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 배양육 (8) >
보도 자료가 나간 후, 류영준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타냐 맨커였다.
“여보세요.”
-류 대표님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요?”
-병충해 예측하신 거 말이에요.
“저한테 주셨던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이미 그걸 추적하는 기능이 있던데요.”
-그런 기능이 있긴 하지만 웬만하면 쓰이진 않아요……. 왜나면 병충해 데이터를 얻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렇군요."
-특히 붉은곰팡이는 잠복기에는 잘 관찰되지 않는 질병이라 지금은 찾아내기 어려운 질병이에요.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지난주에 농무부에서 방역 조사를 시행했는데 붉은곰팡이의 감염 징후는 못 찾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타냐가 혼란스러운 듯 말했다.
“잠복기의 붉은곰팡이들을 찾아낸 과정은 에이바이오 신기술과 관련된 거라서 지금 밝히긴 어렵습니다. 나중에 때가 되면 공개하죠.”
류영준이 둘러댔다.
옆에서 로잘린이 피식 웃었다.
로잘린의 시뮬레이션 모드를 사용해서 붉은곰팡이들을 찾아내고 질병 확산 상태를 모델링했다.
데이터를 수집한 다음 로잘린을 통해서 어떻게 곰팡이가 퍼지는지를 예측해 보았는데, 타냐 맨커의 인공지능이 예측한 바와 똑같았다.
붉은곰팡이는 5일째부터 대량의 포자를 생산할 것이고, 그건 된 바람을 타고 이동해 중부 지방의 옥수수 지대를 덮친다. 그로부터 약 5일간 잠복하다가 10일째부터 발병이 시작되어 어마어마한 농작 피해가 초래된다.
-하지만 시민들은 그런 걸 몰라요. 붉은곰팡이 데이터를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같은 거요.
타냐 맨커가 말했다.
-류 대표님. 사람들이 이해한 바는 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붉은곰팡이 확산을 예측했다는 것, 그것뿐일 거예요. 예측에 실패하면 식량 위기를 예측한 것에도 타격을 입을 테고요.
“불안하신가요? 틀릴까 봐?”
-제 프로그램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병충해 데이터를 어떻게 얻어서 인공지능 예측의 변수로 사용하셨는지 모르니 겁이 나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붉은곰팡이가 밀 생산 지대에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고, 인공지능이 맞다면 지금부터 10일째에 분명 옥수수 지대에서 큰 사고가 터질 테니.”
-......국회 입법 토론회가 열리는 시기와 겹쳐요. 만약 실패하면 토론회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을 거예요.
“성공하고 배양육 옹호 진영의 무기가 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아니 그게 말처럼 쉽게 되나요?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휴우. 일단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이번에는 에이젠에서 연락이 왔다.
CTO 니콜라스였다.
-류 박사. 이번에 사내에 올린 생산 라인 변경 요청서에 붉은곰팡이 치료제인 펀사이드의 생산량을 1만 퍼센트만큼 늘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이거 뭐 잘못 쓴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지금 일주일 생산량이 2만 리터 정도밖에 안 되잖아요? 곧 미국 중부, 서부지방에서 하루에 50만 리터씩 쓸 거예요. 여기 다 물량을 공급해야 합니다. 생산량을 백배로 늘려도 모자라요.”
-솔직히 이제는 나조차도 그 인공지능을 믿기가 겁이 납니다. 생산 라인을 그 정도로 바꾸고 대량으로 만든 다음에 붉은곰팡이가 안 퍼지면 재고 남는 거 처리하기 힘들어요. 손해가 꽤 클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니 절 믿고 부탁 한 번만 들어주세요. 오히려 매출 엄청 올라서 떼돈 벌 겁니다.”
-……류 박사. 정말 괜찮은 겁니까?
“물론이죠. 곰팡이는 분명 나옵니다.”
-이번 사업 말고 류 박사가 말입니다. 지금 류 박사가 하고 있는 일들 기존에 하던 제약하고 약간 달라요. 게다가 처음으로 수많은 시민들의 공격을 받고 있잖습니까? 류 박사의 상태가 괜찮냐는 거예요. 지금 붉은곰팡이 예견하는 것도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염려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붉은곰팡이 치료제 생산량은 꼭 늘려주세요.”
-류 박사와의 정을 생각해서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근데 이만한 문제면 나도 임원들 설득해야 해요. 장담은 못합니다. 노력은 해보지요.
“감사합니다.”
***
맥키니 역시 보도 자료에 깜짝 놀랐지만 레드 미트사의 스티븐은 충격이 더 컸다.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정치권에서도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농민들의 눈총이 농무부를 향했다. 불과 일주일 전에 농무부가 대규모 방역 조사를 했는데, 붉은곰팡이에 대한 얘긴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농민들은 류영준의 발표에 대해서 농무부가 어떤 종류의 해명이라도 내놓기를 원했다.
