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 배양육 (7) >
국회 입법 토론회는 약 10일 후다.
하지만 그건 결전의 날일 뿐, 수많은 자잘한 국지전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났다.
수많은 지식인들과 축산업 관계자들은 끊임없이 TV 토론회나 강연회에 나가서 자신의 의견들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은 세 사람이다.
첫 번째는 레드 미트사의 대표인 스티븐. 그는 보수 단체와 전통 축산업의 대부와 같은 인물이었다. 비록 최근에는 노동자들 중 다수가 이탈했지만, 스티븐을 중심으로 뭉친 전통 축산 기업의 이익 집단은 여전히 강력했다.
두 번째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맥키니다. 그는 성공적인 배양육 전환의 시범 케이스를 전 세계 최초로 보임으로써 전통 축산 체제를 배양육 체제로 바꿀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뛰어난 실사례는 수많은 난상 토론과 강연들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세 번째는 최근 그 지지도가 급부상한 타냐 맨커다.
그녀는 이미 과거에 TED에서 식량 위기를 예측하는 강연을 진행한 적 있었다. 하지만 비만 인구가 절반에 이르는 북미에서 식량 위기를 애기해봤자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일반 시민들은 ‘흥미로운 가설’ 정도로 느꼈고 가십거리로 며칠 씹다가 잊어버렸던 것이다.
당시에 타냐 맨커는 식량 위기의 해소를 위해서 인도와 아프리카의 농업 개혁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해결법이 생겼기 때문이다.
“모든 시장에는 티핑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루에 강연을 세 개씩 뛰는 타냐는 그동안 수없이 해왔던 이야기를 뉴욕 주립대에서 반복하고 있었다.
“티핑 포인트란, 무언가가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하는 지점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변화 시점부터 전 세계가 영향을 받고 비가역적으로 수많은 게 바뀌게 됩니다. 서브프라임 금융 위기 사태 같은 거예요. 2007년 9월 금리 인하 정책이 나오면서 티핑 포인트를 넘었죠. 갑자기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전 세계가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한 혼란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타냐가 말했다.
“식량 위기에는 티핑 포인트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액션을 취하지 않으면 저는 그 시점을 약 10년 후로 예상합니다.”
그녀는 화면에 세계 지도를 하나 띄웠다. 많은 지역들이 붉은색 또는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이 지도는 세계의 ‘칼로리’ 데이터입니다.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칼로리에서 소비된 칼로리를 뺀 값입니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국가들은 잉여 칼로리가 남아서 식량을 비축하거나 수출하는 국가입니다.”
타냐가 말했다.
“브라질과 인도, 유럽 등의 수많은 지역들이 지난 40년간 칼로리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식량의 자급자족과 비축, 수출이 가능한 나라들이 됐죠. 하지만 중국은 수출국에서 세계 최고의 식량 수입국으로 변했습니다.”
그녀가 중국을 짚었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국가들 중에서도 차이가 분명해보일 정도로 맹렬하게 붉은 색이었다.
“앞으로는 어떨까요?”
타냐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부터 10년 후면 아프리카 대륙과 중국, 인도의 인구를 합친 수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게 됩니다. 아직 파란색인 아프리카 대륙과 인도는 앞으로 중국을 따르게 될까요? 아니면 현상을 유지하게 될까요?”
청중들 사이에 쥐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학생들의 집중을 끌어모으면서 타냐가 말했다.
“상황을 낙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 번 녹색혁명에 성공한 인도가 앞으로도 칼로리 수출국의 위상을 유지할 거라고 믿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타냐는 무대 앞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인도와 아프리카는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지역들입니다. 그리고 인구도 성장하고 있죠. 이런 국가들의 특징은 기존 농업 종사자들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농촌 지역들이 개발되어 도시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토지는 줄어드는 반면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 티핑 포인트를 향해 달리게 됩니다.”
타냐가 말했다.
“40년 전에는 중국도 인도나 아프리카처럼 새파란 색깔의 ‘칼로리 수출국’이었습니다. 인도나 아프리카는 중국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저희는 인공지능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타냐가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세계 식량 생산 및 소비, 기후 변화 패턴 등을 분석해서 앞으로의 양상을 예측해줍니다. 2027년에는 214조 킬로칼로리가 결핍됩니다. 3790억 개의 빅맥이 더 있어야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맥도널드가 지금까지 생산한 빅맥보다 더 많은 양이죠.”
