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배양육 (10) >
미국 중부 미시간주에서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제이크는 밭에 주저앉은 채로 30분을 보냈다.
지난밤에 갑자기 옥수수 수백 대가 잎이 검붉게 물들면서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불안하다 싶었는데 아침에는 그야말로 밭 전체가 초토화되어 있었다.
"......."
배양육 입법 토론회의 마지막 집회고 뭐고 당장 올해 수확이 박살나게 생겼다.
지금까지 반대 시위하고 행진하고 했던 것들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전통 축산과 배양육의 대결?
그 전통 축산업의 가축들의 사료가 죄다 끊길 지경이다.
10년 후에 식량 위기가 어쩌고 하는 건 배부른 소리다.
미국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위기다. 옥수수 생산량의 절반이 가축 사료로 쓰인다.
그게 모두 사라지게 생겼다.
당연히 사료 값은 엄청나게 치솟을 테고, 육류 가격도 오를 거다.
그건 축산 농가의 문제고, 옥수수 재배 농민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제이크!”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제이크의 오랜 친구인 펜들턴이 트럭을 몰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때? 아메리카파머에 치료제 좀 있다고 하나?”
제이크가 물었다.
아메리카파머는 가장 유명한 농업 비품 유통업체다.
제약 회사들에게 농약을 사다가 농민들에게 공급하는 구매 대행으로 먹고 사는 곳이다.
“아니.”
펜들턴이 고개를 저었다.
“허스밴드리 쪽에는?”
“이미 누가 전부 사갔어.”
“그래……."
“근데 애초에 1만 리터 정도밖에 없었다더군. 지난밤에 다 팔렸대.”
“젠장.”
제이크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그가 트럭 바퀴를 발로 쾅 소리 나게 찼다.
“그만 들어가자, 제이크.”
“작년에도 실패했어.”
제이크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
“작년에도 우리 농작 실패했다고! 농무부 X새끼들 말만 듣고 종자 안 바꾼 내가 X신이지!"
제이크가 소리를 질렀다.
“……내성 종자 쓰면 수확량이 많이 줄어드니까. 우리가 욕심 부렸지. 누굴 탓하겠나.”
“진짜로 완전 방제에 성공한 줄 알았어.”
“다들 그렇게 생각했어. 우리 잘못 아니야.”
펜들턴이 제이크의 어깨를 두드렸다.
“대체 어쩌다가 이게 퍼진 거야……."
“밀 생산 지대에 남아있었다고 하더군.”
펜들턴이 말했다.
“그래?”
“겨울 밀 지대에 윈터휫 컴패니 알지? 그쪽 소유 농장들 중 한 군데에서 붉은곰팡이 감염 종자가 처음 나왔대. 그 소식을 농무부가 듣고 조사해보니 거기가 진원지야.”
“윈터휫 그 멍청이들은 방제를 한 거야 만 거야?”
“했대. 근데 작년에는 밀을 심지 않았던 자리라서 담당자가 빼먹은 곳이었나봐.”
“뭐? 밀이 없었는데 곰팡이가 그 자리에 어떻게 생겨?”
“좀 습한 땅이었는데 흙 속의 이끼들 틈에 붉은곰팡이가 사상체로 남아있었다는 거야.”
“아……."
“그리고 올해에 그 자리에 밀을 심으니까 그대로 감염되어서 첫 번째 감염 종자가 됐고. 농무부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걸로 추정한대. 작년에 퍼졌던 거랑 정확히 똑같으니까.”
“휴우……."
“자네 작년에 적자 얼마나 봤나?”
“30만 달러 정도.”
“이번에는 더 심할 것 같지?”
“난 이대로면 파산이야. 이제 끝장이라고.”
"......."
“우리 같은 영세 농부들만 박살나는 게 아냐. 대형 농기업들 전부 휘청거릴 거야. 다들 심각해."
두 사람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제이크! 펜들턴!”
또 한 대의 트럭이 이쪽을 향했다.
두 사람과 같이 농작을 하는 다른 친구였다.
“지금 뉴스 좀 봐봐! 농무부에서 발표하는 거 봐!”
***
배양육 산업을 진행하면서 얻어 터지던 농무부와 백악관은 지금을 역전의 타이밍으로 잡았다.
농무부는 유능하다.
이미지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들은 절대로 기존 농민과 축산업자들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 이미지와 신뢰를 줘야 한다.
“농무부는 항상 기존 농축산업 종사자들의 생존권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앤소니가 말했다.
“농무부는 류영준 박사님이 붉은곰팡이가 중부 지방에 퍼지는 것을 경고했을 때, 그 가능성을 묵살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농무부가 틀렸을 경우 농민들이 입게 될 막대한 피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앞.
앤소니는 류영준에게 마음 속 깊이 감사했다.
