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 배양육 (5) >
뉴욕, 브로드웨이.
네일 사이먼 극장에 다섯 사람이 있었다.
저마다 모자와 선글라스, 마스크 따위로 얼굴을 가린 채로 한국말로 떠들고 있었다.
“우리 진짜 지금 뮤지컬이나 봐도 되는 거 맞아요?”
선글라스를 매만지면서 정혜림이 물었다.
“보고 싶다면서요?”
류영준이 대꾸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죠.”
정혜림이 극장 대기실 전면에 있는 거대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워싱턴 시에 운집한 축산 기업 직원들이 캠벨 대통령은 비난하는 팻말과 현수막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화면에 잡혔다.
[MIND YOUR OWN MEDICINE]
‘그냥 신약 개발만 해라.’ 라는 메시지였다.
“저건 대표님을 저격하는 거 같은데요.”
박동현이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류영준이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대표님이 암 연구소 같은 거 만든 직후라고 대놓고 씹지는 않는군요.”
“좀 씹혀도 사실 상관없어요.”
류영준이 뮤지컬 티켓을 매만지며 답했다.
“근데 솔직히 궁금합니다. 뭐 믿는 게 있으십니까?”
천지명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믿는 거요?”
“이만한 상황 속에서 너무 태연하신 것 같아서요.”
“축산업 인부들은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온 것뿐이에요. 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면 적응할 겁니다. 시범 케이스로 한 군데만 성공적인 변화를 마치면 저 분위기가 많이 잦아들 거예요.”
“시범 케이스?”
“티케이슨 푸드가 농장셋을 코치아 재배 농장으로 업종 변경하고 그 농장들과 연계된 사업장 하나도 배양육 제작 사업장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맛이나 육질 같은 데서는 기존 육류를 못 따라간다면서요?”
“그런 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음식들도 있으니까요. 미트볼이라든지. 아니면 냉동 핫바라든가 하는 것들요. 티케이슨 푸드는 그런 쪽으로도 제작하기 때문에 금방 그쪽에 맞출 수 있습니다.”
“흠.”
생명창조 팀원들이 약간 안도의 숨을 돌렸다.
“확실히 성공한 케이스가 하나만 나오면 저 호들갑이 많이 줄어들긴 하겠네요.”
배선미가 말했다.
“그쯤에서 배양육 기술을 백업해줄 수 있는 식량 통계 전문가들이 사방에서 들어올 겁니다.”
“식량 통계 전문가요?”
“타냐 맨커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죠. 옛날에 TED 강연을 봤거든요. 많은 식량 전문가들이 인류의 식량 위기를 10년에서 20년 이내로 예상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위기는 매우 근접해있습니다. 배양육을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어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동안은 그 사람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대중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식량이 풍요롭고, 식량 위기라는 말이 와 닿지 않거든요. 그래서 변화가 더디죠. 하지만 이번엔 좀 다를 겁니다. 생각하고 있는 방법도 있고……."
“타냐 맨커 같은 사람들이 나설 거다?”
“네. 어쩌면 저한테 연락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근데 대표님. 전통 축산 기업의 농장주들은 코치아를 주고 정부가 지원해주면 만족할 수 있어요. 인부들도 그렇고요. 근데 기업가도 그럴까요?”
정혜림이 물었다.
“기업가들……."
“저는 맥키니 대표가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부분 거대 기업 임원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자기 기득권을 흔들 수 있는 신기술이 나와서 잇더그린 같은 벤처가 성장하는 데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잖아요?”
“그렇죠.”
“티케이슨 푸드가 성공적인 변화를 보여주면서 배양육 시장의 선두를 잡아버리면 더 문제예요. 다른 축산 기업들은 분명히 배양육의 안전성이 어쩌고 하면서 시비 걸고 발목 잡으려고 들 거예요.”
“야야.”
천지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 정혜림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 대표님 그런 거 두들겨 패는 데 도 튼 사람이야. 여태 보고도 모르니?”
“그렇긴 한데 뭘 어떻게 하실지 감이 안 와서……."
정혜림이 말꼬리를 흐렸다.
“언제나 진실을 파헤치는 건 과학이죠, 뭐. 이제 뮤지컬 시작하겠네요. 들어갑시다.”
류영준이 극장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서는 캠벨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캠벨 대통령은 농민 생존권을 보장하라!”
“졸속 행정 규탄한다!”
“육류를 전통 축산으로 생산된 것으로 한정하라!”
인원은 적지 않다.
불과 며칠 사이에 소집된 집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꽤 파급 효과가 강한 편이다.
그 정도로 배양육 기술이 기존의 전통 축산 시장에 주는 충격은 막대했다.
정부에서 축산 기업들에게 코치아 재배와 관련된 정책 안내문을 보냈으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양육은 가축을 키울 필요가 없다.
도살이나 내장과 뼈 제거 같은 별도의 가공 과정도 필요 없다.
그냥 살덩어리 째로 나오니까.
