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 배양육 (9) >
밀 생산 지대의 감염 정도는 꽤 높지만 대부분의 균사는 땅 아래에 있고, 밀을 감염시킨 곰팡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모든 곰팡이들이 잠복기 상태였다. 그들은 땅속에서 균사를 퍼뜨리며 자리를 잡고 양분을 모았다. 밀 이파리 안에서 증식했지만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온도가 낮아짐에 따라 포자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곰팡이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포자를 섞어 2배체가 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유전자들을 섞기 위해서 곰팡이가 교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겨울 동안 새로운 유전자들을 가지고 땅속에서 장기간 농성에 들어갈 것이다.
그 직전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수많은 낙엽과 과일이 떨어져 땅의 영양이 풍성한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황갈색 밀의 이파리, 그리고 흙 아래에서 퍼져 나온 균사들의 끝.
하얀 포자가 하나씩 열리기 시작했다.
밀 이파리는 포자 껍데기가 남아 희게 변했다가 곧 색이 바래서 붉게 좀먹기 시작했다.
이 색깔 때문에 곰팡이의 이름이 붉은곰팡이로 명명되었다.
-와스스스
땅에서 튀어나온 포자들은 곧바로 밀 이삭부터 감염시켰다.
기존에는 5 퍼센트 남짓 감염되어 있었던 밀 생산 지대의 감염률은 순식간에 80 퍼센트가 넘어갔다.
그러나 아직도 포자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로키 산맥에서부터 비탈을 타고 바람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푄 바람.
휘이잉!
류영준의 귓가에도 바람소리가 울렸다.
그 바람은 포자를 싣고 동쪽을 향했다. 그것들은 중부 지방에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끝이 아니다.
밀에 새롭게 감염된 붉은곰팡이 포자들은 잠복기가 짧다. 지금 평균 기온이 낮기 때문이다.
개체간 차이가 심해서 심하면 몇 시간, 길면 3일 이내에 균사를 뻗고 새로운 포자를 형성할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막대한 양의 포자들은 지속적으로 중부 지방을 향해 날아들게 된다.
기온이 더 낮아져서 사상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증식이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가자."
류영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밀 감염 지대에서 붉은곰팡이가 출현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할 거야.”
***
캠벨 대통령은 혼자 고심이 깊어졌다.
그는 류영준의 지지자다.
배양육의 지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붉은곰팡이 확산설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농무부 장관 앤소니는 캠벨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인물이다. 캠벨은 앤소니를 신뢰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류영준이 틀렸다고 생각하나?”
캠벨이 물었다.
“각하께서 류영준 박사를 많이 신뢰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류영준 박사를 좋게 생각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저 자신이 당뇨 치료제 에이먹을 복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붉은곰팡이는 아니다?”
“작년에 방제를 확실하게 했습니다. 이번에는 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붉은곰팡이가 본래 출현하는 시기로부터 20일이나 지났습니다.”
앤소니가 말했다.
“각하. 이번만큼은 류영준 박사가 틀렸을 겁니다. 그 사람도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모든 걸 다 맞추겠습니까. 그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성능을 잘못 파악한 겁니다.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난 이런 메일을 받았네.”
캠벨 대통령은 이메일 창을 열었다.
류영준에게서 온 메일이다.
[붉은곰팡이 확산에 대비해서 에이젠에서 붉은곰팡이 치료제를 대거 생산하려고 합니다. 저를 통해서 미리 구매 계약을 맺어두시면 사건이 터진 이후에 농민들의 원성을 덜 사게 될 겁니다.]
별로 길지도 않고 내용도 매우 당돌했다.
“각하 이메일은 어떻게 알았답니까?”
“전에 배양육을 할 때 내가 알려주었지. 난 그 사업을 이번 임기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가져갈 생각이니까. 혹시 그 일을 진행하다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바로 메일을 쓰라고 했네.”
“근데 배양육이 아니라 붉은곰팡이에 대해서 썼군요.”
“만약 이 말이 맞다면 나한테 메일 직통으로 보내는 것 정도가 문제겠는가?”
캠벨이 턱을 괴고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계약서를 쓸까 생각중이야.”
“그러지 마십시오. 더 큰 원성을 듣게 됩니다.”