“류영준 박사님은 농무부에 대량의 붉은곰팡이 감염 치료제를 공급할 것을 제안했고, 저희는 많은 고민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여 약 9일 전 13일에 계약을 체결해둔 상태였습니다. 에이젠에서는 평소 생산량의 100배로 붉은곰팡이 감염 치료제를 만들어냈고, 저희는 그것을 이미 납품받아 물량을 확보했습니다. 지금부터 중, 서부 지방의 농민들에게 치료제를 공급하려고 합니다.”
앤소니가 말했다.
“또한 류영준 박사님이 지금 사태에 대해 미리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발병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예방하지 못한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
국회 입법토론회가 열리는 대회의장.
적막이 내려앉았다.
의원들도 입법 토론회장이 이렇게 조용해지는 것을 처음 보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국회 입법 토론회가 진행되는 중에 앤소니의 기자회견을 중계하진 못한다.
그러나 방청석에 앉아있는 시민들 대부분의 관심사는 벌써 배양육에서 살짝 떨어졌다.
그들은 모두 휴대폰을 꺼내들고 앤소니의 기자회견을 보고 있었다.
“붉은곰팡이가 왔다고……?”
사람들이 한둘씩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휴대폰을 꺼내 뉴스를 뒤졌다.
그리고 토론회장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배양육에 찬성하고 류영준을 지지하는 이들조차도 이 사태에서 받은 충격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여론이 완전히 반대로 뒤집혔다.
실시간으로 경악한 피드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럼 중부, 서부 붉은곰팡이는 치료할 수 있는 건가요?
-약이 있으면 치료 자체는 쉽다고 합니다. 그냥 경비행기로 농약 살포하듯이 쭉 뿌리면 됩니다. 아직 감염 초기라서 약 뿌리면 회복시킬 수 있대요.
-작년에는 치료제 자체가 물량이 없어서 국가적인 재난이 왔던 건데, 이번에는 막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어떤 징후도 없었던 잠복기의 붉은곰팡이가 튀어나와서 중부 서부 다 휩쓸어버린다는 걸 예측했다고?
-그럼 식량 위기도 진짠가? 겨우 10년 만에 진짜로 그런 사태가 오는 거?
-인공지능이 뛰어난 게 아니라 류영준이 그걸 잘 쓴 거 아닌가요?
ㄴ식량 위기설도 류영준이 그 인공지능 돌려서 똑같이 분석했어요. 타냐 맨커랑 결과 똑같습니다.
-붉은곰팡이가 진짜 오다니…….
-농무부 예방도 예측도 못한 건 죽을 죄였지만 마지막에라도 류영준 말 듣고 치료제 구매한 건 진짜 천만다행이다.
***
“류……류 박사! 당신이 퍼뜨린 것 아닙니까!”
레드 미트사의 대표 스티븐이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류영준에게 쏠렸다.
“제가요?”
류영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요?”
“……. 포자……를 가지고 온다거나……
“포자체 붉은곰팡이의 공기 중 생존 시간은 네 시간 남짓입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데만 비행기로 열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요."
"아니면 감염된 식물을 가지고 들어왔을 수도……."
"살아있는, 그리고 감염된 식물을 들여왔다면 공항에서 신고되었을 텐데요. 제 입국 수속 기록을 확인해보시죠.”
"……. 하지만……."
"아니면 제가 미국에 들어온 다음에 완전 방제에 성공한 곰팡이를 창조해서 퍼뜨렸다고 얘기하고 싶으신 건가요?”
"......."
“저는 며칠 전부터 이번 붉은곰팡이 확산 건에 대해 농무부에 자문을 해주고 있었고 상세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발생 진원지는 따로 있습니다. 나중에 토론 끝나고 알아보시죠. 지금 자리는 붉은곰팡이 토론이 아니라 배양육 토론이니.”
류영준이 말했다.
방청객이 수군거렸다. 이미 윈터휫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벌써 류영준 편이었다. 이 엄청난 농업 위기를 예측한 그 놀라운 통찰력과 인공지능의 막강한 분석 능력에 감탄한 것이다.
“배양육 제한법 입법 찬성 측 1번 토론자 입론 발표해주십시오.”
의장이 토론을 진행시켰다.
스티븐의 발표 차례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류영준이 노트와 펜을 들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스티븐은 손을 떨리는 손으로 입론 발표문을 집어 들었다.
그는 디케이슨 푸드로부터 배양육을 구매했던 적 있다.
그리고 배양육에 대해 부정적인 데이터를 생산했다.
많은 자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류영준이 직접 퍼뜨린 게 아니라면 대체 그 예측 정확도와 타이밍이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스티븐은 공포감을 느꼈다.
마치 기도를 드려서 비가 쏟아지게 만든 주술사 같기도 하고, 엄청난 설계 능력으로 수십 수를 넘겨보는 전략가 같기도 하다.
이제 스티븐의 눈에는 류영준이 거의 인간이 아닌 수준으로 보였다.
