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 배양육 (6) >
[육류의 규정 법안에 대한 개정안]
캠벨 대통령은 아침에 올라온 입법 추진안을 읽었다.
이번에 국회에서 토론회까지 열게 된 법령이다.
“하하, 것 참.”
캠벨 대통령은 추진안을 비서실장에게 내밀었다.
“재밌는 법안을 추진하는군.”
“우리 국회는 쓸데없는 일에 힘 빼는 데는 도가 텼으니까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나도 딱 그래. 일 잘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정말 삽질만 하는군. 축산업계를 위해 배양육을 제한하자니……. 이거 중세 기독교가 석궁은 너무 위험한 무기라고 금지하던 거랑 비슷한 꼴 아닌가.”
“사실 그거 루머입니다.”
“그래?”
“교황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선 원거리 무기를 쓰지 말자고 한 게 전부라더군요.”
“그렇군.”
“아무튼 의원들도 사실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을 겁니다. 다만 배양육에 반대하는 축산업계의 기세가 꽤 거세니까 박자를 맞춰주는 것이죠.”
“그게 쓸데없는 짓이지.”
캠벨 대통령은 손가락으로 포인트를 짚었다.
“난 이 기술을 류영준 박사와 아주 면밀히 검토했네. 그리고 과학기술정책 국장 제임스도 같이 검토했어. 냉정하게 애기하는데, 배양육 기술은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효과적이야. 10년에 걸쳐서 전통 축산업을 배양육 산업으로 대체하는 일. 난 이걸 내 임기 중의 제일 중요한 경제 업적으로 추진하겠네.”
“그럼 의원들을 설득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법안 내용을 보면 배양육의 위험성을 높게 평가하고 규제를 빡세게 하려는 것 같던 데요. 그리고 전통 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배양육에 세율을 높여서 가격을 조정하는 것도 있고……."
“기존 배양육에 대한 규제 법안을 강화해서 앞으로는 시판 허가를 쉽게 안 내주겠다는 것, 그리고 세금을 잔뜩 붙여서 기존 육류 대비 50 퍼센트만큼 높은 가격으로 만들겠다는 게 요지지?”
“네."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물러나게 될 걸세.”
“어떻게요?”
“백악관에서는 코치아 작물 재배로 변경하는 정책을 대중에게 홍보하기만 하면 돼. 타이밍은 내가 알려주겠네. 홍보 실장한테 따로 전해주게.”
“그 타이밍이 언젭니까?”
“첫 번째 성공적인 전환 사례가 나오는 시점. 아마 맥키니 대표가 운영하는 티케이슨 푸드가 될 거야. 거길 좀 지켜봐. 국회에서 공개 입법토론회 한다고 했지?”
“네. 생방송 중계로 띄우면서요.”
“패널로 맥키니 대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 전통 축산업계에서 패널 선정 과정에 로비하는 게 있는지만 지켜봐주게. 그 외엔 그냥 내버려두면 돼.”
캠벨이 말했다.
“류영준 박사가 알아서 할 걸세. 지금 전부 다 그 사람이 생각한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
-우와아아…….
로잘린이 류영준의 몸에서 튀어나오며 탄성을 질렀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케이캅스 차량 창밖으로 엄청난 크기의 황금색 발이 지평선 끝까지 깔려 있었다.
-저 이런 건 처음 봐요.
‘나도 처음 본다.’
류영준이 밖을 힐끔 쳐다보곤 말했다.
‘미국이 농업 규모가 진짜 대단하긴 하네. 경비행기로 약 뿌린다더니 어우…….'
-저 잠깐 밖에 나갔다가 와도 돼요?
‘안 돼. 우리 갈 길 멀어.’
-어디 가는데요?
‘이 밭 지나면 옥수수 농장들 나오거든. 그쪽까지 가야해.’
-옥수수는 왜요?
‘미국 농업의 주력이거든. 그리고 작년에 수확량이 많이 줄었지. 왜 그런지 아니?’
-왜 줄었어요?
‘붉은곰팡이병이라고 옥수수에 감염되는 병이 퍼졌어.’
-붉은곰팡이병?
로잘린의 눈이 반짝거렸다.
-혹시 이렇게 생긴 균인가요?
로잘린이 류영준의 시각을 조작했다. 눈앞에 붉은색 먼지 덩어리 같은 병원체가 나타났다.
‘눈알이 현미경이 아니고서야 곰팡이 생김새를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니. 난 몰라. 하지만 네가 맞겠지, 뭐.’
류영준은 대답하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근데 이 이미지는 어디서 얻은 거야? 내 머릿속엔 없었을 텐데.’
-그냥 직접 본 거예요. 지금 저쪽 밭에 굴러다니고 있거든요.
로잘린이 창밖을 가리켰다.
