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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화. < 에볼라 (1) > (14/301)

158화.  < 에볼라 (1) >

류영준은 콩고에서 데려온 보노보들을 보고 있었다.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다시 살롱가 국립공원으로 이동해서 본래 속했던 집단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두 완치됐다.

물론 사람 눈으로 볼 때는 그들이 앓는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았다.

보노보가 앓는 망상과 환청을 어떻게 캐치하겠는가.

조현병적 행동 양상은 도파민 레벨 측정 등의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다른 병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극도의 긴장증이나 불안감 같은 것.

하지만 보노보 무리들 속에서도 이들은 인간 사회의 조현병 환자들처럼 튀어나온 못이었을 거다.

-이 녀석들도 무리로 돌아가면 이제 행복하게 살겠군요.

“그랬으면 좋겠다. 뜻하지 않게 동물 질병 치료제도 하나 만들었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러게요.

“이런 걸 보면 유인원을 이용한 실험을 무턱대고 막아버리는 최근 추세도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겹치는 질병들이 있으니까요?

“맞아. 에이즈도 본래 침팬지에서 유래했잖아? 게다가 조현병 같은 정신병마저 유인원에서 존재한다니까. 유인원으로 실험하는 건 상황에 따라서 그들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거지.”

-맞습니다.

로잘린은 보노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쟤는 잠들었네요.

로잘린이 케이지 구석에 꾸벅꾸벅 조는 보노보를 가리켰다.

“그러게.”

-저걸 보니까 생각난 게 있습니다. 류영준. 이번 일을 거치면서 제 몸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화?”

-저는 미토콘드리아가 생물체로 환원되는 과정을 유도하면서 독립된 생명체의 가치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제 세포들이 새로운 진화의 국면을 맞이하는 걸 느꼈습니다.

“어떤 건데?”

-저는 더 많은 피트니스를 이용해서 광범위한 지역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게 되었고 보다 정교해졌습니다. 이제 시뮬레이션의 범위는 대륙 하나를 포함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미국에서 붉은곰팡이를 시뮬레이션할 때도 꽤 범위가 넓어져서 상당한 영역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대륙 단위는 아니었는데.

-근데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

-며칠 전부터 졸리는 기분이 듭니다.

“졸린다고?”

-네.

류영준은 약간 혼란스러웠다.

로잘린이 잠을 자는 생물인가?

-잠을 자는 것은 동물뿐입니다. 무척추동물들, 그 중에서 예쁜꼬마선충 같은 가장 원시적인 생물도 잠을 자죠. 초파리도 잠을 잡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전 동물이 아니에요. 저는 세포 단위의 생명체입니다.

"......."

-잠을 잘 때는 천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때문에 동물들이 잠을 자도록 진화한 것은 거대한 페널티입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동물이 잠을 자는 이유는 세포의 DNA 손상 회복을 위해서입니다. 낮 동안 받은 자외선, 그리고 산소에 의한 DNA 손상을 수리하기 위해서 신진대사를 낮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

-하지만 저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DNA 손상을 수리할 수 있습니다. 잠을 자는 건 구시대의 풋내기 세포에 기반한 동물들이나 하는 짓이죠.

“……. 근데 졸리는 기분이라니?”

-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성장하면서부터 그래요. 지금은 의식적으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큰 힘을 쓰고 나면 어쩌면 잠들어 버릴지도 모르겠어요.

"음."

-당신을 따라서 많이 변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상당히 많은 서로의 특성을 공유하게 된 것이죠. 혹시 당신한텐 별다른 신체적인 변화가 없었나요?

류영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난 잘 모르겠는데.”

-그렇군요.

“졸리기 시작한 후에도 동기화 모드 같은 걸 쓴 적은 있어?”

-네. 몇 번 썼습니다. 얼마 전에도 송종호의 치료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서 썼고요.

“그래도 잠들거나 하진 않았고?”

-네.

“좋아. 그 정도는 안전하다는 거네.”

-하지만 대륙 단위로 시뮬레이션 같은 걸 돌리면 몇 시간 잠들지도 몰라요.

“알겠어. 주의할게.”

류영준이 말했다.

***

신정주 교수는 옛날 류영준의 알츠하이머 치료 임상시험을 직접 수행했던 사람이다.