타냐가 말했다.
“더 심각한 건 이게 영양소의 균형 같은 걸 포함한 얘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단순히 에너지만을 계산했을 때 이런 상황인 겁니다. 적은 자원으로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탄수화물 기반 식품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겐 고품질의 ‘단백질’ 공급원도 필요합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이제 배양육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티핑 포인트에 근접하면 세계 각국의 정부들은 엄청난 비용을 치르면서 전통 축산업을 파괴하기 시작할 겁니다. 금융 위기 때 미국 정부가 수천억 달러의 세금을 써서 AIG와 은행들을 살려낸 것처럼 말입니다. 국민들을 굶겨 죽일 수는 없으니까요. 굶주린 시민들이 폭동으로 변해 통제 불가능한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고육지책을 쓰게 될 겁니다.”
타냐가 말했다.
“육류 생산은 어마어마한 자원을 낭비합니다. 1 킬로칼로리의 소고기를 만드는 데는 30 킬로칼로리의 사료가 필요합니다. 그 사료를 생산할 수 있는 토지 자원의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더 많은 에너지를 잃은 셈이죠. 가축들을 키우는 데 쓰이는 사료의 칼로리는 전세계에 걸쳐서 40억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입니다.”
타냐가 말했다.
“이밖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전통 축산업은 삼림 파괴와 메탄 가스 생산의 주범이라 지구 온난화를 엄청나게 가속시킨다는 것입니다. 기온이 1 도만 올라가도 농작물의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추락하기 때문에, 전통 축산업은 장기적으로 식량 생산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양육을 완전하게 셋업하면 얘기가 크게 달라집니다. 환경 파괴도 없고 자원 낭비도 없습니다. 가축 사료를 생산하는 데 쓰던 그 많은 토지를 식용 작물 생산에 쓸 수 있습니다. 배양육은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입니다.”
***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요즘 그런 얘길 떠들고 다니는 여자가 있다죠?”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전통 축산업의 대부, 레드 미트의 스티븐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다.
“전통 축산업은 그렇게까지 환경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소고기 1 칼로리를 생산하는 데 30 칼로리의 사료가 든다고요? 닭과 돼지고기는 1 칼로리를 만드는 데 8 칼로리면 됩니다.”
스티븐이 말했다.
“그리고 식량 위기요? 상식적으로 식량 위기가 오겠습니까? 그 주장은 시장 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생긴 거라고 생각됩니다. 식량 위기가 올 것 같으면 세계 식량의 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그럼 인도나 아프리카가 식량 생산을 멈추고 농촌을 개발하는 짓을 과연 벌일까요? 인도는 여전히 식량 수출국일 겁니다.”
스티븐은 공격적으로 연설들을 쏘아댔다.
“식량 위기를 예측했다는 그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정체조차 의문입니다. 그만한 기술이 있으면 구글을 차릴 것이지 왜 그 대단한 인공지능으로 식량 생산량이나 찾아보고 있는지도 황당하고 말입니다.”
스티븐이 말했다.
“하물며 그 해결법으로 제시하는 게 배양육이라니 웃기지도 않습니다. 배양육? 실험실에서 화학 물질들을 듬뿍 뿌려서 만들어낸 정체도 알 수 없는 그 징그러운 고깃덩어리를 단백질 대체제로 먹으라는 겁니까? 차라리 설국열차 같은 영화에서 바퀴벌레를 먹는 게 더 그럴싸하겠군요. 그동안 곤충을 먹자거나, 해양 자원을 개발하자는 등 수많은 단백질 대체제가 논의되었지만 배양육은 완전히 멍청한 방법입니다.”
스티븐이 보수 단체들과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그로부터 또 조금 떨어진 곳, 컬럼비아 대학교에서는 맥키니가 강의하고 있었다.
“저는 시장 경제를 40년간 공부해온 사람이지만 타냐 맨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이유는 한 번 개발된 토지는 되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얘기해보죠. 여러분. 식량이 부족하니 이제 이 컬럼비아 대학 캠퍼스를 허물고 이곳에서 소를 키웁시다.”
맥키니가 양팔을 벌리면서 말했다.
청중들 사이에 웃음이 번졌다.
