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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화. < 식약처 (4) > (6/301)

150화.  < 식약처 (4) >

식약처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 (IRB)의 심사위원인 오현동 박사는 류영준의 지지자 중 하나다.

물론 지지자라는 말이 그가 내놓는 연구물들에 대해서 임상 허가를 후하게 내준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천재가 만들어가는 미래의 화려함에 감탄했을 뿐이다.

최근에는 에이바이오로부터 새로 들어오는 임상 시험 요청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근래의 항암 연구는 미국에서 진행해서 FDA의 심사를 받게 된다.

스웨덴의 카롤린스카 의대에서 했던 연구는 임상 시험을 건너뛰었다.

‘그것도 사실 엄밀히 따지면 임상을 해야하는 게 맞긴 한데.’

환자 본인이 강력히 요구했고 스웨덴 왕실의 추천을 받아 정부에서 허가를 해줬다니까 뭐 할 말 없다.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한국 식약처에서 뭐라고 하겠는가.

배양육 역시 미국에서 개발했고, 류영준이 미국에 있을 때 안전성 입증까지 다 끝내버린 데다가 FDA의 안전성 검사가 선행되기 때문에 국내 식약처에서 할 일이 줄어든다.

게다가 그건 임상시험도 아니고.

한 마디로 요즘은 ‘심심’했다.

류영준이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든 다음을 떠올려보면 대조가 더욱 선명하다.

처음으로 줄기세포를 이용한 녹내장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알츠하이머 치료제며 에이즈 치료며 췌장암 치료제며…….

엄청난 약들이 쏟아져 나오던 몇 달 동안은 정신없이 바빴다.

‘또 신비한 기술 하나 내놓으시지 않으려나.’

출근해서 지루한 웹서핑을 잠깐 하던 오현동은 곧 그 생각을 후회하게 됐다.

류영준으로부터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그가 한 말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미토콘드리아를 뭘 어쩐다고요?”

오현동이 소리를 질렀다.

-인체 유래 세포로부터 추출한 미토콘드리아를 증식 가능한 형태로 분화시킨 다음, 유전자를 운반하는 용도로 쓰는 겁니다. 유전자 107개를 삽입한 다음 환자의 뇌로 보내어 뇌세포에 집어넣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107개 유전자들이 발현되게끔 함으로써 조현병을 치료하려고 합니다.

"......."

오현동이 노트에 받아 적던 펜을 책상에 툭 던졌다.

“류 박사님, 이건……. 이건 너무 갔어요.”

그가 말했다.

“아데노 어소시에이트 바이러스 (AAV) 같은 걸로 유전자를 사람 세포에 넣는 게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선 유전자 107개를 집어넣을 방법이 없습니다. AAV 는 용량이 작아서 유전자 한 개도 넣기 힘드니까요.

“아니 대체 유전자를 107개씩이나 왜 넣으려는 겁니까?”

-그 정도는 해야 조현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까요.

"......."

-이걸로 임상 시험 허가를 받으려면 전임상 데이터가 어느 정도 필요한지 미리 확인하고 싶어서 연락드린 겁니다. 원하시는 만큼의 동물실험 데이터를 생산해드리겠습니다.

“너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실험이라서 동물실험 기준도 책정을 못하겠습니다. 류 박사님, 왜 유전자를 사람 체내에 넣을 때 AAV 바이러스를 쓰는지 아십니까?”

-안전하니까요.

“맞습니다. 안전성이 입증돼있지요. AAV는 원하는 세포에 들어간 다음 거기서 증식하지 않는다는 게 알려져 있어요. 근데 류 박사님이 쓰려는 그 박테리아가 된 미토콘드리아는 그 안전성에 대해 어떤 데이터가 있습니까?”

-그 데이터를 생산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아닙니까? 원래 임상시험이라는 게 리스크를 동반하는 거예요.

“그게……. 그야 그런데……."

-그리고 AAV가 안전한 이유는 세포의 유전자 안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잖아요?

“그렇……죠……."

-미토콘드리아도 세포질에 남을 뿐이지 유전자 안에 들어가진 않습니다.

“그렇긴 하죠.”

