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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 식약처 (1) > (2/301)

146화.  < 식약처 (1) >

타냐 맨커의 인공지능이 붉은곰팡이 예측에 성공했다.

생방송 배양육 제한법 토론회 이후에는 그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쏙 들어갔다.

이제는 식량 위기를 강조하는 식량 전문가들이 신이 나서 곳곳에서 신기술의 필요성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축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을 필두로 각국 정부들은 10년에 걸친 장기 플랜을 짰다.

점차적으로 전통 축사를 줄이고 그 땅을 코치아 작물 재배로 대체한다. 땅을 놀리지 않아서 농장주들의 수익을 최대한 보전한다.

육가공 업체들의 직원 교육을 지원해서 배양육을 만드는 사업장으로 변화시키고 고용을 유지한다.

“그렇게 계획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겠니.”

류영준은 아이오와주의 옥수수 지대 근처의 한 언덕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우우웅!

하늘 위에서 경비행기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하루에 다섯 번씩 대량의 치료제들이 살포되어 옥수수 지대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치료제가 있어서 다행이야.”

류영준이 말했다.

-에이젠에서도 좋아하겠네요. 미국 정부에 엄청난 물량을 팔아치웠으니까요.

“그렇겠지.”

쫘아아아아

또 한 차례 경비행기가 치료제들을 쏟아부었다.

-꼭 비 오는 것 같네요.

로잘린이 류영준의 몸에서 퐁 튀어나왔다.

그녀는 옥수수 발 한가운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디 가?”

-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서요.

로잘린은 자기 키보다 큰 옥수수 작물들 속에 들어갔다. 치료제들이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지만 옷이나 머리카락은 조금도 젖지 않았다.

로잘린은 하늘 위를 관찰하다가 옥수수 잎들을 둘러보았다.

-이 약물은 스테로이드핵을 가지는 지방 융해성 화합물이군요.

로잘린이 말했다.

땅에 스며든 후 옥수수 작물의 뿌리를 통해 흡수되고 체관을 따라 이동한다.

로잘린의 시야가 공유되었다.

치료제는 잎과 옥수수로 들어가서 감염된 곰팡이의 알파 수용기 내부로 진입했다.

치료제의 24번 탄소가 곰팡이 내부의 균사 형성 물질의 후면에 작용했다.

-루이스산 원리로 작동하는 거였군요.

로잘린이 말했다.

-균사 형성 물질이 파괴되면서 곰팡이가 죽는 식이었습니다.

‘이제 이 정도는 피트니스 쓰지도 않고 그냥 보여주는 거야?’

류영준이 피식 웃었다.

로잘린이 이쪽을 쓱 돌아보았다.

-아니요. 피트니스 썼습니다.

'윽.......'

-조금 쓴 거니까 허락 안 받아도 될 줄 알았어요.

‘그래. 잘 했어.’

로잘린은 제멋대로 켜버린 동기화 모드를 종료하면서 류영준에게 돌아왔다.

-저 치료제, 프레드니솔론이랑 비슷하게 생겼네요.

“프레드니솔론?”

-하긴. 둘 다 스테로이드성 약물이니까요.

“프레드니솔론이 뭔데?”

-간염 치료제입니다. 당신이 처음 저를 개발하던 때에 복용하고 있었던 두 개의 알약 중 하나죠. 다른 하나는 펜톡시필린이었고요.

기억났다.

당시에 류영준은 깊은 비관에 빠져 술을 계속 마셨고 간염 판정을 받았다.

로잘린을 얻고 기절했을 때, 병원에서도 간염이 빈혈을 일으켰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간염 치료제를 먹었을 때는 [Prednisolone 30 mg을 분해했습니다.] 같은 문구가 떴었다.

“그런 약을 먹었었지. 근데 그러고 보니 이젠 네가 있어서 약 같은 걸 먹을 필요가 없겠네. 나 항상 환절기에 감기 한 번은 꼭 앓았는 데. 이번엔 감기 기운도 전혀 없고.”

-그럼요. 그런 하찮은 바이러스 미물들이 제 집을 어지럽히게 둘 순 없죠.

로잘린이 말했다.

-근데 그 프레드니솔론, 그 이후에도 본 적 있어요.

“이후에?”

-에이젠 제6 연구소에서 김현택이 미지의 병원성 물질에 감염돼서 쓰러졌잖아요?

“어. 시뮬레이션 모드를 쓸 때 발견했던 그 새까만 점 말이지?”

시뮬레이션 모드에서는 병원성 물질들이 표시되는데, 더 위험할수록 색깔이 짙어진다.

당시에 탄저균이 꽤 진한 회색으로 표시됐다.

그런데 제6 연구소에서 마치 블랙홀처럼 새까만 점이 출현했던 것이다.

그건 김현택 소장을 불과 몇십 분 사이에 뇌사 상태까지 몰고갔다.

-그 병원성 물질을 제가 파괴했을 때, 그 안에서 프레드니솔론과 펜톡시필린이 나왔습니다.

"......."

-전 그때 그 병원성 물질이 제가 탄생할 때 분리된 무언가가 아닌가 걱정했었죠.

