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 아메리카 암 학회 (10) > (291/301)

134화.  < 아메리카 암 학회 (10) >

“어쩔 겁니까?”

FDA의 국장 스코트가 물었다.

콜드스프링에버 연구소.

연구소장 사무실에서 스코트는 인상을 찌푸린 채 제이미 앤더슨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소장님. 유럽의약품기구 (EMA)에서 APD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유럽 각지의 병원들에다가 말이에요. 그리고 승인 취소를 검토하겠답니다.”

"......."

“FDA는 그동안 소장님과 콜드스프링에버를 많이 봐줬습니다. 아시죠? 믿고 썼단 말이에요.”

“그 만큼 많이 받지 않았나.”

“무슨 큰일 날 소릴 하십니까. 우리 그 어떤 문제될 만한 관계도 아닙니다. 말조심하십쇼.”

"......."

“유럽의약품기구는 FDA랑 거의 동일한 위상을 갖고 있어요. 미합중국의 식약처가 FDA이듯, 유럽 연합의 식약처는 유럽의약품기구입니다. 거기서 APD 승인을 취소해버리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후우……."

“게다가 대통령 각하까지 저렇게 류영준을 싸고 도시는데, 제가 무슨 수로 여기서 소장님 편을 듭니까? 저는 이쯤에서 빠질 거예요. 근데 다른 대책이 있긴 있으신 겁니까?”

"......."

“올리버 박사는 어디 갔어요?”

“요즘 출근 안 하고 있네. 충격이 크겠지.”

“……. 에휴. 전부 엉망이군요.”

“나도 솔직히 충격이 크네. 면역 관문 억제제에 그런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줄 몰랐어. 그동안 안 믿었지만 이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아무튼 이제 저는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FDA에서도 조만간 APD 사용을 자제하라고 발표하게 될 겁니다.”

스코트는 짧게 얘기한 후 자리를 떴다.

면역 관문 억제제는 콜드스프링에버 연구소가 거의 20년을 파헤친 물건이다.

연구소 설립 이래 최고의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연구를 하던 중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고, 프로젝트 총괄자인 올리버 박사는 너무나 높은 난이도와 스트레스로 인해 몇 번이고 이 프로젝트를 엎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연구소의 이사진도 회의적이었다. 면역세포들을 활성화시켜 암을 잡겠다는 아이디어가 당초에는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웬만큼 기작이 알려진 후에도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걸 끝까지 밀어붙인 게 제이미 앤더슨이다.

그리고 임상까지 다 뚫고 마침내 성공시켰다고 생각했다.

‘공 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사형 선고를 받기 직전이다.

제이미 앤더슨의 지위는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 사자의 근처에는 들개들이 맴돈다.

근처에 다가가 그 작은 이빨로 슬쩍 슬쩍 깨물어보는 것이다.

처음 시작은 과학자들의 커뮤니티인 ‘리서치게이트 (ResearchGate)’에 올라온 글이었다.

-올리버 박사는 불쌍하지만 솔직히 누구는 꼴좋다. 허구한 날 인종차별하더니 동양인한테 제대로 엿 먹었네 ㅋㅋㅋ

이 짧은 글 하나가 순식간에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면서 제이미 앤더슨의 인종차별에 대한 이슈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면역 관문 억제제의 부작용으로 화제의 중심에 오른 사람이다.

근데 제이미 앤더슨이 그에 더해서 인종차별 주의자라면?

상당히 흥미로운 방송이 될 것임을 직감한 CNN이나 폭스 뉴스 등의 각종 매스컴들은 좀 더 구체적인 제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튿날 오후.

“그럼 연구소 내에서 여성 과학자들과 흑인 과학자들에게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발언들을 계속 했다는 말인가요?”

CNN 기자 나탈리가 물었다.

익명을 보장받은 콜드스프링에버의 한 연구원은 그간 쌓아온 것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네. 아주 장난이 아니에요. 특히 흑인 여성인 저는 둘 다 중첩이라서 난리 났죠. 들으면 기절하실 걸요?”

