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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 식약처 (3) > (4/301)

148화.  < 식약처 (3) >

송종호는 송지현의 연년생 동생이다.

아버지는 SG 그룹의 임원이었고 어머니는 경제학 박사까지 공부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전업 주부가 됐다.

유복한 중산층 집안의 따뜻하고 안정된 유년 시절은 행복한 기억밖에 없다.

송지현도 예쁜 얼굴로 유명세를 탈 만큼 인물이 좋았지만 동생은 더했다.

송종호는 동네 엄마들의 아이돌이었다.

“아이고, 종호는 무슨 남자애가 여자애들보다도 더 예쁘네.”

“얘는 크면 여자들 많이 울리고 다니겠다.”

보는 사람마다 예쁘게 잘 생겼다며, 칭찬하고 사랑스러워했다.

실제로 송종호는 자라면서 제 누나처럼 똑똑하고 말도 잘 하고 운동도 공부도 잘하는 만능 모범생이 됐다.

그리고 송지현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그 일이 처음 터졌다.

“너 그거 전부 다 오늘 받은 거야?”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에서 뭔가를 쏟아내는 송종호를 보고 송지현이 황당한 듯 물었다.

초콜렛이 한 가득이었다.

“어."

“나 편지 봐도 되냐?”

“편지는 안 돼.”

“그럼 초콜렛은 먹어도 돼?”

“응. 누나 다 먹어.”

“직접 만든 수제도 있는 거 같은데……. 너 안 먹고 다 줘도 되는 거야?”

“나 어차피 단 거 싫어하는데 뭐. 그리고 누나는 단 거 귀신이잖아. 걔 이름도 생크림이라고 짓고. 리트리버한테 생크림이 뭐야.”

“쟤 나중에 커서 새끼 낳으면 새끼는 브라우니라고 지을 거야.”

송지현이 초콜렛 하나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진짜 나 먹는다?”

“누나 다 먹으라니까.”

“얘가 이렇게 누나 뒤만 졸졸 따라다녀서 어떡하지.”

송지현이 초콜렛 껍질을 까면서 말했다.

“난 진짜 누나밖에 없어.”

“징그럽게 헛소리 하지 마라.”

“진짜야……."

송종호가 말했다.

“그러니까 누나는 나 싫어하면 안 돼.”

“학교에서 인기 젤 많으면서 누가 널 싫어하니?”

“아냐. 나 싫어하는 애들 많아. 엄청 많아……."

“라고 방금 가방에서 초콜렛과 편지 40개를 쏟아놓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진짜야. 맨날 애들이 내 욕 한다고. 다 들려. 요즘은 그거에 노이로제 걸릴 지경이야. 이제는 책장 넘길 때도 꺼져, 병신, 이런 소리 들리는 거 같아. 나 왕따 당하는 거 같아.”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내가 널 모르냐? 나 몇 달 전까지 너랑 같은 학교 다녔거든?”

송지현이 같잖다는 듯 대꾸했다.

“그래서 걱정이야.”

송종호는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나가 고등학교 가서. 이제 학교에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단 말이야……."

놀랍게도 송종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울먹거리는 눈가를 닦아내는 걸 보고 송지현은 깜짝 놀랐다.

“너 우냐?”

“아냐.”

송종호는 자기 방으로 도망치듯 쏙 들어가 버렸다.

“뭐야……."

송종호가 눈물까지 보인 것에 충격을 받은 송지현은 중학교 후배에게 연락했다.

문학 동아리를 하면서 친해진 후배였다.

“나은아, 너 종호랑 같은 반이지?”

-네. 언니 오랜만이에요. 고등학교 좋아요?

“응. 혹시 요즘 종호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종호요? 종호 완전 잘 지내죠. 이제 언니가 사라졌기 때문에 성서중학교에 연예인 종호밖에 없는데요.

“그래……. 혹시 왕따 당하거나 그런 거 없지?”

-예에? 왕따요? 말도 안 돼.

"......."

-종호 남자애들한테 인기 더 많아요. 축구도 잘하고 같이 있으면 여자애들이 지들한테도 관심 주니까. 여자애들한테는……. 오늘 초콜렛 몇 개 받았냐고 물어봐요. 가방에 다 안 들어가서 집에 며칠에 나눠서 가져간다던데.

“……. 그래. 고마워.”

송지현은 방에서 나와서 송종호의 방 앞을 지났다.

이제 3개월이 조금 안 된 주먹만 한 골든리트리버 생크림이 다가와서 송지현의 발가락을 핥았다.

송지현은 강아지를 끌어안고 묘한 불안감을 달랬다.

다섯 달 후.

송종호가 반 친구들과 싸웠다.

여태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구와 다투거나 목소리를 높여본 적조차 없는 애가 처음으로 주먹질까지 했다고 들었다.

-언니 종호 요즘 좀 이상해요…….

송지현의 전화를 받은 나은이 말했다.

-걔가 기침 소리나 코훌쩍이는 소리에 좀 민감하거든요. 근데 요즘은 신경질도 내요. 이번에도 그러다가 싸웠어요.

