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 식약처 (11) >
미팅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임상 데이터 자료를 한 장씩 넘겨보는 허송혁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졌다.’
오현동은 임상시험본부의 완패를 직감했다.
이건 반칙 카드다. 류영준이 무적의 증거를 들고 왔다.
임상 시험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다.
그걸 위해 사전에 실험하는 ‘전임상’ 과정은 당연히 동물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쓰면 그 순간부터 임상시험이 되지 않는가.
그리고 전임상 단계의 실험인 이상 보노보는 마지막 카드다.
인간 직전에 있는 동물.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에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거기서 증명을 했는데 이제 뭘 더 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데이터를 뽑아왔는데 이 이상으로 좋은 전임상 데이터를 요구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 다음은 이제 인간밖에 없고, 인간을 쓰면 그건 전임상이 아니다. 더 좋은 전임상 데이터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끝났다.’
식약처 임상시험본부는 미팅을 시작하자마자 침몰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이게 진짭니까?”
허송혁 주무관의 목소리에서 당혹감이 묻어났다.
“류 박사님. 보노보는 수출이 금지돼있을 겁니다. 그래서 최근 십수년간 보노보를 이용한 전임상 실험은 나온 적이 없어요.”
“근데 제가 콩고 정부와 딜을 해서 특별히 공수해왔습니다. 질병 타입이 ‘정신병’인 이상, 인간의 정신세계를 최대한 그대로 가지고 있는 동물이 필요했고 보노보가 베스트였으니까요.”
"......."
“이제 이것보다 더 좋은 전임상 데이터는 없습니다. 임상시험 허가를 내주셔야 합니다.”
"하......."
심사위원 몇 명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테이블에 긴 침묵이 흘렀다.
“겁나시는 거 압니다. 상당히 도전적인 치료법이라는 것도요.”
류영준이 말했다.
“제약사나 환자들 입장에서는 성공했을 때의 보상을 보고 리스크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만, 식약처 입장에선 그렇지 않겠죠."
"......."
“실패하면 식약처는 검증과 관리 소홀로 비난을 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성공해도 아무도 식약처의 공로는 생각해주지 않죠.”
어떤 신약이 임상에 성공했다는 소식들이 나오면 환자들은 축제를 벌이고 제약사는 주가가 빠르게 치솟는다.
매스컴은 연일 신약 개발자들을 찬양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그 잔치 분위기 속에 식약처는 없다.
임상시험을 관리 감독한 정부 부처의 퍼포먼스는 일반적으로 ‘정권의 공로’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어떤 정당이 집권할 때 자신들이 만들어낸 성과로 ‘OO 신약 시판.’ 같은 걸 내세운 적 있는가?
그런 장면이 굉장히 낯선 이유는 아무도 그 신약 개발의 과정에서 식약처가 기여한 게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했을 때의 비난 뿐.
임상시험이 잘 진행되도록 검증하고 관리 감독하는 식약처의 공로는 신약 개발을 저지하는 걸림돌 정도로 인식되기만 한다.
“식약처 입장에서는 임상 허가 내주는 것 자체가 사실 부담되는 일이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 완벽한 절차에 따라서 충분한 검증을 거쳐서 내놓은 약도 나중에 부작용이 보고될 수 있잖아요. 칭찬 없이 욕만 먹는 조직 중 하나가 식약처예요.”
류영준이 말했다.
"......."
“그래도 이 약은 진행해야 합니다. 여러분. 조현병 환자가 국내에만 50만 명이에요. 세계에선 7천만입니다. 진짜로 제가 이 데이터를 가지고 해외로 가길 원하십니까?”
“웬만한 건 원하는 대로 허가를 다 내줄 수 있습니다.”
허송혁이 말했다.
“하지만 류 박사님. 이건 안 돼요. 이유를 말하라면 말하겠습니다.”
“뭡니까?”
“부작용에 대한 장기간 관찰과 검증이 안 됐잖습니까?”
“투여한 미토콘드리아 치료제가 모두 사멸해서 배출된 걸 확인했습니다. 투여 시점에서도 안 생기는 부작용이 장기간 시간이 지난 후에 생길 리가 없잖아요. 그건 핑계잖습니까.”
