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배양육 (11) >
“다가오는 식량 위기의 대처와 환경 파괴의 예방, 육식의 도덕 문제 해소 등을 위해서 배양육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미 달성된 기술입니다. 그 유용성에 대해서는 이미 두 말할 필요가 없이 모두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럼에도 배양육을 제한하자는 법안을 두고 이러한 토론회가 개최된 이유는 좀 전에 찬성 측의 입론에서 나왔던 것처럼, 배양육의 안전성에 대해 아직 납득하지 못한 분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류영준은 푸드스캔 기계의 전원을 켰다.
“좀 전의 발표로 아직까지 확신을 갖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지금 그걸 증명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옆에 놓인 아이스박스에서 커다란 비닐백 몇 개를 꺼냈다.
각 비닐백에는 커다란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안에는 소고기가 들어 있었다.
“주최 측에 요청해서 준비한 겁니다. 이 테이프 아래에는 아마 각 육류를 가공한 회사의 상호명이 적혀 있을 겁니다. 배양육일 수도 있고, 티케이슨 푸드가 만든 것일 수도 있고, 레드 미트가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류영준은 비닐백 열 개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저도 순서를 모릅니다. 이 중에서 무작위로 꺼내서 분석한 후에 그 결과를 다 함께 보시고 테이프를 뗄 겁니다. 어떤 걸 분석해볼까요? 왼 쪽부터 1번입니다.”
류영준이 방청객들에게 질문했다.
입론 발표는 원래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발표문을 쭉 읽는 게 정석이다. 토론 규칙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비상식적인 돌발 행동에 방청객들도 당황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용감한 누군가가 외쳤다.
“3번!”
“네, 3번 분석하겠습니다. 푸드스캔 기계는 한 번에 10종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한 개만 더 해보죠. 뭐가 좋을까요?”
“5번!”
또 누군가가 소리쳤다.
“좋습니다.”
류영준은 두 개의 비닐백을 들고, 그 안에 있는 쇠고기를 100 그람씩 꺼냈다.
그는 푸드스캔 기계의 샘플 레인 1, 2번을 열어서 쇠고기를 넣고 나서 분석 버튼을 눌렀다.
삑.
위잉.
짧은 알람음과 함께 기계가 작동하는 것을 보면서 류영준은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1초가 아까운 입론 발표라고 하기엔 너무나 여유롭다.
-굳이 15분씩 침 튀기며 떠들 필요 없으니까요.
로잘린이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한 번 눈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철컥!
푸드스캔 기계의 1, 2번 레인 뚜껑이 열렸다. 분석이 완료됐다는 의미다.
류영준은 결과 버튼을 눌러서 대회의장의 연결된 스크린에 띄웠다.
[샘플1 : 열량 324.1kcal, 지방 25g (포화지방 12g, 다불포화지방 1g, 단일불포화지방 12g), 콜레스테를 85mg, 나트륨 57mg, 칼륨 331mg, 탄수화물 0g (식이 섬유 0g, 당류 0g), 단백질 24g, 비타민 A 0IU, 비타민 C 9mg, 철분 3.1mg. 코발라민 2.5 μg, 마그네슘 22mg…….]
“샘플 1번의 값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샘플 2번을 볼까요?”
그가 슬라이드를 넘겼다.
[샘플2 : 열량 284.7kcal, 지방 19g .......]
“열량 차이가 많이 나고 지방 함량과 단백질 함량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샘플 2번의 단백질과 비타민 함량이 훨씬 많군요. 이들 둘의 정체가 뭘까요?”
류영준이 물었다.
“2번 배양육! 1번 레드 미트!”
방청객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2번 배양육. 그럴까요?”
류영준은 패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한법 찬성측은 물론이고 반대측의 맥키니나 디에고도 당황했다.
“음……. 저도 2번이 배양육 같습니다.”
맥키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1번이 배양육이오.”
스티븐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턱수염 기른 남자가 말했다.
클라렌스 비숍.
배양육을 격렬히 반대해온 보수 단체의 논객 중 하나다.
“제가 식품 영양을 전공했습니다. 1번의 지방 함량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가공된 쇠고기 안심보다 더 높은 것 같군요.”
클라렌스가 말했다.
