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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 아메리카 암 학회 (9) > (290/301)

133화.  < 아메리카 암 학회 (9) >

캠벨 대통령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류영준이 암 학회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확인해주었다.

“이번에 미 정부는 연간 30억 달러에 해당하는 펀딩을 통해 에이바이오의 대표이사, 류영준 박사님이 미국에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캠벨이 말했다.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는 미국의 국립 보건원 (NIH)와 관계회사의 형태이며, 보건원의 소속 기관인 국립 암센터 (NCI), 그리고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 (NCBI) 등의 모든 항암 연구 자료에 접근할 권한을 가집니다.”

법인 자체는 미국법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결국 외국인의 회사가 아닌가?

미국 정부가 거기다가 이 정도의 권한을 허락해주는 것도 몹시 이례적이다.

게다가 연간 30억 달러의 지원을 쏟아 붓는다는 건 솔직히 미친놈 소릴 들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다.

“또한 미 정부는 이로부터 개발되는 신약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캠벨이 말했다.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는 설립 당시부터 말이 많은 사업이었습니다. 외국 기업의 진출을 미국이 그 많은 혈세를 써가면서 왜 도와야하느냐고 말입니다. 백악관은 이 결정에 대해서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암 연구소가 건설되는 동안 그런 말들은 쏙 들어갔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에이바이오와 류영준 대표가 그 사이에 너무나 막대한 위업들을 달성해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이 캠벨의 발표를 받아 적었다. 이미 류영준이 학회에서 일종의 스포일러를 했기 때문에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분위기가 반전되어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나오고 있습니다. 그 정도 돈을 투자하고 미국이 아무것도 얻어가지 못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이익이 남지 않는 투자는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실패한 투자다, 또는 캠벨 대통령과 류영준 박사와의 관계를 조사해야 한다.”

캠벨이 말했다.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게 여론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캠벨이 류영준이 학회에서 먼저 모든 걸 얘기하게끔 해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론을 미리 살피는 것.

그에 따라 대통령의 발표문도 조금씩 바뀔 예정이었다.

그리고 상황은 그의 예상대로, 그가 원했던 대로 흐르고 있었다.

“일단 사실을 먼저 알려드리면, 저는 불과 며칠 전에 류영준 박사님을 처음으로 한 번 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캠벨이 말했다.

“미 정부의 이런 단호한 결정은 류영준 박사의 천재성과 미국의 자본이 결합했을 때의 시너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중대한 고비의 문턱에 와있습니다.”

그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미국은 류영준 박사와 에이바이오, 에이젠의 힘을 빌려 앞으로 반세기 안에 인류사에서 ‘암’이라는 질병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찾아내겠습니다. 기술력이 모자라서 치료하지 못하는 불치의 암이라는 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캠벨은 마이크를 들고 기자들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 정부가 막대한 돈과 자원을 투자해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부터 몇 가지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작년 미국에서는 173만 명이 새롭게 암 환자로 진단되었습니다. 그리고 60만 9천 명이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캠벨이 말했다.

“지난 5년의 데이터를 토대로 볼 때 미국 시민은 평생에 걸쳐서 한 번 이상 암을 진단받을 확률이 38 퍼센트에 이르렀습니다. 작년에는 15,270명의 19세 미만 소아와 청소년이 암을 진단받았고, 1,800명이 투병 끝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캠벨의 발표가 이어짐에 따라 지지자들이 곳곳에서 타이밍 좋게 환호성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암을 케어하는 데 드는 국가적 비용은 작년에 1,470억 달러로 집계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모두 끝내는데 연 30억 달러의 투자는 굉장히 저렴한 게 아니겠습니까?”

캠벨이 말을 이었다.

“류영준 박사님이 체내 세포 유전자 외과 수술법을 개발한 이후, 지금 과학계는 류영준 박사님의 항암 프로젝트를 함께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백악관은 현명하게도 이미 수개월 전에, 류영준 박사님의 능력과 전망을 빠르게 캐치하고 암 연구소를 설치하였으며 이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잘했다!”

“지원금 더 퍼부어!”

시민들 중 몇몇이 소리를 질렀다.

캠벨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는 미국이 ‘투자’하는 게 아닙니다. 미국에 ‘유치’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우리 정부가 올해 진행한 일들 중에서 가장 훌륭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캠벨이 말했다.

“류영준 박사님은 이미 에이즈 퇴치 사업 같은 초국적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고, 알츠하이머나 당뇨 같은 난치 질환들의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한 전력도 있습니다. 그분과 에이바이오의 능력은 이미 입증되어 있습니다. 또한 류영준 박사님은 스스로도 항암 신약의 특허를 포기할 정도로 이 사업에 대해 깊은 진정성과 헌신을 약속하셨습니다.”

캠벨이 말했다.

“위대한 미국의 국민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미국은 류영준 박사님의 최고의 전우이며 친구입니다. 저희는 함께 암의 정복이라는 인류사 최고의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맞잡으면 그 질병은 반세기 안에 멸종하게 될 것입니다.”

***

필라델피아 시의 킹스레타 스트리트, 수제 버거와 맥주를 파는 가게 안.

"......."

류영준은 식사를 하다가 포크를 든 손 그대로 굳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생명창조 팀원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가게 전면에 설치된 거대 텔레비전에서 미 대통령의 발표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 미국이랑 친구 먹으셨습니까?”

천지명이 물었다.

“금시초문이네요.”

류영준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답했다.

박동현이 피식 웃었다.

“정말 친분 과시 오지는데요.”

“에이바이오의 미국 진출은 미국이 투자한 게 아니라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크으……."

