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 배양육 (3) >
류영준이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에서 모든 특허를 무상으로 배포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을 때, 미국 대통령 캠벨은 긍정적이었다.
이 정도면 별로 회의를 길게 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뒤에 스케줄도 몇 개 잡아두었다.
그리고 류영준을 만나고 나서 10분 만에 모두 취소했다.
“류 대표님. 잠깐만 침착하시고요……. 우리 이 문제를 천천히 생각해봅시다.”
캠벨이 쩔쩔매며 말했다.
“이건 류 대표님이 그동안 만들었던 신약들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신약 개발은 같은 업종 안에서 다른 회사들과 경쟁하는 거지만, 배양육은 업종을 통째로 뒤집어엎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식량 위기나 환경 문제 때문에 저 역시 정치인의 입장에서 배양육에 대해서는 꽤 잘 압니다. 원래 그 기술은 하루아침에 전통 축산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에요. 장시간에 걸쳐서 전통 축산과 경쟁하다가 서서히 배양육 쪽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그렇겠죠.”
“근데 지금 류 대표님이 말씀하신 것들은 단기간에 실현 가능한 일인 것 같은데요.”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하고 싶으신가요?”
“바로 진행하시면 엄청난 실직난이 일어날 겁니다. 1차 산업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산업들이 많아서예요.”
캠벨이 말했다.
“예를 들어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류 대표님의 에이젠도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제약사들이 생산하는 항생제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산업 중 하나가 축산업이에요. 가축들에게 먹여야 하니까 말입니다. 육류를 유통하는 유통 업체들, 폐기물들을 처리하는 업체들, 심지어는 가축을 육종하는 연구개발 산업……. 젠장, 이 연구개발 산업만 해도 연간 6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갖고 있어요. 배양육이 업종을 다 뒤엎어버리면 그 시장이 통째 증발하는 겁니다. 가축을 육종 개량할 필요가 없잖아요.”
“뭐, 그 사람들이야 연구 분야만 바꾸면 되니까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으로 실직한다든가 하는 큰 타격은 안 입겠죠.”
“그게……. 그야 그런데, 가축을 키우는 농장주들이 가장 큰 문제 아닙니까. 그 사람들 생존권 보장하라고 들고 일어나면 골치 아파요.”
캠벨이 말했다.
“배양육이 나와도 전통 축산은 여전히 이어질 겁니다. 이북이 개발될 때도 종이책이 없어질 거라고 출판사들이 난리 쳤지만 여전히 건재하지 않습니까. 아트북 같은 쪽으로 발전하면서 공존하고 있죠.”
“양식이 발달하면 자연산 찾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처럼 전통 축산이 프리미엄화 될 것이다?”
“네."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지금 있는 목장들이 전부 프리미엄을 붙여서 살아남지는 못해요. 그들에겐 두 번째 선택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통령님께 지금 얘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배양육 산업은 새로운 일자리도 엄청나게 생산할 겁니다. 농장주들이 그쪽으로 업종을 변경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업종 변경?”
캠벨이 고개를 갸웃했다.
“류 대표님. 축산업 같은 1차 산업에서 업종 변경이라는 게, 식당 문 닫고 인테리어만 술집으로 바꿔서 다시 오픈하는 거랑 다릅니다. 농장주들이 가축들을 처분하고 나서 그 가축들 남는 시골 땅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농사를 짓게 해요.”
“농사! 말도 안 됩니다. 농업은 이미 포화예요. 경비행기로 농약 뿌리는 기존 농부들 상대로 그 사람들이 손바닥만 한 축사 땅으로 어떻게 경쟁을 합니까.”
“기존의 농업이랑 좀 다를 겁니다. 배양육의 기반 물질을 생산하는 겁니다.”
“네?”
“기존 배양육 개발자들은 배양육이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걸 최고 장점으로 내세우잖아요? 채식주의자들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네."
“근데 사실 배양육 개발자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배양육의 동물권 보호의 한계예요.”
“한계요?”
“동물 세포를 인위적으로 배양한다면 그 세포를 어디다 담아서 배양할 것 같으세요?”
“뭐, 영양분이 풍부한 용액 같은 것……?”
“맞습니다. 그 ‘영양분’이라는 건 생물체의 체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종류의 성장 인자와 비타민, 아미노산, 당류, 호르몬 따위를 모두 포함하는 것들입니다. 어느 정도는 인공적으로 맞춰줄 수 있지만 결국 한계가 생기죠. 그럼 어떻게 하느냐. 지금 동물세포 배양은 FBS를 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FBS?”
