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 식약처 (12) >
사회 전반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류영준의 강의가 나가면서 전국 음지에 숨어있던 조현병 환자들이 하나씩 슬슬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발적 강력 범죄의 가능성이 있다는 프레임을 덮어쓰고 죄인처럼 살았던 이들이다.
약물로 초기부터 증상을 잘 잡아서 완벽하게 통제하고 일상생활을 하던 사람들조차도 ‘조현병 환자’ 라는 낙인에서 자유롭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그 괴로움의 끝이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식약처 관계자들은 류영준의 치료법이 얼마나 거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인지 알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그 정도로 깊이 이해하진 못한다.
그들에게 그보다 더 명확해보이는 것은 불과 1년 사이에 수많은 질병들을 쓰러트린 류영준의 이름이었다.
-임상시험 신청합니다.
-임상시험 받게 해주세요.
환청과 망상의 지긋지긋한 고통에 시달려 온 환자들의 임상시험 요청이 에이바이오 게시판에 수없이 올라왔다.
학계의 반응도 볼만했다.
-보노보를 가지고 실험한 데이터는 최근 몇 년 동안 학술지에 게재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콩고에서 보노보를 더 이상 수출하지 않기 때문이고요. 둘째 이유는 너무 비싸고 큰 동물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신정주 교수가 논평을 냈다.
사실 과학자들은 환자들 못지않게 흥분해있었다.
-이번에 하버드의대 제휴 병원인 맥린 정신의학기술연구소에서 이 논문을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근 30년 사이의 가장 아름다운 실험’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보노보를 이용해서 실험을 했다는 것의 의미를 대중들은 빠르게 캐치하지 못합니다만, 과학자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놀랍습니다.
-보노보의 뇌의 신경 전달 물질들은 인간의 것과 별 차이가 없어요. 그 유전자 치료제가 보노보에게서 잘 작동했다면 인간한테서도 잘 작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쓰기 어렵다는 보노보를 어렵게 구해다가 실험에 썼다는 것은 그만큼 개발자들이 이 신약에 대해서 강력한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거든요. 콩고 정부에 그렇게 얘기를 한 걸로 보이거든요. ‘보노보를 데리고 실험을 무사히 마치고 전부 완치된 상태로 무사히 귀환시키겠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에 성공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통 과학자들은 이렇게 대담한 약속과 실험을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류 박사님 말대로, 보노보가 나올 때까지 임상 허가를 안 내주고 강력히 규제한 식약처한테도 박수를 보내줘야 합니다. 그들의 합작으로 이만한 논문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식약처에는 공영방송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들어온 기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허송혁을 비롯한 임상시험 담당 주무관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SBS에서 나왔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식약처 특집을 하나 내려고 하거든요. 식약처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임상시험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이번 조현병 치료제를 에이바이오가 개발하는 과정에서 상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과 특집 기획안들 속에서 정치인들도 식약처에 관심을 가졌다.
허송혁은 가급적 인터뷰를 피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경우에는 횡설수설했다.
식약처의 국민소통 게시판은 평소와 다르게 불이 붙었다.
이틀에 한 개 꼴로 올라오던 게시물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지금 무료로 시작해보세요!] 같은 광고글인 게 대부분이었다.
조회수도 50 남짓한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현병 치료제의 임상시험에 관한 문의와 식약처를 칭찬하는 글 등으로 게시판이 뒤덮였다.
"......."
허송혁은 떨리는 손으로 류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에이바이오 류영준입니다.
“류 박사님……. 허송혁 주무관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혹시 FDA나 EMA에 임상시험을 요청하셨습니까?”
이미 그때 이후로 시간이 며칠이 지났다.
류영준 성격상 벌써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신청해버리고 진행 중일 수도 있다.
그러면 상황이 많이 복잡해진다.
허송혁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물었다.
“혹시 지금 어떤 단계인지……."
-아직입니다.
류영준이 뜻밖의 대답을 했다.
“아직이요?”
-아직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주무관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지금 반응을 보시면 알겠지만 학계에서도 모두 이 치료제의 가능성을 높이 긍정하고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제 허가를 내주시는 데 명분이 충분하지요?
"......."
-그리고 임상시험을 요청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셨을 겁니다. 얼마나 이 치료제가 그 환자들에게 절박한 것인지 알 수 있죠. 류영준이 말했다.
-조현병 치료제는 단순히 환자 한둘을 치료하는 게 아닙니다. 정신병에 대해 사회가 갖고 있는 공포와 혐오를 치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주무관님 입장도 이해합니다.