“혹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 흑인 여성들은 유전학적으로 엉덩이가 크게 진화해서, 트월킹 (Twerking, 자세를 낮추고 상체를 숙인 상태에서 엉덩이를 빠르게 흔드는 춤)을 추는 데 특화되었다고 얘기한 적 있어요. 저보고 연습해서 야유회 때 한 번 보여달라더군요.”

"......."

나탈리는 충격으로 잠깐 말을 잃었다.

“어……. 진짜 상상 초월이네요……."

“그렇죠? 더 심한 것도 많이 있어요. 흑인들은 피부가 더 매끈한데 그게 멜라닌 색소를 합성하는 유전자 발현량이 많아서 그렇다, 근데 아마 멜라닌 발현량이 지능 저하에 영향을 줄 것이다.”

“……. 잠깐만요. 그런 말을 제이미 앤더슨 소장이 했다고요?”

“학회 같이 공개된 자리에서도 종종 그런 말들 대놓고 해요. 연구소 안에서는 어떻겠어요? 거의 일상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이에요. 미팅할 때도 흑인 연구자가 안 좋은 데이터 가져가면 ‘당신 피부색만큼 이 프로젝트의 미래가 시커멓다.’ 같은 말들을 막 던져댑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런 말을 해요?

“그리고 솔직히 연구소 내에서 나오는 논문들 중에서 절반 이상은 연구소장은 아예 그 프로젝트의 존재조차 제대로 모르는 것들도 많아요. 근데 그것들도 전부 다 자기 이름 교신저자로 집어넣어요. 그것도 연구윤리 위반이에요.”

“세상에……."

“솔직히 그런 사람이 연구소장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이번 기회에 면역 관문 억제제 프로젝트 실패의 책임을 지고 떠났으면 좋겠네요.”

제이미 앤더슨의 무시무시한 카리스마와 위신은 신기루처럼 지워졌다.

더 이상 보스라고 겁낼 필요가 없어진 과학자들의 제보는 수없이 이어져 빗발쳤다.

20세기 생물학의 최고의 영웅이었던 노벨상 수상자, DNA 구조의 발견자 제이미 앤더슨의 추악한 이면에 미국 전역이 경악했다.

같은 필드에 있는 과학자들은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었지만 사회 일반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요즘 뉴스는 쉴 시간이 없다.

류영준의 암 정복 선언을 보도하고, 대통령의 발표문을 보도하고, 면역 관문 억제제의 부작용을 보도하고, 숨가쁘게 달린 끝에 이제는 제이미 앤더슨의 인종차별과 성차별 스캔들이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의 추락과 21세기 최고의 과학자의 부상.

CNN에서는 류영준과 제이미 앤더슨의 사진을 동시에 걸어놓고 헤드라인을 띄웠다.

워낙에 비슷한 시간대에 동시에 급락하고 급부상한 인물인 데다가 강력한 천재성으로 비견되었던 관계다.

그리고 면역 관문 억제제를 두고 싸웠던 숙적이었다.

미국의 매스컴들은 두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했고, 류영준에게 인터뷰 요청을 계속 날려댔다.

류영준은 거의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학회에서 모의 종양으로 실험했던 것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요구는 결국 무시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논문을 읽어도 되고, 학회에서 류영준이 설명해준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국민적인 관심이 몰린 문제라면, 실험 책임자로서 비전공자들에게 어느 정도 풀어서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다.

“……해서 EGFR이 세포 분열 신호를 계속해서 발생시키고 암세포가 엄청난 속도로 증식하게 되는 겁니다.”

CNN 인터뷰에서 류영준이 설명을 마쳤다.

그러자 우려했던 대로 인터뷰어 나탈리는 제이미 앤더슨에 대해서 교묘하게 질문했다.

“요즘 과학계에서 인종 차별 이슈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네."

“피부색처럼 모든 인종들은 서로 조금씩 다른 특성들이 있는데, 그들 모두가 하필 지능만 동일하게 진화했으리라는 건 순진한 전제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마 이 대답을 무기 삼아 제이미 앤더슨을 두들겨 팰 것이다.

군중들은 악당을 제압하는 히어로에 열광하니까.