“페탈 보바인 세럼 (Fetal Bovine Serum, FBS)이라는 겁니다. 적절히 처리된 소 혈청을 말하는 것인데, 소 피를 뽑은 다음 거기서 혈구들을 가라앉히고 혈장에 간단한 처리를 해서 쓰는 거예요. 소의 혈액 내에 있는 여러 ‘영양소’를 동물 세포 배양에 이용하는 거죠.”
“아……."
“배양육도 마찬가집니다. 배양육은 FBS를 써요. 소의 피를 소비한다는 겁니다. 결국 도살하는 대신 피를 뽑는 걸로 동물권을 타협하는 것이죠. 예민한 채식주의자들이 그 사실을 알면 아마 배양육도 안 먹겠다고 거부할 겁니다. 소 혈액을 착취해서 만든 거니까요.”
“그럴 수 있겠군요.”
“그리고 그 FBS의 가격이 막대합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소의 혈액 세포를 모두 제거하는 과정과, 그게 남아있지 않은지 퀄리티를 체크하는 과정 등이 필요하니까요. 숙련된 과학자가 필요하고 원심분리기 같은 비싼 장비도 필요해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 FBS를 쓰기 때문에 배양육이 비싼 겁니다. 햄버거 패티 한 장 만드는 데 수백 만원이 드는 이유는 FBS의 값 때문이에요."
“흐음……."
캠벨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류 대표님이 배양육의 단가를 막대하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하신 걸 보면, 그 FBS를 대체할 수 있는 걸 찾아내신 겁니까?”
“맞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게 식물입니까?”
“정확합니다. 본래 식물은 동물과 구조가 완전히 달라서 호르몬이나 성장 인자들이 호환되지 않지만, 몇 가지 간단한 처리로 배양육을 키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식물 종을 찾아냈습니다.”
캠벨은 요점을 날카롭게 캐치했다.
“알았습니다. 류 대표님. 배양육 산업이 메인이 되면 그 식물 종을 대량으로 키워야 할 거다, 이 얘기를 하시려는 거죠? 정부 차원에서 기존의 축산 농장주들에게 그쪽으로 업종을 변경하도록 지원해주라는 것이죠?”
“맞습니다.”
“기존 축산 농장의 인부들을 배양육 제작 산업에 추가시키는 것이군요. 그들이 갖고 있는 축산용 토지를 그대로 이용해서.”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혹시 류 대표님, 배양육 기술의 상용화를 조금 천천히 순차적으로 해줄 수는 없겠습니까?”
“어떻게요?”
“류 대표님이 가진 기술을 한 번에 풀지 말고 5년에서 10년에 걸쳐서 천천히 공급하는 겁니다. 배양육과 전통 축산육이 공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음.”
“…….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기존 농가들에게 가는 피해를 줄여야 하니까요.”
“감사합니다.”
캠벨이 안도하며 말했다.
“류 대표님. 노파심에 말씀드리는 건데, 혹시 이 기술이 기존 축산 농가들의 변혁을 일으켜서 그 사람들이 실직한다고 하더라도 죄책감 갖지 마십시오.”
"......."
“배양육은 단순히 채식주의자들의 까다로운 입맛 때문에 요구되는 기술이 아닙니다.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위기와 환경 문제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와있어요. 지금 류 대표님이 이걸 시작하지 않으면 오히려 너무 늦을 겁니다. 이 진보는 바람직한 겁니다.”
캠벨이 말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사람들의 직업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잡음을 최소화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고요. FBS인지 뭔지를 대체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일자리를 알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제게 맡기십쇼.”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미국 정부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부들에게도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직접 진행하기 어려우시면 제가 대신해드릴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주세요.”
“좋습니다.”
캠벨은 환하게 웃으면서 류영준과 악수를 나눴다.
***
“오케이, 콜.”
티케이슨 푸드의 맥키니가 흔쾌히 말했다.
“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류 대표님. 그 식물의 이름이 뭡니까? 당장 사다 쓰겠습니다. 지금 있는 가축들 점차적으로 줄이면서 축사 정리하고 거기다 식물 키우면 되는 거 아닙니까?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데요. 도축하고 가공하는 사업장들에서는 플랫폼 바꿔서 배양육을 키우고 박테리아인지 뭐 감염 조사하고 그런 쪽으로 셋업하면 되는 거고요? 그렇죠?”