마침내 농무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시행되었던 대규모 방역 조사는 류영준 박사가 주장한 붉은곰팡이 확산의 진원지인 서부 밀 생산 지대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농무부는 붉은곰팡이의 발병 징후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농무부는 작년 붉은곰팡이 확산 재난 때, 모든 병든립을 건조 폐기하며 방역을 진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붉은곰팡이의 서부 지역 완전 소멸을 확정했습니다. 현재 해당 지역에는 붉은곰팡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마침내 나온 성명에는 지금 서부에 붉은곰팡이가 잠복기 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냐는 반문이 쏟아졌다.
-잠복기 상태의 붉은곰팡이는 찾아낼 수 없으며,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그걸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잠복 상태라면 서부 지역에서 이미 발병이 진행되었어야 합니다. 작년의 최초 발병 시기에 비해 20일이나 늦었기 때문에 이번에 붉은곰팡이가 나타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
레드 미트의 스티븐은 농무부의 발표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 인공지능이 10년 후 식량 위기에 대해 떠들더니 이젠 존재하지도 않는 붉은곰팡이가 옥수수지대를 덮친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스티븐이 말했다.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 축산 기업 대표인 제가 이런 말을 해도 진정성을 갖는 이유는 세계 옥수수 생산량의 절반을 축산업이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옥수수는 가축의 대표 사료예요. 절 믿어주십시오. 붉은곰팡이는 없어요.”
스티븐은 단호하게 류영준의 주장을 반박했다.
“여러분. 올해 중부 지방의 농작은 붉은곰팡이 내성 종자로 진행된 게 아닙니다. 작년에 그 난리를 치렀는데도 내성 종자를 쓴 농가는 별로 없었어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붉은곰팡이를 작년에 완전 방제했기 때문이에요. 올해 다시 확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게 그 인공지능이 틀렸다는 증거예요. 전혀 엉뚱한 진단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스티븐이 말했다.
“아무도 이런 애길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아무도 류 박사 말을 긍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에 베팅을 하겠어요? 타냐 맨커도, 맥키니도, 디에고도 전부 침묵하지 않았습니까?”
스티븐의 말대로 배양육 옹호 진영이나 식량 위기를 강조하던 이들이 이번에는 다들 입을 다물었다.
함부로 수를 썼다가 큰 약점을 내줄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스티븐의 공세가 더욱 가속되면서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옥수수 생산 지대의 대규모 농업 기업들이 류영준을 공격하는 성명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3류 깡통 인공지능과 점쟁이 짓을 하는 과학자의 말 한 마디가 농무부보다 더 강한 신뢰도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중부지방 농업 기업 연합회의 대표가 발표했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배양육 기술에 많은 피해를 입는 중입니다. 기존 옥수수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가축 사료로 이용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된 위기 예측과 안전성이 입증도 안 된 배양육이라는 정크 푸드가 나온 이후로 주가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하물며 이번에는 붉은곰팡이요? 류영준 박사가 도대체 중부지방 농기업들과 무슨 척을 져서 이런 망발을 쏟아내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그들은 한 술 더 떠서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가 있는 미 국립 보건원에 몰려들어 집회까지 벌였다.
“미국 농부들 굶어죽이는 류영준은 미국에서 떠나라!”
“류영준이야말로 식품 상업의 종양이다!”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는 가운데 콘슨앤커슨의 데이비드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류영준 박사는 틀리지 않아. 그 사람이 인공지능 하나 믿고 저렇게 발표하겠나? 분명 다른 증거도 있겠지.”
그의 예리한 비즈니스 감각은 배양육 사태를 주시하면서 줄곧 돈 벌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그 타이밍 중 하나다. 근데 너무 위험해보였다.
그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류영준의 말처럼 될까?
“우리도 붉은곰팡이 치료제 있지?”
데이비드가 CTO에게 물었다.
“있습니다. 에이젠의 제품이 우리 걸 모방해서 만든 거예요.”
“우리 그거 생산량 50%만 늘려보지. 혹시 실패할지도 모르니까 대외비로 해서.”
“괜찮으시겠습니까?”
“50퍼센트 정도는 괜찮아. 남으면 손해를 보긴 하겠지만. 작년에 치료제가 모자라서 얼마나 난리가 났었나. 그것보단 낫지.”
데이비드가 지시했다.
여론은 점차 양분되었다.
전통 축산업과 중부지방 농기업들을 필두로 한 인종주의자들과 보수단체 등이 한 데 모여 류영준을 비난했다.
그리고 환경론자들과 류영준의 신약에 큰 약효를 본 사람들, 류영준의 지지자들이 그들과 맞섰다.
-붉은곰팡이는 올 수가 없다. 농무부에서 작년에 완전 방제를 했었다. 최저기온 11도 이하로 떨어지면 보통 곰팡이가 포자를 만든다고 하는데, 이미 20일 전에 그 온도 지났다.