“그게 맞을 수도 있겠네.”

-네.

“하지만 파괴했잖아?”

-맞아요. 제가 없애버렸어요.

로잘린이 싱긋 웃었다.

***

“난 이제 류 박사가 다음주에 화성을 테라포밍 한다고 해도 그걸 믿고 화성 땅을 사겠어요.”

데이비드가 차 안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번에 이득 좀 보셨습니까?”

그와 30년을 함께 한 운전 기사가 물었다.

“굉장했죠. 50 퍼센트만큼 생산량을 늘렸는데, 그러지 말고 한 200 퍼센트 정도 늘릴걸 그랬어요. 재고 하나 남지 않고 싹 다 팔아치웠습니다. 그리고 회사 이미지도 굉장히 좋아졌죠.”

“그래요?”

“원래 우리 콘슨앤커슨은 미국의 국민적인 제약사였잖아요? 이미지 꽤 좋은 편이었다고요. 근데 거기 더해서, 류 박사의 그 허무맹랑해 보이는 예언 속에 들어있는 가능성을 캐치해낸 통찰력을 지닌 회사로 급부상한 거죠.”

데이비드가 손가락을 딱 튕기면서 말했다.

“그 사람은 천재예요.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고 싶네요.”

“처음엔 진단 시장을 선점해서 류 박사를 견제하려고 하셨잖아요?”

“그땐 이 정도로 천재인 줄은 몰랐죠.”

데이비드가 말했다.

“본래 뛰어난 실력자, 천재들이 나타나면 기득권 경영자들은 그 사람들을 데려다 소비하려고 하는 법입니다.”

“근데 이젠 아닌가요?”

“너무 압도적으로 뛰어난 실력자면 그 사람을 추종해야죠.”

데이비드가 말했다.

“내가 볼 때 류영준 박사는 인류사를 통틀어서 전례가 없는 인물이에요. 전에는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하고 비교가 됐던 것 같은데, 내가 볼 땐 이미 그 단계도 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번 배양육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판을 짜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 사람은 과학적으로 뛰어나서 좋은 약 개발하는 연구자 정도가 아니에요. 이 정도 규모의 필드를 통째로 바꿔버릴 만한 기술을 공급하면서 잡음을 저렇게 잡아내는 건 평범한 인간의 능력이 아닙니다."

“많이 신기하긴 하더라고요. 저도 붉은곰팡이가 실제로 터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그 타이밍에 국회 입법 토론 생방송에서 배양육 영양성분 분석 같은 것도 해주니……."

“기존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밥그릇을 거의 보존시킨다는 게 진짜 대단한 발상이에요. 보통 과학자들이 그런 것까지는 생각을 못 하거든요. 신기술을 보급하는 것만 해도 과학자로서 할 일은 다 하는 셈이니까요.”

데이비드가 말했다.

“그렇죠.”

“저 같은 평범한 인간은 그저 그런 거인과 같은 시대를 산다는 것이 기쁠 뿐입니다.”

“대표님이 평범한 인간이면 다른 사람들은 뭐가 됩니까? 하하하.”

“류영준 박사를 기준으로 보면 이제 다 고만고만한 소시민들이지요. 류 박사가 이제는 신약에 국한되지 않은, 전방위적인 과학을 하는 것 같아요. 기대가 됩니다. 다음 행보가 어떤 것일지.”

***

한국으로 떠나는 날 아침.

류영준은 캠벨 대통령을 만났다.

국빈 대우로 캠벨 대통령이 직접 배웅을 해준 것이다. 이 역시 꽤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캠벨 입장에서는 정치인답게 류영준의 이미지를 잘 가져간 것이었다.

국가적인 위기를 막아준 사람이고, 암 연구소를 설립해서 앞으로 장기간 미국과 함께 커다란 프로젝트를 진행할 사람이다.

이 정도면 명분도 충분하다. 정치에 얽히는 걸 싫어하는 류영준이지만 캠벨이 감사를 표하며 배웅하겠다는 걸 거절할 만한 건덕지도, 그럴 이유도 없다.

“미국은 이번 붉은곰팡이 확산 사태에 류영준 박사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캠벨 대통령은 류영준과 악수하며 카메라를 돌아보았다.

찰칵! 찰칵!

기자들의 플래시가 쏟아졌다.

“비행기는 백악관에서 준비해뒀습니다. 부디 귀국길이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캠벨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백악관이 신경써준 덕분에 귀국길은 아주 좋았다.

류영준은 국빈 대우를 받으면서 백악관 소유의 전용기 안에서 간만에 나른한 시간을 보냈다.

“돌아가면 이제 무슨 연구 하실 건가요?”

케이캅스의 김철권이 물었다.

“글쎄요. 연구 프로젝트를 늘리기보다는 기존에 진행하던 것들을 정돈부터 할 생각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어떤 거요?”

“벌여놓은 게 많으니 마무리할 것도 많죠. 예를 들면 프로바이오틱스라든지.”

“프로바이오틱스요?”

“지금 당뇨 치료제 에이먹은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그 에이먹을 직접 생산하는 미생물 환경을 장내에 조성해줄 수 있으면 당뇨를 완치시킬 수 있거든요.”