“류 박사님. 배양육에 대해서 저도 많이 연구해봤는데, 근섬유를 늘리는 과정에서 자유 지방산이 생기기도 합니다. 암세포 기작까지 써서 단시간에 불리다보면 지방산이 마구 들러붙어서 포화지방 함량이 높아지죠. 건강에 치명적인 식품이 되는 거예요.”
“그런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네. 1번이 배양육입니다.”
류영준이 피식 웃었다. 디에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공개해보겠습니다.”
류영준이 테이프를 뗐다. 그 아래에 있는 가공업체명이 나타났다.
[레드미트], [레드미트]
"......."
제한법 찬성측이 약간 당황했다.
“아니, 이런 게 어딨습니까. 둘 다 레드미트를 넣고……."
클라렌스가 항의했다.
“방금 전엔 말씀을 안 드렸는데, 각 회사 제품을 세 개씩 준비해달라고 했습니다. 두 개 모두 레드미트 제품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다들 보셨겠지만 무작위적으로 뽑은 것 아닙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
“근데 여러분. 어떻게 된 걸까요? 왜 같은 전통 축산 방식으로 사육된 같은 종의 소를 같은 방식으로 도살하고 가공했는데, 그 안심 부위의 성분이 이렇게 달라지는 걸까요?”
류영준은 모든 제품들의 테이프를 떼어냈다.
그는 각 샘플들을 푸드스캔에 전부 넣고 작동시켰다.
“그렇게 달라지는 이유는 그게 살아있는 동물에게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우리가 모두 서로 생긴 것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키와 몸무게, 체질이 다른 것과 같습니다. 소 같은 가축도 개체마다 체질이 다른 겁니다. 당연히 그로부터 얻어진 육류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류영준은 레드미트 제품을 집어들었다.
“육류의 성분 함량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분석되질 않고 있습니다. 그냥 유통되고 있어요. 그렇죠? 여러분은 여러분이 먹는 것의 정체를 과학적으로 모르는 겁니다. 시중에 알려져 있는 ‘쇠고기 안심의 성분’은 평균값이에요. 그리고 모든 생물학은 평균의 좌우에 거대한 분산이 반드시 발생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일반적으로 안심 부위에는 지방과 콜레스테를이 적다고 알려져 있지만 방금 1번은 어땠습니까? 식품 영양 전공자가 헷갈릴 정도로 값이 흔들렸지요?”
“그건……. 저 중에 배양육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클라렌스가 중얼거렸다.
류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배양육이 생기니까 이제 의심이라도 하게 되었죠. 그 전엔 모두 아무 생각 없이 이걸 먹었을 겁니다. 고지혈증 환자도 말이에요.”
"......."
“인간의 몸 자체가 여러 변수들을 완충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식품영양적으로, 의학적으로 그리 권장되는 상황은 아니죠. 성분을 정확히 모르는 음식들을 먹는다는 것 말입니다. 실제로 음식을 잘못 먹어 소화를 못하고 급성신부전이나 장내 궤양이 초래되는 경우는 흔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배양육은 다릅니다. 영양 성분은 믿을 수 있습니다. 전통 축산육처럼 분산이 크게 분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양육은 엄격하게 통제된 방식으로 근섬유를 하나하나 키워내는 것이니까요.”
찰칵!
10종의 육류의 분석 데이터가 화면에 떠올랐다.
레드미트가 3종, 티케이슨 푸드가 3종, 배양육이 4종이다.
“데이터 비교해볼까요?”
류영준은 먼저 레드미트와 티케이슨 푸드의 육류 데이터를 열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가장 심한 경우에는 레드미트 육류 하나가 티케이슨 푸드의 육류에 비해 나트륨 함량이 세 배나 높았다.
류영준은 분석 버튼 몇 개를 눌러서 데이터를 통계 처리했다.
레드미트를 한 데 묶고, 티케이슨 푸드를 한 데 묶고, 배양육을 한 데 묶었다.
오차 범위를 표시해서 그래프로 나타냈다.
전통 축산육은 회사와 관계없이 오차 범위가 20 퍼센트에서 300 퍼센트에까지 걸쳐 제멋대로 값이 튀었다.
“보통 과학에서 이런 데이터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데이터를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죠.”
류영준이 말했다.
“그렇게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고 적용해서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는 것입니다.”
류영준은 슬라이드를 넘겼다.
“그 결과물이 배양육입니다.”
오차 범위 2퍼센트.
열량은 전부 320.5kcal.
