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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 배양육 (1) > (292/301)

135화.  < 배양육 (1) >

메릴랜드에서 lnterstate-70 도로를 타고 약 18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아칸소 주의 도시 스프링데일.

이곳에는 거대 축산 기업인 ‘티케이슨 푸드’가 있다.

티케이슨 푸드는 처음엔 육류 가공 기업으로 시작했지만 수천 개의 축산 농가를 직접 인수해서 지금은 가축도 직접 키운다.

브라질의 레드미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축산 기업이다. 또한 미국 최대의 쇠고기 수출 기업이기도 하다.

티케이슨 푸드의 대표는 맥키니.

이 업계에서 전설적인 남자다.

그렇게 유명해진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 뛰어난 사업 수완과 비즈니스 감각이다.

그는 류영준이 진단 키트를 개발하자마자 한국으로 달려가서 류영준에게 동물 질병 진단 키트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인물이다.

그 덕분에 류영준과 가장 빨리 계약해서 동물 질병 진단 키트를 티케이슨에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그 정도로 맥키니의 비즈니스 감각은 예리하고 신속하고 정확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가 강력한 동물권 보호론자라는 것이다. 가축들을 도살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동물권을 주장하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그 틈을 깊이 파고들었다.

공장식 축산 농가에서 고통 받는 동물들의 권익을 위한 중재자.

맥키니가 대중에게 설득시킨 자신의 이미지다.

사람들은 고기를 먹고 싶어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잔인하게 도살되는 동물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어쩔 수 없는’ 비극에 대해 맥키니는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수많은 축산 농가들을 인수한 다음, 기존의 공장식 시스템을 복지 시스템으로 변경했다.

가축들은 상대적으로 더 넓은 공간에서 초지를 밟고 다녔고 깨끗한 사료를 먹었다.

도살 직전까지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고, 가장 신속한 방법으로 도살해서 고통을 최소화한 육류.

티케이슨 푸드는 동물 복지로 명성을 쌓아가면서 그 브랜드 가치를 확실히 했다.

도덕적으로 예민한 소비자들에게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준 것이다.

맥키니가 유명해진 세 번째 이유는 췌장암 말기에서 살아 돌아와서다.

지금에는 췌장암 치료제 버나젠이 상용화되어서 그런 사람들이 꽤 많지만, 맥키니 때만 해도 거의 전무했다.

맥키니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경영 1선에서 물러났다가, 에이바이오에서 진행하는 임상시험을 받고 복귀했다.

사망률이 100 퍼센트에 육박하던 췌장암을 치료하고 다시 대표 의자에 앉아버린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맥키니는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맥키니의 복귀에 감탄했고 박수를 보냈다.

“웨스트코프 축사에서 돼지 열병이 나왔다고?”

맥키니가 물었다.

맥키니는 3분기 실적 보고를 듣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데 일단 진단 키트에서 질병 신호가 나왔으니까요. 일단 한 마리뿐이랍니다. 나머지 가축들한테는 안 나왔대요.”

가맹 농가 관리 담당자가 말했다.

“좋아요. 뭐가 진단되든 일단 나오면 바로 격리합시다. 진단 키트 가격도 저렴하니까 가능하면 주 1회 이상 가축들 진단하고.”

맥키니가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데 진단 키트에서 돼지 열병 신호가 나왔다?

그럼 진단 키트가 맞을 것이다.

잠복기 상태겠지. 좀 있으면 발병할 거다.

돼지열병은 치료법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감염된 가축은 높은 확률로 폐사된다.

그리고 전염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잠복기에 퍼져나가면 농가 하나가 통째로 문 닫게 된다.

‘진짜 키트 사길 잘 했지.’

맥키니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단 키트 덕분에 위기를 벌써 두 번이나 넘겼다.

처음 키트를 공급했을 때 미주리에서 소아까바네병이 발견됐다. 조금만 발견이 늦었으면 미주리 농가 셋이 작살날 뻔했다.

그리고 약 한 달 전에 뉴멕시코의 농가들 중 한 군데에서 닭전염성에프낭병이 검출됐다.

수백 마리를 폐사하고 농가 문을 닫을 뻔했던 문제를 소 다섯 마리, 닭 두 마리를 폐사시키는 걸로 끝났다.

“경제적인 손실도 손실이지만, 가축 폐사는 너무 잔혹한 일이에요. 감염이 확산되는 걸 막는 게 최우선이니까, 일단 질병 키트에 잡히면 앞뒤 가리지 말고 격리합시다.”