“그렇군요.”

“근데 그게 살아있는 유전자 조작 박테리아라서……. 임상 허가가 매우 까다로워요. 그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죠.”

류영준이 말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프로바이오틱스를 살펴볼 때는 로잘린의 레벨에 따라서 결론이 달라졌다.

제일 처음에는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라는 박테리아를 쓰라고만 했다.

레벨이 3이 되어서 [조언 듣기]를 사용하게 됐을 때는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당뇨를 치료하라고 했다.

‘지금 로잘린의 레벨은 20이다.’

시뮬레이션 같은 막강한 기술도 생겼다.

-다시 프로바이오틱스를 한 번 봐드릴까요?

로잘린이 물었다.

‘부탁해.’

[시뮬레이션 모드 작동]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눈앞이 까맣게 페이드아웃 되었다.

“저 피곤해서 잠깐 눈 좀 감을게요.”

류영준은 김철권에게 말하고 차분히 눈을 감았다.

의자에 기댔다. 눈앞에 떠오르는 영상과 장면에 집중했다.

오밀조밀하게 뭉쳐있는 박테리아의 복잡계가 나타났다.

-이것은 미생물의 제국입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은 세 개의 세포계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세 개?’

-하나는 체세포계입니다. 갓난아기의 몸에서 발생하던 초기부터 시작해 성장하는 동안 완숙해서 더 이상은 잘 분열하지 않는 것들이죠. 체세포계의 세포들은 재생하기 어렵지만 비교적 튼튼하고 죽을 때까지 쓰게 됩니다.

‘나머지 둘은?’

-하나는 면역계입니다. 체세포계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이 바로 ‘외부 침입자’이기 때문에, 그걸 방어하는 시스템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게 면역계입니다. 골수에서 만들어지는 백혈구들은 인간의 몸을 돌아다니면서 외부 침입자를 끊임없이 감시하죠.

로잘린이 말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인간의 몸 안에 그냥 자리를 잡아버린 외부 침입자가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미생물의 제국이에요. 국내에서 큰 비즈니스를 벌여서 정부에서 건드리지 못하는 외국인 체류자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셋의 조화로 사람 몸이 유지된다는 거지?’

-네. 그리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면역계가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지는 곳은 미생물계예요. 거의 대부분의 면역 반응이 장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따라서 정말로 뛰어난, 장인 수준의 프로바이오틱스를 개발한다는 건 단순히 당뇨에 효과적이다, 살이 빠진다,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미생물계를 조작한다’는 건 ‘면역계를 조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컨대 당뇨도 자가 면역 질환의 일종이었는데 프로바이오틱스로 잡을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자가면역질환 대부분과 알러지도 잡을 수 있습니다. 좀 나열해볼까요?

로잘린이 말했다.

-지금 제 시뮬레이션으로 잡히는 건, 류마티즘 관절염, 루프스, 쇼흐렌병, 피부근염, 건선, 궤양성 대장염, 일부 자폐증, 크론병, 강직성 척추염, 천식, 일부 루게릭병, 몇 종류의 빈혈, 치매, 대부분의 알러지.

'.......'

-그리고 이건 치료제가 아닙니다. ‘예방제’죠.

제약 산업의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예방, 진단, 치료.

지금까지 류영준이 해온 것은 백신을 제외하고 대부분 뒤의 둘에 국한돼있었지만 이번 것은 사뭇 다르다.

‘그 정도 성과를 보려면 얼마나 많은 유전자 조작을 해야 하지?’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 외에 박테리아를 두 종 정도 더 써야 합니다. 그리고 도합 107 군데 유전자 조작을 해야 돼요.

‘좋아. 고마워. 시뮬레이션 종료해줘.’

[시뮬레이션 모드 종료]

화면을 축소하고 와인을 조금 마시면서 류영준은 생각에 잠겼다.

저 말도 안 되는 프로바이오틱스의 허가를 어떻게 따내야 할까?

유전자 한두 개 조작한 옥수수나 콩 같은 식품을 익혀서 먹는 것도 수많은 논란들을 야기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107군데 유전자를 조작한 박테리아 3종을 살아있는 채로 사람 뱃속에 넣는다는 미친 아이디어를 내면?

아무리 류영준이 그동안 보여준 게 많다고 해도 ‘그래? 그러렴.’ 해버리는 정신 나간 식약처는 상상이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값만 믿고 허가를 내주는 것은 류영준도 사양하고 싶다. 연구윤리 위반이니까.

‘……. 잠깐만. 근데 내가 원래 이 정도의 고민을 했던가?’

어느 순간부터 시야가 달라졌다.

기존에는 독감 치료제 같은 단일 질병의 약을 하나씩 만들고 있었는데, 암을 정복하니 마니 하던 때부터 시야가 넓어졌다.

이제는 저 많은 자가면역질환들을 한 데 묶어서 잡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것도 로잘린의 영향 때문인가?

류영준은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로잘린이 알코올을 분해했습니다.]

-와인 먹지 마십시오. 혈관에서 에탄올 냄새 나요. 청소하기 귀찮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으응…….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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