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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화. < 식약처 (10) > (11/301)

155화.  < 식약처 (10) >

국립공원 투어 차량은 보노보 보호 구역을 돌면서 약 18개의 집단들을 찾아냈다.

로잘린은 새 집단을 마주칠 때마다 몇 초 안에 모든 개체의 조현병 발병 여부를 파악했다.

그리고는

-여긴 없네요.

하고 손을 휘젓거나,

-잽니다.

하는 식으로 개체 하나씩을 가리켰다.

‘눈썹 위에 흰 점 있는 녀석?’

-아니요. 저 녀석은 그냥 정서불안이에요. 그 오른쪽입니다. 머리숱 별로 없는 수컷이요.

“저쪽에 머리숱 별로 없는 수컷으로 포획해주세요.”

류영준이 부탁했다.

공원의 관리인들은 마취총으로 류영준이 가리키는 개체들을 기절시키고 케이지로 옮겼다.

저녁이 되었을 때는 20마리의 보노보를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대조군으로 삼기 위해서 멀쩡한 개체도 여섯 마리 포함시켰다.

호텔로 돌아간 류영준은 미셀과 함께 이송 계획을 짰다.

“그럼 모레 아침 비행편으로 에이바이오로 보내겠습니다. 공항에서 픽업할 수 있도록 직원들한테 전해두시는 게 좋겠어요.”

미셀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같은 GSC 멤버끼리 도와야죠. 콩고 민주공화국도, 아니지, 아프리카 전역이 사실 류 박사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에이즈 치료 때문에요?”

“맞아요.”

미셀이 환하게 웃었다.

“류 박사님도 아프리카 사하라이남 지역에서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많이 좋아졌나요?”

“에이즈 감염 확산 정도가 마이너스로 돌아섰죠. 그 사실이 굉장히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마이너스라는 말의 뜻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있고, 이미 감염된 환자들은 완치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미셀이 말했다.

“류 박사님이 노벨상 받으실 때 즈음에는 아마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환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진척이 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류영준이 좋아하는 걸 보면서 미셀은 의미심장하게 미소지었다.

“류 박사님. 보노보는 아프리카에서도 콩고에만 서식하는 동물입니다. 아시나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1급 보호종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치료 후에 다시 콩고로 무사히 돌려보내겠습니다.”

“외부 유출 자체가 원래는 불법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대통령 각하를 열심히 설득했고 이례적인 특별법을 날치기로 처리해서 보노보를 반출하는 걸 허가했죠.”

"......."

이제 온다.

아프리카 출신 과학자들 중에서 대성한 인물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에 살지 않는다.

하버드에서 테뉴어를 준다면 왜 내전 가능성이 높은 조국으로 돌아와서 일을 하겠는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냥 서구 문명 속에 동화되어서 높은 연봉을 받고 풍성한 인프라 속에서 자기 연구를 지속한다.

그건 최고의 과학자들의 특권이다. 그리고 미셀은 그런 과학자들 중에서도 GSC에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성과를 이루어낸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는 조국인 콩고로 돌아왔다.

한국 외교부에서 ‘여행 자제’를 권고할 정도로 테러 등의 위험이 도사리는 이 나라로.

그 이유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미셀이 그만큼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프리카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헌신한 사람이다.

‘당연히 나한테 보노보를 내주는 데에도 뭔가 요구를 하겠지. 공동 연구라든지…….'

류영준은 차를 마시면서 물었다.

“혹시 제가 미셀 박사님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편안하게 말씀해주세요. 성심껏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미셀은 가방에서 서류 파일 하나를 꺼냈다.

“이건 콩고 보건복지부에서 그동안 어떤 질병에 대해서 모은 자료의 사본입니다.”

그녀가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에볼라 바이러스입니다.”

“에볼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으로도 퍼지지만, 박쥐에 의해서도 확산되는 바이러스입니다. 콩고 정부는 아직까지 에볼라를 완전히 잡아 내지 못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G맵 (Gmapp)이라는 치료제를 구매해서 쓰고 있는데, 그 효능이 아주 좋지는 않습니다.”

"음......."

