인증했다.

“보건복지부입니다.”

그녀는 통과 허가를 받은 후 연구원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연구소 입구에서부터 실험실까지 이동하는 길에 밀폐 철문을 세 개나 만났다.

[위험]

[관계자 외 접근 금지]

새빨간 글씨로 커다랗게 새겨놓은 문구는 이곳에 얼마나 위험한 괴물이 들어있는지 알리고 있었다.

[생물안전 4등급 연구시설 (BL4)]

생물안전등급은 총 네 개다.

1, 2단계에서 다루는 생물은 건강한 성인한테는 별 영향을 주지 않거나, 경미한 질병을 일으키지만 쉽게 치료되는 경우다.

3단계에서 실험하는 생물체들은 꽤 심각한 증세를 초래할 수 있지만, 전염성이 낮고 치료가 가능한 경우다.

그럼 4단계는?

4단계에서 사용되는 생물체에는 두 가지 공통된 특성이 있다.

1.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며 전염성이 높아 공중 보건상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2. 심지어 이에 대한 효과적인 예방 및 치료제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안에 들어와서 뭘 잘못 만졌다가 질병에 걸리면 그냥 끝이라는 소리다.

말 그대로 ‘질병과의 전쟁의 최전선’이다.

그만큼 안전을 위한 조건들이 까다롭다.

최고 단계의 헤파 필터 공기 정화 시스템, 화학샤워시스템, 호흡용 공기공급시스템, 폐수처리설비.

여러 영역에서 엄격한 시설을 완성해야 한다.

그걸 시공하고 유지 보수하는 데 드는 비용도 상당하다. 따라서 어중간한 연구소라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라도 이런 시설을 감당할 수 없다.

그 돈을 댄다고 하더라도 생물안전 4등급 연구실을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서류와 심사가 필요하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여기선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르겠지만…….

“문 엽니다.”

미셀이 마지막 밀폐형 철문을 열었다.

-위이이이잉

헤파 필터가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공기를 정화하고 있었다.

이제는 실험실 구획 안이다.

“여긴 킨샤사에 하나뿐인 4단계 연구실이에요.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하여 바리올라, 라싸 바이러스 등을 연구할 수 있죠.”

미셀이 말했다.

“그런 것 치고는 킨샤사 대학이랑 너무 가까이에 있는 것 아닙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생물안전 4단계 연구실은 워낙 험한 걸 다루다보니 보통은 대학근처에 설치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새파란 청년들 공부하는 학교 주위에 이런 흉악한 시설을 두기는 꺼림칙하니까.

미국에서도 국립보건원이나 육군 전염병연구소 같은 국립 보건기관을 중심으로 설치하고, 민간 시설에는 거의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콩고는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에요. 킨샤사 대학은 콩고 최고의 대학 중 하나고, 여기 있는 인력들이 콩고 최고의 인력이니까요. 가급적 그들을 여기로 유인해서 이 싸움을 치르게 하는 편이 최선의 수입니다.”

미셀이 말했다.

“그렇군요.”

“일단 옷부터 갈아입읍시다.”

과학자들이 옷장 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모두 이곳에서 우주복 같은 보호복으로 갈아입었다.

먼저 라텍스 장갑부터 착용한 다음, 옷장에서 꺼낸 두꺼운 보호 장화를 신는다.

그 다음 점핑슈트처럼 생긴 보호복을 걸치고 지퍼를 채운다.

옷소매의 고무줄 구멍을 엄지손가락에 걸어서 손목의 노출 가능성을 없앤다.

피부가 겉으로 드러나선 안 되는 곳이기 때문에 전신을 감싸는 것이다.

그건 머리도 마찬가지다.

“PAPR 착용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PAPR은 외부 공기를 필터로 정화한 후 착용자에게 공급해주는 전동 장치다.

완전 밀폐형 헬멧 같은 것인데 정수리부터 가슴께까지 덮어쓴 다음, 필터를 통해서만 호흡한다.

“필터 수명 괜찮고, 연결호스 상태도 좋고.”

류영준은 PAPR의 검사한 다음 머리에 썼다.

쏴아아아.

입구에서 화학 샤워를 통해서 보호복을 소독했다.

“가시죠.”

류영준은 과학자들과 함께 실험실로 이동했다.

무거운 보호복으로 중무장했더니 벌써 답답했다.

‘후우…….'

목덜미에는 땀이 났다.

-체온 조절을 좀 해드리죠. 지금 교감 신경이 너무 흥분해서 몸에 열이 올랐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부탁해.’

4단계 시설은 류영준도 익숙지가 않았다. 이 정도 실험실엔 들어와 본 경험이 몇 번 없었으니까.

에이바이오에서 ‘에이즈 백신’을 개발하지 않았냐고?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조차도 3단계 연구물이었다. 전염성이 그리 높다고 판단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에이즈는 기존에도 치료제가 이미 있었다. 약값이 비싸고 연명 치료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하지만 에볼라는 다르다.

‘에볼라는 치료제가 없다.’

그리고 치사율이 굉장히 높아서 한 번 걸리면 약 80 퍼센트 확률로 사망한다.

어지간한 맹수를 만나더라도 생존율이 절반은 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볼 때는 지금 이 땅에 있는 생물체들 중에서 가장 흉악한 것을 만지러 들어가는 모양새다.

다른 과학자들도 바짝 긴장한 게 보였다.

"......."

그 누구도 농담 한 마디를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과학자들 중 하나가 영하 70도의 딥프리저 (Deep freezer)로 이동했다.

