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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 식약처 (7) > (8/301)

152화.  < 식약처 (7) >

중학교 3학년 송종호는 조현병 진단을 받고 약을 먹었다.

약 6개월.

초반에 병증을 잘 잡았다는 송지현의 말은 사실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송종호는 환청이나 망상이 빠르게 잡혔고 졸업하기 전에 금방 정신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이 모두 병을 앓기 전처럼 되돌아간 것은 아니다.

-종호 왜 저래?

-쟤가 종호라고?

-어떻게 된 거야?

약물의 부작용으로 살이 쪘다.

이번에는 환청이 아니다. 학생들은 수없이 사방에서 수군거렸다.

잘생기고 매력적인 외모는 금방 망가졌다.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40 킬로그램이나 불어난 몸집은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것조차 불편했다.

잃어버린 자신감과 크게 떨어진 체력. 그리고 약물의 부작용에 의한 막대한 무기력함과 우울감.

그것은 겪어보지 않은 이는 모르는 고통이다.

일반인은 머릿속에 정신력의 비축분을 쌓아놓는다.

웬만한 스트레스를 느껴도 그 비축을 깎아먹으면서 견뎌낼 수가 있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들은 그런 방어막이 없다.

마치 피부 껍데기가 모두 벗겨져서 신경이 고스란히 노출되어있는 느낌.

바람 한 줄만 불어도 끔찍한 통증이 인다.

송종호의 정신은 그와 같은 상태였다.

예민한 사춘기에 학교 내에서 절정의 인기를 가지고 있었던 송종호의 급격한 추락.

친구들의 수군거림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마음속에 박혔다.

-쟤 정신분열이래.

-세상에…….

-환청 들리고 그런대.

-환각도 본대?

-그러니까 한 마디로 미친 거네?

-나 정신분열병 처음 봐.

-귀신 들린 거 아냐?

겁먹은 친구들도 하나씩 그의 곁을 떠났다.

조현병에 대한 거부감을 꾹 참고 친구로 남은 이들도 변해버린 종호의 모습을 감당하지 못했다.

함께 있으면 같이 우울해지는 기분에 학생들은 점점 종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3학년이 끝나갈 무렵에는 그에겐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었다.

“누나 있는 고등학교로 갈래.”

중학교 학업을 거의 마친 시점에 송종호가 말했다.

“우리 학교로?”

"응......."

송종호는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에게는 누나밖에 없었다.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인물. 자신을 이해해주는 인물.

송지현이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 그래.”

송지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러라고 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그녀도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정신병을 앓는 동생을 학교에서 책임진다는 것은 어린 소녀한텐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종호가 우리 학교로 온대.”

송지현은 그날 밤, 방문을 잠가놓고 친구들하고 통화했다.

-종호? 네 동생?

응.’

-와 대박! 너 동생 엄청 잘생겼다며?

“옛날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좀 아파서 안 그래. 기대하지 마.”

-어디가 아픈데?

"......."

송지현은 한 번도 주위 사람들에게 동생이 조현병을 앓는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반응이 두려웠던 것이다.

“정신분열증……."

-정신분열증?

아프다고 하면 독감 정도를 생각하는 학생들에겐 너무 충격적인 질병이었다.

-어떡해? 그거 전염되는 건 아냐?

-진짜 정신분열 맞아? 귀신 씌거나 한 거 아냐? 굿이라도 해보는 건 어때?

-와서 사고 치거나 하면 어떡해?

-어머 무서워……. 같이 사는 거야? 지현아 너 집에서 조심해. 걔가 해코지하면 어떡해?

친구들이 내놓는 걱정들에 송지현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원망스럽고 억울했다.

그 통화를 송종호가 밖에서 들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냥 송지현의 얼굴에 비친 감정들을 읽었을 수도 있다.

그 시점이 비극이 시작된 분기점이다.

송종호는 약을 끊었다.

나중에 송종호는 ‘그때 완치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약을 안 먹어도 이젠 스스로 망상과 환상을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약을 끊으니 체중도 관리가 될 것이고 우울한 분위기도 없어질 거라고 믿었다.

