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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화. < 아메리카 암 학회 (8) > (289/301)

132화.  < 아메리카 암 학회 (8) >

“자랐다……."

객석에 있던 과학자 중 하나가 말했다.

다시 또 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확실히 커졌어.”

“종양 증식이 이렇게 실시간으로 눈으로 관찰되는 건가?”

“보통 이 정도로 눈에 띄게 자라려면 며칠은 걸려요.”

“저 정도로 종양이 빠르게 증식하는 경우는 하이퍼프로그레션밖에……."

“진짜잖아. APD가 하이퍼프로그레션을 일으켰어.”

“맙소사……."

“아니 세상에 뭐 이런 실험이 있지? 이런 기술력이 가능한 건가?”

류영준은 사방에 퍼져나가는 소란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류 박사님!”

누군가 외쳤다.

“저 오가노이드랑 종양 실험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에이바이오에서 소장 오가노이드를 개발했다고 리포트한 건 봤습니다만....... 그래도 이 실험 자체가 너무 충격적입니다. 실험 방법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십시오.”

“네."

류영준이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방금 말씀드렸던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특허 포기와 표적 유전자들의 지적 재산의 무상 배포, 그건 미국 정부가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저희를 전적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미 정부에 아주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류영준이 말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실험, 하이퍼프로그레션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이 실험은 저희 연구소의 뛰어난 연구원들 덕분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류영준은 객석 맨 앞에 있는 생명창조 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설마…….'

박동현이 움찔했다.

“천지명 수석님과 우리 팀원 분들 잠깐만 올라와주세요.”

배선미가 당황한 얼굴이 됐다.

“얘, 얘들아. 너희끼리 올라가.”

객석에 있는 과학자들은 모두 세계 유수의 명문대 교수들이나, 거대 제약 회사의 중요한 연구원들이다.

그리고 강단에 올라가면 그들에게 오가노이드와 인공 종양에 대해 강의를 해야 할 것이다.

“뭘 쫄고 그래. 배 책임.”

천지명이 자리에서 쓱 일어나며 배선미에게 말했다.

“에이젠 6 연구소에서 매년 닦이던 때 생각하면 이런 건 뭐 일도 아니지.”

생명창조 팀원들은 상기된 얼굴로 무대 위에 올라갔다.

류영준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그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별로 괴롭혀드리진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거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주십쇼.”

박동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류영준은 마이크를 들고 생명창조 팀원들을 소개했다.

“저희 연구소에서 오가노이드 개발을 비롯한 여러 중요한 실험들을 해주신 핵심 인력들입니다. 왼 쪽부터 천지명 수석 연구원, 배선미 책임 연구원……."

류영준이 팀원들을 소개해주었다.

짝짝짝짝!

박수와 환호가 한 차례 쏟아진 다음, 류영준은 오가노이드 제작 과정과 인공 종양 접종에 대해서 강의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생명창조 팀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주고받으면서 강의를 이었다.

"......."

정혜림은 어쩐지 가슴속이 꽉 차오르는 기분이 되었다.

류영준은 혼자서도 충분히 모든 답변을 다 할 수 있었다.

생명창조 팀원들을 이곳에 불러온 것은 1선 연구자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줌으로써 그들의 노고를 칭찬해주려고 한 것이다.

‘실험을 수행한 연구자가 가장 많은 몫의 명예를 얻어야 한다.’

과학계의 기본 원칙 중 하나다.

그래서 제1 저자는 실험을 직접 수행하고 논문을 쓴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이, 특히 회사에서는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정혜림이 류영준을 힐끔거렸다.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엄청난 속도로 질주해서 저 위치까지 올라갔다.

백악관을 주무르고 슈마틱스 같은 거대 기업을 박살낼 정도로 강력한 인지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류영준은 아직까지 1선 연구자에 대한 태도가 예전과 똑같았다.

***

발표가 끝난 후, 인큐베이터는 강의실에서 나와서 학회 안내처 앞으로 옮겨졌다.

암 연구 협회 정문으로 들어왔을 때 정면에 보이는 접수대 바로 옆에 놓이게 된 것이다.

종양을 확대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라이브 셀 이미저 (Live Cell imager)와 모니터도 바로 옆에 설치되었다.

“왜 하필 여기다 두는 거예요……?”

강연 참석 신청을 도와주는 접수대의 직원 중 하나가 옆자리의 사수에게 소곤거렸다.

“여기가 사람들 접근성이 젤 좋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부담감 장난 아닌데요.”

“어쩔 수 없지.”

이젠 강연 신청을 물어보는 사람보다 종양을 보러오는 사람이 몇 배는 더 많다.

과학자며 기자며 수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어 인큐베이터를 찍고 구경하고 그야말로 난리를 쳐댔다.