그는 조현병 치료제가 에이바이오에서 개발되자 가장 먼저 임상시험 수행을 자진했다.

알츠하이머가 완치되는 그 기적의 순간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가 담당했던 박주남 환자가 면도 얘길 꺼내면서 남편 얼굴을 알아보았던 때 말이다.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류영준이 무려 보노보라는 생물을 가져와서 수행한 전임상 데이터를 보고 신정주는 확신했다.

이번에도 성공한다.

이 미친 천재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는 몰라도, 조현병에 대해서 캐묻더니 불과 몇 주 사이에 조현병 치료제를 만들어냈다.

신정주는 전에 느꼈던 그 막대한 감동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그리고 치료제 투여로부터 2주째.

그는 조심스럽게 조현병 완치를 점치고 있었다.

같은 의견이 다른 의사들 사이에서 나왔다. 다른 임상 환자들의 담당의들이다.

의학계는 이 엄청난 소식을 세계에 전하는 데 몹시 흥분했다.

-조현병 완치 가능.

며칠 후, 그들은 NEJM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이라는 의료 학술지에 임상시험 결과를 보고하는 논문을 냈다.

의사들이 주로 보는 학술지로 사이언스보다도 인용 지수가 높다. 임상 연구로는 최고의 학술지인 것이다.

물론 참조문헌으로 류영준의 논문을 인용했다.

-에이바이오, 조현병 정복.

-몸의 질병을 탐구하던 과학자, 이번엔 마음의 질병까지.

연이어 올라오는 기사들에 류영준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회사 대표 개인 메일로 날아오는 메시지들을 읽고 있었다.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이 보내는 것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날아오는 거라 언어도 제각각이다.

처음 보는 글들은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대강 읽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류 대표님. 저는 싱가포르의 정신과 의사입니다. 조현병은 업계에서 가장 치료하기가 어렵다고 평가받던 질병 중 하나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런 치료제가 나와서 너무 기쁩니다. 빨리 임상이 다 끝나고 시판되어 저희 환자들도 모두 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마귀가 들렸다고 해서 수도원에서 5년을 보낸 끝에 노르웨이로 와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국의 수도원에 있을 때에는 수도사들이 마귀를 쫓아낸다는 명목으로 저를 때리고 불로 지지는 등 고문을 했습니다. 이제는 그게 질병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죠. 저는 치료시기를 많이 놓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인격이 바뀌는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류 박사님이 개발한 약으로 언젠가는 완치될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양념 쳐서 띄워주는 기사들보다 이런 글들이 훨씬 좋았다.

읽고 있으면 에너지가 샘솟는 기분이다.

“대표님.”

유송미 비서가 사무실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네."

“국제백신연구소에서 손님 오셨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아, 미팅룸으로 모셔주세요.”

“이미 그쪽으로 모셨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지금 갈게요.”

류영준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전에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 제이슨 킴이 류영준에게 연락했다.

그는 에이즈 퇴치와 더불어 에볼라와 관련해서 미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을 잡은 게 오늘이었던 것이다.

***

제이슨 박사는 미팅룸에서 유송미 비서가 준비해준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사무총장님.”

미팅룸에 들어온 류영준이 반갑게 인사하며 그를 맞아주었다.

“오랜만입니다. 류 박사님.”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에이즈 퇴치 초국적 프로젝트에 대해서 먼저 얘길 좀 할까요?”

제이슨은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냈다.

“일단 가장 큰 성과.”

그는 전면에 있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인도 뭄바이의 카마티푸라에서 인도 정부가 에이즈를 완전 통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감염 확산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는 얘긴 들었지만 카마티푸라 소식은 처음이다.

몇 달 안 된 일인데 꽤 오래된 추억처럼 뭉글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르답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제이슨이 말했다.

“에이즈 퇴치 1순위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세계가 관심을 가지니 인도 정부가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포주들과 조직 폭력배들, 그리고 그들하고 유착 관계에 있었던 경찰들까지 대부분을 척결했습니다. 이제 카마티푸라는 사실상 파괴되었다고 봐야죠.”

“다행이군요.”