“임상시험 허가를 내드리겠습니다.”
***
강력 범죄자들을 골라서 임상시험을 진행하자는 세간의 주장들이 있었지만 류영준은 무시했다.
피험자는 나이와 성별, 발병 정도에 따라서 몇 개의 그룹으로 묶인 후에 무작위 선별되었다.
그 중 하나는 송종호였다.
고농도 메탄이 녹아있는 수용액에서 번식하던 미토콘드리아를 PBS 용액에 풀었다.
이제 미토콘드리아는 30분 이내에 사멸한다.
담당의는 치료제를 주사기에 담아 비강으로 찔러 넣어 대뇌로 보냈다.
미토콘드리아 표면의 D7T1 물질이 도파민의 양을 추적했다.
아메바가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것과 흡사하다.
미토콘드리아는 도파민 농도 경사를 따라 중뇌로 이동했고, 그곳에서부터 변연계로 통하는 도파민 경로에 점차 분포했다.
15분이 경과했을 무렵에는 모든 미토콘드리아가 도파민 발현량이 높은 표적 세포의 표면에 달라붙었다.
치직. 치직.
동기화 모드에서 극도로 해상도를 끌어올린 류영준에게 작은 스파크 소리가 들렸다.
뇌신경 세포들 사이를 흐르는 초미세 전류의 잡음이다.
전기 자극에 의해서 세포막은 수 나노미터 단위로 찢어지고 회복되길 반복하고 있었다.
본래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없으나 조현병 환자의 뇌세포는 망가질대로 망가져 그 작은 손상을 견디기 힘들다.
조금씩 뇌세포가 무너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찢어진 틈 사이로 미토콘드리아가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무려 107개의 유전자가 뇌세포 속에 무사히 착륙했다.
그들은 한끼번에 발현된다.
환자의 뇌세포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유전자들을 바로잡았다.
에어컨이 고장 난 집에 새 에이컨을 설치한 것과 같다.
세로토닌과 글루타메이트, 도파민과 그 수용기들.
그들의 대사 경로(pathway)에 관여하는 수많은 생체 물질들이 점차로 안정되었다.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높이 치솟아 있던 도파민 레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 째.
슈우욱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미토콘드리아가 사멸했다.
뇌세포 내부로 진입하지 못한 개체들이다.
저농도의 메탄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겐 사람의 뇌 내부가 매우 극단적인 환경이었다.
‘됐다.’
류영준은 마지막까지 관찰한 다음 병실을 나왔다.
로잘린이 그 뒤를 따랐다.
-이번 실험에 성공하고 나면 프로바이오틱스 허가도 비교적 쉽게 나겠네요.
로잘린이 말했다.
‘유전자 조작 박테리아를 뇌에다 심는 것보다는 장에 심는 게 훨씬 안전하니까.’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국 그 둘의 박테리아 종도 다르고 조작한 유전자도 다르기 때문에 검증을 새로 하긴 해야 돼.’
-하지만 식약처가 이번처럼 억지 쓰진 않겠죠.
‘맞아.’
-사실 좀 놀랐습니다. 식약처를 공격하실 줄 알았거든요. 칭찬하는 식으로도 압박하는 수가 있었네요.
'.......'
류영준은 잠깐 생각을 골랐다.
‘식약처는 본래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조직이었어. 그땐 ‘식약청’이었지. 하지만 식의약품의 안전이 국민보건의 기초이고 워낙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독립시켰어.’
류영준이 말했다.
‘당시에는 한국판 FDA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있었지. 그 후로 계속 독립 기구로 키우면서 국무총리 직속인 ‘처’로 승격도 시켰지만, 여전히 FDA에 이르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그런가요?
‘미국에선 FDA가 독점할 업무와 권리를 우리나라에선 여러 기관들이 나눠가진 상태거든.’
-어떻게요?
‘뭐, 예를 들어서 농산물의 안전관리를 식약처가 규제하려고 하면 농식품부와 마찰을 빚는 식이야. 모부처인 보건복지부도 다시 식약처를 삼키고 싶어 하는 분위기고. 해산물 쪽을 식약처가 감독하려고 하면 해양수산부가 또 견제하려고 한다거나.’
류영준이 말했다.
‘비슷한 업무들을 하고 있는 부서들끼리 권력 경쟁을 하는 가운데 식약처는 점점 자신감을 잃었고 FDA 같은 강력한 기구로 거듭나는 데는 실패했지.’
-그랬군요.