지방은 15 g이다. 세 개의 샘플이 모두 15였고 딱 하나만 14.9다.
사실상 값이 흔들리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배양육의 성분은 전통 축산육보다 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류영준은 분석창에서 다른 버튼을 몇 개 눌렀다.
“이번에는 축산물에 잔류하고 있는 호르몬과 항생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등의 값을 살펴볼까요?”
이쪽은 더 처참하다.
모든 값들이 전통 축산육이 훨씬 높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항생제와 호르몬제가 강화된 사료를 평생 먹고 자라 몸에 축적시킨 가축이다.
도살 환경을 아무리 위생적으로 관리한다고 해도 피가 튀고 톱으로 살과 뼈를 가르고 호스로 물청소를 한다.
당연히 그런 곳에서는 미생물이 증식할 확률도 더 높다.
애초에 가축의 몸에 남아있던 미생물들이 항생제와의 싸움 끝에 내성을 가진 채로 가공품에도 어느 정도 잔류하는 거다.
“식품 위생법상으로는 가공해서 먹으면 상관은 없는 수준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굳이 항생제와 호르몬제, 미생물로 범벅된 것을 일부러 먹을 필요는 없죠. 대안이 있다면 말입니다.”
류영준은 슬라이드를 넘겼다.
배양육에는 그 모든 부산물들의 잔여량이 거의 0에 가깝다.
위생적인 도살 같은 수준이 아니라 멸균 공간에서 만들어냈다.
초미세 반도체를 조립하는 인부들이 방진복을 입는 것처럼 멸균복을 입고 외부의 오염 인자를 완전히 차단한 생물안전 작업대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곳에서 진공포장까지 마치고 나오는 산물에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양이 0이다.
“지금 찍힌 극미량의 값들도 비닐백에서 기계로 옮기는 과정에 제 손에서 묻어난 것 같군요.”
류영준이 말했다.
“호르몬제와 항생제 잔여량도 없습니다. 항생제는 쓰질 않으니 당연히 없고, 호르몬제는 배양액을 제거하고 씻어내는 과정에서 모두 사라지니까요. 물론 아까 말씀드렸듯이 사람 몸속에 들어가도 영향을 주지 않는 식물성분이라 괜찮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여러분. 배양육은 안전합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 입론 발표는 여기까집니다.”
“40초 남았습니다.”
의장이 말했다.
“그냥 종료해주세요. 제가 교차조사 받을 차례죠?”
스티븐이 먼저 입론 발표를 한 데 류영준이 공격했던 것과 똑같다.
이번에는 스티븐이 류영준에게 질문을 하고 입론 발표의 허점을 찾아내야 했다.
“맞습니다. 배양육 제한법 찬성 측 1번 발표자, 교차 조사 해주세요.”
의장이 말했다.
스티븐은 입술을 달싹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류영준을 쳐다보면서 한참 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뭐든지 편하게 질문하십시오.”
류영준이 말했다.
“ ……습니다.”
“네?"
스티븐이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교차조사할 게 없습니다……."
***
사실상 류영준의 발표 이후 토론회가 끝나버렸다. 이후의 토론은 일방적이고 허무하게 흘러갔다.
모든 게 끝난 후, 밖으로 나온 류영준에게 타냐 맨커와 맥키니가 말을 걸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류 대표님.”
맥키니가 말했다.
“사전에 어떻게 발표할지 미리 언질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붉은곰팡이 건 때문에 농무부 자문한다고 바빴거든요.”
“괜찮습니다. 덕분에 저희는 쉽게 이겼습니다.”
“……류 박사님.”
타냐 맨커가 끼어들었다.
“대체 제 프로그램으로 그걸 어떻게 예측하신 건지 나중에라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죠.”
류영준이 웃으며 답했다.
쿠르르르르
도로 맞은편에서 거대한 덤프트럭 몇 대가 짐을 잔뜩 싣고 달리고 있었다.
“아마 붉은곰팡이 치료제일 겁니다. 지금 감염 지대들에 집중 공급하고 있다더군요.”
맥키니가 말했다.
“농무부도 정신이 없겠네요.”
“바빠도 기쁠 겁니다.”
타냐 맨커가 말했다.
“류 대표님 덕분에 당장 숨통 조이던 위기를 넘겼으니까요.”
“그리고 10년 후의 세계적인 위기도요.”
맥키니가 그녀의 말끝에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