“그래?”

-자기 머리가 열려 있어서 생각이 흘러나오는 걸 주위 사람들이 다 보는 것 같다고 그랬대요. 그게 너무 신경 쓰인다고.......

***

“진료를 받아보니 조현병이라고 하더라고요.”

송지현이 말했다.

“그 때부터 꾸준히 치료받고 있는 건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네. 한번은 거의 완치됐다고 생각했는데 재발했어요. 그 때부터는 계속 병원에서 약물 치료를 하고 있어요.”

“……. 많이 힘드시겠네요.”

“조현병은 정신의 암이라고 불릴 정도로 힘든 병이에요. 끝없이 환청이나 환각을 겪고 망상에 빠지고, 의식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송지현이 말했다.

“제 동생 같은 경우는 그래도 병증을 초기에 잘 잡은 편이긴 한데, 그래도 위험해서…….'

"......."

“최근에는 저희 아버지가 병원에 데리고 가셨다가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자해를 했었대요.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했었다고.”

“그래요?”

좀 뜨끔했다.

“네. 근데 거기 있었던 어떤 남자분이 잡아줘서 다행히 사고가 안 났다고 하더군요.”

“아……. 다행이네요.”

“평소에 폭력성을 보이지는 않았는데 최근 갑자기 이래서……. 고민하다가 여기 차세대 병원으로 옮긴 거예요. 물론 차세대 병원이라고 알츠하이머처럼 조현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그래도 의료진이 좋으니까 혹시나 싶어서 와본 거예요.”

송지현이 말했다.

그때 진료실 쪽에서 간호사가 외쳤다.

“송종호 씨 보호자분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네."

송지현이 손을 들었다.

그녀는 이동하면서 고개를 돌려 류영준에게 말했다.

“진료 끝났나보네요. 가서 의사 선생님하고 상담 좀 하고 올게요. 다음에 봐요."

***

“조현병은 완치가 안 되는 병입니다.”

송종호의 담당의 신정주 교수가 말했다.

연의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신정주 교수는 최근 차세대 병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송종호 환자의 상태는 어떤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알 만한 분이 왜 물으십니까. 류 박사님. 저희는 환자 개인 정보는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합니다.”

“……. 교수님, 조현병에 대해서 간단하게라도 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조현병 치료제라도 개발하시려고요?”

“가능하면요.”

“쉽지 않을 겁니다.”

신정주가 말했다.

“류 박사님. 조현병은 이해하는데 그 난이도가 웬만한 암보다도 훨씬 높은 질병이에요. 그 이유는 원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마음의 병이 아니라 뇌의 병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생물학이 길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류영준이 말했다.

“흐음."

신정주 교수는 턱을 매만지면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류 박사님은 조현병 발병률이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십만 명에 한 명 정도?”

“백 명에 한 명 꼴입니다.”

류영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백 명에 한 명이요?”

“네. 발병률 1퍼센트. 그리고 도시 환자가 증상이 더 심각한, 가장 전형적인 현대 질병입니다.”

신정주 교수가 말했다.

“WHO에서는 조현병 역설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보통 질병의 치료 경과가 선진국에서 더 좋거든요. 의료체계가 잘 돼있으니까요. 하지만 조현병은 반대입니다. 농경 사회가 대다수인 후진국의 환자에 비해서 도시 거주 환자가 병증도 더 심하고 치료 예후도 더 나빠요.”

"........"

“점점 도시화가 되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점점 위험한 병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가 너무 미흡해요.”

신정주 교수가 말했다.

“최근에는 단일 질병으로 보지 않는 시각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암’도 단일 질병이 아니잖아요. 폐암과 췌장암과 유방암이 서로 심각하게 다른 것처럼 조현병도 사실은 수없이 많은 질병들로 나누어져야 마땅한 병증인데, 의학계가 그걸 몰라서 조현병으로 뭉뚱그리고 있다는 거죠.”

“그렇군요.”

“류 박사님이 약을 개발한다고 해도 모든 조현병을 다 잡을 수 있을 가능성은 낮을 겁니다. 하지만 일부라도 잡아낸다면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거고 큰 연구가 진척될 겁니다. 제가 아는 걸 말씀드리죠.”

신정주 교수가 말했다.

조현병의 증상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친 사람’의 개념 그 자체다.

원시 씨족 사회에서도 조현병을 앓아서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있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그들은 미친 사람이 되거나 주술사가 되거나 예언자가 되거나 했다.

귀신 들린 사람이 되거나 신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중세에는 정신병원이라는 시설이 등장하게 됐지만 사실 치료 목적이라기보단 조현병 환자의 격리와 감금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악마의 저주가 씌었다, 그걸 쫓아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폭행이 환자에게 가해지기도 했다.

두들겨 패는 게 치료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그 미개한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 필리페 페넬이라는 의사였다.