‘근데 조현병(調結病)이 무슨 뜻인지 아니?’
-무슨 뜻인데요?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이야. 잘 조율되지 않아서 잡음이 나는 악기처럼 정신이 어지럽다는 의미로 이렇게 이름이 지어졌지.’ 류영준이 말했다.
‘난 식의약품의 안전관리 기준이 하나로 통일되고 일원화된 기관에서 일괄적으로 규제해야 혼선이 없다고 생각해. 지금은 제도적으로 정리가 덜 된 느낌이야. 거기도 줄을 골라야지.’
-그렇군요.
‘이번 일로 조현병 환자들도 희망을 찾고 식약처도 자신감을 좀 회복했으면 좋겠네. 하루아침에 FDA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병원 밖으로 나가는 길.
누군가 뒤를 다급히 쫓아와 류영준을 붙잡았다.
“류 박사님!”
송지현이었다.
“안녕하세요.”
류영준이 인사하자 송지현은 숨을 고르면서 머뭇거렸다.
“고맙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제가 이런 얘기 여러 번 한 것 같은데, 임상시험을 진행하면서 감사를 드려야 하는 쪽은 접니다.”
“치료가 아니라 실험이니까요?”
“네."
“……. 그래도 감사해요.”
송지현이 말했다.
“종호 씨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네요.”
“네."
“잘 될 겁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근데 제 동생이 이런 얘길 하더라고요.”
“어떤 얘기요?”
“작년 말에 병원에서 애가 자해하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떤 남자분이 잡아주셨대요. 근데 그게 류 대표님 같다고. 아무래도 얼굴이 비슷하대요.”
"......."
“하하. 아니겠죠. 애가 정신이 왔다갔다 하던 때니까 착각했을 거예요.”
류영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입을 뗐다.
“옛날에 동생분을 두고 학교에서 도망쳐버렸다고 하셨던 거요.”
송지현의 어깨가 움찔했다.
“네……."
“동생분이 좀 상태가 호전되면 한 번 얘기해보세요.”
"......."
“제 생각엔 그건 동생분의 트라우마가 아닙니다.”
“네?"
“조현병이 발생한 것도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보다 이전이고요. 그 일로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은 송 박사님뿐일 것 같네요.”
“저 혼자요?”
류영준은 빙긋 웃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
송종호의 뇌 속을 탐험했던 로잘린은 그 결과를 류영준에게 보고했다.
-송종호는 조현병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그리고 그걸 작동시키는 스위치를 켠 것은 학창 시절의 부담감 때문이에요.
“부담감?”
-송지현은 무던한 성격이라 온갖 관심을 다 모으고 스타가 되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지만 송종호는 아니었거든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 사람은 과도한 관심이 힘들었던 거예요. 그 이미지를 유지해야한다는 게 부담이었고요.
“그 부담감이 조현병을 유발했다고?”
좀 뜻밖이다.
류영준 자신도 현재 국민적인 수준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그 자체가 괴로울 정도로 스트레스가 되진 않았다.
아무리 사람마다 다르다지만 조현병을 일으킬 정도라니.
-송종호는 유전적으로 취약했으니까요.
로잘린이 말했다.
송지현이 학창 시절에 송종호를 외면했다는 것은 놀랍게도 송종호의 머릿속엔 존재하지도 않는 기억이었다.
“참 이해하기 힘든 질병이야.”
류영준이 말했다.
“약이 시판되어도 정신과 의사들이 힘든 건 여전하겠어.”
-하지만 생물학이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를 차지하는 건 맞습니다. 당신이 개발한 약은 그걸 전부 교정할 수 있는 약이고요. 로잘린이 말했다.
-나머지는 의사들에게 맡기세요. 충분히 잘 해낼 겁니다.
송종호의 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임상 시험에 들어간 환자 18명이 모두 그랬다.
그들은 도파민 억제제 같은 약을 끊었지만 더 이상 환청이나 망상에 시달리지 않았다.
송종호의 정신은 여느 때보다도 맑았다.
“정신이 깨끗해질수록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는게.”
임상 11일째.
이젠 병증이 거의 사라진 송종호가 송지현에게 말했다.
“전에 류 박사님이 우리집 찾아왔을 때 내가 환각을 봤었잖아?”
“응. 어린애가 거실에 돌아다닌댔나?”
“아무래도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해. 다른 환각이나 환청은 감각이 점점 희미해지는데 그건 선명해지거든.”
송지현은 피식 웃으면서 송종호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네가 나을 운명이라서 천사라도 다녀갔나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