축산업자들이 보기에는 며칠 내로 그들의 밥줄을 끊어버릴 공포의 기술처럼 보였다.
마차를 끌고 있는데 메르세데스가 지나가는 느낌이다.
말을 키울 필요도 없고 건초도 필요 없고 마부도 필요 없는 기술.
그냥 엑셀 밟으면 앞으로 나가는, 마차보다 훨씬 제동력이 좋은 운송장치.
축산업 자들에게 배양육의 위상은 그런 느낌이었다.
“저게 난 이해가 안 돼.”
맥키니가 TV를 보면서 말했다.
“아니 지들이 반대한다고 이미 만들어진 배양육이 없어져? 세상에 기술 발달로 망하는 사업들은 수없이 많은데 그 중에서 정부가 업종 변경 가이드라인까지 주는 경우가 있긴 있었나? 그냥 보조금 조금 주고 말지.”
그는 테이블에 발을 탁 걸치면서 비서진을 돌아보았다.
“안 그래요?”
맞습니다. 대표님.
“사람들이 멍청한 건지 배가 불러서 현실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배양육이라는 기술은 축산업계에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이었고 지금 류 박사와 정부 주도하에 가장 안전하게 터진 거야. 그걸 왜 모르지? 저딴 집회 나갈 시간에 정부에서 준 가이드라인만 충실히 따라서 류 박사 말대로 업종 변경하면 제 밥그릇 챙기겠구만.”
맥키니는 툴툴대며 위스키를 따라서 몇 모금 마셨다.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 우리 시범 농장이랑 사업장은 지금 잘 되어가고 있나?”
그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이제 리모델링이 거의 끝났고 당장 가동도 가능한 상태입니다.”
비서가 대답했다.
맥키니는 그 놀라운 결단력을 발휘해서, 잇더그린과 류영준이 발표하기 전에 이미 업종 변경을 시작했다.
농장 세 개와 사업장 하나를 시범 케이스로 변화시켰다.
‘류영준 박사랑 예전에 계약을 터놓은 건 신의 한 수였다.’
그 덕분에 너무나 중요한 정보를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캐치해서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앞뒤 잴 필요도 없었다.
맥키니의 사업가의 감각이 류영준의 배양육에 맞추라고 말했다.
“사업장 가동 상황에 대해서 좀 알려주게.”
맥키니가 말했다.
“일단 벨우드 쪽 농장 셋에서 키우고 있었던 가축들, 총합 소 581마리와, 닭 3,047마리는 모두 티프턴 농장으로 전부 옮겼습니다.”
“그쪽에 축사 하나 신축해서 그쪽으로 옮기기로 한 거였지? 공간은 충분하다던가?”
“네. 자리 남는답니다.”
“다행이군.”
“그리고 벨우드 농장에서는 축사 허물고 콘크리트 바닥 제거한 다음 땅에 코치아를 심었습니다. 원래 유명한 관상식물이라서 정원 샵에서 다 자란 나무로 300 그루만큼 주문했다고 합니다.”
“그거 가능하면 수량 나오는 대로 전부 확보해요. 앞으로 품절난 올 거야.”
“네."
“코치아 잎을 따다가 사업장으로 보내고 있을 테고, 사업장은 전부 교체됐나?”
“잇더그린 대표님이 직접 오셔서 시설 셋업하는 걸 도와주셨습니다. 100 리터짜리 배양기 50대를 설치했고 직원들도 재교육했습니다.”
“어렵진 않고?”
“동물 세포 배양이래서 직원들이 다 겁먹었다고 하던데, 이게 연구용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기법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는 거라서 간단하답니다.”
“직원들이 싫어하진 않았나?”
“솔직히 말하면 농장이나 사업장 인부들은 대환호하는 상황입니다.”
“그럴 만하지. 살아있는 동물 도살하고 배 갈라서 피 묻히면서 내장 추려내는 그런 걸 싸이코패스 아니고서야 좋아서 하겠나. 사회에 필요한 직업이고 돈이 되니까 하는 거지. 근데 배양육은 플라스틱 접시에서 고기 키워내는 거니까 훨씬 마음도 편하고 손도 깨끗하고 좋지.”
“그렇죠. 그리고 재밌다고 하더군요. 농장 인부들도 좋아합니다. 축사 일보다는 코치아 돌보는 게 좀 더 편리하거든요.”
“그리고 그 사람들도 자기가 정 붙이고 키우던 가축들 도살장에 보내면 마음 안 좋아. 나도 옛날에 그 일 해봐서 알아.”
“네."
“이거 우리 류 박사랑 잇더그린한테 지원사격 해줘야 돼. 지금 하고 있는 농장들이랑 사업장 가동 잘 되면 대외 보도자료 돌려서 성공적으로 업종 변경했다고 홍보해야 돼. 그게 그 사람들한테도 예의고 우리한테도 이득이니까. 홍보팀에 그거 준비해달라고 전해줘요.”
“알겠습니다.”
***
공연이 끝나고 나오자마자 류영준은 김철권 경호팀장이 내미는 연락처를 받았다.