-근데 그 후에 계속 고기압이어서 날씨가 따뜻한 편이었잖아요. 이번 토요일에 최저기온 8도로 뚝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게 인공지능이 예측한 곰팡이 포자 발생 시기예요.
-류영준이 여태까지 말한 것 중에서 틀린 것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곰팡이 퍼질 것 같아요.
미국 내에서 엄청난 혼란이 퍼져 나가는 가운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TV 토론회나 뉴스는 이제 배양육 이슈에 더해 붉은곰팡이 재난까지 다루게 되었다.
***
닷새째.
저녁 해가 질 무렵 류영준은 로잘린과 함께 서부의 밀 생산 지대를 찾아와 언덕에 앉았다.
잘 익은 밀 이삭이 노을을 등지고 금빛으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예쁘네요.
로잘린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예쁘네.”
-제가 당신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이런 감상을 느낄 수도 있고, 그걸 어색해하지도 않는 걸 보니까 말이에요.
“그러게. 처음에는 진짜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었는데. 사람 좀 죽이고 독감을 멸종시키면 몇 년 만에 손익분기를 넘니 마니 하던 때 말이야.”
-당신이 윤리적인 인물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로잘린이 말했다.
“문과 안에서도 가장 따분한 학문이 철학이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들이니, 과학하곤 거리가 멀어 보이지. 과학적인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은 도덕을 별로 따지지 않을 것만 같고 말이야.”
류영준은 밀 이삭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러면 안 돼. 과학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얘기하는 학문이지만, 윤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도 되느냐’를 애기해 주는 학문이니까. 기술의 진보는 두 질문 모두에 답을 할 수 있어야지.”
-배양육에 대해서는 답을 확실히 찾으셨나요?
“배양육으로 교체하는 것은 꼭 필요해. 그 과정의 잡음을 처리하는 건 맥키니 대표와 캠벨 대통령을 믿어. 이미 성공적인 전환을 마친 사례가 있으니까. 앞으로도 잘할 거야.”
-그렇군요.
로잘린은 류영준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언덕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류영준의 무릎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아무 무게감이 없었다. 류영준은 로잘린의 옆모습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류영준의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 돌아온 로잘린은 류새이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그리고 실제로 류새이 나잇대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고, 이제 막 얻게 된 자신의 감각과 감정들을 신기해했다.
재밌어 보이는 게 있으면 류영준의 몸에서 시시때때로 튀어나와 이것저것 구경하고 만지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로 류새이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체중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것도 환상일 뿐이다.
그 실체는 그저 공기 중을 부유하는 세포일 뿐이니까.
그리고 로잘린은 세포 수준 생명체로서 상당히 특이한 관점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가축들이 불쌍해요.
그녀가 말했다.
“축산업계 말고? 가축이?”
-네.
로잘린과의 대화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혼란이다.
“왜?"
류영준이 물었다.
-배양육 산업이 완전히 셋업되면 가축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테니까요.
“숫자가 줄어드는 게 문제인가? 지금처럼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좁은 공간에 갇혀서 학대받고 사료를 강제로 주입받는 게 문제지.”
-확실히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하지만 단일 세포로 구성된 생명체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에 대한 진단이 조금 다릅니다. 예를 들어 닭이라는 생명체는 그 조상인 적색야계에 비해 개체 수가 급증하여 현재는 350억 마리에 이릅니다.
"......."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 출현해서 다른 생물종들과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아프리카 흑코뿔소 같은 동물은 멸종했지만 닭은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죠.
로잘린이 말했다.
-제 관점에선 동물의 ‘가축화’는 그 동물 종의 번식에 큰 메리트가 되는 하나의 적응 방법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구나.”
-하지만 이제는 배양육이 셋업되면서 그들 종은 거대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어찌면 멸종을 향해 달리게 될 수도 있어요. 앞으로 50년 후면 닭이 멸종 위기종에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죠.
로잘린이 말했다.
-이제부턴 고양이처럼 귀여움을 무기로 삼는 동물들만이 인간의 시대에 적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
-에이즈 바이러스도 멸종시키고, 모기도 멸종시킬 예정이고. 인간에게 도움이 안 되고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모두 치워 버리는군요.
“에이즈 바이러스도?”
-그럼요. 그것도 하나의 유기체인데요.
"......."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당신도 인간에 속하는 개체고, 제겐 여전히 당신의 세계가 중요해요. 가축들 다음에 원하는 게 있으면 얘기하세요.
로잘린이 말했다.
-언제든지 그 종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치워드릴 테니까요.
류영준은 약간 섬뜩함을 느꼈다.
너 여전히 사이코패스 같다고 말하려다 멈췄다.
‘에이즈 바이러스 퇴치를 종 절멸의 관점에서 인식하는 로잘린에 비하면 어찌면 내가 사이코패스 아닌가?’
잠깐 혼란에 잠겨 있는데 로잘린이 말했다.
-아. 이제 시작되네요.
“뭐가?”
-포자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동기화 모드를 켜드릴까요?
로잘린이 들판을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