“류 박사님이 여러 질병들을 빠르게 정복해오셨기 때문에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가능하면 다음번에 저희와 같이 치료제나 백신을 개발하셨으면 하고요.”

“알겠습니다.”

류영준은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 콩고를 방문하겠습니다.”

***

로잘린은 박테리아로 되돌아간 미토콘드리아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것은 수십억 년 전에 생물체였다가, 진핵 세포의 일부분이 되어서 무생물로 살다가, 다시 생물체가 되었다.

마치 인간의 몸에서 팔을 떼어내었더니 생물체가 되어서 알아서 먹이도 찾아 먹고 번식도 하고 움직이는 꼴이다.

인간 한 명은 한 개의 생명체라고 생각하던 기존 생물의 관점에선 꽤 낯설 테지만, 로잘린은 아니다.

세포 단위의 생명체인 로잘린은 미토콘드리아가 생명체로 되돌아간 것이 신비롭지 않았다.

궁금한 점은 하나뿐.

‘난 류영준의 몸 밖에서 생존할 수 없을까?’

이 세계 최고의 생명체이자 지구에서는 두 번째로 자연 발생한 생명체.

가장 위대한 지성, 로잘린은 류영준의 몸을 떠나서 살 수 없다.

로잘린은 류영준을 힐끔 돌아보았다.

보노보에게 미토콘드리아 치료제를 비강을 통해서 투여한다고 한 차례 씨름을 했다.

그는 지금 실험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자고 있었다.

‘내 창조주.’

로잘린은 류영준의 곁으로 다가와서 잠자는 그 옆얼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는 미토콘드리아처럼 류영준의 신체 기관의 일부가 된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처음 류영준의 몸에 들어왔을 때 로잘린에겐 자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처럼, 류영준의 지능 기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차 성장을 거쳐서 지금은 독립된 지성을 획득했다. 그리고 이젠 류새이의 정신과 감각까지 확보하지 않았는가?

지금의 로잘린은 매일 일정 시간 동안 류영준의 몸을 떠나서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있다.

'.......'

-너도 될 수 있어.

마치 배양액 속의 박테리아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 류영준의 몸을 떠나서 이 박테리아처럼 독립하게 될까?’

철컥.

실험실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정혜림이 들어왔다.

“대표……."

류영준을 부르려던 그녀는 말을 멈췄다. 책상에 엎드린 채로 잠들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짠했다.

그는 일주일 만에 콩고까지 날아가서 보노보를 구해서 돌아온 다음 곧바로 실험을 직접 수행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미 업무가 포화되어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실험 초기 단계인데다 중요한 연구라서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실험복 입고 나섰던 것이다.

‘1선 연구자 포지션까지 넘나드는 대표는 이 사람밖에 없을걸.’

그 와중에 대표이사로서 해야 하는 일들도 모두 진행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초인적인 활동량이었다.

걱정돼서 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람인 이상 쓰러질 수밖에 없지.’

정혜림은 류영준을 깨우지 않았다. 그리고 류영준 대신 보노보들의 상태를 봐주기로 했다.

지잉

그녀는 실험실 안쪽에 있는 동물 실험실의 자동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

케이지 안을 불안하게 꾸준히 어슬렁거리던 보노보들이 얌전하게 앉아있었다.

모두 진정됐다.

목적성 없는 과다한 움직임 (Excessive motor activity)라고 불리는 조현병의 동물 모델 행동 양식 중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나 양극성 조울증 등의 질병을 앓을 때도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하지만 저 보노보들은 조현병이다.

왜냐하면 한국에 도착한 직후에 도파민과 글루타메이트,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의 양을 측정했으니까.

더 놀라운 것은 저 보노보들의 사회성 변화다.

본래 사회적 동물들은 낯선 개체를 맞닥뜨렸을 때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는 등의 호기심과 친밀도를 표현하지만 조현병을 앓으면 그러지 않는다.

조현병의 음성 증상이다.

낯선 대상에 대한 공격성이나 함께 있는 공간에 대한 기피성이 사라졌다.

지금 보노보들은 가까이 모여 앉거나 서로를 매만지면서 소통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정혜림은 충격으로 몸이 굳었다.

