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 배양육 (2) >
“잇더그린 연구원이시죠?”
류영준이 물었다.
“네에, 맞습니다……."
프레데릭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에이바이오는 오늘 잇더그린에 투자할 생각으로 왔습니다. 1선 연구자 입장에서 어떠신가요? 실험은 잘 되어가나요?”
"......."
프레데릭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잇더그린의 대표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투자를 유치하기 전에는 누구든지 성과를 강조하고 실패는 숨기려 애쓰게 마련이다.
하지만 프레데릭은 류영준에게는 어떤 정보든 가감 없이 전달하고 싶었다.
그건 이 분야 최고의 과학자에 대한 예의다.
“사실 효율이 안 좋습니다……."
말단 연구자인 프레데릭에겐 이런 말을 할 권리가 없었지만 그는 용기 내어 입을 뗐다.
“그래요?”
“네. 소를 키워서 고기를 얻는 게 훨씬 생산량이 좋아요. 어쩌면 원래 그런 것일지도……. 인공적인 육류 배양이라는 게 너무 비효율적인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리가요.”
류영준이 고개를 저었다.
“네?”
“소를 키워서 소고기를 얻을 때는 불필요한 데에 에너지를 많이 쓰잖습니까. 우리가 소 눈알이나 털, 발톱을 먹지는 않으니까요.”
“…….네?”
“가축이 육류를 생산할 때는 우리에게 필요 없는 폐기물도 동시에 생산합니다. 거기에 에너지가 낭비되죠. 하지만 배양육은 그런 폐기물들을 생산하지 않고 모든 자원을 그대로 육류 생산에만 쓰잖아요? 당연히 배양육이 가축을 키우는 것보다 고기 생산에 더 효율적이죠."
"......."
프레데릭은 황당해서 말을 잃었다.
“아니……. 그야 이론적으로는 그렇죠.”
순간이동을 하면 비행기 타는 것보다 훨씬 빠른데 당연히 순간이동이 비행기보다 더 효율적인 기술 아니냐고 묻는 느낌이다.
“방법론은 제대로 된 게 맞습니다. 비효율적인 것은 ‘기술력’ 오직 그것 하나뿐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저는 그걸 해결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대표님은 어디 계신가요?”
***
잇더그린의 창립자 디에고 로페스는 멕시코의 한 시골에서 자랐다.
그는 열한 살 무렵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는데, 마을 밖에서 들어온 닭장수가 트럭에서 닭을 잡는 광경이었다.
닭장수는 트럭 짐칸의 철제 우리에서 닭 한 마리의 모가지를 붙잡고 꺼내들었다.
닭은 ‘꾹, 꾹!’ 소릴 내면서 두 다리를 버둥거렸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디에고는 그 상황을 재미있어했다.
닭장수가 닭을 잡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과정을 보지 못했던 그는 얼마나 잔인한 모습이 펼쳐질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푹!
눈 깜짝할 새에 닭장수의 식칼이 닭의 배를 가르고 안으로 쑥 들어갔다.
“꾸르륵……."
닭 모가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쉴 새 없이 흔들리던 두 다리가 굳었다.
닭장수는 그걸 바로 옆에 있는 펄펄 끓는 솥에 던져 넣었다.
어린 디에고는 돌담길에서 독사를 만났을 때처럼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닭장수는 집게로 닭을 꺼내어 털을 뽑고 내장을 정리해서 디에고의 할머니에게 팔았다.
그날 디에고는 저녁 식탁에 올라온 치킨 몰레를 한 입도 먹지 못했다.
그는 그로부터 몇 주 후에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동물에겐 살 권리가 있다.’ 같은 뚜렷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닭을 잡던 장면이 머릿속에 트라우마로 깊이 자리를 잡아버렸던 것이다.
디에고는 치즈, 우유 등의 유제품과 옥수수, 콩 같은 곡류를 통해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다른 채식주의자들처럼 비타민 B12의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비타민 B12는 DNA의 복제와 세포 분열, 혈액 생성 등에 쓰이는 중요한 영양소다.
그리고 채식으로는 흡수할 방법이 거의 없다.
발효 식품이나 해조류 등의 식물성식품에도 비타민 B12가 함유되어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지만 체내 흡수율이 낮다.
비타민 B12를 섭취하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은 붉은 살코기를 먹는 것.
그게 안 된다면 최소한 어패류 이상의 동물을 먹어야 한다.
디에고에게 그것은 마치 인간의 숙명처럼 느껴졌다.
