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 식약처 (6) >
“들어오세요.”
송지현이 문을 열어주었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안으로 들어간 류영준은 거실 소파에 앉았다.
“마실 거 좀 드릴까요?”
송지현이 물었다.
“감사합니다.”
“류 박사님 커피 좋아하시죠?”
송지현은 부엌에 있는 커피 머신으로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잔에 얼음을 담고 커피를 부어 가지고 왔다.
“미팅할 때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드시더라고요.”
“제가 카페인 중독이라서요.”
류영준은 송지현이 내미는 커피를 받아서 몇 모금 마셨다.
송지현은 소파로 이동해서 류영준의 옆에 앉았다.
“뺨은 왜 그래요?”
가까이서 송지현을 보고 류영준이 물었다.
송지현의 오른쪽 뺨이 약간 붉게 부어 있었다.
“약 먹이다가 애가 손으로 쳐내는데 맞았거든요.”
송지현이 머쓱해하면서 뺨을 문질렀다.
“아……."
“괜찮아요.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제가 실수한 거예요.”
“동생분은 지금 어디 계세요?”
류영준이 물었다.
“방에 있어요. 지금은 자고 있을걸요.”
“그렇군요.”
“이건 뭐예요?”
송지현이 류영준의 오른손에 들어있는 구겨진 종이를 발견하고 물었다.
“아, 이거. 별 거 아닙니다.”
류영준이 주머니에 쓱 집어넣었다. 하지만 송지현은 구겨진 면 사이로 적힌 글자들을 봤다.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던 설문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네.”
"......."
송지현은 잠깐 생각을 고르다가 말했다.
“사실 제 동생은 상태가 꽤 안 좋아요. 일찍 병증을 잡았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상태가 좋다고 해도 대개 저 설문 같은 반응이거든요.
류영준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송지현이 말했다.
“그냥 이 아파트에서 나가라는 거예요. 불안하고 집값 떨어지니까 빨리 이사 가라고. 저희 집한테 압박을 주는 거예요.”
"......."
“그래서 이번에도 부모님이 하도 시달리다가 너무 지치신 것 같아서 제가 잠깐 봐드리겠다고 하고 온 거예요."
“그랬군요. 그래도 부모님은 송 박사님이 있어서 많이 든든하시겠어요.”
송지현이 쓰게 웃었다.
“제가 그렇게 착한 딸이었으면 이 집에서 나가지도 않았겠죠."
"......."
“오랜만에 와보니까 사람들 분위기가 꽤 노골적이고 적대적이었어요. 흑시 여기 온다니까 경비 아저씨가 무슨 말 안 하시던가요?”
“다치지 말라고 조심하라고 하시더군요.”
“하하.”
송지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뺨 다친 상태로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종호는 본인이 자해할 때는 있지만 다른 사람한테 위해를 가할 만한 애는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아파트 주민들이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해요.”
“그래요?”
“매스컴에서 매일같이 조현병 환자가 누굴 죽였다고 뉴스를 내보내니까요.”
"......."
그간 쌓인 게 많았던 송지현은 물꼬가 터진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특히 최근에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아파트에서 방화를 저질렀다, 술집 화장실에서 칼로 누굴 찔렀다, 그런 얘기요.”
그녀가 말했다.
“마치 조현병을 앓고 있으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것처럼 프레임이 만들어졌죠. 하지만 류 박사님. 조현병 유병률은 1 퍼센트예요.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이면 그 중 50만 명이 조현병이에요.”
“맞습니다.”
“그 숫자를 생각하고 범죄율을 따지면 사실 일반인보다 더 낮아요. 환자나 환자 가족들 입장에선 좀 억울한 부분도 있는 거죠.”
“그 50만 명 대부분은 약물을 복용하고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고, 그 사람들은 충분한 인지능력을 유지하는 데다 폭력을 저지르지도 않으니까요.”
“맞아요. 그리고 치료를 끊고 재발한 중증 질환자들 중에서도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많이 없어요. 그 중증 환자들 중 상당수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서 집에서 나가는 것도 무서워하거든요.”
"......."
“근데 일단 한 번 사고가 터지면 전혀 일면식 없는 사람을 환청 듣고 공격한다거나 하는 묻지마 범죄가 터지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더 뉴스로 많이 옮겨지고, 사람들도 조현병에 더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아파트 주민들이 저희 동생을 무서워하는 것도 맘 아프지만 이해는 해요.”
송지현이 말했다.
