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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 식약처 (2) > (3/301)

147화. < 식약처 (2) >

한국에 왔다.

[배양육 개발을 마치고 귀국하는 류영준]

공항 터미널로 들어오는 사진이 각종 기사에 올랐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국내의 흥분은 거의 가라앉은 상태였다.

미국에서 소란을 잠재우면 한국은 자연히 따라갈 거라는 예측이 적중했다.

백악관과 농무부, 맥키니 등과 의논하여 함께 짰던 ‘전통 축산의 배양육 체제 전환 계획’은 미국을 기준으로 했지만, 다른 나라들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캠벨 대통령은 해당 자료를 다른 국가 정부들에 공유해주었고, 그 중에는 당연히 대한민국도 포함돼있었다.

“사람들 태세 전환하는 거 참 재밌어.”

에이바이오로 출근한 류영준에게 박주혁이 말했다.

“무슨 태세 전환?”

“여론이 말이야. 너 배양육 발표할 때만 해도 축산 농가가 다 죽네마네 민족의 배신자가 어쩌고 난리를 치면서 한번 팔팔 끓었거든?”

“미국에서 봐도 그런 것 같더라.”

“류영준 팬클럽이랑 배양육 찬성하는 환경론자들이나 채식주의자들 뭐 그런 사람들하고 엄청 치고 박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어.”

“회사로 항의 전화는 안 오든?”

“어디 항의 전화뿐이겠냐. 여기 앞에 몰려와서 집회도 하고 별 난리를 다 쳤어. 다들 고통 좀 받았지.”

“직원들 고생 많이 했겠네.”

“어. 근데 그 지랄맞은 여론들이 전부 다 붉은곰팡이 터지고 생방송 토론회 한 번 나가면서 쏙 들어가더라고.”

“다행이야.”

“그리고 국내에서도 배양육 체제로 전환한 농가들 두 개 나왔어. 성공적으로 바꾸는 거 보고 이제는 다시 여론이 찬양 일색이야. 이게 바로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이다, 식량 위기가 터지면 과연 미국이 망하겠냐 아니면 미국에서 식량을 수입하는 한국이 망하겠냐, 이런 식으로.”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처럼 수입하는 나라들은 진짜 기아 직격타야. 근데 사실 그 정도의 식량 위기가 오면 수입국이냐 수출국이냐는 큰 문제가 아닐걸.”

“전쟁이 날 테니까?”

“응.”

“식량 위기가 온 다음에 기술을 내놨으면 다들 에이바이오 방향으로 절하면서 배양육 먹었을 텐데. 일찍 만드니까 욕 처먹으면서 기술 밀어붙이는 꼴이라 좀 억울하기도 하네.”

“에이, 됐어.”

류영준은 사무실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았다.

“그거 말고 나 없는 동안 다른 일은 별 거 없었어?”

류영준이 물었다.

친구라서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연구팀이나 경영팀, 재무팀, 어디든 류영준이 CEO로서 지금 상황을 질문할 수 있는 책임자들은 따로 있다.

하지만 박주혁은 류영준에겐 누구보다 든든한 친구고 조력자다. 가장 냉정하게,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뭐, 내가 볼 때는 아무 문제 없어.”

박주혁이 말했다.

“근데 영준아, 너 소개팅 할 생각 없냐?”

“뭘 해?”

류영준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소개팅. 나 통해서 너 만나보려는 사람들이 한 줄 세우면 여기서부터 에이젠 본사까지 갈 수 있는데.”

“에휴, 됐어. 안 해. 그럴 시간도 없고. 연애 하고 싶지도 않고.”

“이상하네. 류영준이 이 정도로 여자에 관심이 없진 않았는데.”

박주혁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 어디 숨겨놓은 애라도 있냐?”

“미쳤어?”

류영준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면 아닌 거지 왜 흥분해.”

"......."

옆에서 로잘린이 킥킥 웃었다.

박주혁이 말했다.

“혹시 이미 만나는 사람이 있는 거 아냐? 그때 그 송박사?”

“아니야. 아무튼 누구 만날 생각 없으니까 그만해.”

류영준이 딱 잘라 말했다.

박주혁은 잠깐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류영준을 쳐다보았다.

“왜?"

“나도 평소엔 여자분 불쌍하니까 너한테 연애하란 말 안 해.”

“이 새끼가……."

“근데 요즘은 솔직히 좀 걱정이 된다. 너무 일중독 같아서. 너 그러다가 번아웃 와."

"......."