“유전자는 지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인종간에 유전자가 크게 다르면 지능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류영준이 대답했다.

“지능이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건가요?”

“네?”

“연역 추론 능력, 공감각 능력, 상상력, 언어 능력, 기억력, 산술 능력. 지능이라고 불릴 만한 능력들은 상당히 다양하고 과학계에선 꽤 체계적으로 정리되어가는 중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들 중 어떤 것이 더 우월한 능력인지 따위를 모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언어 능력’은 어떻게 평가할수 있을까요? 여섯 단어로 사람을 울릴 수 있다는 헤밍웨이 같은 천재 작가는 발군의 언어 능력을 가진 걸까요? 그렇게 작문을 잘 하는데 말은 어버버한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은 언어 능력이 좋은 걸까요? 아니면 나쁜 걸까요?”

“아……."

“그리고 사르트르 같은 위대한 철학자와 폰 노이만 같은 천재 수학자 중 누가 더 ‘지능’이 뛰어날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군요.”

“그렇습니다. 이건 물체의 질량과 길이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1미터와 1그램 중에서 무엇이 더 큰 값인가요? 라고 물으면 누가 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선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생물학적인 지능 지수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류영준이 말했다.

“언어 능력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의 개수는 약 2,000여 개 정도 됩니다. 그들이 뇌 세포 하나하나에서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서 그 세포의 활성이 달라집니다. 그 세포들끼리 서로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느냐에 따라서 ‘언어 능력’이 발휘되겠죠. 미시 세계의 복잡성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심합니다.”

“그러니까, 유전자가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거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걸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는 뜻이지요?”

“맞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또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콜드스프링에버 연구소의 연구소장, 제이미 앤더슨 박사가 과거 네이처에 발표한 DNA 구조 규명의 논문에 대해서입니다. 그게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과학자의 데이터를 도용했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류영준의 옆에 앉아있던 로잘린이 그를 홱 돌아보았다.

“저는 로잘린드 프랭클린 박사가 받아야 할 몫들 중 상당수가 앤더슨 박사님께 갔다고 생각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 데이터는 로잘린드 프랭클린 박사가 생산한 것이었고, 논문은 작성 중이었습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것이었죠. 앤더슨 박사에게 누가 그걸 가져다줬든 상관없이, 그 데이터가 무단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중대한 연구윤리 위반이에요. 이런 일은 일어나면 안 됩니다.”

***

에이바이오.

박주혁은 이혜원 변리사의 옆자리에 서서 배가 아프도록 깔깔 웃어댔다.

“아, 이 미친놈 진짜……. 미국까지 가서 정의구현하고 20세기 과학 거장을 은퇴시켜버리네.”

그가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우리 대표님이지만 진짜 이럴 때는 보면 무서워요.”

이혜원이 말했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한국에서도 연일 시끄러운 기사거리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특보가 날아왔다.

-제이미 앤더슨, 콜드스프링에버 연구소장직 사임.

말이 사임이지 사실상 잘린 거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차별주의자가 박살난 꼴 보니 기분 좋다.”

박주혁이 말했다.

“볼일 다 보셨으면 이제 그만 가서 일하시죠? 저도 특허 서류 써야해요.”

“무슨 특허가 또 있어?”

박주혁이 피식 웃었다

“네, 이번에 스웨덴에서 온 거예요. 그 뭐냐, 유전자 외과 수술법.”

“아, 그거 쓰는구나.”

“네. 그래도 요즘 일 할 만해요. 야근도 없고.”

“너 근데 메일 왔다.”

박주혁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정말이다. 그리고 발신자가 류영준 대표다.

달칵.

눌러보니 논문 초안에 해당하는 원고와 몇 가지 컨셉이 들어있었다.

-이혜원 변리사님. 이거 특허 팀에서 상세히 검토해주시고 출원 준비 부탁드립니다.

[하이퍼프로그레션 현상을 토대로 배양육을 빠르게 증식시키는 기술에 관한 특허 출원 건.]

"......."

이혜원의 말이 없어졌다.

박주혁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야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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