다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누나도 날 피하지 않겠지.’

송지현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송종호는 방송부에 들어갔다.

반장 선거에 나가서 담임과 같은 반 친구들 사이의 심부름을 도맡았다.

2학년이 되면 선도부도 하고 싶었다.

중학교를 송지현과 함께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두 사람은 학교에서 유명한 남매였다. 외모도 학업도 성격도 너무나 뛰어난 엘리트들.

여러 교내 활동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수많은 친구들이 그들을 따랐다.

송종호는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송종호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여름 방학이 막 지난 2학기 초가을.

조현병이 재발했다.

약을 끊은 직후부터 날뛰기 시작한 도파민.

환청이 이제는 잠깐의 쉴 틈도 주지 않고 머릿속을 지배했다.

-다 네 책임이야. 죽었으면 좋겠다.

-네가 약을 끊었잖아. 저것 봐. 옆에 얘들이 네 생각을 다 듣잖아.

-어떤 싸이트에서 너에 대해서 민원을 넣어서 그런 거 아냐?

-들켰네?

그 동안 잘 참아왔지만 조현병은 결국 송종호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이번에는 약간의 뇌손상을 동반하면서 훨씬 강력한 병증이 되었다.

송종호는 의식까지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대형 사고가 터졌던 날 아침.

송지현은 모든 게 악몽 같았고 깨어나고 싶어서 발버둥쳤다.

-교장 선생님이 내 머릿속에다가 칩을 넣었습니다.

아침 방송 직전 스피커에서 송종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다가 칩을 넣어서 내 생각을 전부 빼앗아 가는데, 교장 선생님은 그걸 구청에 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와주세요. 저는 정신분열증인 걸 알고 있습니다. 송지현은 저희 누나입니다. 어떤 사이트에서 우리 머릿속을 전부 다 밀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란 선생님들은 방송실로 달려갔다. 송종호를 제지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송지현을 찾았다.

교사들에게도 정신분열증을 앓는 학생은 생소했다.

가족인 송지현에게 지금 송종호의 상태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송지현은 교실에 없었다.

그녀는 가방도 싸지 않고 그대로 학교를 뛰쳐나갔다.

거대한 늪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기는 기분이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

“정신없이 발 가는 대로 걷다가 마포대교까지 갔죠. 거기서 한강을 보고 있었어요. 해가 저물 때까지. 선생님들한테 전화 오는 것도 다 꺼버리고.”

송지현이 말했다.

로잘린이 잠든 송종호를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송지현은 송종호의 조현병의 배경에 있는 심리 요인을 알려달라는 류영준의 요청에 대답하고 있었다.

“전 그때 종호를 모른척했어요. 도망쳐버렸어요.”

송지현이 말했다.

"......."

송지현은 눈가에 올라오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가 머쓱하게 웃었다.

“꼭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 같네요.”

그녀가 말했다.

“셀리큐어 나오고 나서 사람들이 저를 류 박사님하고 비교하던 때, 너무 마음이 불편했어요. 머리에 안 맞는 커다란 모자를 쓴 기분이었죠.”

"......."

“저는 류 박사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아닌데요. 류 박사님은 어린 동생이 아픈 걸 보고 옆에서 끝까지 지켜주고, 그 복수를 한다고 항암 연구를 한 사람이잖아요. 류 박사님은 보통 사람하고 달라요. 천재성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송지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류 박사님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과학자가 아니에요. 인간에 대한 연민이 뜨거운 사람이에요. 저는 그만한 용기가 없는 나약한 소시민이고요.”

"......."

“그래서 이 얘기도 해드린 거예요. 저는 류 박사님을 믿으니까요. 조현병을 유발한 심리 요인. 저는 제 탓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재발하기 전부터 더 잘 돌봐줬어야 했어요.”

“송 박사님 잘못이 아닙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송지현은 항상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 같았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그녀는 많이 지쳐보였다.

