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 식약처 (4) >
송종호의 상태는 꽤 심각했다.
류영준에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신정주 교수는 면담 기록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 목소리들이 자기들은 시켜서 그랬는데 공부를 끊으면 빨간색 먹는다고 한다. 절에서 촛불을 치는 스님들이 도청하는 칩을 뺐는 데, 칩이 심어져 있어서 칩에서 소리가 새나가서 물방울물방울 우르륵탁갹탁캭닥닥
-후드티를 입고 자동차에서 울퉁불퉁하고 삐 소리가 났다 스님들이 콧물을 퉁퉁퉁탁했고 시켰다. 나한테 어렵게 하직했다. 목욕하다 힘세면 오후에 노을 모자를 쓰고 빡빡 문질러 닦았다
송종호가 쓴 글이다.
‘논리적 지리멸렬.’
만성적으로 발전한 조현병의 전형적인 증세 중 하나다.
하나로 이어지는 논지가 없고 파편화되고 의미 없는 논리 전개가 사방으로 튀어서 전혀 요지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와해.
이 정도면 꽤 많이 진행된 상태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사고우원증 (circumstantiality)과 신어조작증 (neologism)도 있다.
논점을 빙빙 돌아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창조해서 내놓는 것이다.
둘 다 심각한 조현병의 전형이다.
“클로자핀이랑 리스페리돈, 그리고 항우울제인 SSRI를 병용 투여하도록 처방했는데 괜찮을까.”
신정주는 처방 기록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이 처방전은 보호자인 송지현 박사의 강력한 요구로 나온 것이다.
본래는 클로자핀만 처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송지현이 세계생물정신의학회 (WSBF)의 지침서와 관련 논문들을 들이밀면서 약물 처방에 간섭했다.
신정주 입장에서는 약간 과감한 처방이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조현병에 한해서는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거 같기도 하고……."
본래 신약을 개발하는 유명한 과학자고 약사니까 신약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송지현의 지식은 깊이가 남달랐다. 아마 조현병에 관한 지식만은 국내에서 한 손에 꼽힐 것이다.
“요즘은 환자들이 공부할 방법이 많아져서 암 환자들은 웬만한 의사 뺨치는 항암 지식을 갖고 있다더니.”
신정주 교수는 혀를 내둘렀다.
***
“종호야, 약 먹자.”
집에 돌아온 송지현은 약을 타서 동생에게 내밀었다.
약을 먹일 때마다 전쟁이다.
190 cm 장신에 약물 부작용으로 살이 쪄서 체중이 120kg까지 불어난 남성을 여자 몸으로 통제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언어가 와해되어 대화가 통하지도 않고 물리력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어느 정도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아버지는 오늘 집에 안 계셨고, 송지현이 혼자서 먹여야 했다.
물론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말 안 듣는 동물을 어르고 달래서 약 먹이는 것처럼 송지현은 입에 알약을 손가락으로 밀어 넣고 물과 함께 먹이려고 애썼다.
"으으으!"
그러나 입안에 약이 들어가면 송종호는 재빨리 뱉어냈다.
“이거 먹어야 낫지.”
송지현은 떨어진 약을 다시 입안에 넣어주었고, 송종호는 또 뱉어냈다.
침과 물이 사방에 범벅이 되어서 30분을 씨름한 끝에 간신히 알약 하나를 삼키게 하는 데 성공했다.
‘리스페리돈이랑 SSRI도 먹어야 하는데…….'
조현병 치료제는 ‘도파민 억제제’다.
현대 의학은 조현병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끝에 한 가지 중대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건 조현병 환자의 뇌에서 도파민이 비정상적으로 과발현한다는 것이었다.
이 막대한 양의 도파민이 뇌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일으킨다.
따라서 그 도파민을 억제하면 병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예상은 적중해서 초기의 조현병 환자에게 도파민 억제제를 투약하면 병세를 상당히 잡아낼 수 있었다.
정신의학계의 큰 진보다.
환자는 환청이나 망상이 줄어들고 인지 능력이 회복된다. 환청이나 망상이 일어나는 정신세계와 정상 컨디션일 때의 정신세계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그때부터 환자 스스로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자신의 병증을 관리하면 당뇨처럼 병을 잡은 채로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도 먹자.”
송지현은 리스페리돈을 먹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클로자핀과 리스페리돈 둘 다 도파민 억제제다. 중증 환자에게 병용 투여로 사용하는 치료제다.