-그리고 증식하려면 고농도의 메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체 내에서는 증식하지 않습니다. 사람 뇌세포에 들어가면 유전자만 조작되었을 뿐 생물학적 활성은 일반 미토콘드리아와 똑같은 상태가 돼요.

"......."

-이걸 잘 셋업만 하면 조현병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좀 파격적인 실험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꼭 임상시험까지 가지고 가야해요. 허가를 받으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휴우……. 다른 심사위원들하고 의논 좀 해보겠습니다. 일단 동물실험은 그 치료법으로 쓰는 미토콘드리아가 뇌세포에만 들어가고 다른 곳으로는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부터 확실하게 해주십시오.”

***

-뭐래요?

로잘린이 물었다.

“뇌세포 외의 다른 세포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의 증거를 확보해야 해.”

류영준이 답했다.

-그야 간단하죠.

“근데 나도 궁금하다. 미토콘드리아를 뇌세포 내에 어떻게 특이적으로 집어넣지? 이건 바이러스보다 훨씬 큰 생물체야. 쉽게 들어가지 않을 텐데.”

-전기 천공으로 넣었던 것처럼 하면 됩니다.

로잘린이 답했다.

“뇌 속에 미세 전류 자극을 흘려주자고?”

-아니요. 뇌에서는 뉴런 사이에 흐르는 전류 때문에 세포막이 매 순간 조금씩 손상되고 회복되길 반복합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뇌의 표적 세포에 미토콘드리아가 달라붙기만 하면 확률 게임에 의해서 알아서 들어갈 거예요. 못 들어간 미토콘드리아들은 메탄 부족으로 비활성화되어 알아서 제거될 것이고요.

“표적 세포에 들러붙는 것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지?”

-미토콘드리아에 도입한 유전자들 중에서 D7T1이라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D7T1?”

-커스텀으로 만든 도파민 수용체입니다. 이게 있으면 우리가 만든 미토콘드리아는 도파민을 추적하게 됩니다. 마약탐지견이 냄새 따라가듯 말이에요. 중뇌-변연계로 이동하는 도파민 경로를 타고 미토콘드리아가 알아서 추적할 겁니다. 그리고 도파민 활성이 높은 세포에 들러붙게 됩니다.

“도파민 활성이 높은 세포가 조현병을 일으킨 세포니까, 그 세포에 미토콘드리아가 들어가면 된다?”

-맞습니다. 세포 내에 미토콘드리아는 천 개가 넘게 있어요. 우리가 약물로 넣어주는 미토콘드리아들은 세포 하나에 100여 개 남짓 들어갈 겁니다. 그 정도는 세포의 생리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아요.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발현되는 107개의 유전자들은 도파민 생성량을 억제하고 세로토닌과 글루타메이트를 조절해서 약물을 대체할 겁니다.

‘와아…….'

류영준은 새삼 감탄을 터뜨렸다.

그동안 로잘린의 천재성은 수없이 확인했지만 이번엔 정말 기가 막힌다.

처음 미토콘드리아 얘길 꺼냈을 때만 해도 SF 소설 같았다.

하지만 이젠 그게 현실적인 방법으로 가시권에 들어왔다.

과학은 이해의 학문이다.

모르는 채로 보면 신비하고 마법 같지만 알고 나면 당연하고 명백하다.

미토콘드리아를 통한 유전자 도입 치료는 그 기작이 너무나 분명했다.

‘그럼 쥐 실험을 해볼까.’

류영준은 미토콘드리아가 들어있는 용액을 주사기로 쥐의 두개 아래에 주사했다.

-근데 송지현 박사가 그 조현병 환자의 상태를 ‘초기에 잘 잡은 편’이라고 했던가요?

한참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로잘린이 물었다.

“그랬던 것 같은데.”

-초기에 잘 잡았으면 자살까지 가는 경우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우리랑 맞닥뜨렸을 때 동기화 모드로 살펴보았잖아요? 그 정도면 꽤 심각한 상태예요.

“그래?”

-병증은 많이 진행된 상태입니다.

“근데 송 박사는 왜 그렇게 말했지?”

-글쎄요. 당신한테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알리고 싶지 않았나보죠.

로잘린이 말했다.

