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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 배양육 (4) > (295/301)

138화.  < 배양육 (4) >

“가시죠.”

류영준이 말했다.

그는 김철권 경호팀장에게 코치아 화분을 넘겼다.

“차에 잠깐 보관해주세요.”

류영준은 청와대 사람들을 따라서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이미 세미나실 하나가 예약되어 있었다.

류영준이 안으로 들어가자 카페 주인이 음료를 내왔다.

그리고 점잖은 인상의 중년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류영준 박사님.”

그가 류영준의 맞은편 소파에 앉으면서 인사했다.

“청와대 비서실장 김준락입니다.”

“안녕하세요.”

“청와대에서 진즉에 류 박사님을 한 번 쯤 만나 뵈었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꽃집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류 박사님이 해외에 나가면 저희 정보원들이 동선을 파악합니다.”

"......."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저는 민간인입니다. 절 사찰했다는 건가요?”

“한국 내에서도 피습을 겪으셨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류 박사님 같은 인재가 해외에서 사고라도 당하면 외교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기 때문에 동선을 파악해두는 것뿐입니다.”

“둘러댈 수도 있었지만 류 박사님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린 겁니다. 부디 좋은 방향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쪽에서 파악하기로는, 사실 류 박사님의 동선을 쫓는 정보원들은 저희만이 아닙니다.”

“더 있다는 겁니까?”

“네.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여러 국가나 대기업의 정보 단체에서 류 박사님을 추적합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배양육 개발 같은 일을 언제 해버리실지 모르잖습니까. 최소한 ‘배양육 벤처 회사인 잇더그린에 찾아갔다’ 정도라도 파악하면 큰 도움이 되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류영준이 말했다.

비서실장 김준락은 커피를 조금 마셨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인 후에 입을 열었다.

“류 박사님. 배양육 기술을 개발하지 마십시오.”

“개발하지 말라고요?”

“네."

“왜요?”

“류 박사님을 위해서입니다. 너무 거대한 상대예요. 전통 축산업 전체에 영향을 주는 연구입니다. 분명히 견제가 들어올 텐데, 그 견제가 어떤 방식일지 몰라도 상당한 수준일 겁니다. 물리적인 위협일 수도 있고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확실히 훌륭한 경호팀을 데리고 다니시는 것 같긴 하군요.”

류영준은 반사적으로 소파 옆에 앉아있는 로잘린을 쳐다보았고, 김준락은 케이캅스 경호팀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류 박사님. 미국처럼 총기가 있는 국가에서는 아무리 경호팀이 뛰어나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되었던 곳이 아닙니까. 류 박사님이 그 정도의 경호를 할 수는 없잖아요.”

김준락이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지지도 문젭니다. 배양육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에게 낯설어요.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겁니다. 그 가운데 축산 기업들이 그 위험성에 대해서 거짓 정보로 조금만 자극을 해주면 순식간에 반대 여론이 조성되는 겁니다. 배양육은 안전성 측면에서 공격할 포인트가 너무 많습니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물어뜯기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류 박사님은 그동안 제약 산업에서 영웅적인 입지를 다졌습니다. 한국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이십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는 그게 아까운 겁니다.”

김준락이 말했다.

“류 박사님이 배양육 산업에 진출했다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하는 얘깁니다. 그 산업은 너무 큰 적이에요. 슈마틱스나 에이젠 같은 대형 제약회사끼리 경쟁하는 거랑 얘기가 다릅니다. 지금에라도 멈추십시오.”

"......."

류영준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비서실장님은 이 기술이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필요하죠. 저 역시 한 국가에서 정책을 짜는 핵심 요직에 있는 사람입니다. 인류의 식량 위기는 목전에 있고, 그리 머지않아 지구촌을 덮칠 겁니다. 하지만 그쯤은 다른 과학자들한테 맡겼으면 좋겠습니다. 류 박사님이 직접 상대하실 필요 없어요. 그걸 진행하기에는 류 박사님은 잃을 게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 비서실장님, 혹시 존 백위드라는 과학자에 대해 아십니까?”