하지만 이 치료는 잔인하다.
송지현이 침을 꼴깍 삼켰다.
약을 먹은 송종호의 눈빛을 보았다.
마음이 덜컥 무거워졌다.
‘도파민’은 즐거움의 호르몬이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때 주로 분비되는,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이다.
그 도파민을 억제한다는 말은, 환자를 엄청난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뜨린다는 뜻이다.
“……SSRI만 먹으면 돼.”
송지현은 알약 하나를 더 꺼냈다.
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의 약자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라는 뜻.
이 약은 항우울제다.
송지현은 SSRI를 꺼내어 동생의 입가로 가져갔다.
탁!
송종호가 그녀의 손을 매섭게 쳐냈다.
“으으.......”
“이거 먹으면 좀 나아질 거야. 괜찮아. 이리와.”
송지현이 바닥에 떨어진 약을 다시 주워들었다.
“죽어!”
송종호가 약을 또 쳐냈다. 이번에는 손끝이 송지현의 뺨에도 부딪혔다.
“악!"
송지현의 머리만한 크기의 손바닥이다. 스치기만 했는데도 송지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
그녀는 뺨을 문질렀다.
떨어진 약을 다시 주웠다.
***
“어때?”
류영준은 원심분리기에서 샘플을 꺼내면서 로잘린에게 물었다.
샘플 안에는 세포 용해액이 들어있었다.
원심분리기에 넣고 강력한 중력을 줘서 분리하면 세포 용해액 내부에 있는 물질들이 무게에 따라서 분리된다.
더 무거운 게 아래로 내려가는 식이다.
1시간 정도 분리하면 액체 내부에 ‘층’이 생긴다.
마치 흙탕물을 오래 두면 무거운 모래들이 아래로 가라앉아서 물과 분리되는 것처럼 말이다.
-됐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밑에서 열세 번째 층의 연청색 부분을 분리하세요. 저 안에 미토콘드리아가 있습니다.
“밑에서 열세 번째?”
류영준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50 mL 팔콘 플라스틱 튜브를 쳐다보았다.
“이 샘플에 분리된 층이 열세 개나 된단 말이야?”
거의 투명하고 색깔이 거의 없어서 ‘층’의 분리 경계면이 뚜렷하지 않았다.
류영준이 눈살을 찌푸리자 로잘린이 끼어들었다.
-아. 그쪽 아닙니다. 이런. 인간의 눈은 저걸 서로 다른 층으로 분별 못하는군요.
로잘린이 류영준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할 수 없죠. 제가 짚어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팔콘 튜브의 아랫부분을 콕 찔렀다.
-이 부분.
“여기에 분리된 층이 있다고?”
-어려우시면 제가 분리해드릴까요? 손 통제권만 잠깐 넘기시면 뽑아드리겠습니다.
“됐어 인마. 야, 나도 생물학 실험을 10년씩 한 사람이야.”
류영준이 자존심이 상한다는 듯 말했다.
-그럼 해보세요. 제가 코치해드리죠.
류영준은 파이펫을 들고 용액을 뽑아내어 조심스럽게 표적 위치의 액체를 분리했다.
“됐나?”
-불순물이 조금 딸려왔지만 그만하면 잘 했어요.
“어차피 배양하는 과정에서 그 불순물들은 제거될 거 아냐?”
-맞습니다.
“근데 미토콘드리아를 어떻게 배양하지?”
-이제부터 그걸 알려드리겠습니다. 별로 어렵진 않아요. 미토콘드리아는 본래 별개의 생명체였으니까.
‘생물체’라는 것의 개념은 꽤 모호하다.
보통 ‘생물’이라고 하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단수 개체를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기본 단위인 ‘세포’ 조차도 사실 그 안에 수많은 생물체들이 집합해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미토콘드리아다.
약 21억 년 전.
특이하게 생긴 원핵세포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다른 미물들보다 훨씬 덩치가 컸는데, 어느 날 우연히 박테리아 하나를 흡수했다.
박테리아는 원 핵세포 내부에서 음식물로써 소화되거나, 병원체로써 원 핵세포를 파괴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박테리아는 원핵세포의 몸 내부에서 공생한다는 매우 특이한 결론을 내렸다.
서로 다른 미시 세계의 두 생명체가 손을 맞잡은 순간이었다.