“됐다.”

그리고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펄찍 뛰었다.

“윽!"

그 바람에 정수리로 류영준의 턱을 살짝 쳤다.

“으악,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류영준은 턱을 문지르면서 보노보들을 쳐다보았다.

“혜림 씨, 도파민 레벨 측정하는 거 좀 도와줄래요?”

“네? ……아, 네!"

약간 얼이 빠져있던 정혜림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사람 몇 더 불러주시고요. 지금 실험의 엔드 포인트예요. 생산할 데이터가 좀 많거든요."

***

식약처의 임상시험본부는 아침부터 왈칵 뒤집어졌다.

류영준이 직접 찾아왔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 조현병 치료제인지 뭔지 허가 내달라고 할 거야.”

15명의 본부 직원들이 미팅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과 주무관, 실무관들이다.

그들은 걸으면서 긴급하게 서로의 대처법을 점검했다.

“무조건 절대로 안 된다고 해. 동물 실험을 이렇게 저렇게 했다는 식으로 얘기할 텐데, 그걸로는 인간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확인할 수는 없다, 이렇게 막으라고.”

“만약 미국에서 임상을 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하면 그러라고 해.”

“그냥 해외에서 하고 돌아오는 게 우리도 속 편하지.”

“다들 알겠지? ‘정신세계’가 키워드야. 쥐새끼한테 인간 같은 정신세계가 있지는 않을 거 아냐? 정신병 치료제를 개발하는데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쥐 실험으로 어떻게 약을 승인하나?”

그들은 떠들면서 미팅룸 앞까지 이동했다.

그곳에서 한번 우뚝 멈추어 섰다.

“다들 허점 내주지 않게 조심하고.”

주무관 허송혁이 숨을 훅 들이마신 다음 문을 벌컥 열었다.

“하하하, 류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이군요.”

그는 환하게 웃으면서 류영준과 악수를 나누었다.

잠깐의 인사치레를 한 후에, 주무관이 본론을 꺼냈다.

“에이바이오에서 개발 중인 조현병 치료제의 임상시험 허가 때문에 오셨다고 들었는데, 전임상 데이터 좀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류영준이 파일을 가방에서 꺼내어 내밀었다.

“몇마리로 실험하셨습니까?”

허송혁 주무관이 파일을 열면서 물었다.

“총 26마리입니다.”

“어려운 질병인데 숫자가 너무 적지 않나요? 한 50마리 하시지 그랬어요.”

“그러고 싶었는데 콩고에서 서브젝트를 너무 많이 내주는 건 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요. 통계적으로 명백한 범위에서 만족했습니다.”

“콩고요?”

허송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무슨 콩고요? 비글이나 토끼 쓰신 거 아닙니까?”

“보노보를 썼습니다.”

“보노보노?”

오현동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뇨. 보노보라고……."

“해달을 가지고 실험했다는 겁니까? 아닌가? 그게 해달이 아니고 수달인가요? 우리 딸이 그 만화 보던데.”

주무관과 심사위원들이 웅성거렸다.

“아니요. 보노보는 침팬지 같은 유인원입니다.”

류영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유인원!”

오현동이 놀라서 소리를 쳤다.

“네. 그리고 보노보라는 동물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거의 동일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를 이해하고 불을 피울 수 있을 정도입니다."

"......."

“저는 그 보노보가 인간과 같은 조현병을 알고 있음을 증명하는 데이터들을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신경 전달 물질들의 발현 레벨 양상이 조현병 환자들과 똑같고, 행동 양식에 있어서 특이점들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 보노보 20마리 중에서 열 마리에게 치료제를 투여해서 모두 완치시켰고, 나머지 열 마리에게는 위약을 줬는데 지금도 병을 앓고 있습니다.”

"......."

“정상인 보노보 여섯 마리도 셋씩 나누어서 똑같은 실험을 진행했는데 모두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보노보들의 뇌에서 치료제로 쓴 미토콘드리아들이 모두 사멸해서 배출된 것도 확인했습니다.”

“아니……. 그게……무슨……."

심사위원들의 말문이 막혔다.

“임상 허가를 내주십쇼.”

류영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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