“그런가?”
“인공지능의 개발자인 타냐 맨커 본인조차도 입을 다물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 정도로 지금 류영준 박사가 얘기한 건 실현 가능성이 낮습니다.”
"......."
캠벨은 짧게 한숨을 토하면서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알겠네. 더 생각해보지. 나가보게. 만약 붉은곰팡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인공지능과 타냐 맨커 대표가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될 거야. 그 사람은 배양육 산업의 논리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앞으로 좀 힘겨워질 수도 있겠군.”
“…….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그래도 배양육 산업을 밀어붙일 수는 있을 겁니다.”
앤소니가 말했다.
“하지만 각하께선 지금은 옥수수 농기업들을 더 자극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배양육 셋업 과정에서 그 사람들도 옥수수가 남게 되어 얼마간 손해를 볼 테니까요.”
“그 남는 옥수수가 식량 위기 해결의 핵심 포인트가 되는 건데 말이야.”
“문제의 사태가 올 때까지 그 토지와 농민들을 보호하는 건 제게 맡기십시오. 배양육 입법 토론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됩니다.”
앤소니는 캠벨 대통령을 안심시키고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부서로 돌아가 사무실에 앉았다.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책상 위에 새 리포트들이 쌓였다.
커피를 한 잔 내려서 한 모금 마시면서 앤소니는 제일 위에 있는 리포트를 집어 들었다.
“엇!"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란 앤소니는 커피를 내려놓고 서류를 면밀히 읽었다.
[밀 생산 지대에서 병충해에 감염된 개체들이 발견되었음.
잎의 색깔이 짙은 붉은 색으로 변하였는데, 붉은곰팡이 감염, 잎마름병, 잎굴파리 유충 감염, 응애류 감염 중 하나 이상의 감염원이 예상됨.]
“이게 무슨……."
감염 개체수 자체는 얼마 안 된다. 두 개의 농가에서 30 포기 정도가 감염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이게 붉은곰팡이라면 감염률은 사실 100 퍼센트에 가까울 것이다.
나머지는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다.
"......."
앤소니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물론 다른 종류의 질병일 수도 있지만, 만약 붉은 곰팡이라면?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포자들이 푄바람을 타고 중부 지역을 휩쓸었을 거다.
옥수수 지대는 이미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
좀 전에 대통령 집무실에서 보았던 류영준의 메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앤소니는 재빨리 대통령 집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각하. 제가 틀린 것 같습니다. 붉은곰팡이가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다시 유행한다고?
“네. 혹시 류영준 박사한테 곰팡이 치료제 구매 계약을 안 하겠다고 답장을 보내지는 않으셨죠?”
-아직 고민하고 있었네.
“……. 이게 붉은곰팡이가 맞는지 정밀 진단해야 합니다. 4일 내지 5일 정도는 소요될 걸로 예상됩니다.”
-국회 입법 토론회 날인가?
“그렇게 되나요?”
-만약 붉은곰팡이라면 그 사이에 중부지방에서도 발병할 수 있나?
“네. 지금은 기온이 낮고 곰팡이가 포자체로 활동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잠복기가 짧은 편입니다. 중부 지방에 지금 포자들이 날아갔다면 닷새 안에 모두 발병해서 난리가 날 겁니다.”
-알겠네. 정밀 조사 진행하고, 류영준 박사한테는 내가 답장을 보낼 테니 농무부로 모셔서 자네가 직접 붉은곰팡이 치료제 구매 계약서를 쓰게.
“알겠습니다……."
***
상황 돌아가는 걸 아직 모르는 타냐 맨커와 맨키니, 디에고가 주춤하는 사이, 배양육 반대파는 총력을 모았다.
스티븐은 이제 신이 나서 류영준과 배양육 기술 개발자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배양육 제한 법안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합니다. 이런 걸로 입법 토론을 벌이는 게 웃길 지경입니다. 이젠 예언자 흉내까지 내는 미치광이 과학자 한 사람한테 이렇게 세상이 휘둘려선 안 됩니다. 농기업들, 전통 축산 기업들 주가가 얼마나 떨어졌습니까?”
그는 보수 단체들을 모아놓고 소리쳤다.