“…….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장기간 검증이 안 된 이상 허가도 안 됩니다. 몇 년 후에 데이터를 보강해서 다시 오시던지, 해외에서 임상을 진행하세요.”
허송혁이 말했다.
“주무관님……."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었다. 몇몇은 이 정도까지 했는데 그냥 허가를 내주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허송혁이 완강했다.
수십 년간 식약처에서 근속하며 이제 은퇴를 앞둔 백전노장 공무원 허송혁.
류영준의 말처럼 어떤 보상도 못 받고 욕만 먹는 부처인 식약처에서 그 오랜 시간을 살아남았다.
허송혁은 그 비밀이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만큼은 그 자신도 확신이 없었다.
류영준이 그간 보여준 게 있으니까.
하지만 임상 허가는 사람이 아니라 약을 보고 내주는 것이다.
‘데이터는 막강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하다. 뇌에다 박테리아를 집어넣는 것 아닌가.’
허송혁은 연신 스스로를 달랬다.
‘나는 나쁜 짓을 하는 게 아니야. 모험성이 있는 약을 타국에서 테스트하도록 내보내는 건 다른 나라의 식약처에서도 하는 일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난 책임 소재를 회피하는 게 아니야.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려는 거야. 식약처 직원으로서 당연한 거야. 난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돼.’
차륵.
류영준이 서류를 정리했다. 그걸 차곡차곡 폴더에 집어넣고 가방에 넣었다.
“정말 실망이 큽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몇몇 다국적 제약사들처럼 저개발 국가나 내전 중인 국가 등에서 할 수도 있죠. 글도 모르는 사람들 데려다가 반 쯤 거짓으로 속여서 임상시험 동의를 받고 제멋대로 테스트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걸 원하십니까?”
"......."
“온갖 위험한 약물과 식품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게 식약처가 할 일이 아닌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하지만 이런 전임상 데이터와 환자를 연결짓는 용기를 못 내시는 상황에선 의심스럽군요. 정말 지키고 싶은 게 그겁니까? 아니면 주무관님의 안전한 은퇴입니까?”
"......."
허송혁이 아랫입술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류영준은 미팅룸을 나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박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안 됐어.”
-오케이.
***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차선책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국제 연구로 개발된 게 아니라, 국내 회사에서 개발된 신약이기 때문에 해외 임상시험을 받는데 절차가 더 까다롭다.
둘째, 해외에서 임상시험 신청을 하면서 왜 자국에선 안 하는지 그 이유를 타국가 식약처들이 의심하게 된다.
당연히 외국 정부의 식약처들도 좀 더 엄밀하게 데이터를 분석하려 할 것이고, 허가를 내주는 데 껄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류영준에게는 두 번째 카드가 있다. 이제 박주혁이 짜놓은 전략이 실행될 차례였다.
이튿날 아침.
-에이바이오, 조현병 치료제 개발.
-인간과 동일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보노보에서 치료 입증.
-보노보는 어떤 동물인가?
-정신병을 치료한다는 것의 의미.
-우리 사회는 조현병의 비용으로 얼마를 쓰고 있는가?
오후가 되자 엄청난 양의 보도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논문까지 공개됐다.
-류영준, 바이오 아카이브 (BioRxiv)에 조현병 치료 논문 선공개.
사이언스에 보내면 편집되는데 시간이 걸린다.
류영준은 사이언스에 보내는 대신 과학 논문을 무상 배포하는 싸이트인 바이오 아카이브에 초안 상태로 선공개 해버렸다.
사이언스엔 나중에 올라갈 것이다. 이제 전 세계 모든 이들이 보노보 실험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
“이럴수가……."
허송혁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잘못 판단했다. 류영준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물러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해외 임상시험을 경유할 생각이 없다. 몇 년씩 기다릴 마음도 없다.
지금 끝장을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기사가 튀어나왔다.
-정윤대학교 입구역 사건의 추은필, 임상시험 자진.
“이건 또 뭐야……."
놀란 허송혁은 곧바로 기사를 열었다.
정윤대학교 입구역 사건.
한 정신병자가 아침 수업을 위해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칼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다섯 명이 죽고 두 명이 중상을 입었다. 명문대의 앞날 창창한 청년들의 죽음이 사회 전반에 충격을 던졌다.