“그리고 카마찬트에서부터 나오는 대량의 치료제와 진단 키트, 줄기세포와 CCR5 유전자 조작법을 이용해서 에이즈를 적극적으로 물리치는 중입니다.”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에이즈 바이러스를 멸종시킬 수도 있겠네요.”

“근데 류 박사님.”

“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최근 GSC 멤버들한테 듣게 된 얘기가 있는데요.”

“네."

“류 박사님이 콩고에서 보노보를 데려오는 대가로 에볼라 바이러스를 잡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류영준이 담담하게 답했다.

“흠.”

제이슨은 턱을 매만졌다.

“류 박사님. 에볼라 바이러스가 몇 년 전에 창궐했을 때, 세계보건기구는 에볼라 퇴치를 위해서 여러 제약회사와 대학들을 펀딩했습니다.”

“그래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 여러 연구들이 진척되었는데 국제 협력 연구들이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무엇인가요?”

“표준 혈청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아시다시피 백신을 개발하려면 동물에게 백신 후보 물질을 찔러 넣고 발생하는 항체의 양을 재야하지 않습니까?”

“네. 만약 그 백신 후보 물질이 질병을 유발하지 않고, 항체를 높은 레벨로 만들어낸다면 그때 사용한 백신 후보 물질을 추가 개발하는 식이죠.”

“맞습니다. 근데 그 ‘항체의 높은 레벨’의 기준이 없습니다.”

류영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에볼라가 아무리 치사율이 높아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들의 혈액을 얻어서 표준 혈청을 만들면 되잖아요? 그 안에 있는 항체의 양을 기준으로 정하면 됩니다.”

“맞습니다. 근데 중동 국가 사람들은 혈액을 주지 않습니다.”

"......."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혈액을 주지 않는다고요?”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에요. 본인이 아파도 다른 사람의 혈액을 수혈하는 걸 거부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자기 피를 머리 노란 외국인들에게 준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

“심지어 에볼라처럼 치사율이 높은 질병에 걸렸다가 자연 치유되어서 살아남은 그 극소수 생존자들 중에서 혈액을 내놓는 오픈 마인드의 개인들을 찾아내는 건 굉장히 어려워요.”

“그렇군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이네요.”

“미 국립 보건원이나 콘슨앤커슨을 비롯해 슈마틱스 등의 초대형 제약사들과 하버드, 스탠포드 등의 유명 대학 연구기관들 모두가 그 혈청을 못 구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

“진짜 가관이었죠. 저마다 연구 성과 발표하는데, 여기서는 항체 값이 10배 나오고, 저기서는 1,000배 나오고. 근데 둘이 정량적으로 비교해보면 10배 나온 팀이 더 높고. 기준값이 없으니까 전부 난장판이었어요.”

센티미터(cm) 같은 계량 기준 없이 물건 길이를 측정하는 것과 똑같은 짓이다.

손 뼘 같은 걸로 한 뼘 두 뼘 재니까 저마다 손 크기가 달라서 개판인 셈이다.

미 국립 보건원부터 세계 최고 제약사와 대학들이 달려들어도 실패하는 데 이유가 있다.

“근데 저희가 그때 굉장히 어렵게 에볼라에서 완치된, 한국인을 네 명 구했습니다.”

제이슨이 말했다.

“한국인을요?”

“네. 당시에 국내에서도 에볼라가 좀 돌았어요. 그리고 국제기관인 저희 국제백신연구소의 본부가 한국에 있으니까 여기서 구하는 게 젤 편했죠.”

“그럼 표준혈청을 만들었나요?”

“혈액을 뽑았는데 실패했습니다.”

“어째서요?”

“사람의 혈청에서 에볼라 항체를 정제하는 게 너무 까다로웠어요. 그 단계에서 실패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에볼라의 유행이 잦아들어서 추가 개발을 멈추었죠.”

“그랬군요.”

“류 박사님이 에볼라 퇴치를 연구하신다면 아마 시작하실 지점이 바로 여기일 겁니다.”

제이슨은 인적 사항 일부가 게재된 서류 넷을 꺼냈다.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따위의 개인 정보는 모두 가려져 있고 나이와 성별, 체중 같은 정보만 남아 있었다.

“원하시면 이분들께 제가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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