맥키니가 말했다.

그는 폐사 현장을 여러 번 가보아서 잘 알고 있다.

거의 생지옥이다.

닭들을 질식시킨 다음 돌아가는 분쇄기에 던져 넣는데, 살아있는 놈들이 꽤 많아서 문제다.

산채로 다리와 척추가 꺾여 부러지고 장기가 터져서 찌그러지는 닭들은 비명도 길게 못 낸다.

사방에 튀는 피와, 몸에 배어버린 피비린내는 웬만큼 건강한 사람이라도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다.

“대규모 가축 살처분 같은 거, 우리 회사 이미지랑 안 맞잖아요. 최대한 막아냅시다. 그리고 그걸 우리 회사 이미지로 계속 홍보해요.”

맥키니가 말했다.

“근데 대표님 오늘 누구 만난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농가 관리 담당자가 물었다.

“맞아요. 오후 세 시 20분쯤에는 나가야 합니다.”

“지금 25분인데요.”

“앗!"

맥키니는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 일어났다.

“비켜요 비켜!”

그는 황급히 외투를 걸치면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중요한 손님이라 늦으면 안 됩니다!”

***

류영준은 오후 세 시 반에 스프링필드의 티케이슨 푸드 본사에 도착했다.

미팅룸에는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티케이슨 푸드의 대표 맥키니가 류영준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류영준이 인사했다.

“이번엔 미국에서 뵙는군요.”

“반갑습니다.”

류영준은 자리에 앉았다.

“근데 맥키니 대표님 더우신가요? 땀을 흘리시네요.”

“하하, 아닙니다.”

맥키니가 웃으면서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제가 오늘 뵙자고 한 것은 배양육 산업 때문입니다.”

류영준이 바로 용건을 꺼냈다.

“배양육 산업이요?”

“네. 맥키니 대표님은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축산업계 거대 기업을 운영하고 계시고, 동시에 강력한 동물권 보호론자이십니다. 제가 개발할 기술을 가장 바람직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되어서요.”

“배양육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신 겁니까?”

“솔직히 말하면 아직 이론적인 수준이라 실험 데이터는 없습니다. 근데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거든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미국에 있을 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온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흠.”

맥키니는 팔짱을 끼면서 잠깐 생각에 잠겼다.

류영준이 말했다.

“물론 전통적인 축산업을 하고 계신 대표님 입장에서는 배양육이란 기술을 지원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 압니다. 하지만, 티케이슨 푸드의 대표이사가 아니라 한 명의 동물권 보호론자로서 생각해주세요. 배양육이란 기술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가축과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환경을 보호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사람의 목숨도 배양육이 구할 수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지금은 식량이 충만합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분배의 문제 때문이죠. 하지만 미래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뜻이었군요. 동의합니다.”

맥키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류 박사님. 저는 축산업을 중점으로 하지만, 농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꽤 많습니다. 지속되는 지구온난화와 토지 파괴로 인해서 식량 위기가 서서히 올라올 거라는 전망은 예전부터 아주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디더라……. 그 유엔의 기후변화 협의체……."

“IPCC.”

“그렇죠. 류 박사님은 역시 아시는군요. IPCC에서 예측한 걸 저번에 봤는데, 2020년대까지는 식량 생산량의 증가와 감소가 비슷하다가, 2030년부터 7대 3으로 감소 쪽이 급격히 커진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2030년 기점으로는 연간 식량 총 생산량이 점점 줄어든다는 뜻이죠. 인구는 증가하는데 말입니다. 분배 방법을 바꾸는 걸로 얼마간은 방어하겠지만 결국 시간문제입니다.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쌀이나 밀의 생산량은 평균 10 퍼센트 떨어지고 품질도 30퍼센트나 떨어져요.”

류영준이 말했다.

맥키니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류 박사님의 포인트를 알겠습니다. 현재 지구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거의 절반은 ‘가축’이 먹어치웁니다. 가축 사료로 쓰이죠. 즉, 가축을 키우기 위한 목초지와 가축에게 먹이기 위한 옥수수를 키우는 농경지를 모두 곡물 생산지로 바꾸면 식량 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수 있다, 이게 요점이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구한다고 하시는 거군요.”

“네."

류영준과 맥키니가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면서 천지명 수석은 속으로 웃었다.

류영준이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맥키니를 만나러 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류영준과 비슷한 사람이다.

똑똑하고 올곧다.

‘둘이 정말 쿵짝이 잘 맞는군.’