‘아……. 혹시나 했는데 제대로 찾아오긴 했네. 붉은곰팡이 내성 종자를 쓰지 않고 작년 종자를 그대로 썼다는 애길 들었지. 역시 지금도 곰팡이가 퍼지고 있네. 근데 저쪽은 옥수수밭이 아니고 밀밭인데?’
-이 곰팡이는 밀과 벼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옥수수밭 쪽에도 퍼져있을 것 같은데요. 꽤 넓은 범위에 걸쳐서 포자가 날아다니고 있어요.
‘좋아. 우리는 그 병충해의 발병을 데이터화할 거야. 그걸 그로 인텔리전스에 쓸 거고.’
-올해 작황에 어떤 영향을 줄지 분석한다는 거죠?
‘응. 그로 인텔리전스에서 가져온 프로그램은 농작 예측 프로그램이야. 데이터들을 변수로 넣어주면 인공지능이 결과를 예상해주는 거지. 데이터가 다양하고 퀄리티가 좋을수록 결과도 좋아.’
류영준이 말했다.
‘근데 병원균의 확산 정도 같은 걸 데이터로 만들기는 꽤 어렵거든.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그 데이터를 포함시켜주자고.’
-데이터를 어떻게 얻었냐고 사람들이 물으면요?
‘데이터 확보 과정에는 관심 없을걸. 그로 인텔리전스가 그 데이터로 예측한 결과를 보면 이미 눈 뒤집어져있을 텐데.’
“근데 대표님.”
조수석에서 김철권이 말을 걸었다.
“네."
“지금 계속 미국 돌아다니셔도 되는 겁니까? 귀국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왜요?”
“국내에도 축산업이 있으니까요. 그쪽도 분위기가 안 좋은 것 같던데요.”
“그렇겠죠.”
김철권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 떠있는 건 에이바이오 자유게시판이었다.
-류영준은 개뻘짓 그만하고 신약 개발에만 집중해라.
-무엇이든지 자연에서 난 것이 좋은 것입니다. 고기를 실험실에서 합성하면 그게 효과가 있겠읍니까? 자연에서 풀을 뜯고 자란 건강한 돼지에게서 얻은 살코기를 먹어야 그게 사람 사는 방법이랍니다.
-역시 헬조선 인성들 어디 안 가죠? 온갖 불치병 다 잡고 다닐 때는 국민 영웅 취급이더니 지들 밥그릇 건드리니까 바로 역적 취급하네 ㅋㅋ
-이런 기술은 개발하기 전에 축산업계와 깊이 상의하고 허가를 받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기술 만드는데 당신들이 뭐라고 상의하고 허가를 내줍니까? 그리고 상의하면 솔직히 하라고 했겠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시네
-류영준 X새끼야 그렇게 안 봤는데 배신감에 치가 떨린다. 가난한 농부들 피빨아먹고 미국으로 튀어서 좋으냐
-류 박사님 여기 올라오는 헛소리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던 연구 계속 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채식주의자입니다. 배양육 빨리 나오길 기도합니다.
-류영준 박사님 변했습니다. 서민들 위해서 의약 연구 하던 분 어디 갔나요? 왜 서민들 생계 위협하는 걸 만들고 있나요?
┗맞는 말이다. 돈 맛 보고 안 변하는 사람 없다. 배양육 돈 되니까 그거 하면서 미국으로 튄 거다. 썩을 놈의 XX.
┗┗맞는 말이란 게 처 맞는 말이란 뜻이지? 변하긴 누가 변해?
-류영준 변했다는 사람들 보세요. 류영준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똑같습니다. 아니 과학자가 과학을 하는데 대체 왜 난리들이죠?
-지금은 축산업자들 생계에 타격을 주는 정도지만 지금 안 하면 10년 후에는 인류의 생계에 치명적인 식량 위기가 닥친다. 제발 중요한 일 하는 사람한테 초 치지 말고 입 좀 다물어라.
-아니 근데 정부에서 코치아 재배하는 방법으로 생계유지하는 정책 내고 거기에 예산도 800억씩 투입한다면서요?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보상금도 받고 축사 개량도 군인들이 와서 그냥 해준다며? 가축들도 정부에서 사다가 도살해서 군인들 먹인다잖아. 이 정도면 할 만큼 해준 거 아니냐? 이기적인 놈들.
“진짜 난리긴 하네요.”
배양육 기술 발표 이후로 게시판이 폭주해서 지금까지 100 페이지가 넘게 게시물이 올라왔다.
그 동안 수많은 연구들을 해왔지만 이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건 처음이다.
“귀국하셔서 회사 좀 돌보고 사람들한테 설명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김철권이 물었다.
“괜찮습니다. 미국에서 잡으면 우리나라도 잠잠해질 거예요.”
“그렇습니까?”