모든 곤충과 어류, 포유류, 파충류, 겉씨식물과 속씨식물, 양치류 따위를 전부 아우르는 ‘동물’과 ‘식물’의 공통 조상.
‘진핵 세포 (Eukaryote)’라는 지구상 생물학 최대의 기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이후에 수없이 많은 바이러스의 감염을 겪으면서, 그것들을 유전자 내부에 흡수했다.
바이러스들은 트랜스포존의 형태로 진핵 세포와 공생하면서 세포의 진화를 도왔다.
세포 하나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집합과 같은 상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진핵 세포는 더 이상 단일 세포로서 혼자 살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군체를 만들어서 여럿이 한 데 뭉치는 ‘세포 사회’를 발명해냈다.
다세포 생명이 출현하는 시점이었다.
이후 오존층이 형성되어 지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양이 감소됨에 따라, 다세포 생물은 육상으로 진출했다.
약 5억 년 전의 일이다.
지금 지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그것의 후손이다.
-21억 년 동안 진핵 세포의 일부분이 되어서 살아왔던 놈입니다. 독립된 생명체로서의 기능은 많이 소실했을 거예요. 하지만 몇 가지만 고쳐주면 배양할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좋아. 해보자.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 미토콘드리아가 박테리아로 생활하던 시대의 환경을 재현해줍시다.
로잘린이 말했다.
-약 24억 년 전의 바닷속을 재현할 겁니다. PBS 용액에서부터 시작하죠. 선반에 있는 1X PBS 통에다가 일단 나트륨 400 그램을 먼저 넣으세요.
“나트륨 400 그램.”
-그 다음엔 저기서 산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당시 바닷속은 산소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그 양이 적고 바닷속의 대리석, 철 같은 광물과 우선 반응해서 생명체가 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좋아……."
-그리고 메탄 농도를 높여야 합니다. 여기까지 할 수 있겠어요?
“그 다음엔?”
-이제 미토콘드리아에 유전자들을 넣어야 합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지난 21억 년 동안 자기 유전자를 많이 잃어버렸어요. 진핵 세포 본연의 유전자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을 ‘수입해서’ 쓰는 식이었죠. 이제 미토콘드리아에게 사라진 내수 경제를 활성화시켜줍시다.
“너 점점 말재주가 는다? 방금 내수 경제 드립 좀 탐나는데.”
-어디 가서 쓰실 때 제 거라고 얘기하셔야 합니다.
***
미토콘드리아를 4일간 배양했다.
엄청난 양으로 불어났다. 배양액 1리터에 꽉 찼다.
전자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고 O.D. 값 등의 기록을 남겼다.
미토콘드리아를 원시 박테리아로 회복시켜서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만 해도 사이언스 커버를 장식할 만한 연구 성과다.
그 자체로서 의학이나 산업에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도, 학술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크니까.
하지만 류영준은 아직 논문을 쓰지 않았다.
아직 이걸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요청하신 총 107개의 유전자 샘플입니다.”
에이젠의 DNA 합성 팀에서 동결 건조된 대량의 DNA를 보내주었다.
“근데 이렇게 많은 DNA를 다 어디에 쓰시려고요……?”
전달해준 직원이 의아한 듯 물었다.
“새 치료제를 개발할 겁니다. 아직 자세한 건 비밀이고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면 연구원들한테 줘서 맡길 거예요. 지금은 파일럿 실험이라 제가 직접 하는 중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미토콘드리아에 유전자들을 집어넣는 과정은 전기 천공 (티ectroporation)을 이용했다.
전기 자극으로 세포막을 찢어버린 다음 DNA를 삽입하는 기술이다.
거의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이 데미지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지만 상관없다.
살아남은 것들을 회복시켜 다시 배양하면 되니까. 그렇게 두 번째로 배양된 세포들은 모두 새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이제 동물 실험을 해봅시다.
로잘린이 말했다.
에이젠 연구지원센터에서 조현병 연구 모델 쥐를 받았다.
도파민 발현 유전자를 조작해서 조현병을 앓는 것과 유사한 행동을 하게끔 만든 쥐다.
여기서 성공하면 일단 임상을 향한 첫 걸음은 성공적으로 내딛는 셈이다.
‘이 미친 신약에 임상 허가를 받으려면 안전성을 입증하는 동물 실험 데이터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야 할 테지만…….'
류영준은 쥐 30마리가 든 케이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