“내가 옛날에 변호사 공부할 때 번아웃 증후군 온 적 있어서 잘 아는데 그거 세계보건기구에 등록된 의학적인 질병이라더라. 이번에 특히 배양육 하면서 세계 스케일로 욕 처먹으니까 걱정되더라고. 솔직히 너 스트레스 과해.”

“괜찮아. 그리고 너도 솔로인 게 누굴 걱정하냐?”

“난 잘 생겨서 언제든지 만들 수 있어.”

박주혁이 말했다.

“어이구.”

“사람 얼굴이 강아지상, 고양이상 이런 거 있잖아? 영준이 너 이전 애인들 보면 다 강아지상이잖아?”

“그래?”

“나 아는 동생 중에 강아지상 그 자체인 사람이 있어. 직업은 모델이야.”

“됐어. 너나 만나.”

“난 강아지상 안 좋아해. 강아지상들이 강아지상 좋아하는 거야.”

“넌 그럼 무슨 상인데?”

류영준이 물었다.

박주혁이 치명적인 척 눈빛을 흘렸다.

“조각상.”

“산산조각?”

-똑똑.

황당한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데, 대표 사무실 밖에서 유송미 비서가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네. 들어오세요.”

철컥.

유송미는 문을 열고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말했다.

“에이바이오 차세대 병원에서 미팅 있습니다. 지금 가보셔야 해요.”

***

정순례 할머니는 에이젠 생명의 보험에 가입했다.

아들 부부의 성화를 못 이겨 겨우 했는데 돈 아깝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매달 에이젠에서 진단 키트를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보험료 안에 포함된 서비스다.

그리고 그 키트에서 어느 날 밝게 빛나는 점 하나가 나타났다.

“이게 뭔 뜻이고?”

불안해진 정순례는 키트를 손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원격 진료할 수 있어요.”

손자가 진단 키트를 스마트폰에 연결해서 원격 진료 서비스를 켰다.

[흑색종]

가까운 병원들이 몇 개 화면에 떠올랐는데, 그 중에서는 에이바이오의 차세대 병원도 있었다.

정순례는 곧바로 병원에 내원했다.

“진단 키트에서 흑색종으로 나왔다고요? 혹시 최근에 피부에 검버섯 같은 게 생긴 적 있습니까?”

“여기.”

정순례가 어깨에 생긴 까만 반점을 보여주었다.

흑색종은 아직까지 에이젠이나 에이바이오가 점령하지 못한 암 중 하나다.

기존에 존재하는 치료제들로는 승산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곳은 에이바이오 차세대 병원이다.

류영준의 연구가 가속되고 이곳에서 상용화됨에 따라, 차세대 병원은 점점 다른 병원들과 차별화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피부 세포를 좀 채취하겠습니다. 동시 정밀 진단에 필요하거든요.”

의사가 말했다.

그는 흑색종이 생긴 피부 상피 조직의 체세포를 채취한 후, 차세대 병원 내부의 줄기세포 기술자들에게 보냈다.

-환자 검체 48847번의 피부 상피 조직.

기술자들은 체세포를 역분화시켜 줄기세포로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세포에서 추출한 유전자 전체를 에이젠 제1 연구소의 진단기기 개발 부서로 보냈다.

[환자 검체 48847번, 홀 지놈(Whole genome) 분석 요청.]

결과는 며칠 후 에이바이오와 연계된 서버 클라우드로 넘어왔다.

-환자 검체 48847번 유전자 분석 데이터.

데이터 분석도 전부 끝난 상태였다.

-흑색종 특이 돌연변이 34종 발견. 이 중 치료제 저항성을 보인 돌연변이의 임상 사례들은 다음과 같음.

[KN44T790M 돌연변이 : 44세 남성 환자에게서 셀로스틴 저항성 보고, 네이쳐]

[ART K24L 돌연변이 : 85세 여성 환자에게서 텔리님 저항성 보고, NEJM]

.......

의사에겐 황금보다 값진 정보들이다.

구시대의 병원들은 그냥 치료제들을 일단 써보고 안 맞으면 바꿔가며 환자에게 맞는 약을 찾아본다.

그러나 이틀이면 에이젠에서 기존의 임상 사례와 환자의 유전자 타입을 분석해서 가능성이 높은 치료제를 골라준다.

하지만 이것은 이론적인 값이다. 아직 실증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피부 조직 준비됐습니다.”

줄기세포 연구팀에서 리포트가 올라왔다.

아직 오가노이드까지는 아니다. 생명창조 부서가 그 단계까지 완성하진 못했다.