“백위드요?”

“그 사람은 1969년에 대장균에서 유전자를 분리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 세계 정상급 과학자였습니다. 막대한 명예와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던 그 중요한 시기에 그 사람은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이렇게 말했죠.”

“뭐라고요?”

“이 연구는 궁극적으로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달라, 과학자들은 이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스스로 절제할 필요가 있다.”

"......."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유전학 분야에 거장이 직접 찬물을 끼얹어서 당시엔 과학의 배신자 소리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과학자는 그렇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죠. 그때 고려할 것은 그 연구가 인류와 자연계에 어떤 영향을 초래하는지 입니다.”

"......."

“과학자 자신의 명예와 부 같은 건 부차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류 박사님의 목숨까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생물안전 3, 4등급에 해당하는 고위험 실험실에서는 이미 모든 과학자들이 목숨 걸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저는 에이즈 바이러스를 제 몸에 주사한 적도 있습니다.”

"......."

“위험을 겁냈으면 애초에 과학을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배양육은 인류가 반드시 확보해야하는 기술 중 하납니다. 말리셔도 저는 이걸 진행하겠습니다.”

***

잇더그린의 대표 디에고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그만 벤처 회사의 대표가 요청한 기자 회견에 세간의 관심이 그리 많이 쏠릴 리 없지만, 이번에는 예외적이다.

그 기자회견에 류영준이 동참했기 때문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회견이 열리기도 전에 잇더그린의 주가는 30 퍼센트 포인트만큼 폭등했다.

그리고 레드 미트 같은 전통 축산 기업들의 주가는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회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끌어모은 상태에서, 몰려든 수많은 기자들에게 디에고는 햄버거를 돌렸다.

“배양육으로 만들어진 햄버거입니다.”

디에고가 말했다.

“기존에 한 개 생산비가 수백 만 원을 호가하던 것인데, 지금은 인원수만큼 주문해서 50개를 가져왔습니다. 제가 여기에 그만한 돈을 뿌릴 만한 능력이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기자들은 디에고가 벌인 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햄버거는 뜯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이미 태블릿에 기사 내용을 타이핑하고 있었다.

[류영준 박사의 도움으로 잇더그린이 배양육 원가를 대대적으로 절감했다. 이제 상용화를 할 수 있는 수준…….]

디에고는 배양육 합성 과정을 분석한 실험 데이터를 모니터에 띄웠다.

류영준이 먼저 시범을 보여준 실험을 연구실에서 몇 번 재현한 것이다.

“여기 계신 류영준 박사님의 도움을 받아서, 잇더그린은 FBS 대체 물질을 이용하여 배양육의 생산 단가를 절감하고 성장 속도를 폭등시켰습니다.”

디에고가 말했다.

“저희는 각국 정부에 이 기술의 상용화 계획을 보냈습니다. 현재 개발된 배양육은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 조만간 상용화될 예정이고, 이후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추가 연구들을 진행할 겁니다. 10년 이내에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육류의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디에고가 말했다. 모든 발표는 그가 했고 류영준은 옆에 서있기만 했지만 기자들의 관심은 전부 류영준에게 쏠려 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엄청난 사건이 결국 류영준이 저지른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류영준 박사님!”

질문 타임이 오자 기자들이 질문을 퍼부었다.

“10년 이내에 시중의 모든 육류를 대체한다는 게 정말 가능합니까?”

디에고는 기업의 수장 입장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부풀리거나 허세를 부릴 수 있다.

하지만 류영준은 아니다.

그가 여태까지 말한 것 중에서 실현되지 않은 기술은 하나도 없었다.

“가능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렇게 되도록 할 겁니다.”

흥분한 기자들 중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통 축산업계와 크게 부딪힐 텐데 대책은 있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자세히 발표할 겁니다.”

“에이바이오에서 잇더그린을 인수한 겁니까?”