“배, 배양육은……. 암세포를 만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는 육류입니다.”
스티븐이 말을 더듬으며 발표를 시작했다.
“배양육을 만들 때는 성장 호르몬이 들어가는 위험한 환경에서 배양됩니다. 그게 코치아 잎에서부터 유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양육은 영양 풍부한 배양액에서 키우기 때문에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배양육을 먹으면 그것을 먹게 되는 겁니다.”
스티븐이 말했다.
“그리고 배양육은 줄기세포로부터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줄기세포는 암세포처럼 무한히 분열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줄기세포가 우리 몸에 들어가서 암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스티븐의 발표는 약 15분간 이어졌다.
“여기까지입니다. 배양육 제한법 반대 측 1번 토론자, 교차조사 해주십시오.”
칼 포퍼 방식의 토론을 변형시킨 입법 토론은, 양 측 진영이 한 명씩 발표하고 번갈아가며 발표자에 대해 질문을 하는 형식이다. 류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차조사를 시작했다.
“성장 호르몬이 포함되기 때문에 배양육이 위험하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 맞습니다.”
스티븐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성장 호르몬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아십니까?”
“코치아 잎에서 나오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코치아 작물을 식용으로 쓴다는 것 아십니까?”
“……. 모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식용으로 많이 씁니다. 식물 성장 호르몬은 경구 투여되었을 때, 살아있는 동물의 몸에서 활성을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위장벽을 지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코치아 잎을 많이 먹지만 아무런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세포 배양액에 용해될 때는 다릅니다. 세포 수준에서는 수용기가 모두 전면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성장 호르몬이 작용해서 배양육을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즉, 그 호르몬은 배양육에는 효과적이지만 사람 뱃속에서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배양육은 처리 과정에서 그 호르몬이 들어간 배양액을 모두 제거하기 때문에, 호르몬은 우리 몸에 들어가지 않지만,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쓰이는 식용입니다."
“또한 배양육은 멸균 공간에서 배양하기 때문에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스티븐 대표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전통 축산업에서 소나 돼지, 닭을 키우는 축사는 멸균 공간인가요? 가축들을 만질 때, 오토클레이브(Autoclave) 같은 장비를 이용해 고온고압 멸균 처리한 장비를 사용하시나요?”
“……아닙니다.”
“축사에 헤파 필터와 에어 배리어를 설치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기를 통제하고 바닥 접착패드로 발아래 오염인자를 제거하나요?”
“……아닙니다.”
“그럼 빈 축사를 UV 자외선과 OPA 계열 소독제로 소독하시나요?”
“아니요……."
“인부가 가축들에게 사료를 주거나 돌보러 들어갈 때 멸균복과 마스크, 고글, 방수 장화와 헤어캡을 착용하시나요?”
"......."
류영준의 공격을 지켜보면서 맥키니가 디에고에게 속삭였다.
“스티븐 곧 울겠는데요……."
류영준이 계속 말했다.
“배양육을 키우는 배양액에는 지시약이 포함되어 있어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되면 즉시 리포트됩니다. 24시간 모든 배양육 탱크를 자동 진단하는 셈입니다. 스티븐 대표님의 축사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존재하나요?”
“……없습니다.”
“줄기세포를 먹으면 몸속에서 암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맞습니까?”
"......."
“맞나요?”
“네……."
“확실합니까?”
스티븐이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혹시 에이바이오가 녹내장 치료에 줄기세포를 사용한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모릅니다.”
‘저희는 녹내장 치료에 줄기세포를 주사기로 환자의 안구에 직접 투여합니다.”
"......."
“그렇게 치료받은 환자가 미국에만 40만 명입니다. 그 중에서 종양이 발생한 환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스티븐도 알고 있었다.
줄기세포와 암에 대한 얘기는 류영준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토론회를 TV로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 공포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류영준이 아무리 아니라고 과학적인 설명을 해도 대중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그걸 믿는다면 스티븐에겐 이득이니까.
그러나 기세가 너무 심하게 기울었다. 발표 직전에 터진 붉은곰팡이가 류영준에게 어마어마한 위상을 부여했다.
예언자 흉내 낸다고 비난했는데 진짜로 예언자가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저희는 분화하지 않은 줄기세포를 자동 사멸시키는 기술을 개발해서 쓰고 있습니다. 배양육에도 그 기술이 적용되어 있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스티븐의 귀에는 마치 계속 걸리적거리면 너도 슈마틱스처럼 파멸시켜버리겠다고 얘기하는 것만 같았다.
“배양육은 안전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질문한 데 대해 반론 있으십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
스티븐이 시선을 떨구었다.
류영준은 의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상입니다. 교차조사 마치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류영준이 앉자 의장이 스티븐을 힐끔 살피고는 말했다.
“배양육 제한법 반대측 1번 토론자, 입론 발표 해주십시오……."
다시 류영준의 차례다.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푸드스캔 기계 옆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