한 번 와서 보고 가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것 좀 보게. 아까 강연 듣기 전에 찍었던 사진이야. 지금이랑 봐봐. 거의 1.5배는 더 커졌어.”

“제가 아홉 시에 류 박사님이 강의하실 때 화면에 떴던 라이브 셀 이미저 영상을 찍었거든요?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 거의 3배는 커진 거 같아요.”

과학자들은 저마다 휴대폰 사진함을 열어놓고 앞에서 쑥덕거렸다.

일정 시간을 두고 계속 되돌아와 사진을 또 찍고 관찰하는 식이었다.

점심시간 전후가 대박이었다.

점심시간 직전에는 몰려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접수대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저마다 ‘점심 먹기 전후로 크기가 눈에 띄게 달라질까?’ 하는 호기심을 가졌던 거다.

때문에 점심시간 이후에도 엄청나게 북적거렸다.

이 생물학계에 길이 남을 ‘쇼’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오후 두 시가 지나자 거의 모든 게 분명해졌다.

“이젠 종양이 오가노이드 크기랑 비슷할 정도인데.”

과학자들이 감탄하며 말했다.

“하이퍼프로그레션이 아니면 종양이 이런 속도로 자랄 수가 있나?”

“잠깐만 비켜주세요.”

생명창조 팀원들과 류영준이 과학자들 사이를 헤치고 나타났다.

박동현과 고순열이 뭔가를 실은 카트를 밀고 있었다.

또 다른 모니터다.

“여기 두시면 됩니다. 이제 저한테 주세요.”

일행과 함께 들어온 영상 프로그램 전문가가 말했다.

그는 능숙하게 모니터를 설치한 다음, 라이브 셀 이미저와 연결했다.

장비 내부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녹화된 현미경 동영상이 있었다.

해당 영상을 불러온 다음 64배속으로 두 번째 모니터에 틀었다.

약 4분여로 압축된 다섯 시간의 동영상 클립이 재생되었다.

이렇게 보니 종양의 증식이 더욱 극명하다.

한 번 재생이 끝난 후에는 4분간 더해진 녹화 데이터가 추가되었다.

“감사합니다.”

“뭘요. 궁금한 거 있으면 또 불러주세요. 저는 다시 저희 연구실에 돌아가 있을 테니까요. 영상진단 연구실 303호입니다.”

“네, 고맙습니다.”

류영준이 자리를 뜨려던 때였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제이미 앤더슨과 올리버 박사가 현장에 와있었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좌우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앤더슨은 느릿느릿 현장으로 다가왔다.

그는 심경이 복잡한 듯, 거대해진 종양을 내려다보았다.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류영준은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앤더슨 박사님.”

"......."

“이런 식으로 콜드스프링에버 연구소에서 나온 중요한 연구를 공격하게 되어 저도 마음이 안 좋습니다. 하지만 과학에서 진실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없지 않습니까.”

"......."

“이 인큐베이터의 배양은 오늘 저녁까지 진행되고, 이후에 모두 정리될 겁니다. 데이터는 이후에 사이언스에 투고할 예정입니다.”

"......."

제이미 앤더슨이 이를 악물었다.

그 옆에 있던 올리버 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올리버는 면역 관문 억제제의 진짜 개발자다. 논문에서도 제1 저자로 들어갔다.

앤더슨은 펀딩 정도만 했을 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실험을 수행한 이는 올리버다.

자기 자식과도 같은 기술이 눈앞에서 해체되고 있었다.

“류 박사님.”

그가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 이 기술의 중요한 문제점을 보고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덕분에 더 많은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올리버가 류영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미 과학기술정책국장 제임스 홀드런은 대통령 캠벨과 대화하고 있었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에요.”

캠벨이 말했다.

“근데 너무 밑지는 장사라서……. 대체 왜 그런 요구를 들어주신 겁니까? 솔직히 뜻밖입니다.”

“어라?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지요. 홀드런 국장님. 당신이 나한테 류 박사는 우리 도움 없어도 결국 혼자서 암을 정복할 거라 하지 않았나요? 시간문제일 뿐이니 기회를 잡으라고.”

캠벨이 물었다.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그렇게 선뜻 해주실 줄은 몰랐죠. 저는 좀 아깝기도 합니다. 우리가 류 박사님한테 퍼붓는 돈이 얼맙니까? 미국이 수십 년간 쌓아온 암에 대한 모든 연구 자원을 전부 공유해주고, 무려 30억 달러에 이르는 지원을 해주잖습니까? 근데 우리가 거기서 얻어가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좀……."