류영준이 맥키니에게 말했다.

“그리고 환경 문제도 중요합니다. 젖소 한 마리가 배출하는 메탄가스를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자동차 한 대 수준이에요. 도살 후 가공 과정의 폐기물들을 처리하는 것도 문제고요. 그 가축들을 먹이는 데도 엄청난 경작이 필요하니 토지 파괴가 심하고요.”

맥키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류 박사님.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발표한 자료를 봤는데, 온실 가스 전체의 15 퍼센트가 육류 산업에서 나온다더군요.”

“네. 그럼 배양육 기술에 투자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는 맥키니 대표님이 거절하신다면 배양육 기술을 다른 회사로 가져가겠습니다. 기존의 축산업계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에이바이오에서 직접 할 생각이고요.”

맥키니는 빙그레 웃었다.

“류 박사님. 저희는 이미 배양육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정말요?”

“네. 실리콘밸리에 배양육을 만드는 벤처 회사가 있어요. 배양육이란 업계 자체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회사들이 거의 없지만, 그 회사가 그 중에서 젤 유명하고 큰 뎁니다.”

“어딘가요?”

“잇더그린 (Eat The Green)이라는 곳입니다. 직원은 60명 정도 있는 열정적인 벤처예요. 저희가 재작년에 200억을 투자해서 키우고 있죠.”

“SI인가요?”

SI란 Strategic Investment의 약자로, 거대 기업이 다른 벤처 기업에게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캐피탈이 돈을 지원하는 금융 투자 (Finantial Investment, FI)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거대 기업의 이를 받은 벤처 회사들은 상장할 때 훨씬 유리하다.

“맞습니다.”

맥키니가 말했다.

“축산업계가 배양육 산업을 겁내는 건 맞습니다. 대체 산업이니까요. 하지만 겁나는 상대일수록 눈을 떼지 말아야 하는 법이죠."

맥키니의 노련한 사업 감각은 이미 배양육 산업을 애저녁에 캐치했다.

그는 언젠가 솟구쳐서 축산업 전반을 뒤집어놓을 그 막강한 기술을, 무시하기보단 차라리 직접 파버리기로 했다.

그 발전 단계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축산업도 발빠르게 적응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저처럼 배양육 벤처에 투자한 축산업 회사들은 꽤 있습니다.”

“그렇군요.”

“저랑 같이 잇더그린에 가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

잇더그린의 직원들은 꽤 분주해졌다.

가장 큰 투자자인 티케이슨 푸드의 맥키니 대표이사가 갑자기 방문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오, 와도 되냐고 묻는다고 우리 대표는 또 그걸 덥썩 오케이하시냐.”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프레데릭이 말했다.

원래부터 지저분한 연구실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손님이 온다는데 정돈해놓고 광을 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중요한 급한 볼 일이 있다잖아.”

스테판이 말했다.

과학자들은 배양된 인공 육류를 정돈했다.

“3번 플레이트 실험 역대급으로 잘 됐는데, 여기서 키운 고기 가지고 햄버거라도 하나 만들어드릴까.”

프레데릭이 인큐베이터를 보며 농담을 던졌다.

띵!

연구실 밖의 복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거기서 내리는 사람은 맥키니와 티케이슨 푸드의 임원들, 그리고 동양인 다섯 명이었다.

그 중 하나는 너무나 유명한 얼굴이다.

“닥터 류!”

경악한 프레데릭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류영준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어억……."

“안녕하세요.”

류영준이 인사하며 손을 건넸다.

“에이바이오의 대표, 류영준이라고 합니다.”

“바, 바, 반갑습니다. 프, 프레데릭입니다……."

프레데릭이 말을 심하게 더듬으며 류영준과 악수했다.

배양육 산업에서 류영준은 전설적인 인물이다.

당연히 류영준이 배양육에 관심을 가진 것은 최근이었으니, 그가 직접 무슨 일을 한 것은 없다.

하지만 배양육은 ‘줄기세포’로부터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프레데릭이 이 분야에 들어왔던 2년 전에는 줄기세포 기술이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소의 골수 등에서 매번 채취한 다음 그걸 배양해서 육류를 생산해야 했다.

그건 배양육 산업의 발전의 가장 거대한 걸림돌이었다.

동양에서 어떤 미친 천재가 ‘역분화 줄기세포’ 라는 괴물 같은 원천 기술을 발명하기 전까지는.

워낙에 기반 중의 기반 기술이다보니 제약과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영역에서도 큰 구조 변화를 초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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