“맞습니다. 딱 그렇게만 되면 좋겠네요.”
“티케이슨 푸드는 그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일부 농장들과 사업장만 살려서 전통 축산육 프리미엄 붙여서 팔고. 방향이 딱 잡히네요. 정부에서 지원은 얼마나 해준다고 하던가요?”
“그건 캠벨 대통령이 예산을 짜서 별도로 정책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좋아요. 그 정도면 안심입니다. 기술도 한 번에 다 안 푸시고 몇 년 동안 천천히 해주신다니 꿀이네요.”
맥키니가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류 대표님. 저는 그 기술이 언젠가 축산업계 전반을 뒤집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지금처럼 류 대표님과 정부의 협력 아래 계획적으로 진행하는 게 훨씬 낫다고 봅니다. 저는 시장주의자지만, 이런 기반 기술은 시장에 맡겨두면 탈이 생기는 법이에요. 기업들이 서로 견제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난리 나거든요.”
“그럴 수 있죠.”
“아마 이번에도 류 대표님이 발표하시면,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 축산을 유지하려고 견제를 시도하는 축산 기업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레드 미트 같은 기업들. 우리 경쟁사인데 그놈들 정치 장난 아니에요. 조심하십쇼.”
“저……. 저기. 류 대표님.”
디에고가 끼어들었다.
“근데 죄송하지만 그 정도로 막강한 기술이 있다면 왜 직접 하지 않으시고 저희한테 가져오신 건가요?”
“제가 관리하고 싶지 않아서요.”
류영준이 담담히 답했다.
“관리하고 싶지 않다고요?”
“이 산업은 돈은 많이 되겠죠. 하지만 저는 신약 개발을 하는 것도 벅찹니다.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와 에이바이오와 에이젠을 운영하는 것 외에 다른 데 에너지를 분산하고 싶지 않아요.”
“……. 알겠습니다. 근데 이만한 기술을 투자하시면 보통은 회사 지분을 가져가게 됩니다. 저희는 벤처라서 돈으로는 그 기술 값을 치를 자신이 없고요.”
“그럼 에이바이오 명의로 지분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경영에 참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스프링필드 교외의 한 꽃집.
플로리스트 라일라는 특이한 손님을 만났다.
마스크를 쓴 동양인 남자였는데, 덩치 좋은 경호원 넷과 함께 들어왔다.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 식물 이름이 뭐랬지?’
-코치아입니다. 저기 있네요.
로잘린이 답했다.
‘어디?’
-여기요.
류영준의 몸에서 튀어나온 로잘린이 류영준을 코치아 앞으로 안내했다.
1미터 정도 키의 관상용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보통 정원을 꾸밀 때 많이 쓰인다.
-이 잎을 모아서 그라인더로 갈고 95도에서 한 번 끓인 다음 상온에서 하루 동안 숙성시키면 됩니다. 식물 세포막이 터지면서 제한 효소들이 녹말을 분해해서 대량의 EGF (Epidermal Growth Factor)를 만들 거예요.
로잘린이 말했다.
-그대로 물에 희석에서 배양육 줄기세포가 담긴 용기에 부으면 끝입니다. EGFR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이 자극되면서 빠른 속도로 증식할 겁니다.
“암세포의 하이퍼프로그레션 때처럼 EGFR이 돌연변이가 아니어도 상관없나?”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줄기세포부터 근섬유를 대량 분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분화 과정에 있는 세포들은 EGFR 발현 빈도가 높거든요. EGFR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성장 인자 (EGF)를 대량으로 넣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코치아 잎에 그게 많이 있고요.
“좋아.”
류영준은 화분에 담긴 1미터 키의 코치아를 화분 째로 집어 들었다.
“이거 얼마죠?”
그가 물었다.
“200달러입니다. 실내에서 키우실 건가요?”
“뭐, 네. 그렇습니다.”
꽃집 주인 라일라가 계산을 해주면서 물었다.
“근데 저쪽에 있는 남자 분들은 일행인가요?”
“남자?”
류영준이 라일라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장을 입은 남자 셋이 가게 입구 근처에서 류영준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가자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에이바이오 류영준 대표님 되시죠?”
“맞습니다.”
“저희는 청와대에서 왔습니다.”
“청와대에서요?”
“네. 백악관에서 보낸 축산업 관련 공문 때문에요. 잠깐 얘기 좀 하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