조현병과 강력 범죄를 연결 짓는 분위기도 그때부터 고조됐다.
조현병 환자들을 정부가 직접 억류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그 사건이 있었을 때 피고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추은필의 변호측은 재판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추은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 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수감된 상태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았다.
상태는 약간 호전되어서 이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웬만큼 의식을 유지할 때도 있다.
“그 사람들이 날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내 아침밥에 독을 타는 사람들인 줄 알았어요. 나는 아침밥을 안 먹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해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수감 치료가 진행된 지 2년째, 추은필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 류영준이 조현병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보도 자료가 나가기도 전이다.
박주혁과 송종호 때문이다.
박주혁은 임상시험을 식약처가 거부했다는 이야기를 약사협회에 슬쩍 흘렸다.
약사 송지현은 그 정보를 빠르게 캐치한 후 류영준에게 대외비 여부를 묻고 배포 허락을 받았다.
박주혁에게서 역사협회, 송지현, 그 다음에는 송종호에게 차례로 이야기가 전달됐고 조현병 환자 커뮤니티로 넘어갔다.
[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송종호를 포함한 수만명의 조현병 환자들이 소속되어있는 비영리 단체다.
그들은 추은필하고도 접점이 있었다.
류영준이 개발했다는 신약과 그 임상시험 정보를 얻은 추은필은 그 일이 자신의 숙명이라 생각했다.
‘이게 내가 할 일이다.’
그간 그가 폐를 끼친 모든 조현병 환자들에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보답.
그는 임상시험을 자진함으로써 다른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기로 결심했다.
***
나성진 PD는 류영준의 연락을 받았다.
놀랍게도 잠자는 시간 외엔 연구만 한다는 그 진성 과학자가 자진해서 강연을 요청했다.
조현병이라는 질병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번에 개발된 치료제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미토콘드리아는 본래 사람의 세포 내에 존재하는 소기관입니다. 그 미토콘드리아를 박테리아 형태로 만들어 증식시킨 후, 조현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전자를 심어서 뇌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솔직히 얘기하겠습니다. 본래 인간의 뇌는 외부 감염으로부터 각별한 보호를 받는 가장 중요한 기관입니다. 이런 곳에 박테리아가 들어가는 게 평범한 상황은 아닙니다.”
류영준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위험한 수단을 쓰기 때문에 저는 이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식약처와 상담을 했습니다. 예상대로 식약처에선 전임상 데이터를 굉장히 보수적이고 꼼꼼하게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쥐나 비글 같은 동물에서 실험하는 것 정도로는 우리 국민에게 쓰도록 허락해주지 않겠다고 했죠. 때문에 저희는 더 어려운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류영준은 공개된 논문 데이터들을 열었다.
“이것이 그 결과입니다. 에이바이오의 창의성과 식약처의 엄격함이 낳은 전임상 실험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아주 이례적이게도 인간과 가장 유사한 생물인 보노보라는 동물에서 수행한 전임상 실험 데이터입니다. 비글보다 훨씬 인간에 가까운 유인원을 쓴 것이죠.”
약 30분에 걸쳐 실험 결과의 해석과 설명이 이어졌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안전성과 약효를 모두 입증했고, 이제 조현병을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류영준이 말을 마치자 진행자는 모든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졌다.
“임상시험은 계획중인가요?”
TV로 방송을 지켜보던 허송혁과 심사위원들은 손에 땀이 찼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와아.”
진행자가 감탄을 터뜨렸다.
“류 박사님. 이미 추은필을 비롯해서 많은 조현병 환자들이 임상시험을 받겠다고 자진해서 나서고 있습니다. 언제쯤 임상이 시작될까요?"
“어느 나라에서든 법적 절차를 밟아 허가가 나면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이 중요한 데이터를 생산하는 데 있어 공로의 절반은 식약처입니다. 제가 임상을 요청해도 국민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어찌보면 약간 고지식할 정도로 방어해주셨거든요. 덕분에 보노보까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죠. 그 분들이 없었다면 훨씬 빈약한 데이터로 임상을 진행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낌없이 칭찬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