입법 토론회 바로 전날까지 최대한 많은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그게 입법 토론회에서 강력한 무기가 되어서 법안 통과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배양육은 위험합니다. 경제적으로 미국에게 위험할 뿐만 아니라, 미국민의 건강에도 위험합니다. 그 고깃덩어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십니까?”
그는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암세포를 만드는 것과 똑같은 방식입니다! 그 배양육의 살코기를 찌우는 방법은 암세포가 분열하는 기작을 빌려온 겁니다. 암세포처럼 만들어지는 거라는 말이에요! 류영준과 그 수하들이 우리 국민들의 뱃속에 암세포를 집어넣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사실상 마지막 3일은 스티븐과 보수 단체의 독주가 지속되었다.
거의 모든 보수 집단이 한 데 힘을 모았다.
그들은 입법 토론회 날 아침에도 워싱턴 D.C.의 캐피틀힐 위에 모여들어서 행진을 시작했다.
“류영준은 미국에서 떠나라!”
“위험한 배양육을 금지하라!”
“축산 기업 보호하라!”
그들이 외쳐대는 구호가 미 의회의사당 앞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데 주최측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 중요한 마지막 집회에 중부, 서부 지방의 농민들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
보수 단체 지식인들과 함께 토론 의석에 앉은 스티븐은 맥키니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맥키니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싸워온 라이벌이며 경쟁자였다.
‘배양육 산업에 먼저 손을 뻗은 건 맥키니 자네다운 일이었어.’
스티븐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뜨거운 감자를 먹으려다 혀를 덴 거지. 자네가 앞에서 방파제가 되어 한 번 파도를 맞아준 다음에 나는 그걸 천천히 삼키겠네. 한 번만 꺾여줘.’
타냐 맨커도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고는 맥키니와 디에고에게 속삭였다.
“오늘이 10일째예요.”
맥키니가 고개를 고덕였다.
“아직 한나절이 남았잖습니까. 타냐 대표님.”
“……. 붉은곰팡이가 발병했다면 지금쯤은 뭔가 조짐들이 보여야할 텐데요.”
“안 된다면 별 수 없고요. 우리는 배양육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그 식량 생산 효율을 주장하면 될……."
맥키니의 말이 멈췄다.
드르르륵
토론 의석으로 들어오는 류영준이 커다란 카트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카트 위에 거대한 기계가 한 대 올라가 있었다.
“뭐야 저게?”
방청석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토론 패널들의 얼굴에 충격이 번졌다.
류영준은 카트를 토론 의석 뒤에 놓고, 기계의 코드를 꺼내 콘센트에 꽂았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스티븐이 소리쳤다.
“의사당에서 허락을 받은 겁니다.”
류영준이 짧게 답했다.
“저는 지난번에 중부 지방에서 붉은곰팡이가 확산된다고 그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배양육의 안전성은 토론회 때 따로 알려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류영준이 기계를 툭툭 두드렸다.
“포스 헬스케어에서 구매한 푸드스캔 3.4 버전입니다. 가장 최신형 제품이죠. 원료육 및 가공 육제품의 성분을 분석하고 아미노산 단계에서 CD 값까지 측정해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기계입니다.”
"......."
당혹감에 몸이 굳은 스티븐 앞으로 국회 의장이 나섰다.
이번 토론회의 진행을 맡은 의장은 연단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 토론이 진행되기 앞서, 토론 사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실 하나를 먼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그가 말했다.
“현재 중, 서부 지방의 옥수수 지대와 밀 생산 지대에 병충해가 퍼지고 있습니다. 어제 낮까지만 해도 천천히 감염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었는데, 저녁부터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거의 모든 식물이 감염 형질을 띄게 되었습니다.”
"무슨......."
놀란 스티븐의 입이 어버버 소릴 냈다.
의장이 말했다.
“농무부에서 닷새 전부터 현장 조사를 면밀히 진행하였고, 오늘 오전에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감염원은 붉은곰팡이로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30분 전에 발표된 내용입니다. 오늘 토론회에 영향을 줄 듯한 내용인데, 시간 관계상 여기 계신 분들은 발표를 듣지 못하셨을 줄 알아 부득이하게 지금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