“얻는 게 왜 없어요? 거기서 나오는 논문들에는 전부 미 국립 보건원의 펀딩에 대한 감사의 말이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건 명예적인 것뿐이지요.”

제임스 홀드런이 말했다.

“각하. 저 같은 과학자들은 명예와 명성을 좋아합니다. 저희들은 그 암 연구소에서 열심히 연구해서 사이언스에 제1 저자로 논문을 하나 낸다 그러면 감동하죠. 그 정도로 큰 논문 하나 들고 있으면 대학들이 교수직도 줍니다. 커리어적으로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고요.”

“근데 난 그런 것과 상관없고, 큰 돈을 류 박사한테 투자하는 입장이니 그만큼 실질적인 이익을 뽑아내야 한다?”

“그 정도로 자본주의적인 관점까진 아니지만……. 그저 봉사 정신으로만 진행하기에는 우리가 퍼붓는 지원금이 너무 막대한 것도 사실입니다.”

캠벨이 씨익 웃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회사가 아니라 정부가 아닙니까.”

"......."

"류 박사가 날아다닌 지난 1년간 과학계의 균형추가 아시아로 기울고 있다는 얘길 나한테 해준 사람이 홀드런 국장님 아닙니까?”

"그렇죠……."

"국장님. 의학, 생명공학, 바이오 신약이라는 미래 산업에서 그 동안 미국은 압도적인 격차로 세계 1위를 선점해왔습니다.”

"네."

"전 그걸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홀드런이 머리를 긁적였다.

“30억에 이르는 전폭적인 지원은 류 박사를 우리 편으로 붙잡아두기 위한 것입니다.”

“류 박사를 붙잡기 위해……."

한 인간을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미 정부가 이 정도로 많은 걸 헌신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제가 볼 때 류 박사님의 능력들은 아직 다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전에 우리랑 미팅할 때 배양육 얘기도 했잖습니까?”

“그렇죠……."

“어때요? 제 판단이 틀렸습니까? 저는 지금처럼 류 박사를 지원한다면 미국이 세계 과학을 계속 이끌어갈 수 있을거라 보는데.”

“뭐, 그건 그렇겠죠. 류 박사님은 21세기 과학자들 중에서 암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죠?”

“네. 간암 치료제 셀리큐어, 췌장암 치료제 버나젠, 그리고 이번에 폐암을 치료한 체내 유전자 외과 수술법. 셋 다 약물의 베이스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셀리큐어는 전통적인 화학 물질을 이용한 치료법이었다. 송지현 박사가 셀리큐어 개발에서 중추 역할을 했다고는 하지만 류영준이 분명히 그 가운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거다.

그럼 류영준은 유기화학에 통달한 생물학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근데 췌장암 치료제는 뜬금없게도 바이러스 기반이었다. 이제는 화학 물질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물고기의 췌장 괴사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조작해서 사람의 췌장 종양을 파괴하는 데 사용하는 정신 나간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폐암을 잡을 때는 신기술 두세 개를 융합해서 세포의 유전자를 수술하듯 조작했다. 이번에는 화학 치료법도, 바이러스 치료도 아닌 면역 세포 치료법이다.

“보통 그 셋 중 하나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온갖 과학 지식들에 진짜 통달해있는 인물이고, 엄청난 상상력과 추론 능력, 그리고 그걸 현실화할 수 있는 강력한 실행력도 갖고 있습니다. 류 박사와 계속 우호적으로 지내고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를 돌린다면 미국이 생물학에서 지금 자리를 지킬 수 있겠죠.”

“그럼 그걸로 됐습니다. 세금 허튼 데 쓴다고 누가 뭐라 하지도 못할 겁니다. 미국이 암 환자 세계에서 제일 많으니까요. 류 박사를 아군으로 잡아두고, 국민들에게 암을 정복한다는 희망과 자부심을 줄 수 있으면 30억 달러 비싼 것 아닙니다.”

캠벨이 말했다.

“오히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홀드런 국장님.”

“한 걸음 더요?”

“스웨덴 왕실 같은 데서도 류 박사한테 명예시민을 준다 어쩐다 하면서 자꾸 점 찍으려 하지 않습니까? 다른 국가들도 눈독 들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순서로 따지면 우리가 1번입니다.”

"......."

“그렇잖습니까? 우리는 옛날에 슈마틱스 때부터 류 박사를 지원해왔습니다. 이참에 우리와 류 박사한테 힘을 좀 실어주면서 우리의 관계를 좀 더 굳건히 하는 게 어떻습니까?”

“어떻게요?”

“우리도 명예시민이라도 준다고 할까요?”

"......."

“농담입니다. 일단 류 박사님이 오늘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특허 지침에 대해 발표하셨을 테니, 우리가 그걸 공개적으로 확인해주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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