조현병을 앓는 동생을 돌보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너무나 힘든 이야기를 억지로 해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류영준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도와주세요.”

송지현이 말했다.

“제 동생을 완치시킬 수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류영준은 송지현의 어깨를 살짝 감쌌다.

“전에 선유병원에서 9살짜리 간암 환자, 이윤아. 기억하시죠? 우리가 같이 치료했던 애.”

“네……."

“그때 송 박사님이 없었으면 저 혼자서는 그걸 못했을지도 몰라요. 셀리큐어와 송 박사님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죠. 그리고 그건......."

류영준이 말했다.

“제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송 박사님. 약속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꼭 도와드릴게요. 조현병을 완치시키는 약을 꼭 만들어내겠습니다.”

"......."

송지현이 류영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약간의 긴장감이 섞인 침묵이 감돌았다.

“저……."

철컥.

방문이 열리면서 송종호와 로잘린이 거실로 나왔다.

두 사람은 황급히 떨어지면서 송종호를 돌아보았다.

송종호가 로잘린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게 그 다음 일이다.

***

-근데 왜 이렇게 박동이 올라가있죠? 제가 저 방에서 송종호 머릿속을 뒤지고 있을 때 여기서 뭘 하셨나요?

류영준의 몸으로 돌아온 로잘린이 물었다.

‘뭐……. 뭘 하긴 뭘 해!’

-네?

‘아니야 아무것도. 송 박사한테 환자 얘기를 좀 들은 게 다야.’

-의심스럽군요.

로잘린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말했다.

-이건 확실한 것은 아닌데, 제 생각에 당신이 만약 2세를 갖는다면 저는 그 아이의 몸에도 안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당신의 유전 정보 중 절반을 공유하는 아이일 테니까요. 몇 가지 핵심 유전자의 지노 타입(Genotype)을 가지고 있다면, 제가 그곳에서 세포 콜로니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뭐라고?’

-그럼 일종의 별장이 생기는 거죠. 류영준의 몸이 본가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전 언제든 환영이라고요.

‘으윽. 송 박사랑 아무 사이도 아니야. 너까지 이러지 마라. 난 연구에만 집중하고 싶어.’

류영준이 머릿속으로 로잘린과 대화를 나누는데 송종호가 말을 걸었다.

“저기……. 저도 류 박사님 대충은 아는데요. 저희 집엔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류영준은 조현병 치료제 때문이라고 얘기하려다 멈췄다.

그것 때문에 여기 왔다는 말은, 류영준이 송종호가 조현병을 앓는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 되니까.

그 정보를 얻게 된 경로가 어찌 되었든 송종호 입장에서는 좀 불편해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송지현이 나섰다.

“약 개발 때문이야.”

“약?"

“조현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계시거든. 그래서 내가 미팅을 요청했어.”

“그렇구나.”

송종호는 류영준을 바라보았다.

“그 약 언제 나오나요?”

“아직 개발 초기라서 완성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임상시험 하면 저도 받을 수 있나요?”

“신청하시면 신청자들 중에서 무작위 선정해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겁니다. 받으실 수도 있죠.”

식약처에서 허가를 내준다면 말이다. 사실 그게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이다.

“그럼 저도 신청해서 받겠습니다.”

송종호가 말했다.

송지현은 류영준에게 약을 만들어달라고 방금 전까지 애원했지만, 막상 동생이 임상시험을 한다니까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너 그게 무슨 약인지는 아니?”

그녀가 송종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몰라.”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 소기관을 살아있는 박테리아로 만든 다음 그걸 뇌세포에 집어넣는 거야. 위험할 수도 있어.”

“어쩔 수 없지.”

송종호가 말했다.

“저한테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 먹던 약들도 잘 안 듣는 것 같고, 계속 주위에 폐 끼치고 싶지도 않……."

띵동!

현관 벨이 울렸다.

송지현이 일어나서 인터폰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부녀회장인데요. 아가씨, 여기 집주인 따님 되시죠? 요즘 여기 와 있다고 들었는데.

“네."

-잠깐만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아드님 관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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