-한 번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동물 실험에서 아무리 좋은 효과를 봐도 임상에서는 좀 미흡할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조현병을 촉매가 되는 심리적 요인이 있어요. 유전이 절반, 환경이 절반을 차지하는 병입니다. 즉, 유전적으로 도파민이 어쩌고 하는 것들은 ‘조현병에 취약한’ 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고요. 환경적으로 ‘조현병을 유발한’ 심리 요인이 있다는 겁니다.

"......."

-물론 후자 역시 생물학으로 치환하려면 못할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심리적인 요인이든 결국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 신호나 아드레날린과 에피네프린의 발현으로 통하는 것이니까요.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까지 약물로 잡으려면 엄청난 양의 변수를 처리해야 하는데, 그럼 임상을 수천 번 받아도 모자랄 겁니다. 전 방법을 제시할 순 있지만 현실성이 낮네요.

“좋아. 송 박사를 만나볼게.”

류영준이 실험쥐들을 케이지에 넣으면서 말했다.

***

잠깐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송지현은 뜻밖에도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제 집은 아니고 부모님 댁이에요. 전 잠깐 일이 있어서 왔는데, 지금은 부모님이 나가고 안 계세요. 그리고 동생 봐줄 사람이 없거든요. 데리고 나가서 카페 가기도 뭐하고……. 그냥 집으로 오세요.

그녀는 주소를 알려주었다.

전화를 끊고 차에 탔는데 기분이 묘했다.

송지현의 집에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다.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로잘린이 말했다.

“뭐, 누가 좋아해.”

-심박이 좀 올라간 거 같아서요.

“까불지 마라. 환자에 대해서 물어보다가 실수할까봐 긴장해서 그런 거야.”

류영준은 케이캅스 경호 차량을 타고 송지현이 일러준 주소로 이동했다.

경호 팀은 차량에서 대기하고, 류영준은 혼자 아파트 동으로 들어갔다.

출입구에서 신원을 확인하던 경비가 류영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류 박사님? 류영준 박사님? 입니까? 에이바이오……?”

“맞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여기 1402호에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인터폰 연결해주시면 알려주실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1402호요? 아아. 그 집……."

갑자기 경비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왜 그러시죠?”

“아닙니다. 그리고 그 집 따님이 이 시간에 손님 오면 문 열어주라고 하셨어요.”

경비는 출입구 열림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이동하는 류영준을 경비가 뒤따라왔다.

“근데 그 집에는 무슨 일이신지……."

“그 따님이란 분을 잠깐 만나러 왔습니다.”

“그 정신병자 때문은 아니군요?”

어감이 묘했다.

류영준이 경비를 힐끗 돌아보았다.

"음음."

경비는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하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류 박사님. 그 집에 정신분열증 앓는 남자 있습니다. 갑자기 공격이라도 하면 어떡해요.”

“……. 조현병 환자가 공격을 하나요?”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니니까 살인도 더 쉽게 저지르고……. 그렇잖습니까. 류 박사님 같은 분이 다치면 어떡해요?”

“인구 10만 명당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 비율은 68명 정도입니다. 정신질환자의 경우엔 어떨까요?”

“네?"

“10만 명당 33명 정도 됩니다.”

"......."

“조현병을 앓고 있으면 상황에 따라서, 약물 복용 상태에 따라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때가 있지만 그게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실제로 저를 살해하려고 했던 사람도 서너 명 있었지만 그 사람들 모두 정신 멀쩡했고, 그들을 사주한 사람은 상당한 지능을 갖춘 대기업 임원이었습니다.”

"......."

“뭐, 정신질환자가 쉽게 살인을 저지른다는 선입견은 워낙 널리 퍼져있으니 이해는 됩니다. 선생님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근데 그 사람들은 악마나 짐승이 아닙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환자죠.”

땡!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류영준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4층을 눌렀다.

벽면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주민 대상 설문 조사.]

다음 중 부동산 가격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정답이라 생각되는 요인에 스티커를 붙이세요.)

1. 거구의 중증 정신분열증 환자

2. 외국인 노동자

3. 장애인

1번에만 스티커가 80여 개 붙어 있었다.

"쯧."

류영준이 짧게 혀를 찼다.

“로잘린. 송 박사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제 알겠다.”

그는 종이를 지익 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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