“인도나 아프리카의 개발은 막을 수 없습니다. 시장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발전 모델의 문제예요. 세계 최고의 농축산 국가인 미국조차도 지금 농촌이 어떻습니까? 청년들은 점점 줄고 농업은 힘을 잃어가고 땅은 계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인도나 아프리카도 그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맥키니가 말했다.
“토지 개발은 한 번 이루어지면 되돌아가기 어렵습니다. 도시화된 땅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겠습니까? 당연히 땅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아시듯이 당연히 세계 인구는 증가합니다. 식량 위기 역시 당연한 것 아닙니까?”
세 사람을 필두로 한 식량 전문가와 농축산업 지식인들은 미국 곳곳을 뛰어다니면서 각자의 강의를 펼쳤다.
잇더그린의 대표 디에고 역시 사업화로 바쁜 와중에 맥키니를 지원사격하러 종종 움직였다.
그들의 강의 중 상당수는 유튜브에도 올라가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싸움이 어떤 식으로 결론 지어질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국회 입법 토론이 시작되면 그날 모든 게 끝난다.’
동시에 시민들이 궁금한 것은 또 있었다.
‘대체 류영준은 뭘 하고 있는 거지?’
그 사람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다.
지금 같은 난장 토론과 게릴라성 강연들이 사방에서 펼쳐지는 가운데 류영준은 한 번도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잠적해 있었다.
“사실 류 박사 역시 배양육 기술이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류 박사도 식량 위기에 동의하지 않아서예요!”
스티븐은 옳다구나 하고 막말을 퍼부었다.
“배양육 자체는 대체 육류로서 슬쩍 만들어봤지만 생각보다 파급 효과가 크니까 겁먹은 거예요. 그리고 과학자로서 양심에 찔린 겁니다. 식량 위기 같은 건 없으니까 말입니다! 류 박사는 과학자로서 그 사실을 알아요. 그 3류 인공지능이 아무짝에 쓸모없는 물건이란 걸 말입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예요!”
강연을 마친 스티븐은 박수를 받은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스티븐 대표님.”
“네, 거기 여학생. 말씀하세요.”
“30분 전에 류영준 박사님이 에이바이오에서 보도 자료를 만들어 돌렸는데요.”
“보도 자료요?”
스티븐의 어깨가 움찔했다.
***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모두가 배양육을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류영준은 전혀 다른 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배양육이요? 저는 이미 기술을 만들어서 공급했고, 전통 축산업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업종 변경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과학자로서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배양육 기술에 대한 진실 토론이라기보다 정치 싸움에 가까워 보입니다. 전 그런 데 관심 없어요.”
류영준이 말했다.
“배양육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입법 토론회 때 따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지금 싸움에 휘말리고 싶진 않습니다. 그 시간에 좀 더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연구하고 싶네요.”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그 동안 타냐 맨커 대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사용해봤습니다. 10일 이내에 미국 중부 지역 전체에 걸쳐서 붉은곰팡이가 증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년에 미국의 중부, 동부 지역의 옥수수 지대는 붉은곰팡이의 피해를 입어서 농작에 크게 실패했지만 내성 종자를 쓰지 않고 올해도 농작을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붉은곰팡이가 모두 제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약간 서쪽, 밀 생산 지대 근처에 붉은곰팡이들이 남아서 잠복기에 있는 것을 에이바이오에서 확인했습니다.”
인공지능에 변수로 포함된 데이터들이 나타났다.
“작물의 타입과 재배 면적, 개체 간의 간격, 그리고 기후 정보가 입력된 값입니다. 이번 일요일 기온이 떨어지면서 붉은곰팡이가 본격적으로 포자를 증식시킬 겁니다. 발생한 포자들은 미국 서부의 로키 산맥에서부터 내려오는 된 바람을 타고 동부를 향해 이동하게 됩니다. 그대로 중부 지역의 옥수수 지대를 덮치게 되는데, 개체간의 간격이 좁고 재배 면적에 바람을 막아줄 방파 지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옥수수 개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타냐 맨커 대표의 프로그램이 맞다면, 10일째에는 옥수수 대부분이 감염될 것으로 예측 되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붉은곰팡이에 감염된 병든립을 즉시 제거하고 건조시켜 확산을 방지하시길 바라며, 작년 붉은곰팡이 사태 때 에이젠이 개발한 곰팡이 제거제가 있으니 구매하여 사용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