“잇더그린의 지분을 많이 받긴 했습니다. 하지만 경영에 간섭할 생각은 없습니다. 기술 자문으로 역할을 제한하려고 합니다.”

“류 박사님 ……!”

디에고가 민망할 정도로 모든 질문들이 류영준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웹상에는 실시간으로 속보가 쏟아져 나왔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축산품 생산국이다.

미국 내의 여론이 왈칵 뒤집어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세계 곳곳이 벌집 들쑤신 것처럼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확실히 신약을 개발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나 췌장암 치료제 같은 굵직한 신약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는 세상이 환호하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사람들은 환호하기보다 걱정이 앞섰다.

- 와 큰 사고 쳤다…….

- 저게 언젠가 필요한 기술이긴 했지.

- 축산 시장 같은 1차 산업이 뒤집어지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 미국 경제 굿럭.

뉴스를 보던 농축산 업계의 요인들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세계 1위의 축산 가공 기업인 레드 미트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잇더그린의 발표와 거의 동시에 미국 정부로부터 배양육 대체 계획서를 전해 받았다.

“아니, 지금 장난하나?”

레드 미트의 대표 스티븐은 계획서를 구겨서 벽에다 집어 던졌다.

“코치아? 무슨 관상식물 나부랭이를 키워가지고 육류를 대체해? 별 미친 소리를……."

스티븐은 직접 소를 키우던 조그만 농가의 농장주부터 시작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축산 기업을 일구어낸 인물이다.

맥키니와 자주 비교되는 기업가인데, 많은 부분이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맥키니는 세상의 변화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인물이지만, 스티븐은 자신의 잣대에 세상을 맞추는 인물이다.

“다들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가 레드 미트의 임원들에게 물었다.

“이 상황에 대해서 얘기 좀 해보세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정은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고, 미국의 농무부도 마찬가지다.

전통 축산 기업들에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미 그들은 배양육 기술의 개발 초기에 농무부에 규제를 요청했던 적 있다.

‘육류의 정의를 전통적인 축산 방식으로 생산된 것으로 한정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을 농무부는 오랫동안 유보해왔다.

그리고 지금 결론은 배양육의 급성장이다.

류영준의 본국인 한국에서는 이미 농장주들이 집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엔 기구인 식량 농업 기구 (FAO)도 난처한 상황이 됐다.

유엔의 입장은 어떠냐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그들은 본래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WHO 등과 연계하여 빈곤 국가의 기아 해방 캠페인을 벌였다.

어떤 맥락에선 배양육이 인류의 식량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에 바람직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빈곤 국가의 1차 축산업에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 모른다.

“맙소사……."

인공지능에 기반한 세계 식량 데이터 분석 업체인 Gro의 창립자이자 CEO인 타냐 맨커는 뉴스를 보고 경악했다.

그녀가 TED에서 “10년 이내에 식량 위기가 온다.”며 위기의식을 강조한 지 2년이 지났다.

이젠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을 필두로 한 농축산 패권 국가들은 생산품의 가격을 조절하기 위해서 식량을 폐기하고 지구의 절반을 굶긴다.

환경은 극도로 파괴되었고, 인도, 중국, 아프리카 등의 저개발 국가들의 토지 상당수가 도시화되었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경작 가능한 토지는 날카롭게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식량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상황이 심각하고, 그걸 FAO를 비롯한 여러 식량 기구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패권 국가들은 ‘굶주림’의 당사자가 아니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추세면 인류는 2027년까지 214조 킬로칼로리 (kcal) 만큼의 에너지가 결핍된다.

식량 위기는 그 어떤 질병보다 거대한 재앙이 되어서 빈곤 국가들부터 짓이겨버릴 게 분명했다.

"......."

하지만 이제 해결책이 생겼다.

“류영준 박사. 이 사람한테 연락 좀 해봐요. 지금 전화 다 불통 나서 연락하기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타냐 맨커가 신문을 들고 나와서 직원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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