‘인간이란 동물은 다른 동물의 목숨을 빼앗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
디에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식주의자 모임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상당수 이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을 알았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동물에게 고통을 초래하지 않고 동물의 살을 먹는 것.
완전히 모순된 욕망이다.
육식을 거부하는 게 유별 떠는 짓이란 건 알고 있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답답한 멍청이의 쓸데없는 불평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예민하고 답답하게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는 그리 적지 않다.
실제로 채식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감성이 풍부한 사춘기 때 한 번 쯤은 이 갈림길에 서봤을 것이다.
동물에 대한 연민을 택하는 길과, 육식의 즐거움과 건강을 택하는 길.
“저는 채식을 선택했지만, 반대편 길을 비난하진 않습니다.”
디에고가 말했다.
“그럴 순 없죠. 뭐든 자기 선택이니까요.”
류영준이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요, 류 박사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거예요.”
둘로 갈라진 갈림길 사이에 다른 길은 없는 것 같았다.
샤일록이 피를 흘리지 않고 1파운드의 살을 베어가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동물을 해치지 않고 고기를 가져갈 방법은 없다.
그 둘은 양립할 수 없는 상반된 길이다.
“하지만 과학은 없는 길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과학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기존에는 상상도 못했던 생억지도 현실로 만들어준다는 거죠. 예를 들어서……."
“예를 들어서?”
“달에 가고 싶다거나.”
디에고가 말했다.
“류 대표님. 우주 개척 시대가 열리기 전에 그 욕망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는지 생각해보세요.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었죠. 하지만 우린 달에 갔습니다. 그것처럼,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육식을 하고 싶다는 미친 소리도 과학은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채식주의자 모임에서 만난 미국인 아내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배양육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랬군요.”
“네. 그리고 저희한테 투자를 하러 오셨으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저희는 배양육 기술에 있어서 세계 최정상에 있습니다.”
디에고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가요?”
“15년 전의 기술에 비해서 300 배만큼 생산 가격을 하락시켰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는 류 대표님이 만드신 역분화 줄기세포 기술이 엄청난 역할을 해주긴 했습니다. 하하, 저희 회사에서 에이젠과 에이바이오로 넘어가는 로열티 이용료 꽤 많아요. 우리는 이전부터 이미 사업 파트너였던 셈이죠.”
“저도 잇더그린의 이름을 여러 보고서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억나네요.”
“그래요? 에이바이오에는 신약 파이프라인들이 많아서 푼돈이었을 텐데, 기억해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아무튼 저희는 류 대표님한테 여러모로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디에고가 말했다.
“그래서 오늘 미팅도 잡은 겁니다. 사실 저희는 현재 재정이 모자라지는 않고, 외부에서 더 들어오는 투자는 계속 거부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류 대표님하고는 같이 일할 생각이 있습니다. 저희에게 얼마나 펀딩하실 생각이십니까?”
“돈이 충분하다 하시니 돈을 투자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기술을 투자하려고 왔습니다.”
"......."
디에고가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방금 전에 ‘잇더그린은 배양육 시장 세계 최고’라고 얘기하지 않았던가?
‘우리 회사에 기술을 투자한다고?’
이미 역분화 줄기세포 기술은 가져다 쓰고 있다.
그리고 에이바이오가 배양육을 한다는 얘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대체 무슨 기술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디에고가 물었다.
“당연히 배양육 기술이죠. 지금 햄버거 패티 한 장 분량의 육류를 생산하는 데 3천 달러 정도 들죠?”
“그렇습니다.”
“그걸 3달러 근처로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3달러!”
옆에서 대화를 듣던 맥키니가 비명을 질렀다.
“3달러를 어떻게……. 3달러……. 아니 3달러라고요?”
그동안 배양육은 미래 기술로써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전부였다.
햄버거 패티 한 장에 3천 달러라는 것은, 햄버거 하나가 3백만 원에 팔린다는 뜻이다. 중간 유통의 부가가치 등을 포함하면 가격이 더오른다.
때문에 배양육에 대한 평가는 ‘신기하다’, ‘잘 되면 좋겠다’ 정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3달러가 되면 당장 그걸로 빅맥을 만들 수 있다.
여전히 기존 육류보단 비싸긴 하지만, 배양육은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으니 한 번 부딪혀볼만한 가격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이다.
‘상용화가 가능하다.’
잇더그린은 기술 특허를 파먹는 벤처 회사에서 ‘제품’을 확보한 중견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투자할 기술들은 더 있습니다. 지금 생산하는 육류들. 근섬유만 빡빡하게 채우는 거죠?”