천지명이 감탄을 터뜨렸다.

“근데 솔직히 자랑할 만하긴 하죠. 제가 대통령이어도 국무총리 붙잡고 자랑했어요.”

박동현이 말했다.

“그쵸? 대표님? 자기가 연 30억 달러 펀딩하고 암 연구소 지어준 사람이 갑자기 모든 암을 끝낼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거 뭐 거의 비트코인 수준 떡상 아니에요? 투자면 워렌 버핏 뺨치는 레벨인데.”

류영준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류 대표님 이제 어느 나라 가도 귀빈 대접 받겠네요.”

배선미가 말했다.

“부담스러운데.”

류영준이 콜라를 마셨다.

“근데 대표님 왜 맥주 안 드세요?”

정혜림이 물었다.

“음……. 그냥 오늘은 별로 술이 안 당기네요.”

류영준이 둘러대며 테이블 옆에서 장난치는 로잘린을 쳐다보았다.

술 마시면 또 알코올 흐르는 혈관 쓰고 싶지 않다고 다 분해하겠다고 날뛰겠지?

류영준이 콜라를 다시 홀짝였다.

‘너 뭐 하고 있냐?’

류영준이 물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냥 가만히 사람들 얼굴만 그렇게 쳐다봐도 재밌어?’

-네. 사람들도 그런 것 같은데요. 당신 얼굴만 쳐다보고 있잖아요.

‘어?’

로잘린 말에 고개를 돌리는데 순간 가게 안에 있는 손님 다섯과 눈이 마주쳤다.

이제 보니 가게 테이블 곳곳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류영준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는 이제 대통령의 발표가 지나갔고, 학회에서 강의하는 류영준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저기……."

뒤에서 누군가 류영준을 불렀다.

턱수염이 수북한 남자였다. 가게 주인이다.

“혹시 류영준 박사님이십니까?”

그가 텔레비전의 류영준의 얼굴과 비교하면서 물었다.

“네. 맞습니다.”

“와우."

그는 굵직한 감탄을 터뜨리더니 멍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다시 중얼거렸다.

“와우……."

무슨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손까지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혹시 뭐……. 뭐 필요하신 것 있습니까?”

“네? 아니요.”

“가만 있어보자. 잠깐만요. 제가 서비스를 좀 가져오겠습니다.”

“아니 괜찮은……."

류영준이 사양하려 했지만 남자는 벌써 몸을 돌렸다.

그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주방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류영준의 테이블로 곧장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주위에서 식사하던 손님들이다.

“정말 류 박사님이십니까?”

그들이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오우……. 저 팬입니다. 류 박사님, 저랑 아들이랑 같이 사진 한 번만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40대 여성이 아들 손을 잡아 끌면서 물었다.

“잠깐만요. 식사 중이신데 방해하지는 맙시다.”

약간 뒤에서 70대 노신사가 말했다.

“류 박사님, 혹시 괜찮으시면 식사비 저희가 내드려도 될까요?”

한 젊은 커플이 물었다.

“헤이!”

갑자기 주방 안에서 가게 주인이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류 박사님 건드리지 마쇼. 그리고 나도 돈 받을 생각 없어요!”

"......."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와중에 시민들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 할머니가 알츠하이머였거든요. 근데 이번에 치료받고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여기 있는 제 아내가 간암이었습니다.”

“제가 20년 전부터 평생 당뇨를 달고 살았는데 에이먹 먹으면서 삶의 질이 훨씬 좋아졌어요.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보실래요? 이거요. 에이먹, 맞죠?”

사방에서 정신없게 쏟아지는 말들 가운데, 가게 주인이 커다란 플레이트를 들고 다가왔다.

“허허허. 류 박사님.”

그는 류영준의 테이블에 요리를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저는 사실 에이즈 환자였습니다.”

"......."

“제 아내도 에이즈 환자였습니다. 제가 옮겼죠. 그때는 보균자인 줄 몰랐거든요. 정말 괴로웠습니다. 근데 이젠 둘 다 치료받았어요.”

“그랬군요."

“환자‘였’다는 표현이 참 재미있죠. 불과 1년 전까지는 이런 표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살아서 여기서 요리하고 있는 것은 다 류 박사님 덕분입니다.”

류영준이 기분 좋게 웃었다.

“나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사인 하나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가게에 오랫동안 보관하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식사비도 안 받으신다니까,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크으, 감사합니다. 혹시 제 아내 불러도 될까요? 지금 저희 집에, 여기 가게 바로 앞에 있거든요. 류 박사님 보고 싶어 할 겁니다.”

“하하, 그건 저한테 물어보실 일이 아니죠.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크으. 여러분!”

흥분한 가게 주인이 손님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은 돈 안 받습니다! 맘껏들 드십쇼!”

“와!”

가게 안의 손님들이 박수를 쳤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어가는 중이었다.

“대표님, 저거 보세요.”

정혜림이 TV를 가리켰다.

또 다른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류영준 박사는 아메리카 암 학회에서 오가노이드 기술로 제작한 초소형 소장에 암세포를 이식한 인공 종양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면역 관문 억제제인 APD를 투여한 결과 인공 종양이 9시간 동안 16배 이상 급속히 성장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화면에는 인공 종양 실험 장면들과, 암 학회 안내처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침통한 표정의 제이미 앤더슨의 얼굴이 차례로 나왔다.

-유럽의약품기구 (European Medicines Agency)는 이번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APD 승인을 취소하는 것을 면밀히 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정확한 결론을 지을 때까지 각 병원에서 APD의 사용을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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