“미국에는 농장이 220만 개가 넘습니다. 총 면적은 3백7십만 제곱 킬로미터. 미국 국토의 37 퍼센트가 농축산물을 재배하고 키우는 농장이에요. 세계 최대 규모예요.”
류영준이 말했다.
“오죽하면 미국이 가진 무기 중 젤 무서운 게 핵잠수함이 아니라 옥수수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나 경제는 미국을 소형화해놓은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미국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미국에서 배양육을 안정시키면 우리나라는 자연히 따라갈 겁니다. 세계도 그렇고요.”
“대표님.”
운전석에서 젊은 경호원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이제 이 앞이 옥수수 밭입니다.”
“농장주인 댁 앞에 세워주세요.”
류영준은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전화가 오고 있었다.
[맥키니 티케이슨 푸드 대표]
“네, 류영준입니다.”
-안녕하세요, 류 대표님.
“네."
-상의드릴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어떤 건가요?”
-레드 미트에서 저희 배양육을 사갔습니다.
“사갔다고요?”
-네.
“벌써 시판되고 있는 겁니까?”
-지금 만드는 건 잇더그린이 옛날에 FDA에서 허가를 받았던 겁니다. 류 박사님 아이디어로 생산과정만 바뀐 것이니까요. 상품을 내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언제 FDA에서 다시 태클 걸고 중지시킬지 모릅니다만, 일단 미트볼 시판을 앞두고 패키징하고 있습니다.
“레드 미트사는 배양육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는 대형 축산 기업이니, 아마 그 미트볼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려고 할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배양육 시판을 앞두고 홍보를 때리고 있는데 레드 미트사에 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 팔면 ‘것봐라,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우리한테 넘기지 않는 게 아니냐?’고 하겠죠.
“그렇겠죠. 잘 하셨습니다.”
-근데 좀 걱정은 되네요. 그쪽에서 어떤 걸 트집잡을지. 아무래도 식품이니까 안에 중금속이 있다거나 항생제가 남아있다거나 하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저희 배양육 제작 과정에는 그런 게 남을 수 없어요.”
-맞습니다. 근데 그래서……. 솔직히 어떻게 나올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영준은 전화를 끊었다.
***
공개 입법 토론회가 열리기 3일 전.
벨우드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티케이슨 푸드의 벨우드 지역 사업장에서 직원들이 찍은 촬영물이다.
직원들은 접시에서 자라는 살코기를 보며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 기념 동영상을 찍었다.
맥키니가 조금도 그 부분에 보안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 그들은 개인 SNS에 올렸다.
그 동영상들은 순식간에 엄청난 좋아요 수를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누군가 퍼다가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리게 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축산업계 농장주들 사이에서는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벌써 배양육에 맞춘 회사가 있다.’
‘티케이슨에선 배양육을 만들고 있다더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소식은 또 나왔다.
사업장의 직원들이 본래 그곳에서 가축을 도살하던 인부들 그대로라는 것이다.
-아니 소 잡던 애들이 어떻게 생물학 같은 걸 하지? 접시에서 고기를 어떻게 키워?
타 사업장 인부들은 잠깐 충격을 받았지만 곧 상황을 이해했다.
그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연구개발과 생산은 다르다.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이는 연구개발은 고도의 전문지식과 창의성이 요구되지만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 인부들에겐 그 정도까진 필요 없다.
정해진 프로토콜을 충실히 따르면서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설비들 속에서 설정된 작업을 진행하면 된다.
-티케이슨 푸드는 3개의 농장과 1개의 사업장을 배양육 맞춤형으로 변환하면서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앞으로 티케이슨 푸드는 배양육 기술의 발전에 맞추어 다른 농장과 사업장들도 변환시킬 것이며, 가축들의 수를 점진적으로 줄일 계획이다.
첫 번째 성공 사례가 나오자마자 백악관은 정책 홍보를 시작했다. 이젠 성공에 대해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이전에 대형 축산 기업들과 농장주들에게 보냈던 정책 안내문을 좀 더 대중적인 형식으로 바꿨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보도 자료를 만들었다.
언론 브리핑과 광고를 때리고 각종 신문과 뉴스 매체를 통해서 정책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 모든 자료에는 티케이슨 푸드의 성공적인 적응을 예시로 들었다.
“지금 밀어붙여야 해.”
캠벨 대통령이 말했다.
“비서실장. 지금까지 결정된 입법 토론회 패널들 좀 불러주게.”
“반대측은 레드 미트 진영과 보수 단체 논객들입니다.”
“우리 쪽은?”
“티케이슨 푸드 대표 맥키니와 잇더그린의 디에고가 직접 나왔고 타나 맨커 그로 인텔리전스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류 박사는?”
“참석해달라고 연락이 간 상태이고 아직 답장을 기다리는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