하지만 에이바이오는 피부 상피 조직 일부를 줄기세포에서 재생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셀로티닌과 텔리님은 저항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둘은 여유 있으면 테스트해주시고, 일단 클러티님과 앨리맙, 케랍틴, 오시머주맙, 베바티닙을 우선적으로 진행해주세요.”

의사가 보낸 메일을 받은 줄기세포 연구팀은 배양한 피부조직에 치료제들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그 중에서 오시머주맙이 특별히 강력한 약효를 보였다.

결과를 받은 의사가 처방을 내렸다.

“오시머주맙이라는 치료제입니다. 일주일분 드릴 테니 다 드시고 다시 내원해주세요.”

정순례가 에이젠 생명의 가입자이기 때문에, 모든 비용은 에이젠 생명이 댄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와 줄기세포에 기반한 약효 테스트 실험까지.

그 비용이 상당해서 손해가 나지 않을까 싶지만 뜻밖에 에이젠생명은 엄청난 흑자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단가 자체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에이젠에 있는 200대의 유전자 분석 기계가 24시간 돌아가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대량으로 생산한다.

역분화 줄기세포와 피부 조직 분화 같은 기술들은 잘 셋업되어 있어서 쉽고 빠르게 테스트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포인트.

약값이 싸다.

“일주일분 해서 만 팔천 원입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내려간 정순례에게 약사가 말했다.

에이젠 제1 연구소의 식물 기반 의약품 생산 부서가 손 댄 약품들은 현재 17종.

오시머주맙은 그 중 하나다.

그리고 정순례라는 환자에게는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약이기도 했다.

정순례는 두 달 사이에 흑색종을 거의 다 잡았다.

불과 몇 년 전이었으면 수천 만 원의 돈을 들여서 몇 종류의 약을 써보고 머리가 빠지고 몸이 상하고 점점 나빠졌을 것이다.

어쩌면 셀로스틴이나 텔리밉 같은 걸 쓰다가 죽었을 수도 있다.

‘다른 병원이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들을 여기서는 고칠 수 있다. 그것도 싸고 빠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치료가 끝난 정순례는 에이젠 생명 보험의 전도사가 되었다. 동네 노인들이 모일 때마다 차세대 병원과 에이젠 생명 보험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잘 되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병원 운영의 근황을 들은 류영준이 말했다.

병원 이사회 미팅.

공익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몇몇의 기부자들과 병원의 의사들이 모여 있었다.

“병원 운영에 제가 간섭하고 싶지는 않고, 오늘 이사회 미팅을 하자고 했던 이유는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 때문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곳에서 앞으로 만들어질 항암 신기술들을 이곳에서 바로 받아들였으면 싶거든요. 앞으로 암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기술들입니다. 가급적 빨리 기술 공급 계약서를 쓰는 게 좋아요.”

***

계약서를 쓰고 바깥으로 나온 류영준은 병원을 한 번 둘러보았다.

이곳도 점점 커져서 이제는 진료 과목 수도 32개에 이르렀다.

병상은 약 1,000개. 전문의도 백여 명이 넘는다.

“여기 정신건강의학과도 있었나요?”

복도를 걸으면서 류영준이 물었다.

저 멀리 정신건강의학과가 보였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연의 대학병원에 신정주 교수님이 이쪽으로 옮기시면서요.”

류영준을 배웅하던 젊은 인턴 의사가 말했다.

“그렇군요.”

-앗!

갑자기 로잘린이 무언가를 발견한 듯 류영준의 몸에서 툭 튀어나왔다.

‘뭐야?’

류영준이 걸음을 우뚝 멈추고 로잘린을 쳐다보았다.

로잘린은 정신건강의학과 앞 원무 데스크가 있는 로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로 와보세요.

그녀를 뒤따라 간 류영준은 깜짝 놀랐다.

“류 박사님……?"

송지현이 고개를 들고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고개를 숙인 채 다리를 떨고 있는 덩치가 커다란 사내가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류영준을 쳐다보았다.

아는 얼굴이다.

<동기화 모드 : 조현병에 대해 통찰하시겠습니까? 피트니스 소모량 : 0.2/1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이것도 아는 메시지창이다.

류영준이 처음 로잘린을 얻고, 떠오르는 메시지창과 환청에 미쳐버렸나 싶어 정신과를 찾았을 때.

병원 로비에 이 남자가 있었다.

극도의 긴장과 불안, 공황 상태에 빠져서 병원 창문을 향해 뛰어가는 걸 류영준이 가까스로 막은 적 있었다.

“이 분은……?”

“……제 동생이에요."

송지현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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