류영준이 극장에 있을 때 온 전화였다.
“타냐 맨커라고 합니다.”
“아, 드디어 왔군요.”
류영준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약속을 잡은 다음 그가 생명창조 팀원들에게 말했다.
“오늘 같이 놀기로 했는데 안 되겠네요.”
“미팅하러 가십니까?”
“네. 여러분끼리 재밌게 놀아요. 여기까지 와서 실험하고 미팅하고 고생 많았습니다. 귀국할 때까지 뉴욕 관광 좀 하시고 호텔에서 쉬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갑시다.”
그가 경호팀 차량을 향하는데 뒤에서 박동현이 붙잡았다.
“대표님!”
"네?"
“……카드……."
“아, 카드. 하하. 같이 미팅 가자고 하는 줄 알았네요.”
“흐흐……. 죄송합니다.”
박동현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최고의 상사는 카드 주고 떠나는 상사죠. 저는 이제 갑니다. 맛있는 거 드시고 비싸게 관광 즐기세요.”
류영준이 법인카드를 전해주고 차에 탔다.
“영수증은 다 챙기시고요.”
“넵! 다녀오십쇼!”
류영준이 탄 차량은 12 E 49번째 도로를 향해 이동했다. 다행히 타냐 맨커의 회사 그로 인텔리전스 (Gro Intelligence)는 뉴욕 시에 있었다.
빅 데이터와 인공 지능을 이용한 농축산물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다루는 회사다.
그로 인텔리전스는 농업계의 위키피디아다. 심층분석 엔진을 겸비해서 기후, 작황, 작물의 종류 따위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한다.
“연 3,000불의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최고급 데이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주로 농축산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 다국적 기업이나 정부 등이 고객이고요.”
타냐 맨커가 말했다.
“저도 관심 있어서 그로 인텔리전스에 대해서 좀 찾아본 적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래요? 저희 회사가 그렇게 유명한 곳은 아닌데.”
“TED에서 강연하시는 걸 봤거든요.”
“그랬군요. 그래서 배양육을 하신 건가요?”
“식량 위기에 대한 고민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 강연이 등을 떠밀어주긴 했죠. 마침 폐암을 잡던 도중에 적절한 기술도 발견되었고.”
“그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제가 제약 산업에 있는 건 아니지만 인상 깊었어요.”
타냐 맨커가 말했다.
류영준이 빙긋 웃었다.
“그럼 이제 우리 일 얘기 좀 해볼까요? 절 보자고 하신 이유가 뭡니까?”
“저희 회사가 가진 시스템을 사용해주세요.”
타냐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로 인텔리전스의 시스템을요?”
“네. 대중들은 식량 위기를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시일 내에 들이닥칠 일이에요. 저희 시스템의 예측 프로그램에 의하면 10년 이내에 식량 위기가 옵니다. 하지만 배양육 기술을 잘 쓰면 막을 수 있어요. 그걸 사람들에게 얘기 해주세요.”
“안 믿을 텐데요.”
“하지만……."
“타냐 대표님. 그건 대표님이 얘기해주십쇼.”
“네?”
“식량 위기를 예전부터 쭉 강조해오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이 다시 나설 시점입니다.”
“……. 하지만 전……. 저한텐 류 박사님 같은 인지도와 명성이 없어요. 제가 말해도 사람들 귀에 잘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번엔 될 겁니다. 그리고 저도 그 프로그램 좀 쓰게 해주세요. 인공지능 예측 프로그램에 변수 데이터는 제 맘대로 추가할 수 있죠?”
“네, 가능해요.”
“그럼 열흘 정도만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센스 부탁드립니다.”
류영준은 타냐에게 프로그램을 받았다.
노트북에 설치하고 사용자 등록을 마친 후 그로 인텔리전스를 빠져나왔다.
“대표님!”
류영준을 뒤따라 나온 타냐가 말을 걸었다.
“네."
“저는 다시 식량 위기를 강조하는 강연을 열 거예요. 배양육 기술이 그걸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알리고요.”
“감사합니다.”
“근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제 말을 믿을 거라고 하셨죠?”
“네."
“그건……. 지금 배양육 기술이 떴기 때문인가요? 선진국 시민들의 삶은 너무 풍요로워서 식량 위기란 말이 어색했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이제 논리가 먹힐 거다?”
“그것도 있고……. 네. 맞습니다. 그 때문이죠.”
류영준이 웃으며 케이캅스 경호 차량에 올라탔다.
타냐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탁.
차문을 닫고 류영준은 눈을 슬며시 감았다.
‘로잘린’
-네.
‘그로 인텔리전스를 좀 띄워줄 거야.’
-어떻게요?
‘그로 인텔리전스의 인공지능에 중요한 데이터 몇 개를 변수로 넣어주고 그걸로 식량 작황을 추적해서 점쟁이처럼 맞출 거야.’
-중요한 데이터?
‘나한텐 네가 있으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로잘린, 시뮬레이션 모드 켜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