얼어붙은 디에고에게 류영준이 물었다.
“……맞습니다.”
“식감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근섬유만 100 퍼센트인 고기니까 질기다는 평이 많아요. 굳은 스팸 씹는 느낌입니다.”
“그게 아마 배양육 기술이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겁니다. 식감이 떨어진다는 것. 그 이유는 실제 근육은 근섬유로만 구성돼있지 않아서입니다. 근섬유 다발을 묶은 근속 (Fascicle)이 있고, 그것들을 근주막 (Perimysium)과 근외막 (epimysium)이 차례로 싸고 있는 형태죠. 이 안에는 혈관도 들어있고, 혈액에는 수많은 종의 세포들이 포함돼 있으며 적혈구가 가진 햄 (heme)은 피맛을 내는 핵심 성분이 됩니다. 근외막 안에는 당연히 수분도 상당량 들어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지방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블링이라고 하는 게 더 익숙하려나요? 그리고 신경 줄기도 포함시켜야 하죠. 그들 모두의 비율을 절묘하게 조절하면서 모든 성분이 포함된 조직으로 섬세하게 제작하는 건 앞으로도 쉽지 않으실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가축에서 얻어지는 ‘고기’는 모든 종류의 토핑이 다 추가된 샌드위치 같은 것이다. 식빵 하나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봤자 샌드위치가 되진 않는다.
그것들을 모두 포함한 조직을 배양하는 게 배양육의 최대 과제다.
“게다가 근육을 만든다고 그게 끝도 아니에요. 뼈에 붙은 근육이 수만 번 움직이고 당겨지고 파괴되고 재생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육질’이라는 것을 인공육이 따라잡는 것도 어려우실 겁니다. 지금 배양육 시장의 발전 속도로는 아마 전통적인 축산을 품질 측면에서 넘어서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겠죠.”
"......."
테이블에 침묵이 흘렀다.
디에고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희는 그 단계까지는 꿈도 꿔본 적 없습니다. 설마 지금 그게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저희는 배양육을 만들지는 않지만, 의학적인 목적의 오가노이드 제작에 있어서 세계 최고입니다. 여기 그 기술의 개발자들이 있고요.”
류영준이 생명창조 팀원들을 소개했다.
천지명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조직의 동시 배양 역시 저희는 이미 성공한 적 있습니다. 저희가 근섬유와 함께 지방 세포를 동시 배양 (Co-culture)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근섬유 사이의 틈과 체강에 수분이 머금어지도록 하는 배양법도 알려드리죠. 아까 말했던 것들 전부 이론적으로는 달성 가능합니다.”
“자, 잠깐만요.”
맥키니가 끼어들었다.
그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동안 배양육에 투자해온 것은 맞지만 이 정도로 갑자기 일이 진척돼도 되는 건가?
“그게 설마 하루아침에 다 만들어지는 겁니까? 그럼 저희 회사는 망합니다.”
티케이슨 푸드는 전통적인 축산 기업이다.
인수한 농가들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거기서 얻은 가축을 도살하고 가공해서 수많은 음식점이나 정육점에 납품하고 있다.
배양육은 당연히 도살 과정이 필요 없고 가공할 필요도 거의 없다.
지금은 햄버거 하나에 3천 달러 수준이니 천천히 기술을 키우면서 적응할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던 건데, 하루아침에 3달러?
“류 대표님. 그거 축산업 종사자들 전부 다 굶어죽을 기술입니다. 기존에 제약하고는 좀 달라요……. 사람들 자살하고 난리 날 거예요.”
맥키니가 말했다.
“양식에 성공하면 자연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이 기술도 전통 축산을 프리미엄화하는 결과를 낳을 겁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하지만 맥키니 대표님 말씀처럼 갑자기 이만한 기술이 시장에 뚝 떨어지면 혼란이 크겠죠.”
“……. 그럼요?”
“저는 여기 오기 전에 캠벨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대통령이요?”
디에고가 깜짝 놀라 물었다.
“네. 미국은 세계 1위 쇠고기 생산 국가입니다. 전체 생산량의 20 퍼센트가 미국에서 나오죠.”
“그 중 상당수는 저희 회사에서 나오고요.”
맥키니가 고통스러운 듯 말했다.
류영준은 빙긋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기술은 일자리를 없애기도 하지만 만들기도 합니다. 이건 세계 각국 정부의 협력이 동반되는 거대한 계획 경제 프로젝트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