“저도 시민들을 탓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송 박사님 말씀에 더해서, 저는 국가의 관리 체계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송지현이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류 박사님도 알고 계시네요. 2017년부터 입원 기준이 까다롭게 변했거든요. 그 후로는 중증 환자를 입원시키기가 좀 어려워졌어요. 누가 봐도 위험하다 싶은 상태여도 자해, 타해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입원을 못 시켜요.”
“그래요?”
“네. 당시에 입원 기준을 법령 개정할 때 정신과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반대를 많이 했는데 제대로 된 피드백도 없이 그냥 넘어갔어요.”
"......."
“그리고 미국 같은 경우엔 조현병 환자에 대해서 시민들이 신고를 하면 경찰이 환자 상태를 보고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겠다 판단되면 정신응급센터로 데려갈 수 있거든요?”
“정신응급센터요?”
“네. 거기서 입원이 결정되는 건 아니지만 의사들이 일정 기간 관찰해서 판단하는 거예요. 거기까지 경찰이 이송할 수 있는 권한이 있죠. 우리나라는 아니에요. 경찰한테 그런 능력도 없고, 정신응급센터 같은 기관도 없죠. 우리나라는 그냥 민간 의료 기관들이 입원실 위주로 운영하는 게 다예요.”
"......."
“환자 수가 50만이나 되는 심각한 질병을 다루는 시스템이라기엔 너무 부실한 게 사실이죠."
잠깐 대화가 멈추었다.
류영준은 커피를 마셨고 송지현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근데 류 박사님, 오늘 제 동생을 보러 오신 거랬죠?"
송지현이 물었다.
“맞습니다.”
"......."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류영준은 그동안 불치병으로 알려진 지독한 질병들을 하나씩 척척 무너뜨려온 사람이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알츠하이머조차도. 파괴된 뇌세포를 재생시켜서 인지 능력과 기억을 회복시켰다.
그에 비하면 어쩌면 조현병은 더 쉬울지도 모른다. 뇌 손상 정도만 놓고 보면 보통은 조현병이 더 약하니까.
문제가 있다면 조현병은 그 발생 기작을 거의 모른다는 것인데, 그래도 류영준이라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찾아오신 거. 혹시……. 제가 기대하는 게 맞나요?”
송지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현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도파민 억제제를 대체하는 물질인가요?”
“아뇨. 완치시키는 약입니다.”
“아……."
송지현이 짧게 탄성을 뱉었다. 기대했던 그대로다.
“류 박사님이 연구를 한다면 기존 신약들하고 비슷한 복제약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개발 초기이니 너무 기대하진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어떤 기술인지 간단하게라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송지현이 물었다.
"음......."
류영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놀라지 말고 둘으세요.”
류영준은 로잘린이 만들어준 그 과격한 치료법을 설명했다.
“뭐라고요?”
놀라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송지현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미토콘드리아에 유전자를 100여 개나 실어서 뇌세포로 전달한다고요?”
그녀의 얼굴이 싸해졌다.
“유전자를 100개씩 옮기는 방법은 그뿐이니까요.”
“그게……. 그게 그렇긴 한데……."
그녀가 어버버하는 걸 보면서 류영준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들으면 확실히 당황할 만한 얘기지.
“근데 정신과 치료는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가 둘 다 병행되어야 해요. 아마 제가 개발하는 치료제가 잘 작동해서 허가 받고 상용화된 후에는 정신과 의사들이 맡아서 잘 하겠죠.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저는 심리 요인에 대한 연구 자료들이 좀 필요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실제 환자들의 케이스에서 어떤 심리적인 요인이 조현병을 유발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약물 개발에 참고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송지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 동생이 학창 시절에 발병하던 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으신 건가요?”
“네. 혹시 짚이시는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
로잘린은 송지현의 집안에 들어가자마자 류영준에게서 튀어나왔다. 그녀는 곧장 작은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줄곧 송종호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건 류영준이 내린 명령이었다.
‘송지현 박사가 생각하는 것과 실제 심리 요인은 다를 수도 있어. 난 송 박사한테 얘길 들어볼 테니까, 그 사이에 네가 환자 뇌에 들어가서 조현병들 유발한 기억을 찾아볼 수 있겠니?’
로잘린에겐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송종호의 콧속으로 들어갔다.
비강 점막을 지나 혈관으로 이동했다. 잠깐 혈류에 몸을 맡겨 이동한 다음 혈관 벽을 살짝 찢고 뇌로 들어갔다.
류영준의 뇌 이후에 사람 뇌에 세포체로 직접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지지지직
도파민이 그녀의 세포막 근처에 몰려들었다.