-학대하는 방법으로는 조현병 환자의 치료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그의 주장과 운동은 추종자들과 함께 정신의학을 최초로 체계화시켰고, ‘정신질병’을 의학적인 개념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정신의학계를 휩쓸어버린 후에는 ‘정신분열 (Schizophrenia)’라는 용어로 불린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학술지 네이처에 조현병과 관련된 유전자 위치 108군데를 찾아냈다는 논문이 나왔습니다.”

신정주 교수가 컴퓨터에서 논문을 찾아서 인쇄했다.

“류 박사님이 관심 가지실 것 같군요. 한 번 읽어보세요.”

***

늦은 방, 사무실에서 류영준은 논문을 읽고 있었다.

로잘린을 돌려서 정답을 추적하기 전에, 지금 의학이 이 질병을 정복하기까지 진행한 위치를 확인하고 싶었다.

“로잘린. 팩트 체크 좀 해줄래?”

류영준이 물었다.

-네. 말씀하세요.

“조현병은 유전력이 강해. 쌍둥이 사이에서는 한 쪽이 조현병에 걸리면 다른 한 쪽도 걸릴 확률이 50%에 이르러. 부모가 둘 다 조현병이면 자식도 걸릴 확률이 10%가 넘고.”

-맞습니다.

로잘린이 답했다.

-유전자가 혼자서 결정짓는 것은 아니에요. ‘유전 정보가 이러하면 조현병에 걸린다.’ 가 아니라, ‘유전 정보가 이러하면 조현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 같은 형식이죠.

“대부분의 경우에 뇌에서 도파민이 너무 많이 생성되어서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군.”

-도파민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고 세로토닌, 글루타메이트까지 포함해서 세 개의 신경전달물질의 상호작용의 결과입니다.

"......."

-그리고 신경병리적으로는 해마와 편도핵의 부피와 단면적이 감소되면서 전두엽 측두엽 영역의 섬유배열의 장애와 신경섬유의 장애, 투명 중격강이 결여되는 등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것들도 영향을 줘요.

“그런 뇌 손상이 조현병을 일으키는 거야?”

-아니요. 시작은 신경전달물질의 발현 이상입니다. 그게 뇌에 타격을 주고, 타격을 입은 뇌에서 증세가 더 심해지고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이 더 나빠지는 거죠. 악성 피드백입니다.

“캐스나인으로 유전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뇌를 타겟할 수 있을까?”

-캐스나인은 바이러스에 담아서 뇌로 보내실 건가요?

“수지상세포를 우회하는 방법은 면역세포에게 캐스나인을 보낼 순 있지만 뇌세포로 보낼 순 없으니까.”

-하지만 바이러스를 쓴다면 아데노 어소시에이트 바이러스 (Adeno Associate Virus)를 쓸 텐데, 그건 한 번에 100개의 유전자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유전자를 직접 넣어주면?”

-마찬가지로 100개나 되는 유전자들을 바이러스로는 넣을 수 없어요.

"......."

류영준은 [조언 듣기] 버튼을 쿡 눌렀다.

“정신 나간 아이디어라도 좋으니까 아무거나 하나 줘봐.”

-미토콘드리아에 유전자를 담아서 넣으시죠.

“미토콘드리아?”

-세포 내에 존재하는 에너지 생산 기관입니다. 그리고 박테리아의 일종이죠.

“그렇지.”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에 들어있는 조직의 일부다.

공장에 있는 발전기처럼 파워를 생산하는 기관이다.

오묘한 미시 세계에서는 단일 생명체의 기준이 모호해지는데, 미토콘드리아의 정체가 바로 그렇다.

수십억 년 전, 진핵 세포의 내부로 침투해서 공생하게 된 박테리아.

그 상태로 진핵 세포의 일부가 되어버린 원시 생명체다.

이제는 그것이 인간의 체세포와 구별될 수 있는 별개의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아리송하게 되었다.

-미토콘드리아는 자신의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이즈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유전자 백 개 정도는 추가로 운반할 수 있어요. 미토콘드리아를 환자의 세포에서 다시 분리해서 배양하세요. 그걸 원시 박테리아로 되돌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 유전자 100여 개를 삼입하는 겁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그걸 비강으로 주사해서 뇌로 보내어 뇌세포 안에 들어가도록 만드세요.

“정신 나간 아이디어라도 달라고 하긴 했지만 이건……."

-미토콘드리아는 인간의 세포의 일부분이니까 뇌세포 안에 들어가도 안전합니다. 하지만 유전자가 조작되었으니 거기서 생산되는 새로운 생체 물질들은 기존의 것과 다르죠.

로잘린이 말했다.

-그거면 조현병을 완치시킬 수 있습니다.

“비행기 타고 올 때 프로바이오틱스를 허가를 내주니 마니 했는데 이게 훨씬 어려운걸.”

장내에 유전자 조작된 박테리아를 넣겠다고만 해도 식약처에선 당신 미쳤냐며 날뛸 수도 있다.

근데 유전자를 100개나 조작한 박테리아를 뇌에 집어넣어서 뇌세포 속으로 들어가게끔 하겠다?

“휴우……."

류영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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