그는 손가락 마디 하나만한 크기의 조그만 바이알 (Vial)을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그가 류영준에게 바이알을 내밀었다. 그 작은 플라스틱 병 안에는 300 마이크로리터 정도 용량의 용액이 들어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다.

-윽.......

보호복을 입기 전에 튀어나왔던 로잘린이 류영준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긴장돼?’

류영준이 물었다.

-제 입장에선 하찮은 미물이에요.

‘근데 왜 들러붙어?’

-당신한텐 아니니까요. 혹시나 사고가 터지면 정리할 때 좀 번거로워집니다.

‘보호복도 완벽하게 착용했고, 실수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마.’

류영준은 바이알에서 바이러스 용액을 주사기로 뽑았다.

안쪽의 실험동물 케이지로 이동해서 13마리의 쥐에게 차례로 주사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스티로폼 박스에서 최초의 ‘에볼라 치료제’를 꺼냈다.

“지금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두 마리씩 투여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치료제의 효율을 확인하겠습니다. 기록 부탁드립니다.”

***

“으아……. 끝났다.”

실험을 마친 과학자들은 기진맥진한 채로 나왔다.

그들은 순서대로 화학 샤워를 했다.

이제는 이 답답한 보호복을 벗을 차례다.

벗을 때도 마구 벗어선 안 된다. 순서가 있다. 피부에 닿는 부분이 없도록 옷을 뒤집으며 벗는다.

슈트와 장화, PAPR 순서다.

마지막에 장갑을 벗는데, 이때에도 손목 등 노출된 피부에 장갑이 닿게 해선 안 된다.

뒤집으면서 절반 쯤 벗고, 손가락 끝을 아직 씌워놓은 채로 반대편 장갑을 벗겨야 한다.

“후우……."

한숨을 내뱉는 과학자들의 얼굴이 땀에 폭 젖어있었다.

위험한 심해 깊숙한 곳으로 잠수했다가 나온 기분이다.

헤파 필터가 윙윙 소음을 쏟아냈다.

잠깐 피로감 가득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의 표정이 초췌했다.

“전쟁이라도 친 기분이군요.”

류영준이 그들의 몰골을 보며 말했다.

“내전이 흔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말하는 건데, 솔직히 전쟁보다 더해요.”

“그렇습니까?”

“전쟁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안심할 수 있지만, 우리는 감염이 됐는지 아닌지를 모르니까 불안에 떨어야 하잖아요.”

“하하. 그렇군요.”

과학자 몇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앞으로 이 실험을 수십 번은 해야 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다들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니자르가 말했다.

“류 박사님. 2014년에 에볼라로 서아프리카에서 1만 명이 죽었을 때, 그 중엔 제 아내도 있었습니다.”

"......."

“전 이 싸움에서 꼭 이길 겁니다. 류 박사님이 도와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원수를 갚을 기회가 생겨서 오히려 기쁩니다."

류영준이 빙그레 웃었다.

“다들 고맙습니다. 힘드시겠지만 계속 수고해주세요. 우리가 지금 분전하면 에볼라로 죽는 사람이 한 명 더 줄어듭니다.”

***

“위원님, 확진자가 한 명 더 늘었답니다.”

콩고민주연합당의 의원이 보고를 올렸다.

“시민들 사이에서 혼란이 번지지 않게 조심해요.”

파우로 위원은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자세히 토론할 여유가 없다. 지금 바로 방송에 나가서 연설을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따가 봅시다.”

그는 방송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가장 정치적인 힘이 강한 방송이다.

파우로 위원은 진행자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정부에서 미셀 보건복지부 장관을 필두로 한 연구 팀을 꾸려 에볼라 치료제를 개발중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한국에서 류영준 박사까지 모셔와 합류시킨 것 같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행자가 물었다.

시작부터 에볼라 이슈다.

“치료제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파우로 위원이 딱 잘라 말했다.

“에볼라는 유행하지 않아요. 이번에 에볼라로 진단된 환자가 몇 명 있지만 그 사람들이 진짜 에볼라일까요? 에볼라로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 최근 3년 이내에 본 적 있습니까?”

그가 선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죠. 국민 여러분. 에볼라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서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위험한 질병입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에서 에볼라 백신을 만든다거나, 에볼라 치료제를 만든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그가 말했다.

“그저 쇼입니다.”

파우로 위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류영준 박사를 모셔왔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어떤 논객들은 그런 얘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류 박사를 데려다가 약을 만드는데 에볼라가 거짓말이겠냐?”

파우로가 말했다.

“거짓말입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류영준 박사는 콩고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에볼라라는 질병 하나를 퇴치할 수 있으면 달에 가서도 연구할 사람이에요. 스웨덴까지 가서 항암제를 만든 분입니다. 당연히 콩고에 와서 에볼라 연구를 하실 수도 있죠. 여긴 임상 데이터가 많으니까요.”

파우로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설파했다.

“하지만 류 박사님이 여기 와서 연구한다는 게, 마이비 도시에 에볼라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닙니다. 확진자라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마이비 도시에서 투표를 금지한 것은 위헌이고, 이 선거는 조작됐습니다.”

그가 말했다.

“재선거를 치러야 합니다. 저희는 헌법 재판소에 재선거를 소원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60년 만의 첫 민주적 정권 교체입니다. 제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좋습니다. 그 과정에 부정이 섞여선 안 됩니다. 저에게 여러분의 힘을 보태주십시오.”

파우로가 소리쳤다.

에볼라는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에볼라 치료제가 아니라 오랜 독재와 내전으로 지친 국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줄 지도자다.

그게 필립은 아니다.

반드시 헌법재판소에서 재선거를 발표해야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