“귀찮게.”
로잘린은 그것들을 단숨에 쳐내버리고는 중뇌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 변연계로 이동하는 길목에 해마나 편도에 연결된 뉴런이 있다.’
그녀는 산책하듯이 도파민 경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수백만의 뉴런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공간.
여기서 만들어지는 무한한 전기적 흥분의 조합은 인간의 뇌를 작은 우주로 만들었다.
그 어떤 컴퓨터로도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분석해낼 수 없을 테지만, 로잘린에게는 모든 것이 분명했다.
“찾았다.”
로잘린은 뇌신경의 다발 사이에서 작은 뉴런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은 편도체와 해마로 이어져있었다.
‘류영준의 트라우마와 싸우던 때가 생각나는군.’
그때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상대다. 로잘린은 연결된 해마 세포와 편도체를 뒤졌다.
송종호의 오래된 기억과 트라우마적인 감정들을 관찰했다.
"......."
이 작업은 마치 오래된 도서관에서 고문서들을 하나씩 꺼내어 뒤져보는 것과 비슷했다.
‘피트니스를 좀 더 쓸까.’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로잘린은 피트니스 연소율을 높였다.
2만 7천여 개의 세포들의 신호를 분석하던 무렵이었다.
콰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공간이 흔들렸다. 세포막들 사이가 축축해졌다. 많은 양의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뭐야?”
로잘린은 곧바로 상황을 살펴보았다.
무슨 사고가 난 건가 했는데 별 일 아니었다.
그저 송종호가 깨어나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다만 각성과 함께 엄청난 양의 도파민이 홍수처럼 머릿속에 퍼졌다.
“송종호가 먹은 약은 도파민 수용체를 억제하는 약이다.”
로잘린은 중뇌-변연계의 도파민 경로 쪽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도파민 수용체’를 막아버린다는 말의 뜻은, ‘도파민’ 양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같은 개수의 볼트와 너트가 있을 때, 너트를 모두 막아버리면 볼트는 쓸모없어지겠지만 볼트 개수가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이처럼 도파민이 사방에 흘러넘치는 것이다.
“으으……. 한 동안은 일 시키지 말라고 해야지.”
로잘린은 세포막 근처에 추적거리는 도파민을 찝찝한 표정으로 걷어냈다.
송종호는 거실로 나왔다.
본래 그의 정신은 오락가락하는 편이었다.
똑같이 약을 안 먹었다고 해도 어쩔 때는 제 정신이고, 어쩔 때는 아예 의식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면 보통 방구석에서 덜덜 떨면서 정신을 차리곤 했는데, 의식이 사라진 사이에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부리거나 헛소리를 수없이 늘어놓는 식이었다. 지금은 약기운이 꽤 돌아서 이젠 머릿속이 웬만큼 차분했다.
“누구세요?”
송종호가 물었다.
정신이 웬만큼 돌아왔어도 발음은 약간 어눌했다.
거실에 당황한 표정의 류영준과 송지현이 앉아있었다.
“누나 손님?”
“류영준이라고 합니다.”
“……. 아? 안녕하세요. 근데 나 이거 뭐지. 약기운이 아직 덜한가. 환각이 있는데.”
송종호가 관자놀이를 짚으면서 허공을 휘저었다.
“글자가. 누나. 나 오늘 약 뭐 먹었어?”
“글자?”
송지현이 물었다.
“어……. 로잘린……? Lv……."
류영준의 어깨가 움찔했다.
팍!
송종호의 입에서 로잘린이 튀어나왔다.
-휴우. 힘들었다.
그녀는 목 스트레칭과 함께 류영준 쪽으로 다가왔다.
“누나, 이젠 어린애다. 소녀가 나타났어!”
송종호가 놀라서 소리쳤다.
로잘린은 송종호 쪽을 홱 돌아보았다.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는 류영준의 몸속으로 쏙 들어왔다.
“어어.......”
송종호의 눈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류영준이 물었다.
-제 세포가 환자의 뇌 속에 있을 때 도파민이 갑자기 분출했습니다. 거기 휩쓸리면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
그럴 수도 있구나.
처음 알았다. 이거 조심해야겠는데.
-다행히 조현병 환자였으니까 환각 정도는 자주 볼 겁니다. 모른 척 하시면 돼요.
송종호는 불안한 듯 머리를 매만졌다.
“아직도 환각 있어?”
송지현이 물었다.
“아니. 이제 약이 도나봐.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